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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9월 15일 화요일
[(백)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이날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이다. 일찍이 시메온은 성모님의 고통을 예언하였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신심은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으며, 1688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이 이 기념일을 정하였다. 1908년 성 비오 10세 교황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인 9월 15일로 이 기념일을 옮기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연결하여 기억하게 하였다.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시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계셨는데,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맡기신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부속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5-27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3-35
그때에 예수님의 33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 우리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며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가톨릭 교회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지내며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습니다(요한 19,25 참조).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죽음의 언덕인 골고타를 오르신 예수님 곁에 성모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실 때까지 성모님께서는 그 곁을 지키셨습니다.
군사들에게 붙잡혀 매질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을 받는 아드님을 바라보시며 어머니께서는 마음이 찢어지는 괴로운 시간을 견디셔야 하였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시는 아드님을 바라보시며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셔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그 모든 고통을 예수님 곁에서 견디어 내십니다.
우리의 고통에 예수님께서 함께해 주신 것이 큰 사랑이고 자비라면, 우리가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모습도 성모님처럼 진실과 성실이 담겨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고백일 것입니다.(왕태언 요셉 신부)
고통 속에서도 충만한 기쁨에 고무되어...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교회의 어머니,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시여,
우리 신앙 여정의 기쁨과 고통 속에서
이제 당신께 믿음으로 다가드나이다.
자애로운 눈으로 저희를 굽어보시고
두 팔 벌려 저희를 안아주소서.
사도들의 여왕, 죄인들의 피난처시여,
당신께서는 저희가 마주하고 있는
인간적인 한계, 영적인 실패, 내침받고 외로운
저희의 슬픔을 아시니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로
저희의 상처를 쓰다듬어주소서.
어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어 오늘은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두 축일이 딱 붙어 있는 것을 봐서 예수님의 고통과 십자가 죽음을 성모님의 고통과 연결시키고자 애쓴 교회의 노력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 전통 안에 성모 칠고에 대한 묵상 관습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전례 안에도 고통의 성모님의 생애를 기억하는 기념일이 제정되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그분께서 겪으셨던 고통은 우리가 겪는 고통과는 결을 달리하는 고통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고통이 다가오니 어쩔 수 없이 겪는 고통이 아니라 의미로 충만한 고통, 목적성이 뚜렷한 고통, 결국 기쁨으로 충만한 고통이었습니다.
고통의 어머니(Mater Dolorosa)는 신학적 개념이나 산물이 아니라, 온 몸으로 고통을 겪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도 충만한 기쁨에 고무되어, 혹독한 고통에 꺾이지 않았던 한 실제 인물입니다.
마리아는 고통 속에서도 충만한 기쁨에 고무되어, 혹독한 고통에 꺾이지 않았던 한 실제 인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 성모님의 고통 생각하며 앞으로 펼쳐질 우리 인생 여정 안에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오더라도 시선을 거듭 주님 십자가에 고정시키며, 고통 속에서도 기쁨에 찬 찬가와 영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저의 아버님은 2011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제가 본당 신부로 있을 때였습니다. 날씨도 좋았고, 본당 교우들이 정성껏 연도를 바쳐 주셨습니다. 추기경님과 주교님들, 많은 사제도 장례미사에 함께해 주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제가 혹시라도 기일을 잊을까 염려하셨는지, 기억하기 좋은 어린이날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어머니는 2020년 9월 10일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제가 뉴욕에서 사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가 가장 심각했던 시기였습니다. 거리두기가 엄격했고, 한국에 갈 수도 없었기에 저는 어머니의 장례미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연도를 바치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장례미사에도 많은 분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곁에서 지켜 드리지 못한 아쉬움은 지금도 제 마음 한편에 남아 있습니다.
