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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김치를 알아야 한다
- 1998년 Ms는 한국시장을 확장하려는 계획을 발표함. MS는 한글과 컴퓨터사에 2,000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으로 갖고, 그 댓가로 한글과 컴퓨터의 한글을 중단하고 다른 제품에 주력할 것을 요구
- 한글은 한국 워드프로세스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MS는 15%를 차지하고 있음. MS는 손쉽게 한국 시장을 차지할 것으로 생각함. 1998년 한국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시달리게 됨.
- 한글은 언어 자체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유의 문자로 한글은 그 원리 자체가 눈부심. 한글과 컴퓨터는 한글을 컴퓨터에 사용할 수 있게 개발된 것.
- 민족의식의 지뢰밭으로 한글을 컴퓨터 상에 표현하는 주된 수단이 외국회사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 것 으로 인식함. MS의 확장전력이 뜻하지 않게 정치적인 반대운동을 일으키며, 한글과 컴퓨터는 한글815라는 버전으로 프로그램을 출시함
- 1989년 세계경제는 다국적기업이 주연인 하나의 무대였으나, 세계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짐
세계화는 지역정치를 포괄하기보다는 이를 오히려 증폭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국가들의 문제를
우리 주변으로 가깝게 끌어와서 세계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사 건의 영향을 받게 했음. 이것이 세계화의 부작용임.
김치는 이는 소금물에 절인 배추를 고추,마늘,생강 등으로 양념해 그향과 색이 강할 뿐 아니라 매운
맛을 지닌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임. 한국에 국한되는 상당히 지역적인 음식임.
오늘날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은 빅맥을 먹는다. 그러나 2001년 9.11사건의 교훈 중 하나는 작은 이
야기들, 즉 지역정치와 국지적인 사건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빅맥을 먹
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느 때 보다 김치를 잘 알아야 함
제1부 국민들의 불만
제1장 부정부패 “ 다 우리겁니다 ”
(필리핀)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유능한 변호사로 정치적 천재이자 일본과의 전투에서 세운 공으로
30개 이상의 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임. 필리핀은 목재, 설탕, 코코넛, 광물 등이 풍부했으며, 제조업
부문의 규모가 1950년대에 12% 성장함.
마르코스 대통령은 몇가지 편의주의적인 결정을 내림. 반대세력의 정치인들을 구속했고, 신문사와
라디오 방송국들을 폐쇈시켰으며, 군과 경찰에 막강한 권력을 줌. 헌법개정을 통해 마르코스가 법령
에 의해 국가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으며,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들이 거의 사라짐.
마르코스는 특혜를 통한 의무 관계, 좋은 대인관계, 혈연이 그것임. 그는 정치인, 군대, 경찰의 주요
공직자들을 임의로 임명함. 자신의 고향친구들을 군과 고위직에 임명해 자신의 지원세력을 산 것
부정부패와 자리 나눠 먹기식으로 자신에게 충성할 필리핀의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 세력을 키운 것
필리핀 최고의 유지 집안 자속인 에두아르도 코주안코 2세는 필리핀의 코코넛 산업을 독점함.
코주안코는 곧 코코넛유 생산 연합공장, 코코넛업자 연합은행, 코코넛업자 생명보험사의 주인이 됨
필리핀법대 동창인 로베르토 베네딕토에게는 설탕산업을 줌. 국립 설탕유통회사, 필리핀 설탕관리국
설탕산업을 지원하는 2개 은행의 주인이 되고 필리핀 최대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의 소유주
마르코스의 다른 친구로는 중국인 이민자 루시오 탄, 건설개발회사 사장인 로돌포 구엔사 등이 있음
마르코스부부는 국가의 모든 산업에서 이권을 가짐 1984년, 마르코스가문은 300개 기업에 이권을
보유하였고 거의 모든 기업체를 가짐
1985년 야당의 폭로와 중산층과 기업인들이 노란색 옷을 입고 국민의 힘에 동참함.
