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 사람의 길은 하늘의 길에 따르는 것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1. 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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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사람의 길은 하늘의 길에 따르는 것
그와 또 다른 길이 있다. 불교나 유교, 도교 등 동양 사상에서 공통적인 이념은 도(道)라고 부르는 길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심성이나 행위를 도의 또는 도덕이라고 하는데, 그 모든 것은 길로 귀추되며 그 길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왕도정치 또는 공맹지도(孔孟之道) 등의 말이나 군자대로행, 즉 ‘왕도(王道)는 치도(治道)’라는 말은 모두가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데서 비롯한 말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마라’는 말은 ‘정도(正道)에 벗어나는 일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미로 쓰이면서 오랜 세월을 두고 변하지 않는 진리인데도, 길이 아닌 길을 가고 말이 아닌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세상은 항상 시끄럽기 이를 데 없다.
그렇듯 길은 도(道)다. 길이 달라졌다는 것은 도가 달라졌다는 말이다. 『중용』에서는 “도란 잠시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라 했고 『맹자』에서는 “도는 가까운 곳에 있는데 사람들은 먼 데서 찾는다”라고 하였으며, 『장자』에서는 “도는 곧 진리이고 세상의 이치다”라고 하였다. 『한비자』에 따르면 도란 만물이 그렇게 되어 있음을 말하는 근본이고, 『공자』에서는 “사람의 길은 하늘의 길에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임금이 임금답고 스승이 스승다울 때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자식이 자식다우면 사람의 길을 올바르게 걸어가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늘의 길도 지키는 것으로 보았다. 덧붙여 『공자』에서는 “군자는 바람[풍(風)]이며 소인은 풀[초(草)]”이라며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단테도 『신곡』의 서두에서 “인생의 나그네 길, 반 고비에서 눈을 떠보니, 나는 어느새 길을 벗어나 캄캄한 숲 속을 헤매고 있었네”라며 얘기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도 “산촌에 눈이 오니 들길이 묻혔세라. 시비를 열지 마라. 날 찾을 이 누구 있으리”라면서 길을 가는 나그네의 외로운 심사를 노래했고, 에라스무스는 “좀 더 삶에서 중요한 것은 도처에 거기에 있다”라고 말했으며, 니체는 “가장 중대한 것은 길 위에 있다”라면서 사람의 일생을 매순간 영원처럼 소중한 길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도란 인의(仁義)와 덕(德)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도가 달라졌다. 도의 근본과 방법이 모두 옛날과 다르다. 그러니 길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주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도는 세상만물 어느 때나 있지 않은 때가 없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그 도는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가 있다고 스스로 믿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다.
몇 년 전이었다. 원주에서 문상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영동고속도로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든 줄 알았는데 갈수록 이정표가 서울에 가까워오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우리가 중부고속도로에 접어드는 호법분기점에서 길을 잘못 들어 그대로 서울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광주의 천진암 가는 곳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온 적이 있는데, 길은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는지 모르고, 결국 죽는 날까지 미로를 헤매다 영원이라는 세계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도로의 교향곡』을 쓴 슈라이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도로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도로 위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도로는 끝이 없는 무인지경(無人之境)인 동시에 모든 사람의 공유물이고, 어디에서 멈추는 일도 없으며 어디로나 통한다. 장례 행렬도 결혼식 행렬도 같은 도로 위를 거쳐서 간다. 성직자가 걸어가며 내는 먼지는 바람난 처녀의 하이힐 위에 떨어진다.” 그의 말은 도로의 공유성과 무차별성을 있는 그대로 강조한 말이다.
도로와 숲길
슈라이버는 『도로의 교향곡』에서 “도로는 끝이 없는 무인지경인 동시에 모든 사람의 공유물이고, 어디에서 멈추는 일도 없으며 어디로나 통한다”라고 하였다.
여암(旅庵) 신경준은 그의 저서 『도로고(道路考)』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는 인(仁)은 집 안을 편안케 하고 의(義)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으니, 집과 길은 그 중요함이 같다고 하겠다. 길은 원래 주인이 없고 오직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제각각 저마다의 길이 예정되어 있다. 누구나 혼자서 가야 하는 숙명의 길이 있다. 그 길을 제대로 찾아서 가는 사람들은 보편적이고 타당한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성공했다고 하고, 헤매고 헤매는 사람은 실패했다고 치부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조한다는 것은 불행한 것들 사이로 자신의 길을 그어 나가는 것이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창조자는 유랑자”라고. 이렇듯 길은 인류가 출현하면서부터 비롯하였고, 사람의 역사와 분리할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이 길 그리고 오늘날의 교통 또는 교역으로 표현되는 길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언제부터 비롯되었을까?
왕도는 치도 옛부터 왕도는 치도이며 인도라고 했는데 이는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데에서 비롯된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나라와 인민을 부강하게 하고 평안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다스림의 길이 곧 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였던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람의 길은 하늘의 길에 따르는 것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신정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