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서울은 야구 도시가 될까?

[tguys(조한규)]

2010년 서울은 야구 도시가 될까

[스포츠2.0 2007-03-27 19:21]    

동양공전과 야구장 대지 사이의 거리는 70m다.(사진 김수홍)

1800년 프로이센의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베네수엘라의 한 마을을 지나다 나이가 많고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단순한 나무가 아니었다. 높이와 둘레는 위엄이 있고 잎은 훼손하면 큰일 날 것 같이 진귀했다. 요즘 같으면 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프로그램에 소개될만한 나무였다. 훔볼트는 여행에서 돌아와 그의 저서 <신대륙의 열대지방기행>을 통해 “노거목에서 심미적 애정과 경외감을 갖게 됐다”며 ‘천연기념물’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됐다. 천연기념물의 기원이다. 천연기념물은 희소성과 가치를 생명으로 한다.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데 개체수가 모자라면 법률로 보호한다. 야구장은 물론 법제화된 천연기념물은 아니다. 그러나 훔볼트식 시각과 희소의 가치로 따진다면 야구장은 비공인 천연기념물이다.

숨통을 열어줄 7개의 야구장

야구는 규칙이 어려운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실제 하기도 어렵다. 장비도 많이 필요하고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야구의 기본인 배터리와 1명의 타자만 봐도 배트 1개에 종류가 다른 글러브 2개와 마스크, 프로텍터 등 여러 장비가 등장한다. 공수가 바뀌면 모자와 헬멧이 바뀐다. 돈이 들 수밖에 없다. 거기에 안타나 홈런이 나올 넓은 공간도 필요하다. 안전도 늘 문제다.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질 때마다 몸에 맞는 공이 나올 개연성을 인정하고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 야구만화에서 판에 박힌 장면으로 꼽히는 ‘홈런에 깨진 학교 유리창’이 자주 나오는 것은 현실에서도 그럴 만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야구는 수십 년간 애정이 따랐지만 보는 스포츠에 머물렀다.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는 있지만 군대에서 야구한 이야기는 없다. 조기축구회는 흔하지만 조기야구회는 어색하다. 서울에서 공식경기를 치를 수 있는 야구장은 잠실, 목동, 동대문, 장충 등 4곳뿐이다. 장충구장은 리틀 야구장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열면서 대규모 경기장이 전국적으로 들어선 축구에 비해 야구는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야구장이 시간이 갈수록 비공인 천연기념물이 된 이유다. 3월 13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한국야구 발전 포럼에 참가한 많은 야구인들은 야구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 했다.

인프라를 포함한 야구계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과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이내흔 대한야구협회장은 3월 19일 서울시청에서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하고 고척동 등에 대체 구장 7곳을 짓는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교환했다.

서울시와 야구계가 그리는 기본 골격은 고척동 구장이 완공되는 2010년 3월까지 3년 안에 7개 야구장을 신축하는 것이다. 11월 철거되는 동대문야구장을 대신할 고척동 구장은 국제대회를 열 수 있는 규모로 짓고 지역주민이 활용할 수 있는 복합 체육공간으로 조성된다. 또 구의동 구의정수장과 신월동 신월정수장 용지에는 그동안 동대문구장에서 열리던 각종 대회를 차질 없이 치를 수 있도록 올해 10월과 2008년 2월 차례로 야구장이 들어선다. 이 밖에도 동호인들을 위한 야구장도 난지 한강시민공원(2개), 공릉배수지, 잠실유수지 등에 2008년 말까지 건립된다.

서울시와 야구 관련 단체는 지난해 11월 24일 첫 모임을 가진 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와 문화국, 야구계 비상대책위원회가 중심이 돼 109일 동안 13차례 회의와 수십 차례 현장답사를 거쳤다. 3월 13일까지 ‘3개에서 최대 7개’였던 신축 야구장 숫자가 3월 19일 최대값인 7개로 상향 조정된 것은 길었던 논의만큼 기대감을 준다. 비좁은 서울 시내에 야구장을 짓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지 확보가 어렵고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임동국 서울시 체육정책팀장은 3월 21일 “완공까지 충분한 시간을 고려했다. 7개 모두 짓는다”고 재확인했다.

야구 도시의 과제, 멀고도 험한 길

그러나 야구장 신축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 구장 건설은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여는 국가적 차원의 사업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졌다. 그러나 서울시의 야구장 신축 사업은 서울이라는 특정 도시에 한정돼 있는 데다 특정 종목인 야구를 위해 친환경 공간을 내줘야 한다는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동대문구장이 왜 철거돼야 하는지 왜 이곳에 야구장이 들어서는지 시민들의 이해도 부족하다. 문화연대는 3월 19일 서울시의 야구장 신축 계획과 관련해 ‘서울시의 일방적인 신개발주의 정책 사업으로 사회적 합의를 가장한 기만적인 행위’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제대회를 열 수 있는 야구장이 지어진다는 고척동 일대(1만 7,400평,63-6번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서울시의 사업 계획에 고개를 갸웃했다. 인근에서 16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신모씨는 “이곳은 예전부터 개발과 관련한 문제가 많아 수년 전부터 거의 버려진 땅이었다. 야구장은 금시초문”이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역 주민 고모씨는 “사람들이 개봉동은 알아도 고척동은 잘 모른다. 야구장이 들어선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느냐”며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고척동의 경우 토지문제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서울시는 “지주가 국유지를 포함해 7명인데 모두 흔쾌히 매입 요청을 해왔다. 이에 토지 매입 비용 600억 원 가운데 200억 원을 구로구청에 보내 처리했다. 올해 말에 400억 원의 지급이 마무리된다”고 했지만 구로구청은 “지주들과 접촉 중이며 200억 원 보상은 다 끝나지 않았다. 토지비용도 앞으로 얼마가 더 들지 모른다”는 서로 다른 말을 했다.

지주의 의견을 확인하기 위해 지주의 정보 공개를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이를 거부했다. 등기부 등본상의 지주인 해덕기업(전 해덕투자개발) 측은 “뉴스를 보고 (야구장 건립 계획을)처음 알았다. 야구장에 대해서 전혀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토지 보상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완공시기가 늦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주변 여건도 그리 좋지 않다. 지하철 1호선 구일역은 걸어서 가기에는 부담스럽다. 서부 간선도로 등 각종 도로가 지나는 주변 교통은 매우 혼잡하다. 게다가 고척동 대지에 인접한 학교만 4곳이다. 동양공전은 대지로부터 70m, 고원초등학교와 경인고등학교는 3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야구장의 소음을 피하기 힘들다. 동양공전 관리처 김택근 씨는 “아직까지 시청과 구청으로부터 야구장 건립 문제와 관련한 협조문서 한 장 받지 못했다. 구장이 완공되면 학교에서 야구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수업에 지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역주민들이 (야구장건립 문제와 관련해)전체적으로 많이 이해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야구장 건립 세부 계획은 앞으로 발표될 예정이지만 조금 더 납득할 만한 밑그림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SPORTS2.0 제 44호(발행일 3월 26일) 기사

심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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