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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1일 로열 콘서트헤보우 실황 / 105분>
=== 프로덕션 노트 ===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에서의 데니스 마추예프
건반 위의 거인으로 불리며 21세기 최고의 러시아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데니스 마추예프. 그는 장신의 거구답게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압도적인 위압감과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테크닉, 인간의 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스피드와 지구력, 다이내믹을 구사하는 괴물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명성에 비하여 영상물은 거의 없었는데, 이 2015년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에서의 솔로 리사이틀 실황을 처음으로 발매하며 그 경이로운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차이콥스키의 사계,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등등의 메인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리아도프의 뮤직 스너프박스, 차이콥스키의 메디테이션, 스크리아빈의 연습곡 Op.8 No.12, 자작곡인 재즈 즉흥곡으로 이어지는 앙코르까지 피아노 연주의 신세계를 보여준다.
건반 위의 거인으로 불리며 21세기 최고의 러시아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데니스 마추예프. 그는 장신의 거구답게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압도적인 위압감과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테크닉, 인간의 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스피드와 지구력을 구사하며 러시아 레퍼토리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영광의 금자탑을 쌓아가고 있다. 그가 게르기예프와 협연을 할 때 보여준 신기막측한 스케일과 총알만큼 빠른 스피드, 그 안에서도 강건한 구조와 디테일한 표현력, 여기에 피아노 현이 끊어지는 듯 천둥처럼 쏟아지는 막강한 포르티시시시모와 강철보다도 더 단단하게 느껴지는 러시아적인 터치 등등, 러시아 협주곡들에 있어서 그는 음악의 청각적 이해를 넘어서는 육체의 전율적인 경험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명성에 비하여 영상물은 거의 없었는데, 이 2015년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에서의 솔로 리사이틀 실황을 처음으로 발매하며 그 경이로운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차이콥스키의 사계,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로 이어진 메인 프로그램에서 그는 자신만의 서정성과 독자적인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해석가로서의 면모를 한껏 발산한다. 특히 페트루슈카의 엄청난 다이내믹과 날카로운 리듬, 너무나 러시아적인 색채와 비장미 넘치는 스토리텔링을 듣노라면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가운데 이 작품을 마추예프만큼 스펙타클하게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후 앙코르에서도 그의 매력발산은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피아노의 거장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점철되어 있는 리아도프의 뮤지컬 스너프박스를 비롯하여 차이콥스키의 메디테이션, 호로비츠의 연주 이후 가장 충격적인 연주력이 빛을 발하는 스크리아빈의 연습곡 Op.8 No.12 등등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마추예프의 장기이기도 한 재즈 즉흥곡이 펼쳐진다. 강렬한 에너지와 화려한 테크닉,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즉흥곡이 끝난 뒤 무대 위에는 십자포화가 쏟아진 듯한 자욱한 포연이 흘러나오며 청중을 황홀경에 이르게끔 한다. 피아노 매니아라면 반드시 소장해야 하는 음반으로서 화질과 음질 모두 완벽에 가깝다.
=== 작품해설 === <2011년 2월 21일 네이버캐스트 / 월간 '라 뮤지카' 편집장 김효진 글>
명곡 명연주
차이콥스키, 사계
러시아의 음악잡지 '누벨리스트'에 싣기 위해 위촉 받은 작품
1875년 12월부터 1876년 11월 사이에 완성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연작인 [사계]는 이 작곡가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교향곡이나 다른 협주곡에 가려져 있지만 그 음악적 가치는 재발견되고 있는데 계절의 변화와 시 그리고 음악이 매우 색다른 방식으로 어울리고 있다. [사계]는 출판업자이자 잡지 발행인이었던 니콜라이 베르나르드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매달 1일에 발행되던 음악잡지 [누벨리스트]에 싣기 위해 차이콥스키에게 위촉한 작품이다. 현재 이 작품의 기원과 관련하여 문서로 남아 있는 정보는 극히 드물다. 베르나르드와 차이콥스키가 이 위촉과 관련하여 주고받은 서신 날짜는 1875년 말로 되어 있다.
