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묵시록으로 읽는 믿음과 삶] (14) 땅에서 바라 본 새하늘!(묵시 4장)
하늘의 문 열리고 천상과 지상 하나 되다
요한묵시록 4장부터 묵시문학적 색채가 짙게 드리워진다. 하늘의 문이 열린다. 수많은 묵시문학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하늘의 문’은 천상의 신비에 목말라하는 인간들의 갈망이 섞여 있는 은유다. 그 문이 열려서 해갈(解渴)의 은혜가 충만히 쏟아지길, 묵시주의를 살아갔던 인간들은 바라고 또 바랐다. 다만 요한묵시록은 하늘의 문이 열리는 순간 ‘그 목소리’를 언급한다. 요한묵시록 1장 10절에서 이미 ‘그 목소리’는 들려졌고, ‘그 목소리’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쓰도록 했다. 독자들에게 일곱 교회로 눈과 귀를 이끌었던 ‘그 목소리’는 이제 천상을 향해 독자들을 초대한다. ‘그 목소리’를 중심으로 천상과 지상은 하나가 된다.
천상에서 보여지는 것은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묵시 4,1)이다. 단언컨대, ‘이다음의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아니다. 요한묵시록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시간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구원을 이루셨고, ‘이제와 항상 영원히’ 그 구원의 정점으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 시간은 흐르되 시간의 성질은 항상 같은 것이다. 어제의 후회나 미래의 설렘 따위는 요한묵시록에 어울리지 않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그러므로 ‘이다음의 일’은 ‘구원을 살아가는 지금’에 대한 또 다른 해석과 상상의 새로움을 가리킨다.
‘이다음에’라고 번역한 ‘메타 타우타’(μετὰ ταῦτα)의 의미를 곱씹어봐도 그렇다. 굳이 시간적 미래로만 해석할 수 없는 표현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익히 알고 믿고 습관적으로 인식한 것들을 ‘다르게’ 알고 믿고 새롭게 고쳐 사고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천상에 올라가 요한이 보는 ‘이다음의 일들’은 이미 드러났으나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 현실을 함부로 단정 짓고 심판한 우리의 인식이 전부가 아닌 부분이라는 것, 그리하여 나의 이해와 판단은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선이라는 것, 다른 이와 다른 세상, 다른 생각으로 진지하게 나아가는 출발선이라는 것이다.
‘성령께 사로잡혔다’(묵시 4,2)는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황홀경이나 신비 체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될 표현이 아니다. 학자들은 현실에 대한 영성적 해석, 혹은 깊이 있는 새로운 인식의 또 다른 표현이 ‘성령께 사로잡힌다’로 이해한다. 묵시문학의 전형적 표현이기도 해서 ‘성령께 사로잡히는 것’은 어렵고 힘든 것들, 그리하여 바라고 또 바라는 것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달리 보자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고민은 ‘어좌에 앉으신 분’으로부터 시작한다. ‘어좌에 앉으신 분’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구약의 전통적 표현이다.(이사 66,1; 시편 11,4) 구약의 하느님은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되기도 했는데(탈출 28,17; 에제 1,26; 28,13), 요한묵시록 역시 벽옥, 홍옥, 취옥으로 어좌를 꾸미고 있다. 무지개도 마찬가지다.(에제 1,28) 여러 상징들로 어좌를 화려하게 꾸밀수록 하느님의 현존은 더욱 뚜렷하다.
어좌 둘레에 스물네 원로가 앉아 있다. 프랑스 주석학자 앙드레 프이에(A. Feuilet)는 원로들을 통해 천상과 지상의 화합, 혹은 일치를 언급한다. 원로들이 사람임에도 천상의 공간에 배치되어 있어서다. 스물넷이라는 숫자를 두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합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지상의 하느님 백성 모두가 천상의 어좌 곁에 있다는 식으로 이해될 만하다. 원로들은 어좌에 앉아 있고, 금관을 쓰고 있으며 흰옷을 입고 있다. 지상의 권력을 가리키는 어좌와 금관, 천상의 영광을 드러내는 흰옷의 조화 역시 천상과 지상의 화합과 일치를 대변한다. 원로들은 11절에 가서 하느님께 그들의 금관을 던지며 외친다. 경배의 외침은 다분히 로마 황제를 위한 경배 문구와 닮았다. “~하기에 합당하신 분”(Ἄξιος εἶ)이 그렇고 특별히 “저희의 하느님”(ὁ θεὸς ἡμῶν. Dominus et Deus noster)이라는 표현은 요한묵시록이 쓰여졌다고 추정하는 시기의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스스로를 칭하는 문구와 닮았다. 하느님을 믿는 이 땅의 모든 백성은 오로지 하느님을 향한 경배에 열심이다. 하느님이야말로 참된 황제, 진정한 임금이라는 신앙 고백의 열망이 원로들의 정체성에 스며들어 있다. 이 땅 위의 원로들은 그렇게 천상의 하느님을 끊임없이 갈망하고 흠숭하고 있다.
