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성인 시메온(4.17), 로베르토(4.17)
시메온(4.17)
성인명 시메온 (Simeon)
축일 4월 1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셀레우키아-크테시폰(Seleucia-Ctesiphon)
활동연도 +341년
같은이름 바르사바에, 바르사배, 바르사베, 시므온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21일 목록에서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지방 셀레우키아-크테시폰(이라크 바그다드[Baghdad] 동편 티그리스강 기슭에 있었던 고대 도시로 오늘날의 알마다인[Al-Mada’in])의 주교였던 성 시메온 바르 사바에(Simeon bar Sabbae, 또는 시메온)의 순교에 대해 전해주었다. 그는 수사(Susa, 오늘날 이란 서부 후제스탄주[Khuzestan州]의 슈시[Shush]에 있었던 고대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이름 뒤에 붙은 ‘바르 사바에’의 뜻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즉, ‘사바(Sabba)의 아들(bar)’ 또는 ‘노인(sabba)의 아들(bar)’로 볼 수도 있고, 아버지의 직업에 따른 성(姓)이거나 안식일에 태어난 사람에게 주어진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그는 당시 동방교회의 사실상 수장 자리인 셀레우키아-크테시폰의 주교가 되었다.
이미 사도 시대에 그리스도교가 이란 고지대까지 전파되었고, 3세기 무렵에 페르시아에 360여 개의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4세기 초에 사산 왕조 제10대 왕이자 그리스도교의 박해자였던 샤푸르 2세(Shapur II, 309~379년 재위)가 태어나면서 바로 왕위에 올랐다. 모후가 섭정을 거둔 325년부터 샤푸르 2세가 직접 통치를 시작했는데, 이듬해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그는 성당과 수도원을 파괴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로 개종하지 않으면 무자비한 고문과 함께 혹독한 박해를 40여 년간 지속했다. 박해 중에 그리스도인에게 견딜 수 없는 세금을 부과하고 성직자에게는 가장 많은 세금을 매겼다. 하지만 모든 신자가 거의 다 가난한 상태였기에 성 시메온 주교는 왕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결국 왕의 명령으로 체포되어 쇠사슬에 묶인 채 불의한 재판정으로 끌려갔다. 그는 태양신을 숭배하라는 요구를 용감하게 거부하며 그리스도를 증언하였고, 그로 인해 모진 고문을 받고 동료 주교와 사제와 다양한 품계의 성직자를 포함한 100명의 증거자들과 함께 지하 감옥에 오랫동안 갇혔다.
그 후 341년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성 시메온은 백여 명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참수되는 광경을 모두 목격한 후 그 또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는 순교에 앞서 자기 눈앞에서 희생되는 동료들을 하나하나 격려하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에 앞서 순교한 저명한 이들 중에는 궁정 시종이자 샤푸르의 가정교사였던 성 우스타자네스(Usthazanes)도 있었는데, 그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배교하고 태양신을 숭배했었다. 하지만 오랜 친구인 성 시메온 주교가 체포되어 가는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에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했다. 분노한 샤푸르 왕의 명령으로 성 우스타자네스는 오늘날 이라크에 속한 아디아베네(Adiabene) 지방에 있는 왕의 동생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궁전에서 순교하였다. 그 외에도 성 시메온의 사제인 성 압데칼라스(Abdechalas)와 성 아나니아스(Ananias) 그리고 왕실 기술자들의 최고 책임자인 성 푸시치오(Pusicius)가 있었다. 성 푸시치오는 잠시나마 신앙을 부인하려던 성 아나니아스 사제를 격려했다는 이유로 성토요일에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주님 부활 대축일에 성 푸시치오의 딸인 동정 성녀 마르타(Martha)가 순교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옛 “로마 순교록”에서 4월 21일에 기념하던 성 시메온 주교를 4월 17일 목록으로 옮겨 페르시아의 샤푸르 2세 왕 때 태양신 숭배를 거부하고 동료 주교, 사제, 다양한 품계의 성직자 100명 이상과 함께 감옥에 갇혔다가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모두의 죽음을 지켜본 후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같은 날인 4월 17일 목록에서 성 시메온 주교의 순교 이후 궁정 환관이자 샤푸르의 가정교사였던 성 우스타자네스도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4월 18일 목록에서 왕실 장인들의 으뜸인 성 푸시치오가 성토요일에 순교했고, 4월 19일 목록에서 성 푸시치오의 딸인 동정 순교자 성녀 마르타가 주님 부활 대축일에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이렇게 개정 “로마 순교록”은 옛 “로마 순교록”이 4월 21일 목록에서 전해준 순교자 중에서 성 시메온과 성 우스타자네스, 성 푸시치오, 성녀 마르타의 이름만 명시하고 다른 두 사제 순교자의 이름은 별도로 표기하지 않았다.♣