부패한 국가에서는 연줄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부는 아무리 손을 뻗어도 내것으로 만들 수 없음
부자들은 권력자들과의 거래를 통해 부를 가지게 된 것이고, 권력자들은 그 부자들과의 거래를 통
해 부를 가지게 된 것. 권력자들은 그 부자들과의 거래를 통해 권력을 쥔 것임. 이러한 부패가 극단
으로 치달을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와 권력의 배분, 나아가 정치경제제도의 정당성까지 의심함
중요한 점은 부정부패가 사회제도가 관련된 모든 것의 정당성을 해친다는 것임. 특히 정치적인 안정
에 치명적임. 권력은 그것이 지도자의 권력이든 사회체제의 것이든 간에, 기본적으로 정당성에 기반
나이지리아의 사니 아바차 대통령은 5년만에 40억달러, 자이르의 모부투 세세 세코는 100억달러를
빼돌리고,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일가는 400억달러를 부정축재함.
뿌리 깊은 부정부패는 상당히 불안정한 정치적 역동성을 야기함. 우선 부패는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가져옴. 과거에는 부정부패가 정치의 윤활제 역할을 해 정부가 보다 수월하게 그 기능을 할수 있도
록 한다는 인식이 있음.
대부분의 자원이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함. 합법적인 사업가들에게
부정부패는 일종의 세금과 같은 것. 뇌물과 각종 상납에 소요되는 비용이 의사결정에 반영되며,
이것은 경제성장을 더욱 늦춤. 부정부패는 정부의 효율성도 감소시킴.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자를
보호하며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나 규정들을, 뇌물을 바침으로써 무시 할 수 있게 된
다면 그 존재 의미를 잃는 것
정부의 비효율과 경제발전 저해는 악순환을 낳음. 부정부패는 경제성장을 저해함으로써 국가의 부를
감소시킴. 따라서 정부가 그 지지자들에게 나눠 줄 자금의 양도 점점 줄어 듬
필리핀의 마르코스나 에스트라다의 경우처럼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됨. 아무리 미국이 뒤에서 후
원해 준다고 하더라도, 김치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
2019년 현재 아세안국가의 하나이며,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여 1억명을 넘음. 그러나 1인당 GDP는
3,000달러정도인 개도국에 속함. 인구의 40% 정도가 아직도 빈곤에 허덕이며 빈곤국가에 속하며,
인구의 40%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가이면서도 인구 과다와 전근대적인 농업방식으로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일 정도로 쌀과 옥수수의 수입이 많음.
식민지 시대의 유산으로 농업도 대농장주 등 농업재벌들이 과점적으로 장악하고 있음. 제조업은 농
업이 발달한 관계로 식품가공업이 발달했으며, 정치적 부정부패와 게릴라와의 내전 등으로 치안이
악화되고 도로 등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외국기업의 유치가 절실함
서비스업의 경우에는 카지노와 관광 그리고 영어가 공용어로 다국적 기업의 콜센터 그리고 어학
연수사업이 활발함. 그러나 필리핀의 최대 외화수익원은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부터 홍콩/미국/.일
본/싱가포르 등으로 해외취업을 나간 필리핀 여성들의 해외송금임. 서비스 수지 등은 해외취업을
나간 필리친 여성들의 외화송금으로 최소한 222억 달러에 달함.
정치면에서 2016년에 대통령이 된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반부패 및 마약범죄 소탕을 선포했으나
수많은 사람의 살인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미중관계에서도 독자적인 실리외교를 표방했으나, 특별
한 경제적 실익을 얻지 못함.
필리핀 상위 10대 그룹을 보자면, 마닐라 일렉트릭(한전과 비슷) 2위 페트론그룹(필리핀 최대 정유)
3위 도요타 모터 필리핀 법인 4위가 필리핀쉘 5위가 토시바 등 다국적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함.