원로들은 하느님을 ‘만물의 창조주’(묵시 4,11)로 이해한다. 프랑스 리옹의 성경신학자 프랑수아 마르탱(F. Martin)은 원로라는 말마디, 그러니까 ‘프레스뷔테로스’(πρεσβύτερος)라는 말마디의 뜻이 ‘인간의 조상, 혹은 근원’이란 뜻이 있어, 원로들이 하느님을 만물의 근원으로 칭송하는 것에는 원로와 창조주 간의 의미론적 연관성이 있다고 관찰했다. 인간의 근원인 원로가 만물의 근원인 창조주 하느님을 찾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원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이미지를 해석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네 생물도 마찬가지다. 에제키엘서 1장 5절과 6장 2절에서 빌려 온 네 생물 형상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으나 본디 그 의미는 어좌, 곧 하느님의 자리를 꾸미는 형상이다. 하느님의 현존을 가리키는 네 생물은 리옹의 이레네오 교부에 의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네 복음서와 연결해서 해석하기도 했다. 에제키엘서에서 말하는 네 생물의 공간은 지상, 그것도 이스라엘이 아닌 이민족 바빌론 땅이다. 하느님은 그분의 백성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함께 계신다는 의미가 네 생물의 형상에 담겨있다. 요한묵시록의 네 생물은 하느님을 ‘살아계신 분’(묵시 4,9)으로 흠숭한다. ‘생물’이라는 그리스말은 ‘조온’(ζῷον)인데, ‘살아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살아 있는 네 생물이 하느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이해한다. 이 땅 위에서 바라본 하느님은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늘 이 땅 위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 분이시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이다음의 일들’이 시작되는 요한묵시록 4장은 새롭고 신비한 일들을 소개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사는 이 삶 안에서 하느님의 자리는 어디며, 그분을 어떻게 찾고 있는지 스물넷 원로와 네 생물을 통해 묻고 있다.
하느님은 천상의 자리에 유폐되어 있지 않고, 이 땅 위에 우리의 믿음과 묵상과 열정 안에 새롭게, 늘 현존하신다.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66) 가장 용맹스럽고 멀리 복음을 전한 토마스
인류 최고의 의사로 칭송받는 슈바이처(1875~1965)는 “생명을 북돋워 주는 것은 선이고, 생명을 부수고 가로막는 것은 악”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의사, 신학자, 음악가, 사상가로 당대의 최고 천재였다. 다재다능한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질병으로 혹독한 고통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의사가 되어 이들을 위한 진료에 평생을 바쳤고 그 공로가 인정되어 1952년 노벨상을 받았다.
슈바이처는 노벨상을 탔을 때에도 그 상금을 모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사용했다. 마흔이 다 된 슈바이처가 아프리카로 떠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반대가 심했다. 편안하고 여유 있게 일생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난데없이 아프리카로 가는 슈바이처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아프리카는 온갖 독벌레와 세균이 들끓었던 미개한 곳이었다. 의사도, 병원도, 약국조차 없었다.
그곳 사람들은 질병 속에 완전히 버려져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사람을 고치는 것은 의사의 본분이고, 자신이 의사가 된 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탈렌트를 이용하여 모든 생명을 구하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슈바이처는 재산을 다 털어 그곳에 병원을 지었다. 그는 질병과 더위와 싸우며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처음 제자들과 만났을 때 빠졌던 토마스는 다른 사도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믿지 못했다. 성경을 보면 토마스는 깨달음이 부족해 예수님의 말을 잘못 이해하고 엉뚱한 반응을 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부활도 직접 보지 않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떼를 부린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너는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이는 행복하다”라고 하자 감격한 토마스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Dominus meus et Deus meus)”이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지금까지도 가장 완벽한 신앙고백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토마스는 특별한 고집이 있어 가장 열성적이고 강직한 제자 중 하나였다. 이 구절은 의심 많은 믿음이라는 설교의 예화로 자주 등장한다.
