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8경의 하나인 속리산으로 들어간다는 설레임 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앞을 막고 있었다.원래는 형제뵹에서 피앗재를 지나 천왕봉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밤티재에서 문장대를 자나 천왕봉으로 가야한다는 조대장님의 산행지 설명이였다.비법정 탕방로가되여 이지역을 통과하지 못하게 단속을 하기 때문이란다.단속을 피해야 겠기에 아침 일찍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 땅을 있게한 백두대간을 걸어면서 단속의 눈을 피해 가야 한다는 마음 불편했다.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숲을 보호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이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죄인시 하거나 큰 범죄자 처럼 취급 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특히 숲과 사람을 분리시켜 대간길을 폐쇄 하는 정책에는 공감 할 수 없다.
백두대간은 그냥 산길이 아니기 때문이다.백두대간은 1정간 13정맥을 뻗어낸 이 땅의 등줄기일 뿐아니라 열개의 강을 품어 흐르게 함으로써 이 민족의 삷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옛사람들에게 있어서 백두대간은 단순히 산줄기가 아니라 이 민족의 정신이요 기상이다.생명을 품어 살리고 키우는 하늘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 길은 하늘이 내어준 하늘길이다.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소망의 길이기도 하다.백두대간은 구름을 넘어 하늘 가까이 흐르면서도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으로 흘러들고 있는것이다.
백두대간을 보호하고 산과 숲읖 지킬려면 자병산을 허물고 석회석을 채취하고 금산을 토막내어 자갈을 채취하는 것 부터 막아야 하지 않는가? 산 전체가 없어지고 백두대간도 허리가 짤리는것은 허가를 해주고 우리땅 우리가 마음데로 걷지못하게 막는 정책에는 정말 고개를 흔들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내 나라 내 땅의 산길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속리산은 백두산에서 부터 한반도 산줄기의 종산(宗山)을 이루는 12종산의 하나이다. 그 수려함으로 대한 8경에 속한다.또 이산은 소금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 외에도 광명산 지명산 ,지명산, 미지산, 구봉산, 형제산,자하산등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산이다.그중에서도 아홉개의 봉우리가 있다하여 구봉산(九峰山)으로 불리었으나 신라시대 부터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김제 금산사에 머물던 진표율사가 구봉산에 들어가 미륵불을 건립하라는 미륵보살의 계시를 받고 구봉산에 들어가기 위해 보은에 이르렀을때 들판에서 밭갈이 하던 소들이 진표율사를 보고 무릅을 꿇고 있는 이것을 본 농부들이 크게 감화하여 스스로 낫으로 머리를 자르고 세속을 따나 출가하여 진표율사의 제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고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세속을 떠나 이 곳으로 오니 사람들이 이 산을 속리산(俗離山)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조 선조때 백호 임제는 이렇게 시를 읊었다.
도불원인 인원도(道不遠人 人遠道)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는구나
산비이속 속리산(山非離俗 俗離山)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 구나 하고 이렇게 읊었는데 즉 도와 산은 그 자리에 머물고 있지만 사람은 스스로 멀리 한다는 뜻이다.임제는 속리산에서 3년간 성운이라는 스승으로 부터 성리학을 배웠는데 사서 삼경중 중용을 통달하였다고 한다.그래서 이 시는 중용 제 13장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중에 도불원인 인지위도이원인 불가이위도(道不遠人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라는 이뜻은 도는 사람이게서 멀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행한다면서도 멀리하면 도를 행하지 못한다는 말을 인용한것이다.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 구나 산이 세속을 떠난것이 아니라 세속이 산을 떠났다는 것이다.이산의 고결함과 정갈함이 세속으로 하여금 스스로 떠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세속이 떠난 산이라고 시로 노래한 속리산에는 세속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이성계가 고려를 찬탈하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곳이 이 곳이고 이방원이 형제를 도륙하고
참회를 한 곳도 이 곳이고 세조가 시를 지었다는 문장대 세조가 지날때 가지를 들어 올렸다는 정이품 송 세조가 목욕했다는 은폭과 학이 세조의 머리에 변을 떨어뜨렸다는 학소대 세종이 7일간 법회를 열었다는 상환암에 이르기 까지 세속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세속을 멀리 했다는 이 곳에 세속의 상징인 권력이 머물던 흔적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세속을 떠난 산을 그리워 했기 때문이리라. 세속이 떠난 산이 세속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세속이 떠난 산은 세속에 머물며 세속을 세속으로 부터 떠나게 하려던 것이리라, 욕망과 탐욕과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려던 것이리라.부는 바람에 흐르던 구름이 내 앞에 머물려는 듯 한가로웠다.
문장대로 가는 길은 가팔로웠다.암벽구간에는 밧줄에 의지해야 했고 나뭇가지에 때로는 나무 뿌리를 잡고 때로는 바위 틈새를 손 끝으로 잡기도 하고 바위에서 바위로 올라갔다.바위에 부딧치여 피가 나기도 하고 바위를 안고 돌아가기도 했고 절벽 낭떨어지에 로프에 몸을 실어야 했다.
