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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군성15회 원문보기 글쓴이: 後山 趙錫雨
나는 말한다(自言)-12. 정직한 장사꾼
자의든 타의든 판매업, 좀 더 흔한 말로 장사를 해 온 지 어언 30년이 넘었다.
16년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시작한 것이 내가 다녔던 ㈜LG화학의 플라스틱 사출, 압출용 원료 판매 대리점이었다.
무엇이든 생업이라는 것은 쉽게 끝내기가 어려운 것이어서, 나도 전업과 폐업을 생각도 해봤지만 차일피일 미루면서 지금까지도 이어 오고 있다.
부산에서 이 일을 시작한 후 고향에 갈 때면 동네 친척 어른들이 내가 장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내색을 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부산에 살고 있다고 ‘갯가’에 살면 풍속이 어지럽다는데...하고 걱정도 하셨다.
그래도 가학家學을 이어 온 선비 집안인데 장사꾼이 되었다는 것을 그분들이 고깝게 생각할 것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장사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나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좌절감을 느끼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보다 장사가 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은 처음부터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이 사회의 관념 탓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에 앞서 생래적으로 물화物貨를 주고받는 거래를 한다는 것이 나의 적성과 능력에 코드가 맞지 않았다.
우선 거래를 하기 위하여 상대편과 만나서 밀고 당기는 식의 상담을 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이런 만남과 인간관계에 무슨 진지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겠는가?
다음으로 한 푼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는 것이 장사의 목적임에는 틀림없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수단을 다하는 것이 나에겐 어렵고 가치지향적일 수 없었다.
이 정도면 한마디로 무능한 장사꾼이고, 장사라는 것이 나에겐 해서는 안 될 업業이란 걸 누구나 간파할 것이다.
장사도 크게 벌여 대상大商이 되면 사람들이 ‘사업’을 한다고 말하지만, 나의 경우 그 규모가 그렇지도 못했다. 실제로 홍콩에 사는 친구가 나에게 “넌 사업을 해 본 경험이 없어서, 云云”하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농담이었는지 몰라도 참 시건방지다고 불쾌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구멍가게를 한다손 지가 그렇게 말할 건 무엇이며, 그런 내게 수시로 이런저런 도움을 받아간 것도 사실이다.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되면 무엇이 더 좋을까?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 모신 나중에 그룹의 부회장까지 역임한 분이 있는데, 내가 철없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는 동기와 의미는 무엇입니까? 차라리 개인 사업이 더 보람과 실익이 있지 않을까요? 그분이 대답하기를, 내가 이렇게 고위 경영인이 되지 않았다면 수 조원 규모의 돈을 만질 수 있을까? 알 수 있을 것도 같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 다를 테니까.
나는 능력과 노력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 일하면 개인적인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그보다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할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매우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자기 지위에 대한 명성이나 개인적 사욕을 채우는데 만족한다면 애당초 평범한 시민으로 사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어쨌든, 어떻게 보면 인생이 자기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짜증이 나거나 비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자신의 뜻대로 만사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그로 인해 예측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일어나 숨통을 트이게 하고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반드시 비극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桓公曰: "定民之居, 成民之事, 奈何?"
管子對曰: "士農工商四民者, 國之石民也, 不可使雜處. 雜處則其言哤, 其事亂. 是故聖王之 處士必於閒燕, 處農必就田壄, 處工必就官府, 處商必就巿井."
제 환공이 말하기를 "백성들의 거처를 정하고 백성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을 어찌하면 좋겠소?"
관중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학자, 농민, 장인, 상인 네 부류의 백성들은 (모두)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 백성들이므로 섞여 거처하게 할 수 없습니다. 섞여 살게 되면 그 말이 난잡하고 그 (맡은 바) 일들이 어지럽혀집니다. 이런 까닭으로 성인인 왕의 치하에, 학자들은 반드시 한가롭고 편안한 곳에 거하고 농민들은 반드시 밭과 들판에 거하며 장인들은 반드시 관청에 거하며 상인들은 반드시 저자에 거하게 해야 합니다.“
아마 이 고사로 후세 사람들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서열을 정해졌는진 모르지만, 관자管子도 농업이나 상업을 멸시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분업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중국을 상인의 나라라고 한다. ‘상업(商業)’의 어원은 고대 상(商)나라에서 유래했다. 주나라에 의해 상나라가 패망한 후 그 유민들이 생계를 위해 장사를 시작하면서, 상나라 사람 곧, 상업’과 ‘상인’이라는 말이 나왔다. 기원전 800~700년경 얘기다.
