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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Chapter 3 마리우스
꼬마 가브로슈
장 발장과 코제트가 수녀원에서 살기 시작한 지 8-9년이 될 무렵 탈플가와 샤토도 경계의 뒷골목을 12-13살 되어 보이는 소년이 배회하고 있었다. 이 소년은 어른의 바지를 입고 있었으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었다. 또 여자 윗도리를 입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준 것도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불쌍하게 여겨 그 누더기 옷을 준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부모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 대해서 관심 밖이었고 어머니는 전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부모가 있으면서도 고아가 된 극히 가엾은 소년 중의 하나였다.
이 소년은 거리에 있을 때가 가장 즐거웠다. 그에게 있어서는 돌바닥도 어머니 마음보다 딱딱하지 않았다. 보모는 그를 세상 밖으로 걷어찼고 그는 깨끗이 집을 나와 버렸다. 그는 수다스럽고 인상이 나빴으며, 예민하면서도 냉소적이었다. 활발한 반면에 허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거리를 쏘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돈치기를 했다. 개천을 뒤지기도 하고 약간의 도둑질도 했다. 하지만 고양이나 참새처럼 애교 있게 훔쳤으며, 부랑아라 부르면 웃고 깡패라 부르면 화를 냈다.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으며 불도 사랑도 없었지만, 그는 자유로웠기 때문에 활발했던 것이다.
이 소년은 버림받은 아이였으나 두 달이나 석 달에 한 번쯤은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어디, 엄나나 좀 만나 보고 와야지.”
그러면서 그는 한길과 서커스와 생마르탱 개선문을 뒤로 하고, 강가로 내려가 다리를 건너고 문밖으로 나서서 살페트리에르 병원이 있는 데까지 갔다. 그런 다음 어디로 가는 것일까? 소년이 찾아가는 곳은 장 발장이 자베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코제트를 데리고 뛰쳐나온 그 집이다. 그 집은 그때보다 더욱 낡아 빠지고 지금은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비참한 것은 종드레트 일가였다.
그들 부부와 두 딸은 허술한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았고 남편은 하는 일없이 빈둥빈둥 놀고 있었다. 이 소년이 찾아가는 것은 그들이었다. 소년은 여기 찾아와서도 가난과 비참함을 맛보아야 했으나, 그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큰 고통은 가족의 훈훈한 마음이 이미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가 모처럼 집에 돌아오면 “어디서 오니?”라는 물음에 “거리에서”하고 대답한다. 그가 집에서 나가면 “어디로 가니?” 묻고 그는 “거리로”하고 대답할 뿐이다.
이 소년은 지하실에서 자란 희멀건 풀처럼, 그토록 애정 없는 세계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소년은 이것을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았고 또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보모란 어떠해야 하는가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두 딸들만 사랑하는 것 같았다. 이 소년은 여러 사람에게서 꼬마 가브로슈라고 불렸다.
종드레트 일가가 사는 방 옆에는 마리우스라는 법률 공부를 하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나이는 20살쯤 되었을 것이다. 그 또한 가난했으나 종드레트 일가와는 달리 말쑥하고 호감이 가는 청년이었다.
할아버지와 손자
부슈라가, 노르망디가, 생통주가에는 질노르망이란 노인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은 이 고장에 오래 산 사람들로서 가끔 질노르망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과거란 이름의 막연한 그림자를 우울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사나이의 모습은 탕플 수도원 부근의 미궁에서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루이 14세 시대에는 그 거리에 프랑스의 온갖 지방의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의 새 티볼리 지구의 거리 이름을 유럽의 수도 이름에서 따온 것과 같다. 결국 이것은 전진을 뜻하며, 거기서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질노르망은 1831년까지만 해도 원기 왕성했다.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특이한 존재였다. 전엔 흔히 있는 인물이었으나 지금은 특이하다는 이유 때문에 특별한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시대착오적인 기묘한 인물이었다.