매달 잡지에 실렸던 차이콥스키의 1년 사계절 연작
1875년 11월 24일, 차이콥스키는 출판업자인 니콜라이 베르나르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계] 연작을 쓰겠다는 답장을 보낸다. “당신이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나에게 기꺼이 그토록 많은 작곡료를 주겠다는 당신의 배려에 대단히 감동받았습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열과 성을 다해 돕겠습니다. 첫 번째 곡, 어쩌면 그 다음 두세 곡을 더 간략하게 보내려 합니다. 여건만 맞는다면 곡들을 빨리 마무리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피아노곡을 쓰고 싶은 기분입니다. P. 차이콥스키로부터. 당신이 제안한 제목을 그대로 유지하렵니다.”
1875년 12월 13/25일에 차이콥스키는 베르나르드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오늘 저녁이나 내일쯤 첫 두 곡을 우편으로 보낼 것입니다. 당신이 이 작품을 너무 길거나 형편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진 않군요. 부디 솔직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그래야만 다음 곡들을 쓰는 동안 당신이 요청한 바를 마음 속에 새겨둘 수 있을 테니까요…. 만일 두 번째 작품이 적합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그러니까 다시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주저없이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다음 번, 그러니까 1월 15일경에는 다른 곡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연작에 속한 나머지 곡들은 1876년 1월 23일과 2월 4일 차이콥스키가 베르나르드에게 쓴 편지에도 나타나 있듯이 아마도 1876년에 작곡되었을 것이다. “오늘은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면목이 없네요, 그래서 편지로 대신할까 합니다. 지금 200루블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 돈이 없으면 여기서 살 수가 없습니다. 남은 작품들의 작곡료를 분할하여 지급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작품을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때에 곡들을 받을 거라 기대하셔도 됩니다.” 작품 ‘3월’(3번)이 실려 있는 잡지 누벨리스트 3호는 2월 17일에 검열을 통과했다. ‘4월’(4번)이 소개된 4호는 1876년 3월 22일에, ‘5월’(5번)이 실린 5호는 4월 20일에 통과됐다. 뒤의 일곱 곡(‘뱃노래’부터 ‘크리스마스’까지)은 하나의 카피북에서 모두 찾을 수 있고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판업자는 각각의 곡마다 다양하게 메모를 해두었다(예를 들어 11월에는 ‘Nuvellist No.11’이라고 적혀 있다).
싯구와 함께 소개된 피아노 작품 시리즈
뱃노래’(6월)는 1876년 5월 18일에 검열을 통과한 이 잡지 6호에 출판된 것으로 보아, 차이콥스키가 발레곡 [백조의 호수]을 완성(4월 10일에 완성)한 뒤 4월부터 이 곡들을 작곡하기 시작해서 늦어도 1876년 5월 15일에는 완성한 것으로 결론짓는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확실히 차이콥스키는 5월 말에 우크라이나와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 곡들을 서둘러 완성했다. 1876년 10월 23일에 이 시리즈는 각각 출판하기 위한 검열을 통과했다.
앞서 언급한 증거를 감안해 볼 때 차이콥스키가 매달 앉아서 한 곡만 쓰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언급했던 편지 중 1875년 11월 24일 차이콥스키가 니콜라이 베르나르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각 작품의 제목과 그에 따르는 시어들은 이 출판업자가 작곡가에게 제안했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사계]는 1876년 [누벨리스트]지에 처음 출판됐다. 출판에 앞서 1875년 12월호(통권 12호) 표지에 굵은 서체로 쓴 안내문이 실렸다. “유명한 작곡가 P. I. 차이콥프스키, 내년 호에 본지를 위해 작곡한 피아노 작품 전곡 시리즈를 기고하겠다고 [누벨리스트] 편집자에게 약속하다. 작품의 성격은 완전히 곡의 제목들과 일치하며, 각 작품은 각 제목에 해당하는 달에 잡지에 게재될 것이다…”
그러나 [누벨리스트]에 출판될 때, 각 달의 명칭이 제목 앞에 주어지지는 않았었다. 필사본 악보를 보면 8번과 12번에 부제가 달려 있는데, 각각 ‘추수’(The Harvest, Scherzo)와 ‘크리스마스 무렵’(Christmas-Tide, Waltz)이라 되어 있다. 다음은 러시아판에 실려 있는 싯구들 중 일부를 번역해 놓은 것인데, 모든 싯구들은 출판인인 니콜라이 베르나르드가 직접 골랐다. 다만 사회주의 혁명 이전의 러시아는 구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달력에서 약 12일 정도가 빠르다.