순수 필리핀 기업은 에너지기업과 식음료 및 담배 부동산 회사가 주력임
특히 쇼핑몰과 백화점을 운영하는 SM그룹이 1위기업 점유율 1위 은행임 BDO의 지분 40%를
점유해 금산분리가 없음. 복합기업인 JG서밋은 부동산 개발업체인 로빈슨랜드, 항공사 세부항공
전력회사 멜라코, 1등 통신사인 PLDT 등을 소유함. 복합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은 50%에 달함
복합기업이 경제적 지배력을 가질수 있었던 것은 스페인/미국의 식민지배와 60~80년대 정치적
혼란 속에서 꾸준히 부를 축적해. 필리핀 복합기업의 지배력을 확장함. 문제는 내수기업의존형이
며, 300대 가문이 독점한 심각한 빈부격차임.
현재도 중진국 함정에 빠짐. 필리핀이 124개 국가중 중저위 소득국 함정에 있음. 50년간 발전이
없음. 기계/화학/금속/전자산업 등 고도화되고 산업 파급력이 큰 산업을 육성하지 못함.
한편, 마르코스 일가는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수니어가 상원의원으로 부통령 후보에 까지 올라
1987년 마르코스 독재자 이후 새헌법 제정으로 6년 단임제를 채택하기도 했음. 이멜다도 메트로
마닐라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지냄. 큰딸도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에 이어 2019년 상원의원 당선함
제2장 종족갈등 : 케이크 이야기
(나이지리아)
1914년 영국은, 사하라 이남의 이슬람교도들과 남쪽에 살던 물활론자들의 지역을 묶어서 지금의 나
이지리아식민지를 만듦. 영국인들은 유일신을 믿는 북쪽의 이슬람교도들을 존중했으나, 남쪽의 자연
숭배자들을 계몽한다고 판단해 기독교(성공회)로 개종시키기 위해 선교사들을 보냄
당시에는 종족 사이에 특별한 원한이 없음. 이슬람교를 믿는 하우사인들은 주로 북쪽지방에 거주,
물활론자들인 요루바족은 남서쪽에 거주함. 나이지리아는 어떻게 나누냐에 따라 250-400개 종족
집단이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 사이좋게 지냄.
그러나 영국의 식민통치가 초래한 사회적 변화의 결과, 사람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게 됨
이들은 가족과 이웃들의 관계에서 정체성을 확립했으며, 이들에게 다른 가족이나 다른 마을 주민들
은 외부인들임.
나이지리아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케이크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음. 케이크란 정부가 관리하
는 자원을 의미함. 즉 수익금, 일자리, 군대 등이 케이크의 범주에 들어감.
종족적 자각에 따라 각 종족은 케이크를 불균등하게 나눠가짐. 하우사족/이그보족/요루바족도 각자
정당을 창당하였고, 종족갈등은 심화됨.
독립 당시 나이지리아는 주로 코코아 수출로 수익을 얻음. 그러다가 석유가 발견되고 정부는 석유사
업을 관리하면서, 국가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킴. 독립 이후 요루바족 지도자는 민족갈등을
이용해 추종자들을 선동함. 1966년 이그보족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남쪽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함
북쪽 사람들은 이그보족을 탄압하고 5만명이 사망하고, 200만명이 남쪽으로 피난을 함. 결국 이그보
족은 1967년 비아프라 독립국을 세우고 분리 독립을 선언함. 그러나 유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독립을 반대하는 정부는 3년간 전쟁을 지속하여 100만명이 사망함
현재 나이지리아는 2개 지역에서 현재 36개주로 나눠지고, 토지의 가치 상승으로 평화롭게 지내던
공골라 주와 베누에주의 민족들이 농토를 가지고 서로 싸움.
