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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벧전 4:7-11)
지난 주에 말씀을 드린 것은 말씀이 떨어지는 마음의 밭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길가와 같은 밭, 돌밭, 가시밭, 옥토가 있었습니다. 신앙의 실제는 바로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밭에 문제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들어도 그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깨닫지 못하고 지나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앙이요, 불순종인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굳어지고 강퍅해져서 말씀과 관계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어진 마음 밭, 가시떨기로 가득한 마음밭을 기경하여 마음밭을 옥토로 만드는 것이 회개입니다. 천국을 이루는 길은 바로 말씀을 잘 받아 먹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묵상이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 말씀이라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정신을 모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 말씀이라도 깊이 묵상하고 깨닫고 영접한다면, 그것이 내 심령속에 떨어져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열매를 맺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그렇습니다.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이 한 말씀이 깨달아지고 믿어지면 뒤이어 나오는 말씀, 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느끼지도 못한다면, 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하는지 모를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지구종말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역사는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기때문에 바울이 전하는 말씀,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면 반드시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주님이 오실지라도 깨어있는 성도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그렇치 못하다면 그날이 심판의 날이요 멸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본문에서 임박한 종말의 때에 성도가 어떻게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7절)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종말의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종말을 생각할 때 당황합니다. 혼란해집니다. 불안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날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을 준비하는 사람은 그날이 가까이 올수록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 24:36-39)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도 예수 자신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멸망을 당하면서도 왜 자기가 멸망하는지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날과 그때는 모르지만 징조를 보아서 그날이 가까이왔음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징조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열처녀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날과 그 때는 모르지만 영적으로 깨어있는 성도는 언제 오실지라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깨어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한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한 열처녀처럼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준비하는 성도는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그날을 생각하다면 우리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은 바로 기도입니다. 영적인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파수꾼이 깨어 있어야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을 살릴 수 있습니다. 마치 생각지 않을 때 도적같이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린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기도의 자세를 본문에서 주님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정신을 차린 상태는 무엇입니까? 한 성경학자는 정신을 차린 상태를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정신의 상태.”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위기가 닥칠 때,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는 당황하면서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지 당황하기 쉽습니다. 바빠져만 가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바쁘다고 다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긴급하다고 해서 그 일이 가장 중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 보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보다 기뻐하시는 기도의 제목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왕은 자기에게 주어진 왕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지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물어보실 때 지혜를 구해 구하지 않은 모든 것을 다 받아누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시련이 닥칠 때, 고통의 바람이 불 때 우리의 본능 속에서 일어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때가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솔로몬처럼 구하지 않은 것까지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엡 5:15-18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시고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기도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참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신 그 뜻을 분별합니다. 기도할 때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합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할 때의 나의 삶의 보장된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인생의 숱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습니다.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이 정말 가치있는 일인가? 나는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수많은 질문의 대답이 기도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의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너무 바쁘다. 그래서 기도해야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혜롭게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8-9절)
8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첫 번째는 기도요 두 번째는 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사랑을 강조하였겠습니까? 사랑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있어도 불행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은 바로 사랑입니다.
(요일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도에게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내용은 바로 사랑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뜨겁게”라는 말은 ‘힘껏 전심전력으로’라는 의미입니다. 이 사랑은 감정적으로 하는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 의지의 결단을 가지고 행동을 수반하는 아카페적인 사랑니다. 조건없이 사랑하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먼저 그런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따지지 말고 그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속에 부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 율법중에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 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성경전체의 핵심이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을 사는 성도가 가장 중요하게 여길 신앙의 핵심은 바로 사랑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엡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성도의 모든 삶의 동력은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에 깊이 뿌리를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튼튼한 신앙의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환란이 오고 핍박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터전은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 안에 바로 사랑이 가득한 것입니다.