1월 난롯가에서(Au coin du feu)
더없이 행복한 시간 한편에서 / 밤은 여명으로 옷을 갈아입네 / 작은 불씨 벽난로에서 타들어가고 / 양초는 모두 타버렸네 - 알렉산드르 푸시킨
2월 축제(Carnaval)
활기 넘치는 참회의 화요일 / 머지않아 큰 축제가 벌어지리니 - 표트르 비야젬스키
3월 종달새의 노래(Chant de l'alouette)
꽃들이 흐드러진 들판 / 하늘에는 별들이 소용돌이 치고, / 종달새 노랫소리 푸른 심연을 채우네 - 아폴론 마이코프
4월 아네모네(Perce-neige)
푸르고 순결한 아네모네―꽃, / 아마도 마지막이리. / 지나간 고통 위로 떨구는 마지막 눈물방울들 / 그리고 또 다른 행복을 향한 첫 희망 - A. 마이코프
5월 별이 빛나는 밤(Les nuits de mai)
밤이도다! / 세상천지에 축복을! / 내 고향 북쪽 나라를 떠올린다 / 얼음의 왕국으로부터 / 몰아치는 눈보라와 눈송이들, / 5월은 얼마나 상쾌하고 산뜻하게 날아드는가! - 아파나시 페트
6월 뱃노래(Barcarolle)
바다로 가자 / 신비로운 슬픔을 머금은 파도가 / 우리의 다리에 키스를 보낸다. / 별들이 우리 머리 위에서 반짝인다. - 알렉세이 플레시에프
7월 농부의 노래(Chant du faucheur)
어깨를 들썩이고, / 팔을 흔들어라! / 한낮의 바람이 얼굴을 감싼다! - 알렉세이 콜트소프
8월 추수(La moisson)
곡식은 모두 익고, / 식구들은 다 자란 호밀을 베어낸다! / 낟가리를 한데 모아 / 한 짐 가득 실은 마차의 노랫소리, 밤새 끊이질 않네 - 알렉세이 콜트소프
9월 사냥(La chasse)
시간이 됐다! / 뿔나팔 소리 드높도다! / 사냥복을 입은 사냥꾼들, 말을 몰아 달린다. / 이른 새벽 보로조이 뛰어다닌다. / - 알렉산드르 푸시킨, 그라프 눌린
10월 가을의 노래(Chant d'automne)
가을, 가련한 난초 위로 내려앉고, / 낙엽은 바람에 흩날린다. -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1월 삼두마차(Troïka)
외로울 땐 길을 돌아보지 마라, / 삼두마차를 따라 달려 나가지도 마라. / 곧장 마음을 억누르면 열망의 두려움이 마음속에 영원하리니 - 니콜라이 네크라소프
12월 크리스마스(Noël)
옛날 어느 크리스마스 밤 소녀들이 운명을 점치고 있었네 / 슬리퍼를 벗어 들고 문을 향해 던졌다네 - 코르네프 주코프스키
추천음반
대부분이 러시아 계통의 피아니스트들이 주로 연주했지만 얼 와일드 같은 미국 피아니스트도 녹음을 남겼다. 만약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가 전곡을 레코딩 했다면 첫 번째 선택이 되겠지만, 그는 몇 곡만을 녹음했다. 사실 전곡이라고 해도 음반 한 장에 고스란히 들어간다. 미하일 플레트뇨프가 멜로디아와 버진에서 남긴 두 번의 녹음은 각자 독특한 개성이 있다. 차이콥스키의 ‘사계’ 연주에서 플레트뇨프는 첫 번째로 통과해야할 문이다. 예핌 브론프만(Sony)이 펼쳐보인 감각의 제국은 대단히 특별한 감동을 준다. ‘사계’를 이토록 섬세하게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Decca)의 세련되고 서정적인 연주 그리고 데니스 마추예프(Sony)의 미묘한 울림의 터치는 만화경처럼 다양한 차이콥스키의 ‘사계’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예프게니 스베틀라노프(Melodiya)가 가우크의 편곡판을 사용해서 소비에트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녹음은 작곡가 자신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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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09년 11월 16일 네이버캐스트 / 노태헌 글>
명곡 명연주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E.T.A. 호프만의 환상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되었다
1838년 4일의 시간 동안 작곡되어 쇼팽에게 헌정된 곡이다
작곡가 슈베르트는 사춘기 시절부터 음울한 주제에 탐닉했고, 어둡고 기괴한 이야기와 소재는 발라드 양식과 결합하여 슈베르트 특유의 어둡고 음울한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슈베르트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슈만 역시 독특한 세계관과 환상, 마법이라는 주제에 심취하였으며, 독특한 소재에 대한 강박적 집착은 그가 작곡했던 수많은 작품들에 나타나고 있다. 이는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이기도 하다. 슈베르트가 시와 음악의 연계를 통하여 예술가곡의 문을 열었다면, 슈만은 음악과 문학과의 결합을 끊임없이 시도해 성격소품(character piece)을 창조해낸 셈이다. 성격소품은 19세기에 크게 유행했으며 주로 A-B-A의 3부 형식의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고 독일 가곡처럼 표현적인 선율과 화성을 강조했다. [크라이슬레리아나] 역시 3부 형식을 가진,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슈만에게 영향을 미친 영감의 근원은 독일의 시인 하이네, 바이런, 리히터의 작품이었지만, 환상적인 세계를 다루었던 작가 호프만(E.T.A Hoffmann, 1776~1822)의 예술 역시 죽을 때까지 슈만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호프만은 그로테스크한 환상, 광기와 풍자가 넘치는 단편 소설을 발표해 독일 낭만주의의 꽃을 피운 작가였다.