전한前漢의 다섯 번째 황제 문제文帝때 가의賈誼라는 명신名臣이 있었다. 재주가 비상해 20세에 박사가 되었다. 관직에 오른 후 문제에게 국정 진언을 많이 했다. 당시 떠도는 유랑민이 늘자 주민을 지역에 붙들어두기 위해 농사를 장려하고 상업에 종사하는 것을 막았다. 농업이 본이라 보고 상업과 공업은 말업末業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사농공상이란 그릇된 관념이 자리 잡게 되었고, 이는 한반도와 중국에 수천 년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장사치를 멸시함이 극에 달했다고 하지만, 기실 양반들과 관료들은 장사치에게 착취를 하고 뇌물을 받거나 돈을 빌리는 일이 예사였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는 상업과 제조업은 사람을 타락시킨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의 경제관은 기본적으로 집단 소유와 자급자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역, 사유재산, 화폐 등의 중요성을 강조해 많은 경제사 학자들이 그와 그의 사상을 경제학의 원조라고 부른다 그는 경제는 가계경제와 상업경제로 구분했다. 가계경제는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지만 상업경제는 화폐 획득만이 목적이란 것이다. 가계경제는 자연스럽지만 상업경제는 비정상적이어서 자연에 반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돈벌이를 위한 이윤 추구나 영리적 상업 행위를 불신했는데 이는 이득을 보면 한쪽은 손해는 보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이 고대부터 중세까지 거의 2000년동안 이어졌다.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하위 계급 내에서도 장인 계층이나 상인 계층의 지위가 대체적으로 농민 계층보다 훨씬 높은 편이었다. 자치 집단인 길드를 조직해 실력행사를 할 수 있는 어느 정도 숙련된 기능공과 상인의 사회적 지위는 귀족에게 예속된 농노는 물론이고 자유민 농민과도 비교할 수없이 높았다. 중세가 끝나가면서 상인 계급이 크게 성장해, 아예 상인 길드가 자치권을 돈으로 얻던지 싸워서 얻든지 해서 도시지역의 자치 정부가 되었을 정도로 커졌다. 이후 상인의 지위는 절대왕정 시대의 중상주의 정책의 수혜를 받아 끊임없이 높아졌다.
베버(Max Weber,1864-1920)는 서유럽과 미국의 서구자본주의체제 발흥에는 그 지역만의 특정의 생활양식과 세속적 윤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했다. 바로 당시의 특수한 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이었다.
베버는 그의 명 저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특히 청교주의Puritanism가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요인임을 입증하려고 했다.
청교주의, 구체적으로 ‘현세금욕주의’는 현세의 일을 내세來世와 관련짓는 개신교의 특별한 종교적 행동강령의 변형된 한 형태이다. 개신교도들은 누구나 내세를 목표로 하고 살아야지 현세를 목표로 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베버는 이러한 기독교 행동윤리강령을 구체화시킨 이로 두 사람을 꼽았다.
그 한 사람이 바로 루터(Martin Luther,1483-1546)이다. 루터는 어부, 농부, 대장장이, 상인 등과 같은 직업 모두 하나님이 개개인에게 나름대로 부여한 일조의 탈렌트Talent로 그 임무에 충실히 임하는 것을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설파했다. 이러한 신념하에서는 자신의 세속적 직업에 열심히 임하는 것을 바로 내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최선의 길로 간주했던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또 한 사람은 칼뱅(John Cavun,1509-1564)이다. 그의 ‘운명예정설’이란 교의敎義는 내세의 구원 여부가 이미 판가름 나 있다는 의미에서 운명이 예정되어 있다는 교의를 말한다.
당시 서구 개신교도들은 현재 내가 무얼 어찌하든 운명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현세에서 미리 알고 싶어 했던 매우 특이한 태도를 가졌다.
개신교도들은 속세에서의 성공을 그 증표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칼뱅주의는 인간이 경제활동을 포함한 모든 것을 종교적인 것과 연관시켰다. 인생의 모든 것은 일종의 종교적 테스트와 같은 것이었다. 이 말은 곧 인생의 경제활동을 포함한 모든 것에 성공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 교의에 따르는 개신교도들은 세속적 직업의 성공을 목표로 삼고 시간과 힘 그리고 돈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으며 오직 불철주야 일에만 매진했다.
구원의 확신을 미리 엿보기 위해 그들은 속세에서의 성공과 번영을 추구하였으며, 그들의 근면, 성실, 검약, 노동 등을 행하는 이유는 내세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지 현세의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일한 것에 대한 좋은 결과를, 한마디로 시쳇말로 ‘이윤利潤’이라고 하자. 이러한 맥박에서 이윤추구란 자기가 가진 능력과 밑천을 가지고 최대한 많은 것을 남기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자본주의 정신과 코드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목적은 다름 아닌 이윤추구를 위한 자본의 축적이다. 이것이 베버가 말한 개신교 윤리였다.
그는 이 현세금욕주의라는 이념으로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베버는 개신교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고 불렀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인 이중환(1691~1756)의 《택리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문지리서로 평가받는다.
《택리지》의 발간 당시 제목은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을 뜻하는 《사대부가거처(士大夫可居處)》였다.
