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역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해설사는 별도로 국가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라 해마다 보수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올해도 8월19일에 이론교육이 있어서 참석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는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피난하였습니다. 강화에는 원손, 세자빈, 왕자들이 피난하러 왔습니다. 나는 강화성이 함락되었으니 남한산성에 피난한 인조가 포기하여 삼전도까지 내려와 청 태종에게 항복하였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나오신 강사님은 각종 옛 서적을 자세히 연구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원래 조선은 청군이 조선에 공격해왔을 때 항복의 의사를 표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청은 그것을 받아주지 않고 인조를 남한산성에서 끌어내기를 원했다 합니다. 그러나 인조가 산성에서 안 나오니 강화성을 공격하였다 합니다.
강화성(江華城)이 함락되었다 소식을 받아도 인조는 남한산성을 나가지 않았다 합니다. 자신을 인질로 청에 연행(連行)하지 않겠다는 확약(確約)을 받아서야 겨우 남한산성을 나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현세자, 봉림대군(효종) 등 자식들이 인질로 청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임금으로서 아버지로서 인조의 언행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졌습니다.
왕족을 모시고 강화에 온 대신 김상용(金尙容)도 강화가 함락하자 분하여 강화남문에서 화약으로 자결을 하였다고 배웠으니 나는 김상용을 “충신”으로 소개해왔습니다. 청군이 강화를 공격하려 돌아오자 강화를 지켜야 하는 대신들(사령관들)은 왕족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늘 그 대신들과 비교하여 김상용은 의인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사님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셨습니다.
김상용은 자결할 때 남문에서 화약으로 순절했는데 아직 청군과 제대로 싸우지도 않는데. 화약을 폭발을 시켜 자결했습니다. 아마 강화성을 지키는 사령관들이 도망가니 포기하여 자결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결할 때 화약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화약이 무기인데 싸우기 전에 비싼 무기를 소비해버렸고, 폭발로 인내 주변에 있던 백성도 함께 죽였고, 강화의 현관 역할을 하는 남문을 파괴시키니 마치 청군 입성을 도와준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강사님의 말에 다르면 보통 자결을 할 때, 남자는 목을 매고 여성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 합니다. 김상용은 왜 화약으로 자결을 하는지 의문이라 하셨습니다.
달리는 차에 몸을 던지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은 죽으면 그만이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과 사체를 지우는 사람 등 자신으로 인내 피해자가 나온다는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용흥궁공원에 김상용 순절비가 있지만, 진짜 “순절”인지 “홧김에” 행동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자결 혹은 순절과 자살은 같은 죽음이라 해도 심정세계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강화가 보장지처(保障之處)라 부르는데 강사님은 그 깊은 의미를 알려주셨습니다. 원래 보장이란 군사용어고 보전할 보(保)자, 막을 장(障)자를 씁니다. 즉 침략자를 막아 나라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한양이 공격을 받을 때 강화에 임금을 모시고 적을 막아내고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라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니 보장처가 함락한다는 것은 나라가 멸망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강화는 마지막 보루이자 절대 무너지면 안될 곳입니다.
조선시대 왜구가 진략할 때는 남한산성, 북적이 진략할 때는 강화도에 피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합니다. 지금 남북이 분단되어 북의 위협을 받을 때 (영적으로) 강화가 천일국을 지키는 보장지처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