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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란 무엇일까? 봄 언덕을 스쳐간 한줄기 바람이었을까? 가을 강에 비치던 한줄기 달빛이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진주(晉州)를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말한다. 절벽 위 촉석루가 아름답고, 시가지 가운데로 비단띠처럼 흘러가는 남강이 아름답고, 강변의 은모래와 푸른 대밭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전원도시에서 자란 소년의 첫사랑을 여기 소개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시기는 6.25 전쟁 직후였다. 우리는 임시 가설된 천막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고, 우리 동네를 <배건너>라 불렀는데, 시내로 나갈려면 돈을 주고 가설 배다리를 건너 다녔기 때문이다. 폭파된 다리가 아직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건너>는 한 시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동네였다. 뽕밭과 감나무 과수원이 많고, 경전남부선 종점이라 한낮엔 부산서 출발한 기차가 주약동 턴넬에서 칙칙폭폭 하얀 석탄연기를 내뿜으며 나타났다.
우리 집은 육거리 옆이라 시내로 가는 길, 망경산 가는 길, 천전학교 가는 길이 사통팔달 뻗어있었다. 집 앞에 수양버들이 아름들이 나무가 되어 그늘을 드리웠고, 그 아래 대나무 평상에는 살부채 들고나온 동네 아줌마들이 여름 밤을 한담으로 보내곤 했다. 대문 안은 여름이면 매미가 노상 울고, 가을이면 빨간 홍시가 볼만하던 커다란 감나무가 세 그루 있고, 기와로 된 본채, 사랑채, 아래채 가운데 봉선화 채송화 심은 화단이 있고, 2백 여 마리 닭을 키우던 닭장 옆에 목욕탕과 우물과 수도가 있었다.
내가 다닌 천전(川前) 학교는 옆에 남강이 흘렀는데, 운동장의 반은 감나무 과수원이었다. 배 고프던 아이들은 등교하면 나무에 올라가 익지도 않은 감을 따먹었고,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에 있던 뽕밭에 들어가 입술 까매지도록 오디 따먹었다. 가을엔 논에서 메뚜기와 논고동 잡았고, 중학생 이후로는 카리비안의 해적이 되어, 달빛 아래 남강을 헤엄쳐 건너가 도동 들판의 수박과 참외를 서리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배건너 아이들은 비록 배 고프고 가난했지만 서로 나눠먹을 줄 알았고, 노인을 공경하고 어려워 할 줄 알았다.
새벽에 강에 나가면 누군가 안개 낀 서장대에서 목청을 가다듬고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이나 황금심의 <진주는 천리길>을 부르고, 색소폰으로 이봉조의 <떠날 때는 말없이>를 불고 있었다. 간혹 밤에 미국공보원에서 활동사진을 돌렸는데, 집을 비워놓고 나온 동네 사람들이 별빛 아래 운동장에 인산인해를 이루어, 어른은 아이를 찾고, 아이는 어른을 찾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영사기가 돌다가 필름이 끊기면 청년들이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휙휙 휘파람을 불었는데, 무성영화 시절에 인기 있던 사람은 변사였다.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탐나더냐' '이 손을 놓아라. 놓지 않으면 발길로 차 버릴 것이다.' 대동강 부벽루에서 만난 이수일과 심순애의 <장한몽> 대사를 흉내내면서 청년들은 밤거리 헤매었고, 맘에 드는 처녀 집 근처에서 이태리 청년처럼 세레나데를 부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자란 소년들의 성격은 칠암동 뽕나무밭 오디처럼 달콤했고, 섭천못 과수원 복숭아처럼 부드럽고, 주약동 감홍시처럼 달콤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는 백 미터 학교 선수였고, 중학교 다닐 때는 망경산 등산하고 남강물에 세수한 후 등교하여, 몸놀림이 은어처럼 민첩하고, 목소리는 종달새처럼 명랑했다.