예수님은 의심을 ‘불경하다’며 피하지 않고, “보아라” 하시며 제자의 의혹을 적극적으로 풀어주고 확신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한 문장만 가지고 밤새도록 기도하기도 했을 정도다. 토마스는 성경에서 예수님에게 직접 하느님이라고 고백한 유일한 사도인데,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여 사도들의 리더 자리를 받았음을 생각해 보면 토마스의 신앙고백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토마스를 많이 아꼈다. 예수님 말씀이 이해 안 갈 때 다른 제자들이 대충 가만히 있어도 토마스는 꼭 질문을 다시 했다. 맹신하는 것보다 토마스처럼 의심하고 질문하는 게 오히려 좋은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톨릭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는 인도에까지 복음 선포길에 나섰다 순교했는데, 토마스의 성격이나 도전성에 비추어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코린토 1서
코린토는 항구 도시로 상업이 크게 발달했던 곳입니다. 또한 다양한 민족이 모인 탓에 각자가 섬기는 여러 신을 위한 신전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코린토 교회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신자들의 분열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방문 하였을 뿐만 아니라, 편지를 작성하였습니다.
1장 1-9절은 머리말로 여느 서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코린토 교회를 향한 하느님의 은총과 코린토 교회 공동체를 향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장 11절-6장 20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클로에 집안이 사도 바오로에게 알려온 세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자신의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교우들 간의 파벌 문제였으며, 두 번째는 성적인 문란함에서 비롯된 불륜의 문제였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이방 법정에서 교우들끼리 다투는 송사와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당시 코린토 교회에는 세례 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세례를 준 사람에게 동화된다는 잘못된 세례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오로파, 아폴로파, 케파파, 그리스도파’(1,12 참조) 등 파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에 대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세상의 지혜가 보기에 십자가는 실패의 상징이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어리석고 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다고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이를 통해서 사도 바오로는 인간은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님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를 주는 사람에 따라 파벌을 형성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교절에 묵은 누룩을 치우고 새 반죽을 마련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아내(후처)를 데리고 사는 등의 잘못된 풍습을 없애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우들 안에서 발생하는 시시비비에 대해서도 서로 참아주고 이해하며 용서해줌으로써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답게 서로를 고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7-15장에서는 코린토 교회가 제기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답변이 이어집니다. 7장에서 사도 바오로는 미혼 기혼 상관없이 현재 자신의 상태를 유지한 채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대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종말의 때가 임박했으니 다른 곳에 마음을 쓰지 말고 주어진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단, 그런 가운데에서도 불륜에 빠지거나 종교적 수덕주의에 빠져 배우자에게 충실하지 못한 모습이 생겨나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뒤이어 8-10장에서는 하느님께서 한 분 뿐이시고, 우상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기에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도 상관없다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양심상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으니 그들 앞에서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충고합니다.
11장에서는 전례 때에 갖추어야 할 합당한 옷차림 · 몸가짐에 대한 이야기와 성찬례를 거행하는 모습에 대한 지침이 등장합니다. 특히 성찬례는 먹고 마시는 연회가 아니라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성사이기 때문에 늦게 참여하는 가난한 사람들도 기쁘게 나누어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음식을 남겨 놓거나 그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시작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는 올바른 주님의 만찬이 아니며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12-14장에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성령께서는 각자에게 알맞은 은사를 베풀어주시지만 이 모든 것들은 공동선을 위해서 자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는 하나의 몸인 교회 전체를 위해서 존재하며, 자신이 받은 은사를 자신만을 위한 것처럼 여기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교회를 분열시키고 말 것이라고 사도 바오로는 경고합니다. 그리고 15장에서는 몸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당시 코린토에는 그리스 철학의 이원론과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죽은 이들의 부활과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두고서도 예수님의 영이 육을 잠시 빌려 이 땅에서 활동하시다가 죽으신 뒤 부활하시어 다시금 하늘로 올라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실 리가 없으며,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복음도 헛된 것이라고 선포하면서 전통적인 신앙 고백인 육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마지막 16장은 코린토 1시의 맺음말로서 사도 바오로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에 대해 안내한 뒤 코린토 교회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전하면서 늘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바른 신앙을 살아가라고 격려합니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간음하다 잡힌 여인
오늘 복음에는 간음죄에 얽힌 사건이 나옵니다. 올리브 산에 계시던 예수님께서 이른 아침 성전으로 가시자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는데, 간음하다 발각된 여인도 붙들려온 것입니다. 간음죄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주변 나라들에서도 큰 죄로 여겨져(창세 20,6.9 참조), 옛 함무라비 법과 히타이트 법에 따르면 남녀 모두 사형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함무라비 법 129항; 히타이트 법 197항). 다만 고대근동에서는 남편이 원할 경우 처벌을 약하게 할 수 있었으나(함무라비 법 129항; 히타이트 법 198항) 이스라엘에서는 달랐습니다.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관계라고 보았기에(말라 2,14), 간음죄 처벌을 감해주거나 면제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레위 20,10; 신명 22,22-24 참조).