이중환의 가장 큰 관심은 문화적 교양을 지닌 사대부가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지역이 어디인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책 구성도 여기에 맞춰 네 분야로 나눴다. 사농공상의 유래를 설명한 ‘사민총론(四民總論)’, 조선 8도의 인문지리적 환경을 설명한 ‘팔도총론(八道總論)’, 살기 좋은 지역의 기준을 논한 ‘복거총론(卜居總論)’, 입지 보완책을 담은 ‘총론(總論)’ 등이다.
“원래 사농공상의 구분은 직업상 차이에 불과했다. 학문이 발달하고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직업 차이가 신분 차이로 변하게 된 것이다. 나라가 잘 돌아가려면 사대부들이 백성과 그들의 생업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산수와 인심, 그리고 학풍이 뛰어난 곳보다 상업이 활성화된 곳이 살기가 좋고 발전 가능성도 높다. 시장이 가깝고 강과 바다를 통해 각종 물산이 유입돼 인심이 넉넉하다. 대代를 이어 살 만한 곳들이다. 이처럼 먹고사는 게 풍족해야 인심도 후해진다. 도시를 키우려면 포구를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활성화하고, 내륙 교통요지를 중심으로 물산 유통을 촉진해야 한다.”
이 모든 사설辭說은 솔직히 나의 장사꾼이라는 직업에 대한 변명 내지 옹호이다.
비록 나는 장사꾼이지만, 내가 이 업에 종사하여 제품을 판매하면서 나에게도 나의 주의doctrine가 있고 지켜왔다.
30년의 기간 동안 나는 직원들에게 수시로 강조하고 또 확인한 것이 ‘정직’이다.
거래선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우선의 방편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면 멀지 않아 밝혀지게 마련이고, 결국 신뢰를 잃게 되면 거래가 끊긴다. 비록 귀찮고 힘들겠지만 제반 여건을 충분히 설명하고 우리 입장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 장사의 왕도王道이다.
석유화학 원료를 판매하는 것 중의 특징이랄까 하는 요소 중에 원료 가격은 국제 시세에 민감하게 변동하며, 국제 시세란 원유의 공급량과 수입가, 스티렌모노머의 국제 시장가격, 전 세계 Big-maker의 가동 현황, 원화 가치의 등락 등이다.
이러한 제 요소들의 움직임을 거래선과 정보를 공유하며 설득하면 그들도 이해할 것이다.
실제 내가 부산에 내려와 처음 거래한 업체들은 비록 문을 닫은 경우는 있어도 다른 업체로 구매선을 바꾼 사례는 없다. 장사에는 신용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이윤이란 노력의 대가라는 것이 타당하다.
정직한 장사꾼?
제대로 하는 장사꾼은 정직하지 않은 장사꾼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직하지 않으면 망하게 되어 있으니까.
거리나 골목에 식당들이 자주 간판을 바꾸는 것을 본다. 식당이 잘 안된 것은 주인이 음식을 제대로 만들지 않은 탓이다. 자신의 모든 의지와 노력과 재능과 정성을 다하여 맛있는 요리를 하여야 한다.
100년 점포라는 일본의 음식점을 본다. 그들은 대를 이어 장사를 하면서 큰 욕심을 내지 않고서 오직 맛과 친절로써 승부한다. 정직한 음식점이다.
인간을 호모사피엔스라고 한다. 사피엔스란 단어는 라틴어로서, 지혜로운, 사려 깊은, 혹은 현명한이란 뜻이다.
인간은 그 자체가 생각하는 자, 그래서 현명한 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것에 대해 골똘히,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찰하는 것에는 대단히 어색해할 뿐 아니라 그것을 즐겨하지도 않는다.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요하거나 과도한, 즉 체계적인 성찰이나 생각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체계적인 성찰들이 불현 듯 일어나게 되는 순간들이 반드시 있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즉 장애인이나 장애에 대해 체계적 성찰을 하지도 않고 그 필요성조차 느끼지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본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심한 병의 후유증으로 신체의 일부가 훼손되는 등의 장애를 안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장애인들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과 불편 그리고 질곡에 대해 깊게 성찰하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게 되고 끝없는 의문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따라서 체계적인 고민과 성찰의 조건이란 바로 문제의 발생이며 일상이 삐걱거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설마 내가 평생 장사라는 직업을 갖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어쩌다 이것이 나의 생계가 되었는지, 잘 된 건지 불행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장사, 장사꾼이라는 내 이름 앞에 소개되는 이 직업이 내 평생의 화두였다면 글쎄 나도 대범한 사람은 아닌, 장사꾼에 걸맞는 소인小人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원료 판매업이란 장사를 해 오면서 솔직히 부유한 장사꾼은 되지 못했다. 나의 재능이 모자라는 탓도 있지만 나에겐 과분한 욕심이 없다. 나는 청교도 정신도 없다. 안빈낙도安貧樂道라 하긴 뭣 하지만 먹고살기에 부족하지 않으면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았다.
감히 말하면, 나는 무능할지라도, 정직한 장사꾼이다.
그렇다면, 나는 실제 정직한 인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