숨 가라않히며 돌아보니 골짜기엔 흰구름 가득했다.구름 흘러 내리는 산줄기 바라 보았다.산줄기는 골을 품어 바람을 불러오고 바람은 구름을 밀어내고 있었다.구름은 산줄기를 밀어내려는 듯 불어오는 바람에도 능선을 넘지 않고 있었다.
문장대(文藏臺1054미터)가 보였다.문장대 가는 길엔 조랫대가 무릅아래로 깔려 있었고 비탐방 지역을 지나는 사람들 감시하는 감시 카메라가 자리 잡고 그 옆에는 줄입금지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보기에는 썩 좋지는 않았다.밧줄로 된 통로를 따라 올라가니 문장대라는 큰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었고 87개의 철계단을 오르니 정상에는 알이 부화한 둥글게 파인 곳이 있어 태초 생명 탄생의 신비를 일러주고 있다.또한 속리산 전경을 바라 볼수 있는 바위 전망대였다.속리산의 신비를 가슴에 담고 내려오니 먼저온 일행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천왕뵹으로 가가위해서는 신선대로 발길옮겼다. 바위를 그대로 깎아 만든 계단을 지나야 했다.신선대에는 그 옛날 산 봉우리에 학이 날아와 춤추고 벡발이 늘어진 신선
들이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신선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찾아왔다는 고승은 없고 우리와 같이 지나는 산객들이 어지럽게 왁짜 지껄하고 있었다.
신선이 놀던 자리에는 휴게소가 자리하고 있어 감자 전 도토리 전 막걸리등을 팔고 있었다.신선들이 마셨다는 차 대신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 잠시 신선이된 기분을 뒤로 하고 천왕봉으로 발길 돌렸다.
속리산의 절경은 8봉 8대 8석문으로 이루어진다.
8봉은 천왕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
8대는 문장대 입석대 신선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봉황대 산호대
8석문은 내석문 외석문 상고석문 상고외석문 상환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추래석문이다.8봉 8대 8석문 모두 8개에 맞추어져 있다.
속리산의 수많은 절경중 모두 여덟개만을 골라 이름 지었는까닭은? 불교의 실천수행인 8정도(八正道)에서 의미를 따온것이다.
8정도(正見 正思惟 正業 正語 正精進 正命 正念 正定) 수행하여 열반에 들듯이 8석문 지나 8대에 올랐다가 8봉의 너른 품에 안기면 그대로 부처님 품에 안기듯 깨달음을 얻어리라는 바램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산과 불교의 오랜 인연이 남겨놓은 가르침이다.
입석대를 지나니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조릿대 군락을 지나니 바로 커다란 돌문인 상고석문이 보였다.그 옛날 법주사를 지을때 천왕봉 쪽에서 벤 소나무들을 저장해 두었던 창고가 바로 상고이고 석문은 글자 그대로 상고로 들어가는 돌문이라는 뜻이다.오늘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대로 구름이 짖게 드리워져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것같았다.그런이유로 비로봉을 처다보고 우회도로를 돌아서 가기로 했다. 비로는 인도의 말 비로자니불을 줄인 말이다.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을 일컫는 말이자 광명을 의미한다.지혜의 빛이 비치어 은총을 입은 때문일까? 천왕봉으로 가는 길 옆에는 오랜 세월을 견디여온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많이 보였다.또한 세월을 넘느라 거무스레한 바위들에는 빼곡히 끼여있는 이끼들이 말해주고 있다.
천왕봉에 올랐다. (천왕은 사천왕의 주신으로 사방을 진호하며 국가를 수호하는 신)
천왕봉의 지명 문헌들을 보면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와 대동여지도에 정확하게 천왕봉으로 기록되여 있다. 1911년 일본 육군 참모본부에서 만든 한국형 지도에도 천왕봉으로 적혀있다.그러나 1918년 일본 총독부에서 만든 지도(근세 한국50.000분의1 지도)부터는 천왕봉(天王峰)을 천황봉(天皇峰)으로 표기되여있다.이것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이며 천황의 땅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쓴것으로 보인다.2007년 중앙지명 위원회는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바꾸었고 국토지리정보원이 지명 변경을 고시했으나 아직도 표지석 뒷면이나 다른 지도에는 간혹 천황봉이라고 적혀있다. 혹시 일제 강점기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어서 일까 심히 부끄럽고 가슴아픈 일이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빠른 시일내에 바로 잡기를 바란다.