복숭아꽃 살구꽃이 지고, 감나무에 파란 감이 주렁주렁 열리던 일요일 오후였다. 우리들은 졸업한지 4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를 모교 교실에서 열었다. 4년이란 시간은 서로를 몰라보게 만들기충분한 시간이었다. 소녀들은 어느새 풋복숭아 같이 가슴이 불룩해지는 참이고, 여성 특유의 꽃봉오리 같은 몸매가 나타나고 있었다. 소년들은 줄리엣을 사랑한 열일곱 살 로미오 같은 때 였다. 코밑수염이 나기 시작했고,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담배를 입에 문 소년도 있었다. 번데기가 나비로 우화 되는 바로 그 시기였다. 미묘한 감정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남몰래 이성의 얼굴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여학생 중에 눈에 띄는 존재는 정란이와 전자였다. 백 미터 선수였던 정란이는 조숙하여 벌써 처녀티가 났고, 부친이 전매청 간부였던 전자는 밤에 누군가와 만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내 눈은 한구석에 얌전히 앉아있던 한 소녀에게 못 박혀 버리고 말았다. 투루게네프의 '첫사랑'이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감명 깊게 읽던 시절이다. 그는 도브의 샘가에 핀 한 떨기 수선화 같았다. 곁의 소녀들과는 전혀 다른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눈은 알프스의 호수처럼 고요하고, 늘어진 머리칼은 호반의 수선화처럼 청초했다. 아마 이때 큐피드가 그 황금 화살로 내 심장을 명중시켰을 것이다. 혜정이를 본 그 순간, 나는 갑자기 화살을 맞은 표범처럼 몸속으로 수십만 볼트의 엄청난 전류가 흘러감을 느꼈다. 그 짜릿짜릿 하고 감미로운 충격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첫사랑의 충격이었다.
그 순간 이후를 나는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다. 동창 중에 누가 지명을 받고 교단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고, 누가 누구한테 말을 걸었는지, 어떻게 동창회가 끝났는지 모른다. 나는 갑자기 '지나이다'를 사모한 '페트로비치'가 되었고, '샤롯테'를 사모한 젊은 ‘베르테르’가 되었다. 내 신경이란 신경은 오직 혜정이한테만 집중되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혜정이의 동작 하나하나는 내 마음을 악기의 현처럼 바르르 떨리게 했다. 나는 극도로 흥분해서 더 이상 교실에 앉아있을 수 없었다. 밖에 나가서 감나무에 기대어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달래었다. 그러다가 언제 동창회가 끝났는지 모른다. 먼발치에서 혜정이가 떠나가는 모습을 꿈결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 밤부터 나는 혜정이네 집 근처로 날라간 한 마리 나이팅게일 새가 되었다. 떨리는 음성으로 세레나데를 부르기 시작했으니, 첫 곡은 도입부가 저음의 바리톤으로 시작되는 <불 밝던 창>이란 노래다. '불 밝던 창에 어둠 가득 찼네. 내 사랑 넨나 병든 그때부터, 그의 언니 울며 내게 전한 말은, 내 넨나 죽어 땅에 묻힌 것...' 마리오 란자가 불렀던 <불 밝던 창>은 요절한 나나라는 소녀를 사랑한 한 청년의 애절한 마음을 담은 나폴리 민요다. 두 번째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불러 세계적으로 히트한 'Love me tender'였다.
당시 진주의 그 어느 소녀도 혜정이처럼 밤마다 그렇게 많은 세레나데를 들으면서 성장한 소녀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때 진주 농대 학장 관사 앞을 지나가며 밤마다 불렀던 두 곡을 원어로 기억하고 있다.
그때 혜정이가 살던 집 울타리는 탱자나무 울타리 였다. 봄엔 하얀 탱자꽃이 피었고, 가을엔 노란 탱자 열매가 열렸다. 울타리 안에 우물이 있었는데, 달밤의 우물가 소녀는 얼마나 아름답던가.
나는 혜정이가 그리워 망경산 정상의 바위에다 손에 피멍 들여가며 영국의 여류 시인 '크리스티나 로젯티'의 시를 새겨놓기도 했다. 'When I'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 for me(내 죽거든 임이여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마오).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장미도 심지말고, 그늘지는 사이프러스 나무도 심지 마오.)
