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행동학자 조너선 밸컴은 자신의 책 '물고기는 알고 있다'에서 "물고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인간과 닮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연구자들은 “사람의 고기잡는 법이 물고기가 진화를 거치며 터득한 포식자 피하는 법을 무력화시켰다”라고 밝혔다. 크기로 포식자를 알아보는 법, 포식자 감지 능력, 포식자 학습법은 어구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 결과 물속에서는 똑똑한 물고기이지만 사람의 어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먼저, 바다에서 포식자를 피하는 첫째 금언은 “큰 녀석을 조심하라”이다. 물속에서 죽은 생물은 가라앉는다. 포식자는 먹이를 잃지 않기 위해 통째로 삼키는 습성을 갖게 됐다. 통째로 삼키려면 입과 몸집이 커야 한다. 자기보다 큰 상대를 피하는 것은 피식자의 중요한 회피법이다. 닥치는 대로 먹어 몸을 빨리 키우는 쪽이 유리하다. 그러나 낚시는 크지 않은 데다 미끼로 위장까지 하여 물고기의 첫 번째 방어를 간단히 허문다.
감각을 통해 포식자를 감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포식 물고기는 먹이를 정확히 타격하기 위해 양안시를 갖췄고 눈이 얼굴 앞쪽에 모여있다. 초식 어종의 눈이 양옆에 자리 잡아 광각으로 포식자를 경계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물이 흐리거나 복잡한 지형에서는 후각이 중요하다. 포식자의 냄
새나 부상한 동료가 풍기는 냄새는 유력한 경계 단서다.
포식자의 배설물 냄새는 그들의 소굴이라는 표식이다. 이런 냄새가 나면 먹이 찾기나 짝짓기 활동을 멈추고 은신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런 단서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숨어 있는 포식자다. 그물, 낚시, 함정은 원격으로 설치된다. 그물은 물고기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함정은 피난처를 흉내 낸다. 아무런 냄새도 소리도 내지 않는다. 어떤 포식자도 이렇게 접근하지 않는다.
경험을 통해 포식자의 습성을 배우고 그 내용을 동료에게 전파하는 것은 물고기가 천적을 피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대개 경험 없고 작은 어린 물고기가 포식자의 밥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위험을 배우려면 공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상업 어구는 탈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효율적이다. 저인망 등에서 빠져나오더라도 사망률이 워낙 높아 학습이 전파되기 힘들다. 잡은 물고기를 다시 놓아주는 '캐치 앤 릴리스' 낚시를 하는 작은 호수 정도가 유일한 예외다.
학습이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미국 랍스터의 90% 이상은 붙잡히기 전 한 번 이상 함정에 들어왔다가 무사히 나간 개체인 것으로 밝혀졌다. 함정 어구가 규제 크기 이하의 생물에게 ‘안전하다'라는 학습을 한 셈이다.
연구자들은 “인간은 물고기가 포식 위험에 대응해 진화시킨 모든 방어 수단을 무력화한 유일한 포식자" 라고 했다.
출처: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