후작들이 후작으로서의 풍채를 간직하고 있듯이 그는 옛날 부르주아식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18세기적인 약간 거만한 부르주아지였다. 90세가 넘었으나 허리도 굽지 않은데다 눈도 밝고 잘 먹고 잘 자는 건강한 노인이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편이었으나 1년 전부터는 여자를 단념했노라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이미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너무 가난하기 때문이라는 주석을 빠뜨리지 않았다. 질노르망은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만일 몰락하지 않았더라면, 헤헤헤!”
사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약 1만 5천 프랑 정도의 연간 수입이었다. 이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볼테르같이 허약한 80세 노인에는 속하지 않았다. 그는 천박하고 성급하며 화를 잘 내었다. 무슨 일이나 당치도 않은 것을 가지고 노발대발했다. 누가 반대라도 하면 곧 지팡이를 휘둘렀다. 위대한 세기인 루이 14세 시대 때처럼 사람들을 때리기도 했다. 그에게는 이미 50이 넘은 노처녀 딸이 있었는데, 화가 나면 그녀를 때리고 채찍질 하는 일까지 있었다. 마치 8살 된 아이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녀들에게 따귀를 갈기며 “쌍년”하고 욕을 퍼붓기도 했었다. 그가 흔히 쓰는 욕은 “못된 얼간이”라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묘하게도 참착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이발소에가서 면도를 했는데, 그 주인은 전에 미쳤던 일이 있는 사나이로서 질노르망을 아주 싫어하고 있었다. 요염하고 아름다운 아내 때문에 그를 질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질노르망은 자신이 모든 일에 높은 견식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만하였다.
질노르망의 옷차림은 루이 15식도 아니고 루이 16세 식도 아니었다. 집정관 정부 시대의 멋쟁이 차림 바로 그것이었다. 이때가지도 그는 스스로가 젊다고 생각하여 이런 유행을 따랐던 것이다.
질노르망은 부르봉 가문을 숭배하고 1789년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던 공포 시대에 목숨을 보존했는지를 열심히 이야기했다. 똑 목이 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재치와 애교를 발휘했는지도 이야기했다. 만일 어떤 청년이 그 앞에서 공화국을 찬양하기라도 한다면, 그는 실신할 듯 화를 냈다.
때로는 90세가 된 것을 자랑하며 이런 말을 했다.
“93년(1793년, 루이 16세가 처형된 해)이란 해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 때로는 이렇게도 말했다.
“사람이란 백 살을 살아야지.”
질노르망은 두 번 결혼햇다. 전처에서 낳은 딸은 독신 생활을 하면서 노인의 시중을 들고 있었고, 후처에게서 낳은 딸은 군인과 결혼하였으나 아들을 낳자마자 죽었다. 질노르망은 왕정복고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딸과 결혼하려는 사람이 나폴레옹의 부하라는 것을 알자 막무가내로 반대했다.
끝내 결혼을 막지는 못했지만 딸이 아들을 남기고 죽자 즉시 사정은 달라졌다. 노인은 외손자인 마리우스를 자기에게 돌려보내지 않으면 상속권을 박탈하겠다면서 데려갔다. 그 후. 마리우스의 아버지 퐁메르시하고는 만나지도 않았다. 퐁메르시는 나폴레옹군의 기병 대령이었다.
그 무렵, 나폴레옹은 이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고 국왕이 다시 프랑스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부하였던 군인들은 사기가 죽어서 조용히 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퐁메르시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아내를 잃고 아들은 장인에게 빼앗겼으므로 베르농이라는 시골에서 꽃을 가꾸는 일에만 온 정열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지극히 소심한 사람이어서 좀처럼 외출도 하지 않았다. 퐁메르시는 동냥을 하러 오는 가난한 사람과 사람 좋은 마뵈프 신부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정원에서 피는 꽃들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령의 유일한 즐거움은 두세 달에 한 번씩 파리에 나가서, 이모를 따라 생쉴피스 성당에 나오는 마리우스의 성장한 모습을 기둥 뒤에서 몰래 보는 일이었다.