그러나 뻐꾹 뻐꾹! 주약동 보리밭에서 울던 뻐꾸기 소리 들으면서 내가 시를 새긴 그 바위는 지금 없어져버렸다. 진주 사람들이 봉수대를 세우면서 그 바위를 축대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이 싹틀 때 진주는 못견디도록 아름다운 도시다. 봄철 신안동 들판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너우니' 버들숲에 은어가 힘차게 꼬리 치며 올라오는 것을 보면, 바람이 당미언덕 벚꽃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가는 것을 보면, 촉석공원 벤치에 낙엽이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칠암동 대밭에 달빛이 어린 것을 보면, 진주 소년은 어느새 시인이 된다. 뒤벼리 절벽 위에 황혼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지드의 '좁은 문'을 읽고 산책 나가서 대문에 파란 페인트 칠한 과수원집 소녀가 붉은 바탕에 검은 반점 찍힌 산나리 꽃 옆에 서있는 걸 보면서, 진주 소년은 다정다감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안개 덮인 서장대에서 들려오던 남인수 노래 따라하고, 이봉조의 쎅스폰 소리 들으면서 진주 소년은 자란다. 그래서 진주 사람들은 거짓말을 업으로 삼는 국회의원조차 감성이 풍부하다.
당시 혜정이는 어떤 편이냐 하면, 내가 밤마다 자기 집 탱자울 앞에 와서 세레나데 부른 그 남학생인건 아는 눈치였다. 그를 찬미하는 남학생이 있다는 건 소녀로선 우쭐한 일이고, 세상 무엇보다 달콤한 비밀이었을 것이다. 수줍지만 한번 얼굴을 보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혜정이는 등교 때 다리 위에서 살짝 나를 뒤돌아보곤 했다. 나는 그 때문에 또 얼마나 실낱같이 가는 용기를 얻고 흥분되었던가. 나는 혜정이 옆에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혜정이 친구 영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나는 남녀 학생이 유등(流燈)을 띄우던 개천예술제 밤 남강변 인파 속을 얼마나 쏘다녔던가. 혹시나 혜정이를 만날 수 없을까 싶어서였다.
그때 나는 어떤 편이냐 하면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소년장사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 백미터 육상선수였고, 고교 때는 투창, 투 원판, 넓이 띄기, 백 미터 선수였다. 공부도 잘했고 성격도 명랑했다. 쉬는 시간에 교단에 올라가 미치밀러 합창단의 부드러운 목소리 흉내 내면서, 'The sun shines bright in the old Kentucky home', '켄터키 옛집'이나, 'Way down upon the Swanee river', '스와니 강의 추억'을 원어로 잘 불렀던 사람은 나중에 뉴욕 맨하턴에서 의사를 한 우영이와 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운동이라면 운동, 공부라면 공부, 양수겸장이던 내가 혜정이 앞에만 가면 꼼짝을 못 했다. 나는 짚씨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모한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였디. 두 방망이 치는 가슴을 태우는 젊은 베르테르였고, 가면무도회에서 줄리엩을 만난 몬테규 가의 로미오였다.
투르게네프( Turgenev)
그 속에 나는 혜정이에게 보낼 편지 인용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던가. 나는 연애소설은 물론 수많은 어려운 책도 읽었다. 투루게네프의 '첫사랑', 헬만 헷세의 '데미안',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 섹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엩', 토마스 하디의 '테스'가 그런 책이다. 당시 얼마나 많은 책 속의 여인이 혜정이었던가. 혜정이는 매번 '아쌰', '잔느', '쥴리엩', '테스', '넨나'로 바뀌었고, 나는 매번 그 상대편 남자였다. 나는 명작 속에서 혜정이를 만났고, 명작 속에서 사랑의 아픔을 느꼈다. 수많은 편지는 만들어졌고, 밤마다 혜정이네 담 너머로 던져졌다. 달을 보고, 구름을 보고, 강을 보고, 산을 본 모든 느낌과 감정이 편지에 담겼다.
어느덧 나는 신체 건강한 소년에서 사랑의 몸살을 앓는 몽상가로 변해갔다. 간혹 편지 대신에 사람이 갈 수 없는 망진산 험한 절벽에서 꺾어온 꽃을 담 너머로 던지기도 했다. 진주의 그 어느 소녀도 그런 위험한 절벽에서 꺾어온 꽃을 그렇게 자주 선물 받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내 일기장이 지금 내 서재 안에 있는데, 성장하면서 글씨체가 바뀌고, 새로 배운 영어 단어 많이 인용한 그 일기장에는 '폭풍의 언덕' 남자주인공 히스크리프가 그랬던 것처럼 절벽에다 굴을 파놓고 혜정이와 살고 싶었던 꿈이 적혀있다. 나는 교수형 당한 에스메랄드를 껴안고 죽은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가 되고 싶었다. 한 소녀가 내 운명을 바꿔놓았으니, 나는 혜정이란 소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사대 체육과에 가서 체육선생이 되었을 것이다. 철학과 같은 델 가고, 나중에 신문기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기장은 고장 난 시계처럼 지금도 60년 전 시간에 멈춰선 채 내 서재에 보존되어 있다.