케이크를 둘러싼 싸움에서는 적나라한 도둑질까지 모든 수단이 정당화됨. 기간시설도 믿을 수 없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20개 국가에 들어감
세브론 텍사코, 모빌, 쉘 같은 다국적 석유기업들이 나이지리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 이러한
회사들이 종족갈등 지역에 위치해 있음. 델타 지역에 사는 700만명의 시민들은 참혹한 삶을 살고
있음. 그래서 정부 보다는 다국적 석유기업에 요구함.
나이지리아의 정치적 역동성은 외국 석유회사들을 기능장에 연루시키고 있음. 이슬람교와 기독교
의 공격으로 재산과 회사들을 파괴함. 심각한 사태의 원인들은 대부분 케이크를 두고 하는 싸움
2019년 현재에도 이슬람 율법에 따른 신정국가가 설립을 목표로 하는 보코하람이 북동부에서 테러
와 납치 등 공격이 심함. 250여개 부족으로 이뤄진 나이지리아는 종족과 종교를 달리하는 지역부족
간 갈등이 여전히 심각함. 1998년까지 쿠데타만 8차례에 달해. 석유중심경제이며 원유 수출이 연방
정부 예산의 70% 전체 외화수입의 90%에 달함. 국제유가의 등락에 매우 민감함.
종족 분쟁의 역동성
미국과 브라질의 흑백 관계를 비교한 한 연구는 양국이 모두 노예를 해방 시킨 후인 19세기 말에
초점을 맞춤. 이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에서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반면에 미국에서는 유혈사태와
폭력적인 사적 제재가 빈발함. 이런 차이점은 미국에서는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 흑인과 백인소작농
들이 자주 경쟁관계에 처한 반면, 브라질은 포르투갈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이 노예였던 사람들과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지 않았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
나이지리아에서 좀 더 교육을 많이 받은 남부인들은 공장에서 일자리를 잡은 반면, 인구가 더 많은
북부인들은 정치적인 힘을 가짐. 케이크를 두고 하는 경쟁에서 절정에 달함.
세계은행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이 부족한 나라보다 더 내란으로 고통
을 당하기가 쉽다고 함. 식민지 시대 이후의 아프리카를 조사한 어느 연구는 45개 국가인 아프리카
국가들의 90%가 1960년과 1982년 사이에 군사 쿠데타와 계획을 경험함. 거의 모든 경우가, 정치적
힘과 연관된 자원을 놓고 종족집단들이 경쟁에 내몰린 것
정치학자인 아슈토쉬 바니시는 1950년에서 1995년 사이에 인도의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일어
난 모든 폭동들을 연구함. 8개 대도시 중심으로 폭동으로 인한 사망자가 46%를 차지함. 이들 도시
의 인구는 인도 총도시인구의 18%에 불과함. 평화롭게 지내는 도시들은 사업이나, 노동조합, 전문인
연합,시민단체, 자선단체, 언론 등의 시민조직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꼽음
캘리컷은 인도 남부의 케랄라주로 힌두교와 이슬람교도가 38%이나, 캘리컷은 라이온스 클럽과 운
송조합, 영화, 스포츠, 연극, 독서클럽들의 활동이 활발함. 간단히 말해서 잘 발달된 시민조직 때문
에 캘리컷의 힌두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은 서로 잘 알고, 서로 의존하기까지 하면서 폭동을 미연
제3장 사회변동 : 네온사인이 된 알라신
(이집트)
1952년 이집트에서 가말 알둘 나세르와 그의 군부가 영국과 동맹관계에 있던 왕국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을 때, 그들은 이집트의 사회변화를 목표로 삼았고, 그에 대한 성과를 거두기도 함
나세르의 웅대한 계획은 식민주의와 봉건주의 유물을 없애고, 비종교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
파라오 이후 최초로 이집트는 이집트인이 지배하는 통치를 하게됨. 대담한 토지개혁이 나세르정부
의 주된 정책이었고, 그는 농부들에게 토지소유권을 갖도록 해서 그 나라의 봉건적인 구조를 무너
뜨림.
