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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아빠의 화장실’ - 2009년 감독 세자르 샬론
여백의 몫
지난 2014년 여름에 있었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한국 방문은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커다란 이정표가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권위 대신 겸손과 포용의 자세를 앞세운 모습을 방한 중에도 고스란히 보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행보는 시대의 징표로서 교회의 역할에 대하여 성찰하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교황님의 한국 방문은 교회와 우리 사회의 일부 어두운 면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교황님의 방한 기간 동안 교황님의 행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언론들은 ‘교황 특수’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교황님의 한국 방문을 경제적인 맥락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교황 관련 서적으로 가득했던 대형 서점에는 특수를 노린 듯 급히 출간된 것처럼 보이는 교황 관련 서적들이 일부 눈에 띄었습니다. 방한 이후에는 교세 확장이나 교회의 이미지 제고와 같은 차원에서 교황 방한의 의미를 좁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이같이 교황님의 한국 방문을 세속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았던 일부 시선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글이 있습니다. 한현수 시인의 ‘여백의 몫’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첫날, / 가능한 큰 글씨의 친필서명을 받기 위해 / 주교단은 큰 종이를 교황에게 내밀었다 // 교황은 돋보기로 봐야 할 정도의 작은 글씨로 / francisco라고 썼다 // 모두 함께 웃었다 / 주교들은 깨알 같은 이름 때문에 웃었고 / 교황은 여백이 커서 웃었다.
우루과이에서 만들어진 영화 <아빠의 화장실>은 한현수 시인이 언급한 ‘여백의 몫’을 향한 고민을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우루과이 순방길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은 이 영화는, 우루과이와 브라질 국경 사이에 놓인 작은 시골 마을 ‘멜로’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방문 계획이 알려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소식에 마을사람들은 교황님을 따라 방문하게 될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벌 생각에 들뜹니다. 이때 주인공 비토(자르 트론코소 분)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삼는 ‘유료 화장실’을 만들어 돈을 벌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비토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밀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해왔지만, 걸핏하면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밀수품을 뺏기는 통에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교황님의 마을 방문은 놓칠 수 없는 일확천금의 기회이자 가족들을 궁핍한 일상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는 희망이 됩니다.
주인공 비토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교황 방문에 맞추어 품었던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허황된 꿈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비토와 마을 사람들이 무리한 욕심을 부린 결과로 치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영화는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교황님의 방문을 일확천금의 기회로 여기게 만들었는지를 물으며, 영화를 마주한 관객들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하얀 여백’의 가치에 더욱 몰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 때 우리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교황 주일을 맞으며, 9년 전의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교황님의 방문과 방문 중의 행보에 열광하였는지를 진중하게 되물어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영화칼럼] 영화 ‘리바운드’ - 2023년 감독 장항준
불완전함의 가치
지난 도쿄올림픽 남자 농구 조별 예선 미국과 프랑스와 경기 중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일본의 한 자동차 회사에서 제작한 인공지능(AI) 농구 로봇 ‘큐(CUE)’가 등장해서 자유투 라인과 3점 슛 라인 그리고 센터 서클에 서서 깔끔하게 슛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선보인 것입니다. 큐의 개발팀은 100%의 슛 성공률을 지니며 더욱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그렇게 실제 농구 경기에 투입이 가능한 로봇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완벽에 가까운 인공지능(AI) 농구 로봇 개발 이야기를 접하며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럼, 리바운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장항준 감독의 영화 <리바운드>는 2012년 원주에서 펼쳐진 제37회 대한 농구협회장기 대회에 출전한 부산중앙고등학교 농구부의 준우승 실화를 바탕으로 삼습니다. 당시 중앙고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최약체 농구팀으로서 전체 엔트리 여섯 명만으로 결승까지 진출하는 대이변의 드라마를 써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전국대회 최우수(MVP) 농구선수 출신 양현(안재홍 분)이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중 얼떨결에 모교인 부산중앙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로 발탁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양현은 선수들을 모으고 팀을 재정비하여 전국대회 출전을 위한 준비를 해나갑니다. 경력이 전무한 코치 양현과 무명의 여섯 선수들은 최약체 팀으로 분류되지만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에 출전하여 결승 진출의 쾌거를 올립니다. 특별히 영화는 골인되지 않고 림(rim)이나 백보드에 맞고 튀어 오른 공을 다시 낚아채는 농구 기술인 ‘리바운드’를 영화의 타이틀로 삼은 만큼, 실패처럼 보이는 순간이 재도약의 기회로 변화하는 시점을 포착하는 데 주력합니다. 영화와 현실 속 부산중앙고 농구부는 경기를 뛰는 매 순간을 인생의 재도약 기회로 삼습니다. 자신들에게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상황, 졸업 후 갈 길이 막막한 상황, 한 명의 선수가 부상을 당해 나머지 경기를 다섯 명의 선수들로만 뛰어야 하는 상황 등을 양현 코치를 비롯한 부산중앙고 농구부원들은 농구공이 림이나 백보드를 맞고 튕겨 나온 상황처럼 받아들이며 골인되지 않은 상황에 낙담하는 대신 리바운드를 위한 도약에 온 힘을 쏟습니다.