두 개의 음악적 주제를 교차시켜 이중적 자아를 표현
독일의 작가 호프만의 작품 [수코양이 무어의 인생관과 우연히 삽입된 갈피지의, 악장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의 단편적 전기](1822)에서 영감을 얻는 작품 [크라이슬레리아나] Op.16는 1838년 단 4일 만에 작곡되어 쇼팽에게 헌정된 곡이다.
총 8개의 소품으로 나누어진 이 환상적인 작품에는 두 개의 자아가 등장한다. 하나는 작가 호프만의 자아가 투영된 ‘카펠마이스터 크라이슬러’이고 또 하나는 슈만 자신의 자아를 투영시킨 ‘크라이슬러’다. [크라이슬레리아나]의 기본적인 조성 역시 두 개의 분리된 자아를 대변하고 있다. 크게 나누어 보면 2곡과 4곡, 6곡은 B♭장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3곡과 5곡, 7곡은 G단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개별 곡 내에서도 각각 ‘플로레스탄’(Florestan)과 ‘오이제비우스’(Eusebius)를 연상시키는 음악적 주제를 교차시킴으로서 조울증적인 기질을 지닌 ‘이중적 크라이슬러’ 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는 슈만 자신의 또 다른 내적 자아이다. 슈만은 명랑하고 열정적인 ‘플로레스탄’과 내성적이고 명상적인 ‘오이제비우스’라는 두 개의 상반된 캐릭터가 자기 안에 공존한다고 생각했고, 음악을 통해 변덕스런 자아의 모습을 표현하곤 했다.
호프만의 문학 작품 속에서도 이중성과 모호함이라는 두 개의 주제는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단편적 이야기들이 진행 되는 도중, 문장 중간에서 이야기가 시작하거나 끝난다든지 혹은 이야기 전개가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 돌연히 다른 소재의 이야기로 바뀌어 버리는 문학적 장치가 사용되고 있다. 호프만이 의도한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운 문학적 효과는 [크라이슬레리아나]에서도 음악적 효과로 변환되어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제8곡에서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ppp(아주 여리게, pianississimo)로 인하여 음악이 급격하게 사라지는 느낌은, 소설 속에서 크라이슬러가 사모하는 율리아 공주와 이그나티우스 왕자의 결혼을 알리는 편지의 급작스러운 끝맺음처럼 음악에서도 매우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다. 총 8곡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Aussert bewegt (매우 빠르게)
격렬하고 소용돌이치는 음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오른손의 셋잇단음표 리듬과 왼속의 지속적인 당김음 리듬이 겹쳐서 빠르고 긴박한 분위기의 ‘플로레스탄’적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고뇌하는 예술가 크라이슬러를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2. Sehr innig und zu rasch (충분히 표현하여, 그러나 지나치게 빠르지 않게)
제2곡은 [크라이슬레리아나] 전체 작품들 중 가장 규모가 큰 곡으로 조용하고 행복한 느낌의 노래가 펼쳐진다. 2개의 인터메초(Intermezzo)를 포함하는 A-B-A-C-A의 론도형식을 취한다. 인터메초는 A부분과 다른 분위기를 가지지만 A의 주제요소를 변형시킨 멜로디를 사용하므로 연관성을 지니며 전체적으로 아르페지오와 왼손 당김음의 지속적인 사용으로 잔잔한 선율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진다.