베르농의 주교 마뵈프 신부를 알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이 신부는 생쉴피스 교구 재정 관리 위원과 형제 사이였다. 그 위원은 얼굴에 상처가 있는 사나이가 자식을 멀리서 바라보며 눈물짓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
하루는 그가 형을 만나러 베르농에 갔다가 다리 위에서 퐁메르시 대령을 보게 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형인 마뵈프 신부에게 알렸고 이들은 구실을 만들어 대령을 방문했다. 그 후 몇 번 찾아가면서부터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아들인 마리우스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어쩌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었으나, 국왕을 존경하는 이 집안에는 별로 좋지 않은 소리뿐이었다. 희미하게나마 아버지의 사상과 의견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차차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지만 마리우스는 할아버지가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완고하고 성격이 급한 질노르망은 손자만은 무척 귀여워했다.
퐁메르시 대령은 1827년에 죽었다. 마리우스가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대령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가구를 다 팔아도 장례비조차 안 될 정도였다. 하녀는 종이쪽지 한 장을 발견하고 이것을 마리우스에게 건넸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 아들을 위하여, 황제는 워털루의 싸움터에서 내게 남작의 작위를 내려 주셨다. 내가 피로써 얻은 이 작위를 현 정부가 부인하고 있지만, 내 자식은 이 작위를 물려받아 사용하라. 내 자식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쪽지 뒷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워털루의 싸움에서 한 하사관이 내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 사나이의 이름은 테나르디에라 한다. 그는 요즘 파리 근교의 셸이나 몽페르메유에서 작은 여인숙을 경영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내 자식이 테나르디에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친절히 대해 주길 바란다.
마리우스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뿌리 박고 있는 죽음에 대한 그 막연한 위압감으로 말미암아 그 쪽지를 호주머니에 받아 넣었다.
대령의 것이라고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질노르망은 사위의 칼과 군복을 고물상에 팔았다. 이웃 사람들은 그의 꽃밭을 어지럽히면서 귀한 꽃들을 훔쳐 갔다. 그 밖에 화초는 잡초로 변하거나 또는 말라죽었다.
마리우스가 베르농에 머문 것은 겨우 48시간이었다. 매장이 끝나자 파리로 돌아가 법률 공부에 몰두했다. 아버지에 대한 것은 그가 마치 이 세상에 생존한 일이 없었던 것처럼 깡그리 잊었다. 죽은 지 이틀 만에 묻히고 사흘 만에 잊혀졌던 것이다. 마리우스는 모자에 상장을 달고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말우스는 어려서부터 종교적 관습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생쉴피스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갔다. 그날은 여느 때와 달리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었기에, 기둥 뒤 벨벳을 씌운 의자에 무심코 앉았다. 그 의자 등에는 교구 위원 마뵈프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미사가 시작되자 한 노인이 다가와 그에게 말햇다.
“여보게, 이것은 내 의자일세.”
마리우스가 일어나자 노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미사가 끝나자 마리우스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까의 노인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여보게, 아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또 방해를 해서 미안하게 생각하네. 자네가 나를 귀찮은 노인이라 생각했을 것아 나도 변명을 좀 해야겠네.”
마리우스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것은 없습니다.”
“아닐세. 나는 자네에게 언짢게 여겨지기를 바라지 않아. 자네는 내가 그 자리에 집착한다고 생각할 걸세. 미사를 드리는 데는 거기가 좋은 자리인 것 같아서지. 왜 그럴 것 같은가?
나는 이곳에서 몇 년 동안이나 가엾은 어느 아버지가 이삼 개월에 한번씩 오는 것을 보았네. 그 가엾은 분은 여기서밖에 자기 자식을 볼 기회가 없었던 거지. 그분은 아들이 미사에 오는 시간을 알고 그때를 기다려 찾아오는 것이었네. 아들은 아버지가 온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지. 아마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 거야. 순진한 아이였으니까! 아버지는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기둥 뒤에 숨어 있었지. 자기 자식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 자식을 무척 사랑하고 있었거든, 그 사람은! 나는 그 모습을 보았어. 그래서 내게는 이곳이 신성한 장소처럼 생각돼.