하충토의 수위 상승으로 경작이 어려워지고 이주로 인해 카이로는 200만명이던 인구가 1,800만명
까지 늘어나게 됨. 작은 마을에 수천명, 그것도 주로 친척들끼리 모여 사는 것에 익숙했던 이집트인
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비는 거대한 빈민가에 내팽개쳐짐.
젊은 부부들이 카이로 교외로 이주하면서 전통적인 대가족이 해체되고, 농사대신 공장노동과 건설
노돌을 해야만 했던 것.
1952년 이집트인들은 고등교육을 단지 4만 2,485명만 받았지만, 1977년에는 50만명에 달했고, 수많
은 의사들과 기술자들, 변호사들을 길러냄. 그러나 전문가들은 넘쳤으나 일자리는 거의 없고, 기술
자들이 택시를 몰고, 법률가들이 전기 기술자로 생활함. 1991년에는 의사도 법률가도 100달러 못됨
이집트에서 가장 컸던 사회변동은 여성의 지위에 관한 부분임. 이집트인들이 생각하던 여성상은
육아, 요리, 집안살림을 맡아서 하는 전형적인 가정주부의 모습임. 경제적 어려움으로 여성들도 강
제로 일에 내몰리게 됨. 가정을 떠나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여자들이 늘어남
1920년대 무슬림형제는 정부의 갖은 억압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 사원과 학생회, 직업적인 협회들
을 지배했음.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여성은 히잡을 쓰거나, 몸 전체를 가리는 니캅을 썼음
2000년대에는 거의 흔한 광경이 됨. 1960년대 이스라엘에 패배 이후 이슬람교가 해결책이라는
슬로건을 인용함. 카이로 범죄 및 사회 연구 센터에서 행한 연구에 의하면, 카이로 주변의 빈민촌
임바바에 살고 있는 젋은층의 90%는 이슬람교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것으로고 답함
이집트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들로 이집트의 세속적인 정부, 서구식 이집트 신흥부자들, 숙적인
이스라엘리라고 비난함. 이슬람전사들은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했고, 인구의 10%인 콥트 기독교인
을 위협했음.
한편, 테러집단인 가마아 알이슬라미야는 관광산업에 폭탄테러를 통해 공격함. 나세르의 후계자들은
완전히 이슬람교화된 이집트를 통치함. 이슬람교는 경제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주었음. 보험과 저당산
업은 종교적으로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금지됨
사회변동의 역동성
현대화와 전통, 네온과 알라, 그들의 관계가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님. 이집트에서 사회변동의 역동
성은 김치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줌. 사회변동은 미묘한 것이고, 때로는 숨어 있음
수백만의 이집트농민들은 전통적인 생계수단을 잃고, 그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게 됨. 수백만에 달하
는 이집트인들이 교육을 받고 보다 안정된 가치들을 약속받았지만, 결국은 택시를 몰고 전기기술자
로 일하고 있는 것임. 조직화된 종교는 잃어버린 공동체와 가족 간의 유대를 대신해 주고 괴로운
사람들을 위로 해 줄 지원조직을 제공함.
2019년 현재 이집트도 산업발전전략등을 발표하고 계획경제를 진행함. 환율에 의존하고 생산성이 약해 고기술상품의 수출은 1%에 불과함. 외국인 투자 유치도 제조업보다는 석유가스에 집중함. 또한 정치 사회적으로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이 일어남. 쿠데타로 정권이 들어섬. 2019년 장기집권 헌법안을 승인해 엘시시대통령이 장기집권중.