천왕봉이 품은 산줄기와 강줄기를 보면 속리산 최고봉 천왕봉은 한남금북정맥을 품어 뻗어 내고있다.한남금북정맥은 한강과 금강을 나누는분수령으로 이 봉우리에서 부터 말티고개 선도산 상당산성 좌구산 보현산을 지나 칠현산에서 끝난다.칠현산에서 끝난 한남금북정맥은 다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갈라진다.한강유역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나누는한남정맥은 칠현산 북쪽 2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칠장산에서 시작되어 김포 평야의 낮은산을 거쳐 강화도앞 문수산성 까지 산줄기 뻗었고 금북정맥은 한남정맥과 해어져 칠현산에서 예산 수덕산을 거쳐 태안반도를 들어가 안흥진까지 산줄기를 뻗고 있다.이와같이 천왕봉은 백두대간에서 뻗어나간 13정맥중 세개의 정맥을 품고 있는 것이다.또한 천왕봉은 산줄기 뿐만아니라 세개의 큰강을 품어 흐르게하고 있다.조선의 삼대 명수인 삼파수와 충주 달천수 한강 우통수 중 삼파수의 발원지이기도 하다.삼파수(三波水)란 이곳에 내린 빗물이 세갈래로 나뉘어흘러 든다는 뜻이다.천왕봉의 남쪽으로 흘러 내린물은 금강과 하나되며 동쪽으로 내린물은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서쪽으로 내린 물은 남한강으로 흐르며 강유역에 사는 생명들을 살리는 것이다.천왕봉은 이처럼 남한강과 낙동강 금강과 같이 큰강에 물을 대며 흐르게 하고 있다.이 강줄기에 기대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천왕봉에 절을 하고 감사의 뜻을 전해도 그 큰 은혜는 다 갚지 못할것이다.이 처럼 천왕봉은 매우 중요한 봉우리 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아직도 제 이름을 찾지못하고 있다.슬프고 가슴 아픈일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땅에 이렇게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강을 품어 흐르게하는 산의 고마움을 알고 있을까? 천왕봉이 세개의 큰 강줄기를 흐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지계(地界)와 수계(水界)를 나누는 산줄기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산줄기 바라보았다.천왕봉에서 바라본 산줄기 너무나 깊고 첩첩하여 그 큰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선두로 갔던 남대장 다시 돌아와 후미들과 합류하여 천왕봉 밑 약간 넓은 공간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형제봉과 갈령삼거리로 나아갔다.
비 소식이 있다는 일기예보대로 가을비가 추적 추적 내리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더 쓸쓸하게 하고 있다.피앗재 가는 길에 낙엽송이 하늘을 찌르는듯 자라고 있고 익어가는 가을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저 있어 지나는 산객들의 발걸음을 묶어놓고 있다.가을비에 촉촉히 젖은 낙엽은 발자욱 옮길때 마다 미끄러워 앞으로 진행하기 힘들정도이다.가을의 정취는 낙엽 밟는 소리건만 오늘은 낙엽이 거추장 서럽기만하다.형제봉에 올랐다.안개 자욱하고 내리는 비에 시야는 가려지고 일몰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산속은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도 경계쪽으로 길을 잘못들어서 다시 올라와 형재봉 나무 팻말이 있는 곳에서 바로 내려서야 갈령 삼거리로 가는 길이였다.갈령에 내려섰다 속리산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고 우리를 실은 버스는 촉촉히 젖은 아스팔트위로 질수하고 있었다.
대간 3차팀은 8개월만에 첫 하산 뒷풀이 자리가 마련 되었다.낙동강 한우와 송이가 준비되여 서로 정담을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이런 기회가 가끔씩은 있었으면 좋겠다. 팀원들의 세상 살아온 이야기들 속에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남대장 조대장 두대장님 수고 많았고 함께한 모든 분들 험난한 산행 고생들 많았습니다.
첫댓글 산행기 잘 읽었읍니다.
나라를 훔치면 영웅이고
물건을 훔치면 도둑이라더니만
산을 통채로 깍아내는건 괜찮고
우리금수강산인 백두대간을 몸소 체험하기위해 걷는건 불법이랍니다...
말로만 애국.애국하지말고...
두 다리로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우리강산을 몸으로 직접 느끼는것이 진정 애국아니겠읍니까??
우보님 글에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속리산은 8봉8대8석문이 불교의8정도의 의미라니
불교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우보님 항상 이런 좋은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어설프기만 한 산초보 발걸음이지만
대간의 횟수가 거듭 될수록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낮추는 법을 배우며...
내가 밟고 서 있는 땅을..사람을..역사를 새롭게 보게 됩니다.
우보님~~ 든든한 발걸음을 뒤따르며... 항상 감사드립니다.
정성으로 올려주신 우보님의 산행기 잘 보고갑니다. 붉은 단풍, 아슬아슬한 암릉지대, 약간의 스릴감이 느껴지는 비탐방 코스...다시한번 그때의 감흥에 젖어 봅니다. 신선대 막걸리, 산행후 뒷풀이... 너무 고맙습니다. 또 즐거웠구요.
조석으로 약간의 추위가 느껴집니다. 환절기에 건강 유의 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