나는 그 분과 제법 친해지게 되었지. 그분에게는 부자인 장인과 이모 또 몇몇 친척이 있었는데, 그들은 만약 아버지가 자식을 만나는 일이 있으면 유산을 상속시키지 않겠다고 위협을 했어. 그분은 훗날 자기 자식이 부자로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었지. 정치적인 견해 때문에 배척받은 거야. 정치적인 견해도 좋지만 세상에는 그 한계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워털루의 전투에 참가했다고 해서 괴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나? 그런 일로 부자 사이를 떼어놓는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네. 그 분은 보나파르트 군대의 연대장이었어. 이미 세상을 떠났으리라 생각하네. 그분은 내 형님이 신부로 계신 베르농에 살았는데 성함은 퐁마리인가몽페르시였지. 얼굴에는 큰 상처가 있었어.”
마리우스는 안색이 변하여 말했다.
“퐁메르시 아닙니까?”
“그래, 퐁메르시였어. 자네도 알고 있나?”
마리우스가 대답했다.
“네, 그분은 제 아버님이었습니다.”
늙은 교구 관리 위원은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외쳤다.
“아니, 자네가 그분의 아들이라고! 아 그렇지, 지금쯤은 다 성장했을 테니까. 자네는 자네를 무척 사랑하던 아버지가 계셨다는 사실에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걸세.”
마리우스는 그 노인을 부축하여 집까지 모셔다 드렸다. 이튿날 그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친구들과 사냥을 가기로 했습니다. 사흘 동안만 집을 비우게 해주세요.”
“나흘이라도 좋다. 재미있게 놀다오렴.”
질노르망은 눈을 깜박거리며 낮은 음성으로 딸에게 말했다.
“연애라도 하려는 모양이군.”
마리우스는 어디에 갔던 것일까? 그는 사흘 동안 집을 비웠다가 파리로 돌아온 후, 곧장 법률 학교 도서관에 가서 정부 기관지 신문철의 열람을 신청했다.
그는 신문을 읽었다. 공화정 시대와 제정 시대의 모든 역사, <세인트 헬레나 회고록>, 모든 기록과 기사와 선언문, 보고서를 읽었다. 닥치는 대로 모두 읽었다. 나폴레옹 군대의 보고서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처음 발견했을 때, 마리우스는 마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1주일 동안이나 들떠 있었다.
그가 읽는 나폴레옹 군대의 보고서 속에서 대제국의 전모가 떠올라왔다. 군데군데 아버지의 이름이 나왔고 황제의 이름은 수없이 나왔다. 그는 마음속에 밀물처럼 부풀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가끔 아버지의 숨결이 앞을 스쳐 가며 자기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는 차차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북소리, 대포 소리, 나팔소리, 대대가 행진하는 소리, 멀리서 기병대가 질주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가끔 그는 하늘을 우러러 끝없는 깊이와 거대한 별 무리가 빛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려 거대한 사물이 잡다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마리우스는 몸을 떨고 숨을 헐떡거리며 무아지경에 빠졌ㄷ. 문득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두 팔을 창문에 기대었다. 그리고 어둠과 침묵, 캄카만 무한과 영원한 공간을 바라보면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황제 폐하 만세!”
놀라운 첫걸음이 내디뎌지고 있었다. 전에는 군주제의 몰락으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프랑스의 부흥으로 보였다. 그의 진로가 바뀌었다. 일몰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일출이었던 것이다. 그는 전향되어 있었다. 이 모든 혁명은 가족들이 모르는 동안 그의 내부에서 수행되고 있었다.
이 같은 은밀한 과정 속엣 옛 부르봉파 및 극단적인 왕당파로서의 껍질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귀족주의자, 왕실주의자를 탈피하여 완전한 혁명파요 민주주의자로서 거의 공화파나 다름없이 되었을 때, 그는 오르페브르 강가의 인쇄소에 가서 ‘남작 마리우스 퐁메르시’라는 명함을 주문했다. 마리우스는 가끔 집을 비웠다.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걸까?”
