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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내적인 변화입니다. 내적인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잘 알기 어렵습니다. 내적인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이기 때문에 결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적인 변화는 익숙했던 세상과의 단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내적인 변화는 목숨을 바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적인 변화는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다락방을 열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처럼 표징을 보여주었고, 한 번의 설교로 수천 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 사도는 길 위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교회를 박해했던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초대교회의 신학과 교리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내적인 변화는 오랜 침묵과 수양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돈오점수(頓悟漸修)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사막이나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수행하는 은수자들이 있었습니다. 은수자들은 단식, 극기, 묵상, 침묵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깨달으려 하였습니다. 이런 은수자들을 통하여 수도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전통이 교회의 영성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글라라 성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글라라’라는 말은 ‘빛’이라는 뜻입니다. 빛은 어둠을 밝힐 수 있듯이, 글라라 성녀는 기도와 관상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었습니다. 글라라 성녀는 그녀의 기도와 관상으로 외로운 사람들에게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꽃을, 위로의 불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는 좌, 우의 날개가 균형을 이루어야 날 수 있듯이, 자동차는 4바퀴가 균형을 이루어야 잘 달릴 수 있듯이 신앙인은 활동과 기도가 균형을 이루어야 잘 살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면, 글라라 성녀는 그 활동이 잘 될 수 있도록 기도와 관상을 하였습니다. 마치 마리아와 마르타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듯이 프란치스코와 글라라 역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였습니다. 우리들 역시 활동과 기도라는 날개를 달고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예수님께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어린이처럼 겸손한 사람,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끝까지 찾아 돌보는 사람,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 가족과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를 이루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내적인 변화를 이루는 사람은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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