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설교 내용 요약
제 목 : 성경적 실천의 현장과 클레로스(269) – 사도들의 실천과 클레로스(248) – 베드로전서 강해(5)
베드로전서 강해(5) – 베드로전서 4장
새 언약의 백성들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게 된다
베드로 전서는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주제이다.(3:13-14) 고난을 받는 수신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 쓴 것인데, 이 고난은 로마 제국의 핍박과 관련된 시대 정황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의 백성들이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을 때 누구나 당하게 되는 고난에 대한 권면이다. .(요15:19)
고난은 세상과 클레로스의 충돌에서 각 개인이 경험하는 것이다. 고난이 올 때 그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충돌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가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각자도생하는 자들이 볼 때는 하나가 되어 가는 자들이 원수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고후6:15)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그 충돌로 인해 저항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잠잠히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 본을 받는다는 것이 전체적인 논지이다. 그리고 그 고난을 일상 생활에까지 적용해서 베드로 사도가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3장에서는 하인, 아내, 남편에 대한 권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옛 사람이 죽어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육신의 고난을 받으셨으므로, 그대들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왜냐하면 육신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떠나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남은 기간 동안 더 이상 인간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육신의 고난이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옛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본성은 살아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새 언약의 백성 된 자들의 하나 된 삶이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수신자들이 유대인 출신 나사렛 지파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지난날의 삶이 불법한 우상숭배 속에서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산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 이외에는 다 이방인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이다. 새 언약의 백성은 다시 구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원가지를 쳐내셨는데 자기 동족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접붙임을 받을 수 있다면 자신은 버림을 받아도 좋다고 설명했던 것이다.(롬9:1-3) 유대인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산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사람의 계명으로 산 것은 이방인의 계명으로 산 것이며 이방인의 삶을 산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유대인들도 새 언약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안 죽이시고 내버려 두시는 것이다. 이방인 출신이든 유대인 출신이든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들은 그대들이 자기들과 함께 넘치는 방탕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면서 그대들을 비방하지만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게 되어 있는 분에게 이 모든 사실을 진술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넘치는 방탕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란 정상적인 모든 인간들의 삶을 의미한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보람차고 아름답고 고귀한 삶이다. 그것을 넘치는 방탕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들은 최후심판 때 자기들이 무슨 삶을 살았는지 하나님에게 진술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으니 이는 그들이 육신으로는 모든 사람을 따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이미 죽은 자들에게도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불완전하지만 하나 된 복된 삶을 살다가, 종말이 오면 영원히 완성된 하나 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교리는 이 땅에서 생지옥의 삶을 살다가 최후 심판 때 생명수를 받아 천당에 들어가는 대박을 받게 된다고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서로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라
베드로 사도는 수신자들에게 세상의 삶이 끝나는 개인적인 종말이 다가왔으므로 맑은 정신과 진중함을 가지고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무덤에서 잠자고 있다가 깨면 주님이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 사이에 시차는 없는 것이다.)
기도를 하는 삶의 본질적인 모습은 서로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서로 죄를 덮어주는 것이다. 허물을 덮는 사랑이다.
그 의미는 회개하면 허물을 덮어주고 다시 클레로스로 받아주라는 것이다. 이것은 클레로노모스들 사이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죄는 까발리고 자기 죄는 인정을 하지 않는 생지옥에서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를 덮어줄 수 없는 것이다.
두번째는 불평 없이 서로를 환대하는 것이다. 서로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언제나 반겨주는 것이다.
세번째는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들답게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서로 봉사하는 것이다. 각자 재능에 따라 은사를 받아 독특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그 능력들이 하나로 모이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의 효율성은 대단히 높은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답게 말하고,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은 사람답게 봉사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는 것 같이 라는 번역은 오류이다)
그리하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행복해 하라
베드로 사도는 수신자들에게 그대들을 시험하려고 그대들 안에 닥치는 재난을 낯선 일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행복해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 그 그대들은 행복해 하며 기쁨이 넘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해서, 그리스도 때문에 세상의 비난을 받는다는 것은 그대들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창조로 그대들이 하나가 되어 가기 때문에 핍박이 오는 거니까 행복해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대들 중에 누구도 살인하거나 도둑질하거나 악을 행하거나 남의 일을 살피다가 고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즉 세상 사람들 기준으로 범죄에 해당하는 일을 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한다면 수치스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한 부분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권면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심판이 우리에게 먼저 시작되면 하나님의 복음을 불신하는 자들의 결국은 어떻겠냐고, 그리고 의인이 힘겹게 구원을 받는다면 그때 불경건한 자와 죄인은 어느 자리에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서 고난을 당하는 자들은 선을 행함으로 자기의 생명을 신실하신 창조주께 맡기라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셨는데 우리는 첫 출발을 한 것이고 계속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다가 최후 심판을 맞이하기 때문에 힘겹게 구원을 받는다고 표현을 한 것이다.
2.공지사항
다음 주 기도는 정진호 집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