이모는 그를 의심했다. 이러한 그의 외출은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한번은 아버지가 남겨 놓은 지시를 따르기 위해 몽페르메유에 간 일이 있다. 그리고 워털루 전쟁 때의 옛 하사관, 즉 여인숙을 하고 있는 테나르디에를 찾았다. 테나르디에는 이미 파산하여 그 집을 비어 있었고 아무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이것을 조사하기 위해 그는 4일이나 집을 비웠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분명히 그 녀석은 돌았어.”
마리우스는 셔츠 안에 검은 리본으로 된 무언가를 목에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마리우스는 아침 일찍 베르농에서 돌아와 할아버지 집에 당도했다. 그는 이틀 밤이나 역마차에서 새웠기 때문에 피로에 지쳐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수영 연습을 하면서 수면 부족을 보충하고자, 그는 자기 방에 올라가 여행용 프록코트와 목에 걸고 있던 검은 끈을 벗어 놓은 다음 수영을 하러 나갔다. 건강한 노인들이 모두 그렇듯이 질노르망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는 마리우스가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마리우스가 있는 다락방으로 통하는 층계를 되도록 빨리 걸어 올라갔다. 마리우스를 포옹하면서 그 사이를 이용해 그가 어디 갔다 왔는지 되도록 자세히 알아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90세 노인이 올라가는 것보다는 젊은이가 내려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질노르망이 다락방에 이르렀을 때 마리우스는 벌써 거기에 있지 않았다. 침대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고 프록코트와 검은 끈이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질노르망은 말했다.
“이게 차라리 낫지.”
잠시 뒤 노인은 객실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질노르망의 딸이 들어와 마차바퀴 무뉘의 수를 놓고 있었다. 질노르망은 한 손에는 프록코트, 다른 손에는 목에 검은 리본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외첬다.
“됐어! 이제 드디어 비밀을 밝히게 됐어. 요긴한 것을 알게 됐어. 그녀석의 비밀을 알게 될 것 같아. 소설 얘기를 실제로 해 보는 거나 진배 없지. 초상화도 있고.”
과연 메달 비슷한 검은 상어 가죽으로 된 작은 갑이 끈에 매달려 있었다. 노인은 이 갑을 들고, 잠시 동안은 열어 보려 하지도 않고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남의 진수성찬이 눈앞에 지나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배고픈 거지의 태동와 같이 쾌감과 황홀과 분노가 섞인 모습이었다.
“초상화가 들어 있겠지. 나는 알 수 있어. 소중하게 가슴에 걸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알 만하지. 바보 같은 자식! 소름이 끼칠 만큼 끔찍스러운 계집일 테지. 요즘 녀석들은 취미가 나빠.”
딸이 말했다.
“열어 보세요, 아버지.”
용수철을 누르자 작은 갑이 열렸다. 그 안에는 얌전하게 접은 종이쪽지 밖에는 없었다. 질노르망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보나 마나야. 뻔해, 연애편지겠지!”
“어머! 읽어 봅시다.”
딸의 말이었다. 그러고는 안경을 썼다. 두 사람이 쪽지를 펼쳐 보았다.
내 아들을 위하여
황제는 워털루의 싸움에서 내게 남작의 작위를 내려 주셨다. 내가 피로써 얻은 이 작위를 현 정부가 부인하고 있지만, 내 자식은 이 작위를 물려받아 사용하라. 내 자식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부녀가 어떻게 느꼈을지 말로써는 형용할 수가 없다. 그들은 송장이 숨을 내쉬었을 때처럼 오싹해졌다. 다만 질노르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건 그 군인 녀석의 필적이야!”
딸은 종이쪽지를 이모저모 뜯어보고 도로 작은 갑 속에 집어넣었다.
이때 푸른 종이로 싼 장방형 꾸러미가 프록코트 주머니에서 굴러떨어졌다. 마리우스의 명함이었다. 딸은 그 중의 한 장을 질노르망에게 주었다. 거기엔 ‘남작 마리우스 퐁메르시’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노인은 벨을 눌렀다. 니콜레트가 들어왔다. 질노르망은 끈과 작은 갑과 프록코트를 집어 객실 한가운데로 던지면서 말했다.
