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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IM 9:48 – 9:58_장엄함과 허장성세
VII. Grandeur Versus Grandiosity
VII. 장엄함과 허장성세
48 Grandeur is of God and only of Him. Therefore, it is in you. Whenever you become aware of it, however dimly, you abandon the ego automatically because in the presence of the grandeur of God the meaninglessness of the ego becomes perfectly apparent. Though it does not understand this, the ego believes that its "enemy" has struck and attempts to offer gifts to induce you to return to its "protection." Self-inflation of the ego is its alternative to the grandeur of God. Which will you choose?
48 장엄함은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온다. 따라서, 장엄함은 네 안에 있다. 네가 아무리 희미하게라도 장엄함을 알아차리게 될 때마다, 자동적으로 에고를 버리게 된다. 하느님의 장엄함 앞에서 에고의 무의미함은 너무나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에고는 비록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적”이 공격했다고 믿고서 너를 다시 자신의 “보호” 안으로 돌아오도록 꾀기 위해 선물을 주려고 한다. 에고는 하느님의 장엄함에 대한 대안으로 자아를 부풀려준다. 너는 어느 것을 선택하려는가?
49 Grandiosity is always a cover for despair. It is without hope because it is not real. It is an attempt to counteract your littleness, based on the belief that the littleness is real. Without this belief, grandiosity is meaningless, and you could not possibly want it. The essence of grandiosity is competitiveness because it always involves attack. It is a delusional attempt to outdo but not to undo. We said before that the ego vacillates between suspiciousness and viciousness. It remains suspicious as long as you despair of yourself. It shifts to viciousness whenever you will not tolerate self-abasement and seek relief. Then it offers you the illusion of attack as a solution.
49 허장성세는 항상 절망을 숨기는 덮개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기에 희망이 없다. 그것은 왜소함이 실제라는 믿음에 근거하여 너의 왜소함에 대응하려는 시도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허장성세는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너는 도저히 허장성세를 원할 수 없다. 허장성세의 본질은 경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공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효화하지는undo 않고 더 뛰어나려고만outdo 하는 망상적인 시도다. 우리는 전에, 에고는 의심과 사악함 사이를 오락가락한다고 말했다. 에고는 네가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동안은 의심스러워하는 상태로 남아있다. 에고는 네가 자기 비하를 용인하지 않고 벗어날 길을 구할 때마다 사악하게 변한다. 그리고는 너에게 공격이라는 환상을 해결책으로 제공한다.
50 The ego does not know the difference between grandeur and grandiosity because it does not know the difference between miracle impulses and ego-alien beliefs of its own. We once said that the ego is aware of threat, but does not make distinctions between two entirely different kinds of threat to its existence. Its own profound sense of vulnerability renders it incapable of judgment except in terms of attack. When it experiences threat, its only decision is whether to attack now or to withdraw to attack later. If you accept its offer of grandiosity, it will attack immediately. If you do not, it will wait.
50 에고는 장엄함과 허장성세 사이의 차이를 모른다. 왜냐하면 에고는 기적 충동과 자신의 자기 소외ego-alien 믿음 사이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젠가 에고는 위협을 알아차리기는 하지만, 자신의 생존에 대해 전혀 다른 두 가지 위협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에고는 스스로 아주 취약하다고 느끼므로, 공격과 관련짓지 않고서는 전혀 판단할 수 없다. 위협을 경험할 때, 에고는 단지 지금 공격할 것인지 나중에 공격하기 위해 일단 물러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에고가 내미는 허장성세를 네가 받아들이면, 에고는 즉시 공격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에고는 기다릴 것이다.
51 The ego is immobilized in the presence of God's grandeur because His grandeur establishes your freedom. Even the faintest hint of your reality literally drives the ego from your mind because of complete lack of investment in it. Grandeur is totally without illusions, and because it is real, it is compellingly convincing. Yet the conviction of reality will not remain with you unless you do not allow the ego to attack it. The ego will make every effort to recover and mobilize its energies against your release. It will tell you that you are insane and argue that grandeur cannot be a real part of you because of the littleness in which it believes.
51 에고는 하느님의 장엄함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 하느님의 장엄함은 너의 자유를 확립해 주기 때문이다. 너의 마음은 너의 실재에 대해 아주 조금만 알게 되더라도 에고에 대한 투자를 완전히 거둬들이므로, 그야말로 에고를 몰아낸다. 장엄함에는 환상이 전혀 없으며, 또한 그것은 실제이기에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확신을 준다. 그러나 에고가 실재를 공격하도록 허락하는 한, 너는 실재에 대한 확신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에고는 너의 해방을 가로막기 위한 에너지를 회복하고 결집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할 것이다. 에고는 너에게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자신이 신봉하는 왜소함 때문에 장엄함은 너의 진정한 부분일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52 Yet your grandeur is not delusional because you did not make it. You have made grandiosity and are afraid of it because it is a form of attack, but your grandeur is of God, Who created it out of His Love. From your grandeur you can only bless, because your grandeur is your abundance. By blessing, you hold it in your mind, protecting it from illusions and keeping yourself in the Mind of God. Remember always that you cannot be anywhere except in the Mind of God. When you forget this, you will despair, and you will attack.
