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3. 24
역대 최단명 장관 기록은 김대중 정부 시절 법무장관 A씨가 갖고 있다. 임명 통보 뒤 대통령을 향해 충성 맹세 글을 썼는데 직원 실수로 청와대가 아니라 기자실 팩스로 들어갔다. “가문의 영광인 중책을 맡겨주신 태산 같은 성은에 감사” “목숨을 바칠 각오로 충성”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하겠다”. 그는 임명 43시간 만에 물러났다. 이후 ‘가문의 영광’이란 단어가 유행했다.
▶ 노무현 정부 때는 첫 여성 법무장관 강금실씨 일거수일투족이 눈길을 끌었다. 국회에서 의원들을 향해 “코미디야” 라고 소근댄 게 카메라에 잡혀 사과도 했다. 춤추는 법무장관으로도 유명했다. 나름 인기가 있어 여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도 했다. 지금까지 법무장관이 60여명 있었지만 이런 몇몇을 제외하곤 국민은 이름조차 기억 못한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유독 이 정부 법무장관들은 예외다.
▶ 조국 전 장관은 내로남불의 ‘끝판왕'으로서 ‘조로남불'이란 말까지 생겼다. 자신의 출생연도부터 딸의 생일, 딸의 출생 신고자까지 거짓말 의혹이 제기됐다. 심지어 키도 다르게 적었다. “사모펀드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거짓말로 드러났다. 아내가 검찰 조사를 받던 한밤중 자신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세 번 바꿨다. 비장한 얼굴로 법무부 청사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자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큰소리치고 있다.
▶ 추미애 장관은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했다”는 왕조시대 어투를 사용하며 등장했다. 아들 군 휴가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 의원을 향해 “소설 쓰시네”라고 했다. 휴가 중 불교 사찰을 찾아 ‘번뇌를 끊는다’는 말과 함께 뒷모습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보좌진을 사찰까지 데리고 가 사진을 찍게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면서 “여성 장관에 대한 언론의 관음증이 심각하다”고 했다.
▶ 박범계 장관이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수사 기록 6600쪽을 이틀 만에 읽었다며 사진까지 찍어 올렸다. “검찰 간부들은 왜 안 읽냐”고도 했다. 이 정도 분량이면 보통 판사들은 읽는데 열흘 이상 걸린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김일성이 백두산에서 맨손으로 호랑이 때려잡았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법무장관 코미디 시즌3이라고 할까. 박 장관 독서 능력이 논란이 되자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 책을 모두 읽었다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다시 화제가 됐다. 기행 법무장관이 잇달아 나오는 것은 대통령 불법에 대한 수사를 막아줄 방패 역할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