3. Sehr aufgeregt (매우 촉박하게)
격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곡이다. 호프만이 묘사하는 악장 크라이슬러는 음악에 몰두해 자신을 망각하는 충동적인 캐릭터였는데, 이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성격이 잘 표현되어 있다. ‘더 빠르고 생기 있게’라고 지시되어 있는 부분에서는 슈만의 도취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포르티시모(매우 세게, ff)와 스포르찬도(그 음만을 세게, sf), 악센트(accent)가 자주 등장해 광란의 파도를 만들어낸다.
4. Sehr Langsam (매우 느리게)
제3곡과 대조되어 조용히 체념한 듯한 아름다운 노래가 펼쳐진다. 느린 템포로 전체 곡 중 가장 짧은 길이를 가지고 있다. 제6곡과 함께 가장깊은 여운을 남기는 곡이라 할 수 있다.대위법적 선율이 주인공 크라이슬러의 시적인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5. Sehr lebhaft (매우 생기있게)
경쾌한 스타카토, 하행 점음표(음표의 머리 오른편에 작은 점이 있는 음표) 리듬과 같이 생동감 넘치는 스타일이 외향적 성격을 가진 ‘플로레스탄’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빈번하게 사용되는 레가토와 아르페지오의 대조가 만들어내는 흥겨운 매력이 인상적이다.
6. Sehr langsam (아주 느리게)
섬세하고내면에 깊이 호소하는 듯한, 느긋한 흐름과 시적인 표현력이 대단히 아름다운 곡이다. A-B-A'의 구성으로 A부분은내성적인 ‘오이제비우스’적 성격을 가진다. 당김음의사용으로 기괴하면서도 생기있는 분위기 적극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7. Sehr rasch (매우 빠르게)
C단조의 곡으로 [크라이슬레리아나] 8곡 중 가장 빠른 곡이다. 크라이슬러의 광기를 대변하는 듯한 격정적인 16분음표의 아르페지오, 악센트가 붙은 화음의 파괴적인 기운은몽상적인 환상을 고조시키며, 파국으로 치닫는 드라마틱한 기운을 드러낸다.
8. Schnell und spielend (빠르게 해학적으로)
크라이슬러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며 증발해버린 듯한 기묘한 뉘앙스가 인상적인 곡으로 이전 곡들의 조성을 모두 재현하고 있다. 중간부의 어두운 정열,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클라이맥스의 아름다움은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전형이다. 끝부분은 공허한 느낌으로 슬며시 끝맺으며,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 크라이슬러의 그림자같은 운명과 격정적 천재성을 대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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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4년 1월 17일 네이버캐스트 / 박제성 글>
명곡 명연주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
러시아적 정서와 현대적인 비극성을 담은 발레음악의 걸작
1911년 6월 13일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초연
디아길레프가 신예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에게 대규모 오케스트라용 발레음악인 [불새]를 위촉한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전투를 벌이는 듯한 일종의 발레-콘체르트슈튀크(Ballet-Konzerstück)를 작곡해 달라고 작곡가를 설득했다. 이에 1910년 여름 스위스에 머물고 있던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의 꼭두각시 인형인 페트루슈카(영국에서는 Punch, 프랑스에서는 Polichinelle, 이탈리아에서는 Pulcinella)라는 제목을 떠올리게 되어 1장의 러시아 춤과 2장 대부분을 작곡했다. 디아길레프의 요청대로 피아노를 등장시켰고 특히 2장에서 큰 역할을 하게끔 구성했다. 10월에 프랑스로 거처를 옮긴 뒤 1장 나머지와 3장 전체, 4장 대부분을 작곡하고 1911년 3월경에는 작품의 오케스트레이션까지를 거의 마쳤다.