52 하지만 너의 장엄함은 네가 만든 것이 아니며, 따라서 망상이 아니다. 너는 스스로 허장성세를 만들어놓고는 그것을 두려워한다. 허장성세는 일종의 공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의 장엄함은 당신의 사랑으로 장엄함을 창조하신 하느님에게서 온다. 너는 너의 장엄함으로부터 오로지 축복할 수만 있으니, 너의 장엄함은 곧 너의 풍요로움이기 때문이다. 너는 축복을 줌으로써 너의 장엄함을 마음에 간직하여 환상에서 보호하고, 너 자신을 하느님의 마음 안에 간직한다. 너는 하느님의 마음 외에는 어느 곳에도 있을 수 없다. 이를 항상 기억하라. 네가 이것을 잊는다면 반드시 절망할 것이며, 또한 반드시 공격할 것이다.
53 The ego depends solely on your willingness to tolerate it. If you are willing to look upon your grandeur, you cannot despair, and therefore you cannot want the ego. Your grandeur is God's answer to the ego because it is true. Littleness and grandeur cannot co-exist, nor is it possible for them to alternate in your awareness. Littleness and grandiosity can and must alternate in your awareness since both are untrue and are therefore on the same level. Being the level of shift, it is experienced as shifting, and extremes are its essential characteristic.
53 에고의 생존은 오로지 에고를 용인하려는 너의 용의에만 달려있다. 네가 기꺼이 자신의 장엄함을 보겠다고 용의를 낸다면 절망할 수 없고, 따라서 에고를 원할 수 없다. 너의 장엄함은 에고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다. 그것은 정녕 참이기 때문이다. 왜소함과 장엄함은 공존할 수 없고, 너의 의식에서 번갈아 일어날 수도 없다. 왜소함과 허장성세는 둘 다 거짓이므로 같은 수준에 있으며, 따라서 너의 의식에서 번갈아 일어날 수 있다. 사실 그 둘은 번갈아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에고는 변동하는 수준이므로 변동하는 것으로 경험되며, 양극단이야말로 에고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54 Truth and littleness are denials of each other because grandeur is truth. Truth does not vacillate; it is always true. When grandeur slips away from you, you have replaced it with something you have made. Perhaps it is the belief in littleness; perhaps it is the belief in grandiosity. Yet it must be insane because it is not true. Your grandeur will never deceive you, but your illusions always will. Illusions are deceptions. You cannot triumph, but you are exalted. And in your exalted state, you seek others like you and rejoice with them.
54 진리와 왜소함은 서로에 대한 부정이다. 장엄함은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오락가락하지 않으며, 항상 참이다. 장엄함이 네게서 슬며시 사라져버리자, 너는 그것을 네가 만든 어떤 것으로 대체했다. 그것은 어쩌면 왜소함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고, 허장성세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참이 아니기에 분명 제정신이 아니다. 너의 장엄함은 결코 너를 속이지 않겠지만, 너의 환상은 어김없이 속일 것이다. 환상은 정녕 속임수다. 너는 승리할 수는 없지만, 정녕 높이 격상된다. 너는 그렇게 격상된 상태에서 너와 닮은 자들을 구하며, 그들과 함께 크게 기뻐한다.
55 It is easy to distinguish grandeur from grandiosity because love is returned, but pride is not. Pride will not produce miracles and therefore will deprive you of your true witnesses to your reality. Truth is not obscure nor hidden, but its obviousness to you lies in the joy you bring to its witnesses, who show it to you. They attest to your grandeur, but they cannot attest to pride because pride is not shared. God wants you to behold what He created because it is His joy.
55 장엄함과 허장성세를 구분하기는 쉽다. 사랑은 돌아오지만, 자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자만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며, 따라서 너의 실재에 대한 참된 증인을 빼앗아갈 것이다. 진리는 모호하지 않으며, 감춰져 있지도 않다. 하지만 진리가 너에게 명백해지려면, 너에게 진리를 보여주는 진리의 증인들에게 네가 기쁨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그들은 너의 장엄함을 입증해주지만, 자만은 입증해줄 수 없다. 자만은 공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네가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보기를 원하시니, 그것이 바로 당신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56 Can your grandeur be arrogant when God Himself witnesses to it? And what can be real that has no witnesses? What good can come of it? And if no good can come of it, the Holy Spirit cannot use it. What He cannot transform to the Will of God does not exist at all. Grandiosity is delusional because it is used to replace your grandeur. Yet what God has created cannot be replaced. God is incomplete without you because His grandeur is total, and you cannot be missing from it.