산에 올라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마주한 제자들에게는, 그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겪은 온갖 고생스러웠던 순간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을 향한 서운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변모의 순간을 앞선 경험들의 보상처럼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영광된 순간을 뒤로한 채 산에서 내려가십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거룩한 변모의 상황에 안주할 수 없음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불완전한 것들로 가득한 산 아래의 세상으로 다시 내려가 불완전함 속에서 도약을 꿈꾸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길 바라시며, 인류 구원을 위한 재도약의 최종적인 단계라 할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재도약의 기회가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일수록 ‘리바운드’가 품은 가치는 더욱 부각되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인공지능(AI) 로봇의 능력에 기대어 리바운드가 필요 없어지는 완벽한 상황보다 인간적인 불완전함 앞에 리바운드라는 재도약의 기회가 제공되는 상황이 더 절실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칼럼]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 2023년 감독 엄태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오로 6세 성인 교황의 전기 영화를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황이 마리아 몬티니라는 이름의 젊은 신부였던 때에 교황청 국무원에 들어가기 위한 면접을 보는 장면이 마음 깊이 남아있습니다. 면접을 담당한 궁무처장 신부는 면접을 보러 온 신부들에게 “아침에 일어나보니 교황청이 러시아 공산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처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공통의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마리아 몬티니 신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성무일도를 바치고 아침 미사를 집전하겠다’는 답을 합니다. 영화 속 마리아 몬티니 신부의 저 대답은 여느 때의 우리 모습을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보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더불어 여느 때의 우리 모습이 주님 앞에 합당한 모습일 때, 절체절명의 순간에 끄집어낸 여느 때와 다름없는 우리의 모습이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 안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됩니다.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 속에서 아파트 주민들과 아파트로 몰려온 생존자들 사이의 갈등이 발생합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아슬아슬하게 공존해 오던 생존자들을 아파트 밖으로 내쫓기로 결의하고, 이에 생존자들은 저항하지만 결국 아파트 밖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이후 황궁아파트는 견고하게 세워진 바리케이드와 차등적이고 배타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주민 규칙을 바탕으로 황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하나의 성체로 거듭납니다.
영화는 황궁아파트 주민들이 자신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여느 때의 모습’에 집중합니다. 생존자들의 수용 여부를 두고 주민투표를 벌일 때 주민 중 한 사람은 황궁아파트보다 집값이 더 높은 근처 타 아파트 주민들이 평소 자신들을 무시했던 기억을 끄집어내며 생존자들을 쫓아내는 것의 정당함을 주장합니다. 또 아파트 주민들은 결정적인 선택을 하거나 각자의 임무를 나눌 때 자가(自家)인지 전세인지에 따라 서로를 구분 지으며 자가인 주민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고자 합니다. 재난 상황 속에서 황궁아파트 주민들이 내리는 선택은 이처럼 평범한 상황 속에서 보였을 여느 때의 모습에서 비롯됩니다. 아파트 시세에 따라, 자신의 집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서로를 판단해 온 모습이 재난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다수의 주민들과 다른 생각을 품은 이들의 모습도 비춥니다. 이들은 쫓겨난 생존자들을 남몰래 받아주거나 배급받은 생필품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생존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는 소수의 주민들입니다. 그들은 다수의 주민들에게 손가락질받거나 심지어 물리적인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지만, 다수의 주민들과는 다른 자신들의 여느 때의 모습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신앙을 향한 물리적인 박해가 거의 사라진 시대에 순교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여느 때의 모습과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을 때의 모습 사이의 괴리 없이 모두 주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으며, 여느 때의 우리 모습이 주님 앞에 합당한 모습인지를 살피고 이 같은 여느 때의 모습이 나의 희생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순간에도 망설임 없이 드러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영화칼럼]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 - 2001년 감독 알랭 레네
참사의 기억법
‘잊혀진’은 ‘잊히다’라는 피동사에 피동의 뜻을 나타내는 ‘어지다’가 결합된 이중피동으로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에서 잊힌 무언가를 드러낼 때 보통 ‘잊혀진 무엇’으로 표현합니다. 그만큼 필연적으로 잊히고야 마는 것들을 잊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마음을 우리는 두 번의 피동을 겹쳐서 드러내고 싶을 만큼 피할 수 없는 혹은 피하고 싶지 않은 운명처럼 여기나 봅니다.