“그 잡동사니를 가져가!”
한 시간 이상 깊은 침묵이 흘렀다. 노인과 딸은 등을 돌리고 앉은 채 각각 똑같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한 시간이 지날 무렵 딸이 말했다.
“참 꼴좋군!”
얼마 후 마리우스가 모습을 나타냈다.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객실 문턱에 들어서기도 전에 자기 명함 하나를 들고 있는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그를 보자 냉소적이고 부르주아적이면서도 어딘지 고압적인 오만한 태도로 외쳤다.
“이놈! 이제 남작이라고 했겠다! 축하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냐!”
마리우스는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질노르망은 웃음을 그치고 격하게 말했다.
“네 아비는 바로 나다.”
마리우스는 눈을 내리뜨고 진지한 태도로 대답했다.
“제 아버지는 겸손하고 용감한 분이었습니다. 공화정 시대에 조국을 위해 빛나는 공헌을 했습니다. 어쩌면 인간이 만든 위대한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25년간을 야영 생활로 보내고, 낮에는 퍼붓는 포탄 속에서 밤에는 눈과 진창과 빗속에서 생활했습니다. 적의 군기를 두 번이나 빼앗고 스무 번이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망각과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잘못이란 단 한가지, 조국과 아들이라고 하는 두 배신자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질노르망은 도저히 참고 들을 수가 없었다. 공화제라는 말이 나오자 노인은 몸을 일으켰다. 아니, 펄쩍 뒤어올랐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었다. 마리우스가 내뱉는 한마디가 이 늙은 왕당파의 얼굴에 마치 잉걸불에 풀부질을 하는 격의 효과를 나타냈다. 거무죽죽한 얼굴이 붉어지고 붉은빛이 다시 진홍빛이 되었으며, 마침내 불꽃같은 빛으로 변했다.
“마리우스 이 못된 놈! 나는 네 아비가 누군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아!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그 놈들은 악당이었다는 것뿐이다. 모두가 악당이야! 살인자에 도둑놈들이다! 모두가 그래. 난 아무도 몰라! 모두 똑같은 무뢰한이야! 알겠느냐, 마리우스. 네가 남작이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다. 놈들은 모두 로베스피에르에게 가담한 악당이야! 전부가 보나파르트를 섬긴 강도들이야! 정통인 국왕을 배반하고 또 배반한 불한당들이야!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군과 영국군 앞에서 도망친 비겁한 자들이란 말이다. 내가 아는 거은 그것뿐이다. 네 아비가 그 졸개였는지 나는 모른다. 미안한 얘기지만 할 수 없어.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이번에는 마리우스가 잉걸불이고 질노르망이 풀무가 되어 있었다. 마리우스는 손발이 떨리고 머리가 쪼개질 듯하며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소용돌이가 일어나 잠시 동안은 취한 듯 비틀거렸다. 잠시 후 고개를 든 그가 할아버지를 노려보면서 벼락같이 소리쳤다.
“부르봉 왕조를 타도하라! 루이 18세 돼지 녀석도!”
루이 18세는 이미 4년 전에 죽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노인은 붉게 상기되었다가 곧 그 머리털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는 싸늘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이 신사다운 남작과 나 같은 시민은 한 지붕 밑에서 살 수 없다.”
질노르망은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서운 얼굴로 변한 그의 이마가 분노로 넓게 빛났다. 그가 마리우스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내 집에서 썩 나가거라!”
마리우스는 집을 나왔다. 이튿날 질노르망은 딸에게 말했다.
“그 흡혈귀 같은 녀석에게 반년마다 600프랑씩만 보내라. 그리고 앞으로 내 앞에서 그 녀석 얘길랑은 입 밖에도 내지 마라.”