나는 사랑을 관념에서 시작해서 관념으로 끝낸 점에서 키엘케골의 '유혹자의 일기' 주인공 같았다. 나보다 연약한 믾은 다른 친구들은 누군가 여학생과 사귀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가장 체격이 우람하던 나는 혜정이한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나는 목숨을 걸고 성주의 따님을 보호할려는 중세기의 기사 같았으니, 목숨은 바칠 수 있지만 공주님께 사랑은 고백할 수 없었으니, 그건 나에게 있어선 불경이었다.
그러나 모든 턴넬은 끝이 있는 법. 혜정이에 대한 7년 짝사랑도 끝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항만사령부 229 자동차 대대 GMC 운전병이었다. 혜정이 혼처가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자 부랴부랴 휴가 얻어 그가 근무하던 문산초등학교로 찾아갔다. 그 당시 대학에서 미식축구 선수를 하다가 친구가 자살하자 군에 입대했던 나는 몸무게 80킬로이고, 백 미터 12초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운동장 대학 미식축구 시합 발군의 성적 주인공으로 선배들과 종로 3가 음악실 쏘다녔고, 백운대 단합대회에서 막걸리 한 되를 마시어 '지리산 곰'이란 애칭도 얻었다. 친구가 자살하자 동반자살하려고 나는 사하라 사막에 주둔한 외인부대 같은 곳에 가려고 자원 입대했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뮈르소 같은 자살을 원했다. 나는 자동차 대대 유일한 대학생 운전병이지만, 나는 내 GMC 23호 차에 자살용 실탄을 싣고 다녔고, 외출 나가서 서면 하이에리어 부대 근처 사창가 헌병을 구타하여 전 부산 지역 헌병대에 비상이 걸리게 했다.
그 와중에 혜정이의 혼처가 정해졌다는 소릴 듣고 나는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성사되던 실연당하던 그건 내 운명이다. 혜정이를 만나 양단간 결단을 내려야 했다. 혜정이를 만나러 갔을 때 모습은 이랬다. 군복 상하의는 풀 먹여 빳빳이 다려 입었고, 모자의 병장 계급장은 광약으로 빤짝빤짝 닦았고, 군화도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매끄럽게 칠했다. 수송병과 빨간 머플러를 목에 걸쳤고, 어깨는 떡 벌어졌고, 허리는 잘록했고, 걷어올린 팔뚝은 구릿빛 근육에 덮여 있었다. 내 생전 그렇게 외모에 신경 쓴 일은 두 번 다시없다.
문산초등학교 교정엔 푸라타나스 아래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작난감처럼 작게 느껴지던 아이들 철봉 옆에서 나는 하루 종일 화랑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이윽고 하학을 알리는 종이 딸랑딸랑 울리고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함께 퇴근하는 혜정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혜정이는 '파계(破戒)'란 영화에 나오는 오도리 햅번 같았다. 수녀처럼 맑고 신성한 모습이라 곁의 촌스러운 다른 선생님과 전혀 달랐다. 그때 닦아가서 말을 걸었어야 했는데,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이들과 다른 선생님이 옆에 있는데서 그러면 혜정이 품위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래 코스모스 하늘대는 신작로 길 따라가서 칙칙폭폭 매캐한 석탄 연기 품고 들어온 기차에 혜정이가 몸을 싣자 나도 몸을 실었다.
