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안사11회 전국 동기회-친구 만나러 가는 길(조선의 마지막 주막「삼강마을」을 찾아)
봇짐 장수와 나그네,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의 숙식처였던 주막. 넉살 좋은 주모가 손님을 맞아 너스레를 떨던 푸근한 주막은 소설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주막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 바로 경북 예천의 삼강 마을이다. 삼강 주막은 지난 1933년 대홍수를 겪고, 2007년 한 차례 보수 작업을 거치면서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어도 걸죽한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훈훈한 인심을 느낄 수 있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술이 익어가는 삼강마을
삼강(三江)은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이곳은 김해에서 소금을 실은 배가 드나들고,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갈 때 거치는 길목이었다. 여기에 묵은 뒤 문경새재를 지나 한양으로 가면 장원급제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때문에 숱한 발길이 머물면서 자연스레 상거래가 번성했다. 1900년 무렵 지어진 삼강 주막은 26.4㎡(약 8평) 남짓한 작은 규모이지만 방 2개와 다락, 부엌 등을 갖추고 있다. 먼저 와있는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사방팔방으로 문이 7개나 있는 점이 색다르다.
50여년 동안 주모를 하다가 지난 2005년 89세 나이로 세상을 뜬 유연옥 할머니의 흔적도 남아 있다.
'뱃가 할매'로 불린 할머니는 1917년 이웃 마을에서 태어나 열여섯 되던 해 혼인을 했다. 이후 서른넷의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뒤 2남 2녀를 키우기 위해 주막을 넘겨받아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글을 몰랐던 할머니의 외상 장부는 부엌 벽이었다. 할머니는 생전에 술 한 잔은 짧은 금, 한 주전자는 긴 금으로 외상 표시를 해놓았다. 그 위에 가로줄을 그은 것은 외상값을 다 갚았다는 뜻이었다. 가로줄이 그어지지 않은 금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할머니의 넉넉했던 인심을 짐작케 한다.
지금은 이 마을의 부녀회 회원들이 주모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술을 담그는 것은 마을 주민인 김국지 할머니의 몫이다. 솔잎을 따다가 밥을 쪄서 직접 담그기 때문에 시중에서 파는 것과는 맛이 다르다. 은은한 솔잎향이 풍기고, 덜 달면서 더 독하다. 1만2000원이면 꽤 푸짐한 한상 차림을 즐길 수 있다. 부추 부침개와 묵, 손두부 등이 안주로 나온다. 주막 옆에는 500년 넘은 키 큰 회화나무 두 그루가 방문객을 위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이 마을에는 떡메치기, 양반 도포 입고 자전거타기 등의 체험 행사도 마련돼 있다.
주모가 술장사를 하던 유일한 초가 건물. 뒷편의 회화나무(속칭 회나무) 거목이 주막의 역사를 말해 준다.
우리 권오기 회원의 초등 후배인 예천군 의회 의장님께서 의회 직원 2명을 대동하고 우리를 위해 마중 나오셨다. 감사, 감사할 뿐입니다.
삼강 마을 이장이자 문화해설사인 정재인씨가 알뜰하게 삼강마을을 소개하고 숨겨진 뒷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문맹인 주모가 부엌 흙벽에 부지깽이로 그려놓은 외상 장부
훼손을 우려해 유리로 덮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