인권상황이 악화되어 매년 수백명이 실종 및 납치됨. 현 정권은 경제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
오직 정권의 안위만을 목적으로 카이로의 혁명을 두려워함. 6년간 2,400명이 사형선고를 받음
2015년 제2수에즈운하 완공함. 28억달러를 들였으나 현재 물동량 감소로 고전중임. 시나이반도개발
계획을 발표해 2022년 까지 155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임. 쿠웨이트 자금을 동원할 계획임
신행정수도 건설 2015년 건설계획을 발표하고 2019년에 신행정수도로 이동중임. 신도시건설 및
원전건설을 발표함.
산업구조는 인구의 15%만이 제조업에 종사하며, 1차산업인 농업이 30%를 차지함. 제조업도 석유
가스가 30%에 달해 에너지의존형 경제구조임. 자동차 산업을 보자면 CKD모델로 생산하며 실제로
일본/유럽/현대가 전체 이집트 자동차 시장의 70%를 차지함. 31개 자동차 조립업체가 있으나
대부분이 합작회사로 생산량은 고작 15만대에 불과함. 판매량은 30~35만대로 중동/아프리카1위임
이집트 100대 대기업의 특징은 산업구조가 다변화되어 있지 않고, 밀가루/비료/식품/시멘트에 비중
이 높음. 식품12개 은행12개 시멘트9개 제약8개 부동산개발 섬유 등으로 IT 및 자동차 전자제품
제조업이 발달되지 않음
제4장 J곡선 : 무서운 호랑이로 변한 국민들
(인도네시아)
- 얼마전 까지 인도네시아는 엄청난 이득을 추구하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확실한 안정시장으로 인정
인도네시아는 6,000개의 유인도로 이뤄지고 수백개의 언어와 소수민족으로 구성함. 이 나라는 네덜
란드가 식민지 개척의 야심을 품고 인의적으로 합쳐 놓은 나라임.
초대 대통령인 수하르토는 공산주의국가로 경제를 초인플레이션으로 이끌어 가고, 외국 투자자들의
재산을 국유화함으로써 법과 질서의 파괴를 가져옴. 특히 거리는 폭도들이 장악해서 강탈과 소수
민족에 대한 폭력으로 아수라장이 됨
1966년 수하르토장군은 수카르노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세계3위의 공산당을 탄압함. 그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연설문은 딱딱하게 읽었으며,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버클리
마피아라는 고문들의 말대로 시장 지향적이며 급진적인 개혁을 시작함. 통화를 안정시키고, 국영
기업들을 민영화했으며, 몰수했던 기업들을 주인들에게 돌려주었고, 이나라의 막대한 천연자원으로
외국의 투자자들을 성공적으로 끌어들임
값싼 노동력과 우호적인 기업환경을 이용하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섬유와 신발, 장난감, 그리고 가
구를 만드는 공장을 설립함.
수하르토의 아들들과 딸들은 석유화학회사부터 국민차를 만들려는 계획에 손을 안 댄 것이 없었고,
인도네시아의 소수 민족인 중국인 기업들을 양성함. 이들은 전체 인구의 4%를 차지하고 있지만,
국가 전체의 부는 60%를 차지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빈곤층은 60%에서 10%로 감소함. 평균 수명도 49세에서 65세로
늘어나는 등 생활과 삶이 질이 날로 발전함
1997년 타이의 환율 위기 이후 외국 자본과 국내자본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자, 통화와 주가폭락
그리고 은행들의 파산함. 경제붕괴 이후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비용이 무려 138%로 증가하면서
자본감소로 인한 노동자의 해고 등 일자리가 사라짐
1998년 이슬람교도들은 기독교를 믿는 중국인을 살해하기 시작함. 그들의 분노를 다른 소수민족과
수하르토정권에서 찾기 시작함. 평범한 인도네시아인들은 아주 잔혹함.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위기
로 인해 신발제조기업의 1/3이 떠났고, 정치적 위기로 많은 사회불안과 중앙정부의 통제 기능이
상실함. 2002년에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동티모르가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하였고, 발리에서는
1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폭탄테러에 의해 희생됨.