8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여러분,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용서하는 첫 단계는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한 유명한 심리학자가 이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상대방의 허물과 잘못한 것을 알고도 상대방을 덮어주려 할 때 상대방은 비로소 고백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고백이 치료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런데 "당신 이런 일을 했지”라고 추궁하면서 상대방의 모든 것을 폭로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상대방에게 모멸감과 죄악감을 안겨다 주고 마침내 가식과 중상모략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먼저 상대방의 허물을 덮는 법을 배우라고 가르칩니다. 창세기 9장에서 믿음의 사람 노아가 한번은 술에 취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옷을 다 벗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나체로 잠을 자고 있는데, 그 장면을 세 아들이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 함이라는 아들이 그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밖에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노아는 함에게 저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두 아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기 위하여 뒷걸음질하면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덮어 줍니다. 이 말씀 직후에 성경에 이러한 말씀이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 노아가 셈과 야벳을 축복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결국 다 부족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실수도 하고 죄를 범하기도 하고 무지해서 깨닫지 못하고 제 길을 고집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으매(롬 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선을 행하는 사람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어떤 사람이든지 결국 하나님 앞에 다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용서가 다 필요합니다. 성경은 종말에 가까이 갈수록 사랑이 메말라질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마 24:12,13)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강조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가운데 뿌리를 깊이 박고 터가 굳어져서 진짜 사랑을 보여주고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되어라(10-11절)
10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란 맡은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셨습니다. 청지기는 자기의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청지기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우리의 물질도, 우리의 재산도, 우리의 재능도,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뜻을 잘 받들어 충성하는 것이 가장 소중합니다.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오직 충성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근본적인 목적은 오직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사도바울은 고전 10:31절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할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점검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생명을 살리는 일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입니다. 그 사명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생명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앞에 서는 날, 가장 중요한 결산은 나 때문에 구원받은 영혼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구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나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주님께 돌아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면 그것이야 말로 천국에 모든 사람을 불러 잔치하신다고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충성된 청지기인 것입니다.
청지기는 철저하게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인데, 이것을 나에게 맡겨주셨다는 의식이 철저해야 하며, 그것을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둘째는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위해서 온전히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지기의 본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본문 11절을 보십시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청지기는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거룩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듣기에 거북스러운 더러운 말을 하지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상대방의 믿음을 세워준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의 믿음을 세워주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살아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행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만 하늘에 쌓아두는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많이 쌓아두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류 문학가 한 분이 있습니다. 명성이 있는 분은 아니지만 여러 권의 책을 쓰셨고 많은 독자들도 있습니다. 교회의 여집사님이신 이 분이 수년 전, 몸이 이상해서 진찰을 받아 본 결과 간암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분은 그 남은 두 달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의 남아 있는 두 달 동안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라고 기도하는데 자기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제일 커다란 후회는 "사랑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더랍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그동안 벽을 쌓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만 지나가더랍니다. 그래서 그동안 등을 지고 살았던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그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습니다.
뚜렷하게 등진 사람은 아니지만 마땅히 사랑해야 할 만큼 사랑하지 못하고, 격려해 주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찾아가서 일일이 격려해 주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재산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빚이 없나 생각하면서 지은 빚을 깨끗이 갚고, 그리고 자손들에게 남길 최소한의 것을 제외하고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돈을 한 번도 가치 있는 일에 쓰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선교사들을 위해서 선교 헌금을 하고, 구제 헌금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남길 메세지를 쓰기 위해 성경을 읽으면서 마지막 유언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두 달이 다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몸이 더 악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른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았더니, 그 결과는 간암이 아니었답니다. 오진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집사님, 돈을 많이 쓰신 것이 후회되지 않습니까?" "아니요, 목사님. 지금까지 저의 생애에 이 두 달처럼 그렇게 의미있고 가치있게 산 때가 없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남은 시간도 이 마음가짐으로 계속 살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이때에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1.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2.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3.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로 살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와 사랑과 청지기입니다. 우리 모두는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설령 그날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해도 우리의 개인적 종말은 분명히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와 오고 있다면 내 인생에 남아 있는 시간들을 어떻게 쓰고 싶습니까?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없이 서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깨어서 기도하고 준비하며 사랑하고 대접하고 봉사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