차 안은 '오징어 땅콩이요!' '석간신문이요!' 행상들 소리 요란했고, 사실 이런 데서 통학생들은 여학생에게 편지를 전달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 한 것이, 중인환시 속에서 여선생에게 수작을 건네는 건 여성의 품위를 해친다고 생각했다. 그래 기차가 주약동 터널 안에 들어갔을 때를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말을 건네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기차가 어둠 속을 지나갈 때는 나는 시간만 재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차가 쏜살같이 터널을 지나갔고 나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나는 대학 땐 미식축구 선수였고, 입대 후엔 하이 에리어 부대 사창가 깡패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랴. 차가 진주역에 닿자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남자 사회에선 맹견 같던 내가, 혜정이 앞에만 가면 작아지는 그것이 문제였다. 지극했기에 말 못한 그것이 나의 비극이다. 당시 나에게 수소탄 같은 어떤 큰 충격 가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그건 어떤 물리적 외부의 힘이 아니라 가냘픈 수선화 같은 혜정이란 뇌관이었다. 신(神)은 내 몸 어딘가에 폭발을 일으키는 미묘한 장치를 심어놓았으니, 그 뇌관이 바로 혜정이었다.
진주역 광장엔 승객 마중 나온 가족들과 여인숙 호객꾼들로 혼잡했다. 거길 지나가면 말을 걸기가 어려워지는데, 거기서도 나는 햄릿이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세요.' 그 말 한 마듸 할 용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그런데 그때 이런 답답한 청년에게 신이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망설이면서 내 자신에 대해 한없이 원망스럽던 생각을 하던 그때, 혜정이가 개찰구와 전혀 반대방향인 들판 쪽으로 걸어 나갔다. 혜정이는 아마 진작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 같다. 수업 시간 내내 운동장에서 자기를 기다리던 나를, 기차 안에서 옆에 와서 안절부절못하던 그 군인이 누군지 혜정이는 알았을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밤마다 자기 집 앞에 와서 '불 밝던 창'을 부르고 '러브미 텐더'를 불렀던 그, 그가 K대 진학한 동창인 나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기차에서 내린 혜정이가 개찰구와 반대방향으로 나간 그쪽은 들판이다. 다니는 사람이 없고, 노란 벼이삭이 늘어진 논길엔 메뚜기가 툭툭 튀는 길이다. 대지엔 감미로운 바람이 불고 산허리에는 황혼빛 노을이 짙어가고, 산기슭 외딴집 굴뚝에선 밥 짓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벼가 익어가는 논길을 걸어가는 혜정이 모습은 밀레의 그림 '만종' 같았다. 이제 소녀 시대 끝난 혜정이는 사범 학생 시절의 순결하던 모습을 벗고 숙녀티가 배이고 있었다. 노을은 혜정이의 머릿결과 노란 벼이삭을 비치고 있었다. 거기서도 나는 차마 혜정이 곁에 닥아서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뒤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때 혜정이가 한 지점에서 멈춰 섰다. 다가와서 뭔가 말을 해보라는 눈치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그 순간 내 몸을 뒤덮은 파도처럼 거대한 기쁨과 물결이다. 그런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의 파도가 지나가자 그다음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발이 허공을 밟은 듯 휘청거리고, 땅에서 강력한 지남철이 당기는 듯 그 자리에 못 박혀버렸다. 전신은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렸고, 입속의 침은 마르고, 가슴은 쿵당쿵당 뛰었다. 혜정이에게 뭔가 말을 던져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목젖이 말라 마른침을 삼켜도 입에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내 생전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는 다만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혜정이가 들을까 오히려 그것만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혜정이를 만나기 전에 준비를 했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서 한 말,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한 말, 제롬이 마들렌에게 한 말을 미리 복습했었다. 그러나 다 무슨 소용이랴. 나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속에서 혜정이는 처음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더니 끝내 먼 동네 불빛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 가을 어둠 속에 밀레의 '만종'처럼 혜정이가 고개 숙이고 서있던 시간이 몇 초인지 모르겠고, 혜정이와 같이 들길을 걸은 시간이 몇 분인지 모르겠다. 좌우간 내 인생에서 가장 황홀하던 그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고, 주변은 곧 어둠에 덮이고, 먼 동네 등불은 별처럼 깜박이기 시작했다. 나는 샤롯데에게 절교 선언 당한 베르테르처럼 절망한 채, '모든 게 끝났다'는 허망을 느끼면서 장승처럼 어둠 속에 언제까지 서있었다.
이렇게 나의 첫사랑은 끝났고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는 유성에서 날아온 요정이었을까. 한 여름밤 꿈이었을까. 그러나 손자까지 둔 지금 이 나이에도, 내 가슴속에는 황혼의 들판과, 어둠 속에 깜빡이던 마을의 등불과, 고개 숙이고 서있던 한 소녀의 모습이 천 권의 서사시보다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