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침하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산 없이 계속 걸어가는데 빗줄기 힘이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몸에서 빗물이 흐른다.
낯선 건물을 찾아 들어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비를 피해보았다.
몸으로 스며든 축축한 물기가 고통스럽다.
거리의 차들은 빗물을 튀기며 질주하는데,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은 여유 있게 발걸음을 옮겨가는데,
상가 벽에 걸친 현수막은 을씨년스럽지만 힘차게 펄럭거리는데,
승객들을 실은 관광버스는 빗속에서도 기분 좋게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초췌한 몰골이 되어 나는 건물 안에서 밖의 동정을 살핀다.
번개 광선이 번쩍하더니 우르르 천둥이 운다.
건물 측면에 유리창이 나있고 그 옆에다 누군가 낙서를 해놓았다.
창밖 협소한 공터 구석에선 조그만 들꽃이 비를 맞고 있고,
어둑한 천장엔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앉아 있다.
누가 이런 데 낙서를 해 놓았을까?
왜 아무도 봐주지 않는 구석진 곳에 들꽃이 피어나 비를 맞는지,
왜 벌레도 없을 것 같은 천장 구석에 거미줄을 쳐 놓았는지,
왜 오늘 따라 내가 이런 곳에 들어와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는 건지
나는 모른다.
내가 이 조그만 공간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이 세계 곳곳엔 이해할 수 있는 일들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또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몸이 으슬으슬 추워진다.
기분이 우울해진다.
차라리 비를 맞는 게 나을 것 같다.
차라리 밖으로 뛰쳐나가 내 길을 가야할 것 같다.
어차피 현실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천장의 거미를 한 번 바라보고,
빗방울을 맞아 흔들리는 들꽃을 바라본다.
그 새 정이 든 건가 어느새 고여있는 이 동질감 같은 건 뭔가.
인간은 살면서 외로움과 아픔과 슬픔으로 가까워지나 보다.
밖으로 나와서 머리에 손바닥을 올리고 빨리 걷지만
다량의 빗물이 몸으로 들어온다.
그래도 걷자. 우리는 아버지가 다스리시는 이런 세상을 걸어가야 한다.
아버지의 집까지.
2024. 10. 24
이 호 혁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힘들때 우산이 되어주시는 주님을 생각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