로베르토(4.17)
성인명 로베르토 (Robert)
축일 4월 1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원장, 설립자
활동지역 몰렘(Molesme)
활동연도 1028?-1111년
같은이름 로버트, 로베르또, 로베르뚜스, 로베르투스
성 로베르투스(Robertus, 또는 로베르토)는 1028년경 프랑스 중부 샹파뉴(Champagne) 지방 트루아(Troyes) 교외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5세 때 트루아 인근 몽티에 라 셀(Montier-la-Celle)의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련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원장이 되었다. 1070년경 트루아에서 멀지 않은 욘(Yonne) 지방의 토네르(Tonnerre)에 있는 베네딕토회 성 미카엘 수도원의 원장으로 추대되자 이를 수락하였다. 그는 수도원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이미 수도승들의 생활이 해이해졌고 개혁 의지마저 없어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의 생활을 개선할 수 없음을 깨달은 성 로베르토는 수도원장직을 사임한 후 다시 몽티에 라 셀의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1072년쯤 토네르의 성 미카엘 수도원 근처 콜랑(Collan) 숲에서 은수 생활을 하던 몇몇 은수자들은 성 로베르토에게 함께 은수 생활을 실천하자고 제안했다. 성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 교황은 로마까지 찾아온 은수자들의 청원을 수락해 1074년경 성 로베르토를 은수자들의 지도자로 임명하였다. 1075년 성 로베르토는 은수자들과 함께 몰렘에 작은 공동체를 설립하고 클뤼니(Cluny) 수도회와 관계없이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성 로베르토의 성덕과 명성 때문에 많은 지원자가 몰리고 수도원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문제도 발생했다. 많은 기부금으로 수도원이 부유해지면서 수도자들이 본분을 잊고 점점 나태한 생활에 물들어갔다. 그러자 문제 해결을 위해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더 철저히 지키자는 쪽과 극도의 청빈을 실천하며 은수 생활을 더 철저히 수행하자는 쪽으로 수도승들의 의견이 갈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 로베르토는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과 청빈 생활을 더욱 철저히 실천하는 은수 생활을 위해 1098년 초 평소 그를 믿고 따르던 성 알베리코(Albericus, 1월 26일)와 성 스테파노 하딩(Stephanus Harding, 3월 28일) 및 20여 명의 수도승과 함께 몰렘의 수도원을 떠나 본(Beaune)의 자작(子爵)인 르노(Renaud)가 마련해 준 시토(Cteaux) 계곡에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했다. 그는 시토 수도원에서 은둔과 청빈과 검소한 생활을 하며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충실히 지키는 이상적인 수도 생활을 실천하고자 했다. 한편 몰렘 수도원은 성 로베르토가 수도원을 무단이탈했다고 규정하고 교황에게 중재를 요청하였다. 결국 1년 이상 시토에 머물던 성 로베르토는 1099년 교황 우르바노 2세(Urbanus II)가 교서를 통해 몰렘 수도원을 정상화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몰렘 수도원으로 되돌아가 수도승들을 지도하였다. 그렇게 그는 1111년 4월 17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몰렘 수도승들을 지도하며 수도원 정상화와 수도 생활의 개혁을 위해 헌신하였다.
성 로베르투스는 1222년 교황 호노리오 3세(Honorius 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옛 “로마 순교록”과 시토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224년 이후 4월 29일에 기록하고 기념해왔다. 1969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른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 이후에는 선종한 날인 4월 17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4월 17일 목록에서 더 단순하고 더 엄격한 수도 생활을 추구하며 시토회를 설립하고, 초대 대수도원장을 역임한 뒤에 몰렘에서 평화롭게 선종한 성 로베르토의 업적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