이렇게 총 1막 4장으로 구성된 발레음악 페트루슈카는 1911년 5월에 작곡이 완성되었고 다음 달인 6월 13일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피에르 몽퇴의 지휘와 발레 뤼스의 무대로 초연되었다. 이 발레의 시나리오를 쓴 알렉산드르 베누아가 무대장치를 제작했고 안무는 미하일 포킨느(Michael Fokine, 1880-1942)가 맡았으며 페트루슈카 역은 바슬라프 니진스키(Vaslav Nizinskii, 1890-1950)가 맡았다. 결과는 불새 초연 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즉각적으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발레에는 어마어마한 열광을 보냈다. 파리는 물론이려니와 이후 빈 슈타츠오퍼에서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음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정도였지만, 발레 뤼스의 안무와 스타 발레리노인 니진스키의 탁월한 감정표현은 단박에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특히 사람도 아니고 인형도 아닌 페트루슈카의 기묘하고도 광적인 동작과 공허한 얼굴 표정, 그리고 고통스러운 내면의 파토스를 완벽한 몸짓으로 보여준 천재 니진스키의 연기는 찬탄을 자아냈다.
무대감독 베누아에게 헌정된 이 페트루슈카는 전통적인 발레와는 전혀 다른 음악 언어와 무용 언어를 선보였다는 점에 있어서 대단히 파격적이다. 인형이 발레나 오페라에 등장한 적은 있었지만 전적으로 주인공으로 나선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들이 펼쳐내는 치정극으로서의 비극적인 결말, 현실을 은유하는 듯한 리얼리티는 대단히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한 만큼 이 페트루슈카는 낭만주의 시대 발레 전통과 결별한, 일종의 19세기 전통의 종지부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20세기에 접어들어 드라마틱하게 변했음을 알려주는 이 작품은 주인공의 심리묘사로 표현되는 고통과 불안, 폭력과 과시로 얻어진 속물근성의 승리, 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소시민들의 쳇바퀴적인 삶, 소외되고 버림받은 개인의 잔혹한 결말, 현실에 대한 은유 등등이 20세기 예술의 주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음악 또한 혁신적이지만 스트라빈스키의 다음 작품인 [봄의 제전]만큼 전통과 관습을 파괴하는 작품이 아니다. 러시아적인 정서와 독창적인 화성의 대비가 현대적인 조화를 이루며 안무와 무대장치와 함께 서사적인 클라이맥스와 드라마틱한 전개를 도출하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칭찬한 베누아의 데코르와 다채로운 코스춤, 포킨느의 절제된 안무를 중심으로 E.T.A. 호프만적인 환상과 스트라빈스키 특유의 러시아적인 감수성, 동화적인 분위기와 신랄한 현실 비판,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과 초현실적인 상징 등등이 때로는 무시무시하거나 신비스럽게, 때로는 흥겨우면서도 연극적으로 펼쳐지는 동시에 이 모든 예술적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음악과 발레, 시각과 청각, 서사와 은유가 창조적으로 결합된, 바그너의 종합예술론과는 전혀 다른 진취적이고 러시아 취향적인 종합예술의 개념을 정립한 효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니진스키가 페트루슈카의 영웅이라면 음악을 작곡하고 많은 부분을 자신의 아이디어(마지막 지붕 위에서 페트루슈카의 영혼이 등장하는 아이디어도 스트라빈스키 것이다)로 무대를 채운 스트라빈스키는 페트루슈카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민속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요소, 협화와 불협화, 온음계와 반음계, 콜라주와 병치효과, 불연속적인 음악적 흐름과 상상력과 드라마의 연속성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전혀 새로운 음향을 만들어낸 결과 오케스트라 음악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다. 오케스트라 버전은 1911년 오리지널 버전과 그보다 조금 작은 편성으로 손을 본 1947년 개정판이 존재하는데, 전체적으로 러시아 춤을 제외하면 독립적으로 떼어내기 힘든 순환적이고 연속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불새]처럼 연주회용 모음곡으로 만들 수 없었다. 대신 작곡가는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하여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에게 헌정했다. 처음 작곡할 때부터 피아노를 염두에 두었던 탓에 오케스트라 버전의 중요한 요소들을 피아노에 모두 담아내어 원곡 이상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특히 피아니스트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와 아케 팔크 감독이 1965년에 흑백으로 제작한 스튜디오에서의 피아노 솔로 연주 영상물은 발레 뤼스의 무대만큼이나 현대적이고 창조적인 클래식 음악 영상물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1장(First Tableau)
성 페테르부르크 광장에서 사육제 분위기가 흥청거린다. 금욕적이고 소박한 사순절이 오기 전인만큼 시작부터 축제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노점상과 가판대가 가득 찬 가운데 작은 촌극들이 펼쳐지며 사육제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손풍금과 오르골(클라리넷, 플루트, 첼레스타)에 맞추어 아가씨들과 무용수들이 군중들 사이에서 춤판을 벌인다.