아버님은 많이 배우셨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서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시대를 잘못 만나서 많이 배우지는 못하셨지만,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늘 가족을 위해 일하고 희생하시는 모습입니다. 작은 마트도 하셨고, 쌀가게도 하셨고, 구청에 밥을 배달하는 일도 하셨고, 다른 사람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일도 하셨습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큰 누님과 작은형을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보내야 하는 고통도 겪으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먼저 보내는 고통보다 더 큰 아픔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머니가 그 모든 고통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기도하고 활동하셨습니다. 많은 대녀를 두었고, 그들을 친딸처럼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수도자가 된 여동생과 사제가 된 저를 위해서도 늘 기도하셨습니다. 제가 1999년에 처음 본당 신부가 되었을 때에는 3년 동안 저를 위해 기꺼이 식복사도 해 주셨습니다. 조카를 맡아 키워 주셨고, 조카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본당에 가게 되면 어머니는 저보다 먼저 그 성당을 찾아가 기도하셨습니다. 아들이 사목을 잘하고, 교우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성모님께 청하셨을 것입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모른 척하지 않고, 그 사정을 예수님께 전해주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비슷하셨습니다. 대녀의 아들과 딸이 혼인하면 혼인미사의 주례를 부탁하셨고, 누군가 아프면 병자성사를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부탁을 들으시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듯이, 저도 어머니의 부탁을 기쁜 마음으로 들어 드리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저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보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축복해 주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고,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는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에 이르기까지 성모님의 삶에는 수많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성모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성모칠고’라고 부릅니다. 아기 예수님 때문에 칼이 마음을 찌르리라는 시메온의 예언을 들으셨을 때,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 가셨을 때, 어린 예수님을 잃고 사흘 동안 찾아 헤매셨을 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을 만나셨을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보셨을 때,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시신을 품에 안으셨을 때, 그리고 아들의 시신을 무덤에 모셨을 때의 고통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고통을 피할 수 있었던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으셨고, 아들을 버리지 않으셨으며, 끝까지 그 곁을 지키셨습니다. 성모님의 위대함은 고통이 없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리고 성모님께는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때부터 사랑받던 제자는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도 홀로 남겨질 어머니를 염려하셨습니다. 동시에 사랑하는 제자와 우리 모두에게 성모님을 어머니로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때로 고통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와 같습니다. 예기치 못한 질병이 찾아오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며, 관계의 갈등과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고통이 곧바로 사라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십자가를 조금씩 들어 준다면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가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듯이, 우리도 고통받는 이웃을 우리의 마음과 삶 안에 모셔야 합니다.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고,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힘든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는 일도 십자가 아래에 함께 머무는 사랑입니다. 고통을 없애 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줄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울고, 함께 나누며 살아간다면 비록 힘들어도 고통의 바다를 건너 희망의 항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사는 동안 십자 고통, 성모님과 함께 아파하며 같이 울게 하소서.”
<십자가에 매달립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십자가에
매달립니다
십자가 위에
매달립니다
십자가 아래에
매달리는
이와 함께
십자가 위에
매달립니다
십자가 아래에
매달립니다
십자가 위에
매달리는
이와 함께
십자가 아래에
매달립니다
십자가 곁에
매달립니다
십자가 곁에
매달리는
이와 함께
십자가 곁에
매달립니다
십자가에
매달립니다
오늘의 성인
성 니체타(Nicetas)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활동연도 : +375년
같은이름 : 니체따, 니체따스, 니체타스, 니케따스, 니케타
성 니케타(또는 니체타)는 고트(Goth) 사람으로서 도나우(Donau) 강변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에 울필라스라는 어떤 선교사로부터 개종하였다.
이 선교사에 따르면 니케타는 나중에 사제가 되었고, 동고트족(Ostrogoths)의 왕인 아타나릭이 로마 제국을 침략하면서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를 일으켜서 그 역시 희생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화형을 당하였고, 유해는 실리시아(Cilicia)의 몹수에스티아(Mopsuestia)에 안장되어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가타리나(Catherine)
신분 : 과부, 신비가
활동지역 : 제노바(Genova)
활동연도 : 1447-1510년
같은이름 :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지아코포 피에쉬(Giacopo Fieschi)와 프란체스카 디 네그로(Francesca di Negro)의 딸인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는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났는데, 5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수도생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지만, 그녀의 부친이 사망하자 16세의 나이로 줄리아노 아도르노(Juliano Adorno)라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성마르고 방탕하였으며 아내에게 불성실하였다.
반면에 그녀는 민감하고 신중하였으며 거의 유머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매몰스런 여인은 아니었다. 불행하였던 이 결혼생활은 10년이 지나면서부터 남편의 방탕으로 인하여 극도의 가난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게 되어 프란치스코 3회원이 되었으며, 함께 회개 생활을 하기로 약속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팜메토네 병원에서 일하였는데, 특히 카타리나는 아주 뛰어난 영성생활로 다른 이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고, 1479년에는 아예 그 병원에서 생활하였으며, 1490년에는 원장이 되었다.
이때 그녀는 흑사병으로 거의 사경을 헤매었으나, 기적적으로 회복하자 자신의 직분을 사임하였다.
그 후 1년 뒤에 남편이 죽었다.
이때 그녀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가 된 카타네오 마라보토(Cattaneo Marabotto) 신부를 만났다.
그녀는 수많은 신비 체험을 하였으며, 악화된 병으로 인하여 한없는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신심은 비범하였다.
그녀는 세속에 있으면서 천상적인 사물을 관상하는 뛰어난 영성가였으며, 그녀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악으로 서서히 물드는 세상의 오염’이었고,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는 마귀의 간계였다고 한다.
“영혼과 육신의 대화”, “영혼론”은 신비신학 분야에서 유명한 저서가 되었다.
이 책들이 1934년에 영국에서 간행된 바 있다.
1510년 9월 15일 제노바에서 선종한 카타리나는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