56 하느님이 몸소 너의 장엄함에 대해 증언하시거늘, 그것이 오만일 수 있겠는가? 증인이 없는 것이 과연 실제일 수 있겠는가? 그것으로부터 어떤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것으로부터 좋은 것이 나올 수 없다면, 성령은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 성령이 하느님의 뜻으로 변형시킬 수 없는 것은 전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허장성세는 너의 장엄함을 대체하려고 사용되는 것이기에, 망상적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은 대체될 수 없다. 하느님은 너 없이는 완전하지 않으시니, 하느님의 장엄함은 총체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그것에서 빠져 있을 수 없다.
57 You are altogether irreplaceable in the Mind of God. No one else can fill your part of It, and while you leave your part of It empty, your eternal place merely waits for your return. God, through His Voice, reminds you of It, and God Himself keeps your extensions safe within It. Yet you do not know them until you return to them. You cannot replace the Kingdom, and you cannot replace yourself. God, Who knows your value, would not have it so, and so it is not so. Your value is in God's Mind and therefore not in yours alone. To accept yourself as God created you cannot be arrogance because it is the denial of arrogance. To accept your littleness is arrogant because it means that you believe your evaluation of yourself is truer than God's.
57 너는 하느님의 마음 안에서 전혀 대체될 수 없다. 다른 누구도 그 안에서 네가 차지하는 부분을 채울 수 없다. 그리고 네가 그 부분을 비워두는 동안, 너의 영원한 자리는 그저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음성을 통해 너에게 당신의 마음에 대해 상기시켜 주시고, 너의 확장들을 당신의 마음 안에 몸소 안전하게 간직하고 계신다. 하지만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기 전에는, 그들을 알지 못할 것이 다. 너는 천국을 대체할 수 없으며, 너 자신을 대체할 수도 없다. 너의 가치를 아시는 하느님은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그렇지 않다. 너의 가치는 하느님의 마음 안에 있기에, 네 마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대로의 너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만일 수 없다. 그것은 오만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너의 왜소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녕 오만이다. 그것은 너 자신에 대한 너의 평가가 하느님의 평가보다 더 참이라고 믿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58 Yet if truth is indivisible, your evaluation of yourself must be God's. You did not establish your value, and it needs no defense. Nothing can attack it or prevail over it. It does not vary. It merely is. Ask the Holy Spirit what it is and He will tell you, but do not be afraid of His answer, for it comes from God. It is an exalted answer because of its Source, but the Source is true and so is Its answer. Listen and do not question what you hear, for God does not deceive. He would have you replace the ego's belief in littleness with His own exalted answer to the question of your being, so that you can cease to question it and know it for what it is.
58 하지만 진리는 나뉠 수 없기에, 너 자신에 대한 너의 평가는 곧 하느님의 평가일 것이다. 너는 너의 가치를 확립하지 않았고, 그것은 전혀 방어가 필요 없다. 그 무엇도 너의 가치를 공격하거나 이길 수 없다. 너의 가치는 바뀌지 않으며, 다만 있다. 성령께 너의 가치가 무엇인지 물어라. 그러면 성령은 너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응답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그 답은 그 근원으로 인해 실로 높이 격상된 답이며, 그 근원이 참이기에 그 답도 참이다. 귀담아듣고, 네가 듣는 답을 의심하지 말라. 하느님은 속이지 않으신다. 너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하느님이 주시는 높이 격상된 답을 가지고, 왜소함에 대한 에고의 믿음을 대체하라. 하느님은 네가 그러기를 원하신다. 그럼으로써 너는 너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기를 그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된다.
[출처] [4월 19일] 텍스트 9:48 – 9:58 (한국 기적수업 공부 모임) | 작성자 도서출판 기적의 향기
첫댓글 장엄함은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온다.
허장성세는 항상 절망을 숨기는 덮개다.
허장성세의 본질은 경쟁이다.
에고는 장엄함과 허장성세 사이의 차이를 모른다.
에고는 하느님의 장엄함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
하느님의 장엄함은 너의 자유를 확립해 주기 때문이다.
너의 장엄함은 당신의 사랑으로 장엄함을 창조하신 하느님에게서 온다.
너는 너의 장엄함으로부터 오로지 축복할 수만 있으니,
너의 장엄함은 곧 너의 풍요로움이기 때문이다.
너는 축복을 줌으로써 너의 장엄함을 마음에 간직하여 환상에서 보호하고,
너 자신을 하느님의 마음 안에 간직한다.
너는 하느님의 마음 외에는 어느 곳에도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