작은북이 울리며 복잡한 상점들 사이에서 마법사인 약장수(바순과 콘트라바순)가 페트루슈카, 무어인, 발레리나로 구성된 세 개의 꼭두각시와 함께 극장에 등장한다. 약장수가 플루트를 불며 신호를 보내자 세 꼭두각시는 생명을 얻은 듯 벌떡 일어나 러시아 춤(러시아 민요인 [A Linden Tree is in the Field]와 [Song for St. John's Eve])을 추기 시작한다. 군중이 환호하자 세 꼭두각시는 팬토마임을 펼친다. 페트루슈카와 무어인이 동시에 발레리나를 사랑하지만 결국 발레리나의 관심은 무어인에게 꽂히지만 발레리나의 화해로 흥겨운 러시아 춤을 춘다는 내용이다. 군무가 끝나자마자 세 꼭두각시들은 약장수에 의해 생명을 뺏겨 무대에 쓰러지고 급작스럽게 막이 내린다.
2장(Second Tableau)
무대 뒤 페트루슈카의 방. 검은 벽지에 별과 초승달로 장식되어 있다. 악마가 그려진 금빛 문은 발레리나의 방을 향해 굳게 닫혀 있다. 청중은 그가 인간과 동일한 감정을 갖고 있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페트루슈카(C장조와 F샵 장조의 병렬 3화음으로 구성된 ‘페트루슈카 코드’)는 인간의 몸과 정신, 자유와 열망을 원하지만 약장수의 노예와 같은 상태임을 한탄한다. 그리고 디아길레프가 의도했던 콘체르트슈튀크 형식을 반영하여 피아노 아르페지오가 페트루슈카 코드를 장식하며 슬프고 음침한 그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우울함은 자신의 방에 들어온 발레리나로 인해 급격하게 기뻐하며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정력적으로 춤을 추며 구애한다. 방의 기이한 모습과 페트루슈카의 거친 모습에 놀란 발레리나는 이내 자신의 방으로 도망가 버린다. 절망에 빠진 페트루슈카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감옥 같은 자신의 방에서 탈출하고자 하지만 오른쪽 벽에 주먹만한 구멍을 낸 채 실패한다. 결국 아무런 통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약장수의 초상화를 향해 절규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3장(Third Tableau)
무어인의 방. 벽에는 붉은 대지 위에 야자수가 서 있고 천연색의 과일이 그려져 있다. 빈둥거리며 소파에 기대어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가 코코넛을 발견하고 이리저리 굴리고 돌리며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코코넛을 향해 큰절을 올리기까지 한다. 작은북이 울리며 발레리나가 작은 나팔을 불면서 등장한다. 거만하게 춤을 추며 무어인은 발레리나를 유혹하기 시작하고 이내 같이 춤을 추다가 둘은 포옹을 하며 사랑을 나눈다. 바로 그때 페트루슈카가 질투에 눈이 멀어 방으로 뛰어 들어오고 무어인은 칼을 빼서 그를 뒤쫓는다. 발레리나는 겁에 질리고 페트루슈카는 결국 밖으로 도망친다.
4장(Fourth Tableau)
다시 1장과 동일한 카니발이 열리고 있는 시장 한 가운데의 저녁 무렵. 군중이 몰려오는 가운데 유모들(오보에)이 춤을 추고 피리를 부는 농부가 곰(하이 클라리넷)을 끌고 나오며 술에 취한 상인이 집시여인들(오보에)을 옆에 끼고 나와 지폐를 뿌린다. 한편 마부들(강한 현악 코드)과 가면을 쓴 무리, 서커스를 하는 광대들도 무대에 등장한다. 이러한 흥겨운 분위기는 겁에 질린 듯 뛰어나온 페트루슈카와 칼을 빼들고 그를 쫓는 무어인 때문에 극적으로 바뀐다. 결국 무어인이 칼로 페트루슈카를 베어 쓰러트리고 놀란 군중은 죽은 페트루슈카 주위에 몰려든다. 경찰까지 달려오지만 약장수는 나무 머리와 지푸라기 몸을 한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페트루슈카기 한낱 지푸라기 인형임을 확인한 군중은 뿔뿔이 흩어지고 약장수는 인형을 무대 밖으로 끌고 가려는 순간 페트루슈카의 유령(트럼펫)이 극장 지붕 위에서 원통한 듯 몸부림치며 자신과 사람들을 조롱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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