J 곡선의 역동성
수하르토에게 도전을 했던 인도네시아인들은 훈련받은 폭도가 아님. 정치적인 봉기는 수천명의 사람
들이 함께 움직여야 함. 그들의 분노는 불만요소가 너무 많았기 때문임
수하르토 정권의 부정부패, 소수민족인 중국인들의 60%에 달하는 부를 차지하는 민족갈등임
계속 부유해지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갑자기 가난에 찌든 자신들을 발견한 것. 위기가 닥쳤을
때 희망들은 산산조각이 났고, 성장이 계속 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했던 생활은 극적으려 변함
J곡선은 추락하는 기대의 혁명이라고도 일컬어짐. 부풀어 오른 기대와 충격적일 만큼 비참한 현실
사이의 간격이 더욱 벌어짐. 국가경제가 인도네시아처럼 급속하게 붕괴되면, 강력한 정치적 역동성의
고삐가 풀리게 됨
2019년 현재 조코 위도도 2019대선에 재선에 성공함. 군경력이 없는 최초의 민간대통령임. 이슬람국
가로는 유권자 1.9억명에 달하며 단 하루에 투표함. 지방선거와 총선도 동일하게 치루는 방식임
2019년에 대선은 조코 위도도가 인도네시아판 오바마 대통령이고,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트럼프라고
할수 있음. 프라보워는 장성출신이며 엘리트 출신임. 수하르토 대통령의 사위로 명문가임. 조코 위
도는 서민출신으로 단계적으로 올라간 케이스임.
2016년에는 중국계 기독교인 자카르타 시장인 바수키 차하냐 푸르나마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며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시장은 신성모독죄로 수감됨. 이슬람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게 관건임
2019년 현재 인도네시아 100대 기업을 보자면, 자룸그럽은 담배/은행/플랜테이션산업을 살림그룹은
소비재 산업의 국가차원 발전을 주도함. 현재 화교기업을 중심으로 스타트업의 대규모 투자로
고젝/부깔라빡 등 스타트업계의 유니콘을 만드는데 성공함.
아스트라/자딘매터슨/살림그룹/.시나르마스/구당 가람그룹 등이 100여년간 인도네시아 경제를 지탬함
2018년 10대 그룹중 8개가 화교출신임. 업종은 내수로 부동산/유통/금융/식음료/담배/제지/팜오일
대외교역의존다 낮으며 상위 10대 기업이 주로 취급하는 분야는 내수의존형임. 섬이 무려 1.8만개로
단일정부 구성이 어렵고 이슬람의 종교분쟁이 심함. 또한 화교가 재계를 대변하면서 적극적 투자를
하지 않고, 내수의존형임. 동남아 경제와 정치에 화교의 영향력이 매우 큼.
1위;그룹 아스트라는 홍콩출신 사업가가 만든 자동차그룹임. 자동차와 플랜테이션, 광업이 주력임.
매출액은 14.7억달러임. 2위 그룹은 살림그룹이며 식품/정보통신/자동차/부동산 등이며 중국계임
3위 자룸그룹은 화교재벌이 운영하고 주력은 은행/담배임. 시중은행을 장악하고 무선통신사업도
40%를 차지하고 있음.
4위 기업 시나르마스그룹은 화교출신이며 펄프/종이와 농업비지니스/뱅킹이 핵심임
5위 구당가람그룹은 화교로 인도네시아 2위의 담배회사 6위는 필립 모리스 7위는 리뽀그룹으로
화교재벌이며 종합병원/학교/부동산/쇼핑몰/아파트/백화점에 주력임
8위는 로얄골든 이글그룹으로 인도네시아인으로 펄프/제지/팜오일이 주력임
9위는 알파마트 그룹으로 편의점그룹임 역시 화출신임 10위는 시티콥 대형마트로 차이룰 딴중은
인도네시아인으로 경제조정부장관출신 은행/미디어/소매유통업이 주력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