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즉에 각자도생의 시대를 진단하고 ‘무소의 뿔처럼’ 가고 있지만 어쩌면
이런 시대가 기다리는 것은 공멸이 아닐까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래
계속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코로나 우울증이 되고 폐소공포증이 되고 광기로
번져나가는 걸 보면서 ‘열린 공간’ ‘대면’ ‘소통’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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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이 그러는데 닫힌 공간에서는 엔트로피가 발생하니까 질식감이랄까,
공격성이랄까, 광기랄까 하는 게 생기지 않을 수가 없대요. 엔트로피가 꽉
찬 닫힌 공간은 변화, 자기 변혁이 있을 수 없기에 점점 폭력성을 띠게 된다나
봐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터지는 작금의 사람 간 폭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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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 제가 그나마 버틴 건 틈만 나면 나간 마실이 저를 이성으로 이끈 것
같아요. 잔나비가 가평 간다고 해 놓고 깜깜무소식 이어서 나 홀로 오남리
코스를 걸었는데 하필 휴무에 걸려 분수 샤워를 못 해 아쉽지만 윗몸 일으키
기도 했고 ‘동경대전’을 3번 들었어요. 하늘에 좋은 기운이 많이 찼는지 높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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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선명합니다. 컴퓨터를 고쳐서 얼마나 오진지 몰라요. 뚜벅이로 걸은
걸음의 보람이 있습니다. 지인이 소개해준 생고기 집 문이 열렸나 몇 번을 확인
했는데 pm4:48까지 불이 켜 있지 않았어요.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가
다시 고기 먹으러 나갔어요. 굵게 썬 생고기, 된장 박은 생고추, 파저리, 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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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 단골 솥뚜껑을 배신하기로 지금 막 마음 먹었어요. 까지껏 40년 믿음도
배신했는데 고깃집 바꾼다고 지옥이야 가겠어요? 예전엔 ‘동학’이나 ‘기‘ ’천도교‘
’주역‘ 모두 미신으로 치부해버리고 말았었는데 내 가치관이 이렇게 변할 줄 저도
미처 몰랐어요. 아직은 잘 모르지만 동양철학 중 으뜸은 '주역'으로 보입니다.
도올이 소개해준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이란 시에 안도현을 능가하는
'컷'의 묘미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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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사람
꼭 나를 속이는 것만 같아
친절한 사람은 피하고만 싶다
진실한 사람
내가 들킬 것만 같아
진실한 사람 앞에선 늘 불안하다.
나는 친절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하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본심을 모르는 사람은 무섭고
진심으로 오는 사람은 진실의 무게만큼 무겁다.
변심을 하는 사람은 위험하고 변심이 너무 없는 사람도
박제…… 아니다, 아니다, 다 아니다.
차라리 빨리 나는 단무지나 베이컨이 되고 싶다
진심은 복잡하고 입체적인데
진심을 감당하기엔 내내 모가지가 꺾이는 아픔이 있다
내장과 자궁을 발라내고
단무지나 베이컨은 온몸이 조용한 진심이라고 한다면
진심은 한낱 고결한 사치다
말하자면 본심의 배신이자 돼지머리처럼 눌러놓은 꽃이다
(…)
무엇을 바라는가?
내일이 없는 지 오래되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진심이 바래 섬망의 하얀 전류가 냉장고 속에 가득 차 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 이후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무엇을, 무엇을, 무엇을 더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김승희
2023.8.7.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