마리우스는 어디로 간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가 가지고 있던 30프랑과 시계 그리고 몇 가지 옷을 여행 가방에 챙겨 가지고 외할아버지 집을 나섰다. 시간당 삯을 주기로 하고 합승 마차를 빌려 다고는 정처 없이 라탱 지구를 향해 떠나갔다. 마리우스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마리우스는 그날 레글과 쿠르페라크라는 학생과 알게 되었다. 쿠르페라크는 어떤 혁명적인 모임에 마리우스를 소개햇다. 중요한 일원은 앙졸라스, 콩브페르, 잘 프루베르, 푀이, 파오렐, 그랑테르 등이었다. 마리우슨느 그들과도 친해졌다. 질노르망 이모로부터 돈이 왔지만 마리우스는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먹고 살아야만 햇다. 그는 옷과 시계를 팔았다. 마리우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옷과 시계를 판 돈은 순식간에 없어졌다. 마리우스는 이른바 극도의 빈곤을 맛보다야만 했다. 그것은 실로 암담한 것이었다.
빵 없는 나날, 잠 못 이루는 밤, 촛불이 없는 저녁, 불이 없는 난로, 일거리가 없는 몇 주일, 하고 싶지 않은 일거리, 희망 없는 장래, 팔꿈치에 구멍이 난 윗도리, 젊은 아가씨들의 놀림을 받는 모자, 방값을 치르지 못해 열리지 않는 현관, 문지기와 음식점의 횡포, 이웃의 조소, 짓밟힌 자존심, 굴욕, 혐오, 비통, 의기소침 등.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이 모든 것을 참아 나갈까? 또 어째서 이런 것밖에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마리우스는 이것을 배워 알게 되었다. 인간은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에 긍지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순간에 그들은 옷이 없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조소를 당했다. 마리우스는 이런 것도 배웠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는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그는 쿠르페라키와 동거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방은 조촐한 곳으로서 약간의 법률 책 외에도 몇 가지 소설책이 있어 그럴싸한 장서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번지의 주소도 ‘쿠르페라크 씨 전교’로 되어 있었다.
마리우스는 변호사가 되었을 때 서먹하기는 하나 공손하고도 경의에 찬 편지를 외조부에게 보내 이를 알렸다. 질노르망은 떨면서 그 편지를 받아 읽고는 갈기갈기 찢어 휴지통에 버렸다. 며칠 뒤에 딸은 아버지가 혼자 방 안에서 크게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몹시 동요했을 때는 언제나 그러했다. 딸은 귀를 기울였다.
“바보가 아니라면 너도 알 텐데, 남작이 변호사를 겸할 수 없다는 것을.”
빈곤이나 다른 것이나 다 마찬가지다. 결국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마침내는 어떤 형태를 갖추게 된다. 입에 풀칠은 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살아가는 것이다. 마리우스 퐁메르시의 생활이 어떠했냐 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가장 어려운 난관을 돌파했다. 이제 그이 앞길은 약간 넓어졌다. 근면과 용기와 인내로써 그는 1년에 약 700프랑을 벌게 되었다. 독일어와 영어도 터득했다. 쿠르페라크가 친구가 하는 책방을 연결시켜 주어, 마리우스는 그 책방에서 자잘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광고문을 만들고 신문 기사를 번역했으며 책에 주석을 달거나 전기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평균으로 따져 1년에 700프랑의 순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는 이것으로 겨우 생활해 나갔다.
마리우스에게는 두 친구가 잇었다. 젊은 쿠르페라크와 노인인 마뵈프였다. 그는 노인쪽을 더 좋아했다.
마리우스의 즐거움은 교외의 큰길이나 연병장 또는 뤽사우르 공원의 인적 없는 사잇길을 오랫동안 혼자서 산책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채소밭이나 혹은 퇴비 위에 있는 닭들과 양수기를 돌리는 말을 바라보면서 반나절을 보내는 일도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 가운데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며 허술한 옷차림을 수상하게 여기고 인상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끝없이 공상에 잠겨 있는 가난한 청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고르보 저택을 발견하게 된 것도 이처럼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방값이 싸고 조용한 것이 마음에 들어 방을 얻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가 마리우스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밖에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