알랭 레네 감독의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은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 12년의 시간이 흐른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여기서 ‘평화’라는 제목의 영화 촬영을 위해 히로시마를 찾은 배우 ‘프랑스 여자(엠마누엘 리바 분)’와 일본에서 건축가로 활동 중인 ‘일본 남자(오카다 에이지 분)’가 우연히 만나 관계를 맺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둘의 사이가 무르익을 무렵, 재건된 히로시마의 모습 이면에 감추어진 12년 전의 히로시마가 겪은 고통을 엿볼 수 있었다는 프랑스 여자를 향해 일본 남자는 ‘당신은 히로시마를 보지 못했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더불어 대재앙이 지나간 곳에 다시금 꽃이 피고 일상이 꾸려지는 상황을 마주하며 프랑스 여자는 미래를 향한 새로운 희망을, 일본 남자는 과거를 향한 망각의 위협을 느낍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프랑스 여자는 과거 그녀의 고향인 느베르에서 겪었던 어떤 결정적인 사건을 향한 아픈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는 체험을 합니다. 절대 잊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기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지자 여자는 당황합니다.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인간 존재를 옭아맨 망각의 힘을 그녀는 이겨내기 어려워합니다. 이런 그녀에게 잊지 않으려는 기억이 잊히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기억하려는 것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 그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잊히는데 있습니다.
곧 있으면 우리는 10.29 참사 1주기를 맞습니다. 한국 사회가 겪은 여느 참사들과 다를 바 없이 10.29 참사는 많은 이들이 참사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것을 꺼리는 이들에 의해 혹은 게으른 우리 자신의 박약한 의지에 의해 잊히길 강요당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망각이라는 족쇄에 사로잡힌 채 온전한 추모를 위한 기회를 ‘이번에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 속 두 주인공이 지키고픈 기억과 이를 방해하려는 망각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잊혀진’이라는 이중피동의 잘못된 표현이 용인될 수 있을 만큼 절박해 보입니다. 영화는 기억과 망각의 줄다리기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 잊지 않겠다던 의지가 조금씩 희미해지는 처지 앞에 좌절하는 이들과 그 절박함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10.29 참사의 1주기를 맞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망각의 늪에 빠져드는 우리네 실존적 한계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영화 속 일본 남자의 대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아직 2022년 10월 29일의 이태원을, 2014년 4월 16일의 진도 앞바다를, 2003년 2월 18일의 대구 지하철 중앙로 역을, 1995년 6월 29일의 삼풍백화점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화칼럼] 영화 ‘굿바이’ - 2008년 감독 타키타 요지로
죽음은, 선물을 포장하며 묶는 리본의 매듭 같은 것
부제 때 동기들과 함께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실습을 참관했던 적이 있습니다. 낯선 경험을 해본다는 점에서 설레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시신을 해부하는 모습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관이 시작되자 이전에 가졌던 설렘과 걱정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실습에 앞서 집도를 담당하는 교수님은 시신을 기증한 고인의 지나온 삶의 연혁을 읊어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기증자의 지난 삶의 역사와 어떠한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어떠한 지향으로 시신을 기증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 함께 시신 기증자와 기증자의 가족을 위한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자 생면부지인 한 사람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애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증자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가졌을 생각과 감정을 감히 헤아려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기증자의 가족들을 향한 위로와 감사의 마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드러난 기증자의 장기와 피는 사람의 육신에 붙어있는 한낱 고깃덩어리처럼 여겨지거나 피칠갑이 난무한 영화 속의 잔혹한 장면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숭고했을 삶의 과정을 견뎌낸 육신의 일부이자 기증자의 삶의 역사를 함께 감내한 동반자처럼 다가왔습니다.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영화 <굿바이(2008)>는 저로 하여금 한 사람의 죽음을 고귀한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해부학실습 참관 때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도쿄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하던 주인공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분)가 본인이 속한 악단이 재정난으로 해체되자 첼리스트의 삶을 내려놓고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 분)와 함께 자신의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이고는 고향에서 일할 직장을 구하던 중 여행사인 줄 알고 취직한 회사가 인생의 마지막 여행인 죽음을 배웅하는 전문 납관 회사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얼떨결에 납관 회사의 대표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 분)에게 염습하는 법을 배우게 된 다이고는 고인의 몸을 깨끗이 닦고 단장해 생전의 모습처럼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자신의 일에 차츰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다이고의 손은 섬세하게 첼로 줄을 켜던 손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생의 매듭을 묶어주는 손으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아내 미카와 주변의 지인들은 다이고의 새 직업을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다이고가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정성껏 염습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납관사를 향한 편견으로 가득했던 이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세상을 떠난 이가 남긴 삶의 흔적과 세상을 떠난 이를 향한 남겨진 이들의 심경을 섬세한 마음으로 가늠해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언젠가 맞게 될 ‘나의 죽음’이 낯설지 않게 다가올 것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다이고가 세상을 떠난 이들을 배웅하며 얻게 된 것은 바로 자신의 죽음을 미리 떠올리며 직면해볼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의 생을 향한 겸손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매해 11월마다 지내는 위령성월도,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 과정 안에서 나의 죽음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의 생을 향한 겸손을 깨우치도록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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