그런데 레위기와 신명기의 율법을 보면 간음이 남녀 둘 다 처벌받아야 하는 죄인데도,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남자를 빼놓고 여인만 데려와 단죄하려 합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바리사이의 무리도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셈입니다. 사실 이들은 여인에겐 관심이 없고, 예수님을 옭아매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어 그분께 덫을 놓으려 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간음녀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답하면, 오경 율법에 도전하는 모양새가 됩니다(5절). 반대로, 율법을 지키라 해서 여인이 투석형이라도 받고 사망하면, 로마법에 어긋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민간인들의 사형 집행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예수님은 한동안 땅에 글만 쓰셨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으나, 교부 히에로니무스는 그곳에 모인 군중과 인류의 죄를 다 쓰셨다고 풀이합니다. 이는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주님 ··· 당신에게서 돌아선 자는 땅에 새겨지리이다.”(17,13)라는 구절에 근거한 해석입니다.
바리사이의 무리가 줄기차게 답을 요구하자, 예수님께서는 몸을 일으켜 죄 없는 이부터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하십니다. 원래는 간통을 목격한 증인들이 돌을 던지면 군중이 그 뒤를 잇는 법인데(신명 17,5-7), 예수님께서 이 말을 하신 뒤 또다시 글만 쓰시자 나이 든 사람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나이 많은 사람일수록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었을 것입니다. 군중이 다 사라지고 여인만 남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제야 여인을 보시고 당부하십니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여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너”(10절, 11절)라고 부르며 타이르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덫을 어떻게 빠져 나가셨는지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집인 성전 앞에서도 율법을 자기 편의대로 해석해 약자에게만 엄격히 들이대는 이들의 마음을 바로잡으심으로써 율법의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곧 단죄 자체가 아니라 죄의 정화와 구원에 있음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베드로와 유다 (1)
이번에는 열두 사도 가운데 베드로와 유다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두 인물 모두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배반 이후의 운명은 극과 극으로 갈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 자체가 두 인물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요한 6,60-71에는 열두 제자 가운데 베드로와 유다의 이름만 나오는데, 베드로는 신앙을 고백하고 유다는 배신자로 지칭됩니다.
먼저,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시몬인데, 예수께서 교회의 반석이 되라는 의미로 케파(바위)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마태 16,18). 베드로는 아람어 케파의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래아 호숫가의 어촌 벳사이다(어부의 집)에서 요나의 아들(시몬 바르요나)로 태어나 어업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기혼이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아내의 이름은 익명으로 남겨둡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교부는 베드로의 아내도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순교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에게는 딸도 하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결혼 후 카파르나움으로 이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집은 예수님 활동의 근거지가 되어 예수님의 집으로 불립니다(마르 2,1).
물고기를 잡던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사람 낚는 어부로 예수님께 불림을 받습니다(마태 4,19).
이후 예수님을 따르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그는 순수하고 솔직하기도 하지만, 수제자의 자격이 의심될 정도로 허술하기도 합니다. 바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나약하고 겁도 많습니다. 스승은 근심과 번민에 휩싸여계시는데 잠을 이기지 못하여 잠들어버리기도 하고(마태 26,40), 물 위를 걸어 예수께로 나아가다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에 빠지기도 합니다(마태 14,30). 결국 베드로는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하게 됩니다.
한편, 복음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유다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출신을 짐작하게 도와줄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이스카리옷.
이스카리옷은 카리옷 사람(이쉬 카리옷)이라는 의미인데, 카리옷은 여호 15,25에 나오는 크리욧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유다의 아버지 이름 또한 시몬 이스카리옷으로 나옵니다(요한 6,71).
