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학습자로 살자 (‘선인들의 공부법‘을 읽고)
- 우병녀(월요일 오전반 13주차)-
지난 8월 말로 퇴직을 하고 난 뒤, 카카오톡 프로필에 나는 “평생학습자”란 글을 게시하고 9월 로고스 글쓰기 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코리아 퀼트 학원에 실용패션 과정에 등록을 하고, 2주에 한 번씩 하는 그림책 읽기 모임에도 가입을 했다. 그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늘 책을 싸들고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교수법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고 했지만, 이제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무언가를 배우면서 자란다. 걸음마를 배우고, 숟가락질을 배우고, 말을 배우고, 예절을 배우고,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어린이집엘 가고, 유치원을 가고, 나아가 차면 학교엘 간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놀이가 곧 공부이고, 놀면서 배운다. 그러다 학교에 가면서부터 아이들은 공부라는 이름으로 말을 배우고 수를 배우고 율동을 배우는데 공부는 놀이가 되지 못하나보다. 학교에 가는 순간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부를 싫어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은 공부를 통해 서열화하고 주입하려는 우리 교육의 병폐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선인들의 공부법’을 편역한 박희병은 그의 초판 서문에서 ‘‘공부’란 특별한 것이거나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해나가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밝히며, 인간과 우주의 도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라고 하고 있다. 또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식으로 이 유한한 생을 살아야 옳은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공부법이라고 하면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인들 중에서 학문적으로 큰 성취를 보여준 사람들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관성 없이 각 학자들의 학문과 관련된 글만 발췌 정리한 글들이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으나 왠지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하여 나름대로 선인들의 공부법을 대략 공부의 목적, 방법과 태도, 실패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공부의 목적
우리는 늘 열심히 공부해야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공부해야 할까? 그것을 선인들의 말에서 몇 가지로 추려보고자 한다.
우선은 공부는 즐거운 일이다. 많은 학생들이 연필을 던지며 원성을 높이겠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진정한 공부는 즐거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을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배우는 즐거움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밤을 새면서 글을 쓰고, 허리가 아픈 데도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나도 배우는 즐거움에 기꺼이 여러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또한 공부는 자신을 향상시킨다. 정자는 군자에게 공부보다 더 자기를 향상시키는 방법은 없다고 하고, 서경덕은 공부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며, 이이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공부는 자신을 자라게 만들고 이전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나아가 배움은 자신의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고 인격을 완성할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야할 이유이다.
그리고 공부는 쓰임새가 있다. 공부의 사전적 의미는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힘이라고 정의 되어있다. 우리가 공부하는 많은 것들은 실제 쓸모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이 학문적 기초가 된다. 뿐만 아니라 실제 쓸모가 있어서 공부하기도 한다. 정자는 ‘쓸모가 없다면 학문은 해서 무엇하겠는가’라고 까지 말하고 있고, 이익 이후 실학파들도 실용적인 학문을 강조하고 있고, 학문이란 모름지기 백성의 생활도구를 편리하게 하여 그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공부는 세상을 이롭게 한다. 박지원은 ‘선비가 독서를 하면 그 은택이 천하에 미치고 그 공덕이 만세에까지 전해진다.’고 하고 있고, 정약용이 그토록 비장하게 학문에 몰두한 것도 우국애민의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이처럼 공부는 세상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문명의 발전도 앞선 이들의 공부의 덕분이 아니겠는가?
2. 공부의 방법과 자세
공부의 방법과 자세에 대해서는 각 학자마다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나 공통적인 몇 가지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많은 학자들이 중요시 여긴 공부법 중 하나는 자득하기였다. 왕양명은 스스로 깨닫는 것은 일당백의 공부가 된다고 한다. 공부는 마땅히 스스로 해야 하니 자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요즈음의 공부법의 스스로 학습법 쯤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많은 학자들이 강조한 것 중 하나가 지행합일이었다. 앎은 곧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고, 학문이 단순히 지식만 추구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왕양명은 주자학의 공리공담의 학문을 비판하면서 실천을 강조하는 학문을 구상하였다. 조선의 조식도 공부란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며, 공부하여 깨달은 이치를 반드시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외도 이익이나 홍대용과 같은 학자들도 앎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인상적인 공부법 중의 하나는 질문하기였다. 장자는 ‘의문이 없다면 충실히 공부한 게 아니다’라고 하고 있고, 홍대용은 큰 의심이 없는 자는 큰 깨달음이 없다고 하고 있다. 박지원은 모르는 게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라도 물어야 옳다고 하고, 이익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려면 묻기를 좋아해야한다고 말한다. 요즈음 학습법 중 핫한 방법 중 하나가 ‘질문하기’이다. 공부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나보다.
그 외에도 신중하게 생각하라, 좋아하라, 비근한 것부터 공부하라, 중단하지 말고 쉼 없이 공부하라, 산만한 마음은 수습하라, 중요한 것 먼저 하라, 지극한 정성과 인내로 공부하라, 책을 숙독하라, 정밀하게 생각하라 등 다양한 방법과 태도가 소개되고 있다.
3. 실패 요인
이런 중요한 공부를 실패하는 요인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선인들이 공부에서 금해야 할 것들로 지목한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은 출세의 목적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학문을 하면서도 이름을 탐하는 것, 출세할 목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된다고 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도 공부가 시험을 위한, 성적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공부가 재미없는 것이 아닐까?
다음은 암기 위주의 공부와 박식도 잘못된 공부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다고 하고 있고, 많은 학자들이 이치를 궁리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암기하거나 얕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태도이다.
또한 배우고자 하면서 부지런히 힘쓰지 않고 게으른 마음과 경박함도 경계해야 할 태도이다. 학문에 왕도는 없다.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있다. 이이는 진실함과 성실함을 학문의 으뜸으로 삼았는데 이는 ‘마음을 진실하게 가지고 힘써 공부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감이 지나친 교만과 인색도 학문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공자는 ‘그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만일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밖의 것은 아예 볼 것도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홍대용도 ’학자의 병통 가운데 자신감이 지나친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교만과 인색도 학문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그 외에도 학문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이이는 오래된 습관 8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4. 배워서 남주자
30년 공부 끝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930번째 변호사가 된 한동일은 ‘한동일의 공부법’ 서문에서 ‘숨 쉬는 동안 나는 공부한다.’라고 하고 있다. 그도 역시 평생학습자를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어떤 공부여도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기 자신을 격려하며 앎의 기쁨을 깨달아가는 공부가 진짜 공부이다.’라고 하면서 ‘현실이 가져다 준 통증으로 인해 자주 아프고 힘들더라도 배움과 깨달음의 희열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그 아픔을 이기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그 배움을 가치 있게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한 때 내가 좋아했던 말 중의 하나가 ‘배워서 남 주자’였다. 배워서 내가 좋은 대학가고, 좋은 곳에 취직하고, 돈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 배움이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평생학습자’로 살아가기로 작정한 나에게 이 ‘선인들의 공부법’은 공부가 무엇인지, 공부의 목적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나의 배움이 나의 개인의 소양을 쌓는 것을 넘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진실하고 성실한 태도로 나는 오늘도 글쓰기 수업에 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