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커피를 내리며 귀찮다고 느꼈다.
재택근무를 하는 오전, 출근하지 않은 여유로움에 기분이 좋아 오랜만에 커피를 내려보았다.
모든 재료와 도구들은 이미 예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준비되고 나서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저울, 주전자, 드리퍼,,, 등을 하나씩 꺼내고 먼지를 닦아 자리에 놓고 커피포트에 물을 받으며 잠깐 기다리는 순간 이 모든게 매우 귀찮아졌다. 시작도 안했는데 힘들고 지쳤다. 이걸 언제 해먹고 닦아놓고 치우고 있나.. 주방에 널려있는 설거지들, 집안일 꺼리들이 눈에 들어오니 피곤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밀린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한가롭게 커피를 내리고 있냐.. 이럴 여유가 있나.. 머리속에서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커피포트 물이 끓는 동안 커피도구들 앞에 서있는 내가 뭐하고 있는건지 맘이 불편했다.
일단 시작했으니 커피를 내릴거야 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 좋아하는 일을 좀 해보는 여유를 느끼고 싶어.. 라며 커피를 분쇄하고 드립을 시작하려니 또 귀찮아졌다. 물의 양은 얼마나 해야 맛있지? 커피의 양은? 내가 만들어 먹는게 맛있겠어? 원두는 지금 개봉했으니 곧 맛없게 될텐데 저 많은 원두를 어케 보관하지? 라는 생각이 날 무겁고 힘들게 한다.
커피향을 맡는 순간 이 모든 귀찮음과 목소리가 순식간에 비워졌다. 커피향이 너무 좋다. 맛있게 만드는 방법은 몰랐지만 만들고 나니 꽤나 맛이 괜찮았다. 하지만 한잔의 커피를 위한 작업과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귀찮다. 나를 위한 작은 일에 주저없이 떠오른게 커피였는데, 나를 위한 일의 작업과정과 시간을 보내는 마음이 왜이리 귀찮고 조급하고 시끄러울까..
나를 위한 시간이 즐겁기보다 나에게 눈치가 보이고 변명을 하는 거 같다. 나를 위한 작은일이면 그저 행복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는데 막상 그렇지가 않다. 원래 이런건가. 내가 이상한 건가..
(소요시간 17분)
첫댓글 네버~하나도 안 이상해요~~!! 저도 그래요.그러니까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ㅎㅎ 특히 저는 시간을 낭비한다고 판단하며 자신을 비난할 때가 많아요. 나를 위한 일, 나를 돌보는 일이 저절로 막 되는 게 아니라, 그저 행복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 불안과 죄책감을 견뎌내야 하더라구요.
나무, 그걸 해내셨네요. 글 읽으면서 커피 내리기를 중단하셨을까봐 조마조마했어요. 사진이 버젓이 있는데도 말이예요. ㅎㅎ 나무의 중간 과정 마음이 쏙쏙 이해가 되었던 거지요. 우좌지간,, 귀찮다 싫다 하면서도 끝내는 해내고마는 나무, 짱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