그렇다면 유다는 열두 사도 가운데 유일하게 예수님의 주 활동 지역인 북부 갈릴래아 지방 출신이 아니라 남부 유다 지방 출신입니다. 다만 성경은 예수께서 유다를 제자로 부르시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지 않기에, 그가 어떻게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가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비록 동향 출신이어서 한두 다리 건너면 알만한 관계로 얽혀있었을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을 유다이지만, 그는 예수님 일행의 재정을 담당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동료들의 깊은 신뢰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유다를 도둑(요한 12,6)이라 부르는 요한은 그의 배반 이유를 탐욕에서 찾습니다. 그렇지만 고작 은전 30닢(약 4개월 치 임금)의 돈을 배반의 동기로 보는 것은 석연치 않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과 같은 부유층으로부터도 후원을 받던 예수님 일행의 재정을 담당한 유다는 지속해서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착복할 수 있었습니다. [2025년 4월 6일(다해) 사순 제5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베드로와 유다 (2)
유다의 배반 이유와 관련하여, ‘이스카리옷’을 로마인들과 친로마파의 암살도 서슴지 않은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인 ‘시카리’와 연결하여, 유다가 시카리의 일원이었을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유다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바란 것이 아니라, 다만 로마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 데 미온적인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 마카베오와 같은 정치적 메시아의 길을 선택하도록 유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시카리는 50년경부터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입장에서는 율법을 거스르는 거짓 예언자로 보이는 예수님을 고발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경건한 유다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인데, 유다는 예수님의 참된 율법에 대한 그 많은 가르침을 귓등으로 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2~3세기의 외경 유다 복음서는 유다가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을 비로소 육체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육체를 자유로운 영혼을 가두는 감옥으로 보는 영지주의의 관점에서만 선한 일입니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요한 13,2) 이 구절을 근거로 유다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악에 조종당하는 도구가 되었다가 결국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고만 희생자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악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하느님조차 거스를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다의 배반 이유를 무엇이라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배반 행위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배반 이후 그의 행동입니다. 유다는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고 괴로워하다 결국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는 유다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너희는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다.”(마르 14,27)
특히 베드로는 작지 않은 배반의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 10,33)
그런데 갈릴래아인 특유 억양의 사투리 때문에 예수님의 일행임이 탄로 난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부정했습니다(마태 26,70). 비록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지만, 저주의 맹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마태 26,74).
그래서 자신이 지은 죄의 무게를 깨달은 베드로가 대사제의 저택 밖으로 나가 새벽의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8,12)
하지만 ‘후회’한 유다와 달리 베드로는 ‘회개’했습니다.
단순한 후회와 회개는 다릅니다. 후회는 주저앉아 뒤만 돌아보고 있는 것이고, 회개는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어떤 죄보다 큰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뢰가 회개를 가능케 합니다. [2025년 5월 4일(다해)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가톨릭부산 5면, 임성근 판탈레온 신부(사목기획실장)]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베드로와 유다 (3)
“내가 너희 열둘을 뽑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하나는 악마다.”(요한 6,70)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근거로 유다는 회개할 수 없는, 그래서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악마라는 그리스어 단어 앞에는 정관사가 없습니다. 이것은 비록 유다가 악의 유혹에 빠졌을지언정 악마 자체는 아님을 말합니다. 어떤 인간도 구원에서 완전히 배제된 악마가 될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도 사탄으로 불렸음을 기억합시다(마르 8,33).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카이사리아 필립비에서 수난을 위한 여정을 시작하시려는 때, 베드로가 그 앞을 완강히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의지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예수님께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은 이때만이 아닙니다. 나중에 겟세마니 동산에서는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예수님 앞을 가로막고 칼까지 빼듭니다(요한 18,10).
회개할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다면 누구나 회개할 수 있습니다.
유다는 최후의 만찬 때 예수께서 자신이 배반할 것을 이미 아시면서도 빵을 적셔서 주실 수 있을 정도로 곁에 가까이 두셨음을 기억해야 했습니다(요한 13,26).
적대자보다 더 크고 깊은 상처를 낼 배신자의 발을 손수 씻어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분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말입니다.
자비는 포기하는 법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다시 만나셨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부르십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요한 21,5)
그런데 우리말 성경에 ‘얘들’로 옮긴 그리스어 원문의 단어 ‘파이데이아’는 7세 미만의 어린이들을 가리킵니다.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당신을 배신하고 버린 괘씸한 제자들이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온유함을 그대로 품은 예수님의 눈에는 마냥 그들이 무섭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그냥 도망쳐 버리고만, 그래서 꾸짖고 벌하기보다는 다독거리고 달래주어야 할 가련한 어린아이들로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이러합니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회개한 베드로는 로마의 주교로서 교회의 일치를 위해 봉사하고 주님의 복음을 담대히 선포하다가 네로 황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의 화관을 썼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교회의 주요 상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유다는 신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자살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는 지옥의 맨 밑바닥을 가리키는 명칭이 유다의 이름을 딴 유데카로 나옵니다.
한때는 동행이었으나 결국 갈림길에서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베드로와 유다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회개의 삶을 살라고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