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제가 원하는 어떤 순간이 있어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우리만 아는 그런 세계.
이번 생에 그 사람이 내 사람이라서 거기에 존재하는
비밀스러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거죠.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프란시스 하」 중에서
어두운 밤이다. 밤의 노래를 듣고 있다. 노래는 침묵으로부터 발아한다. 여섯 줄 혹은 열두 줄의 현이 서로의 몸에 서로의 음을 덧입히고 있다. 현의 울림이 밤의 그림자 위로 말하지 못한 말들의 그물을 드리우고 있다 우리만 아는 세계 속에서 살자. 목구멍 속으로 삼킨 말들이 음악이 되는 세계에서 살자. 쓰이지 않은 말들이 그림으로 펼쳐지는 세계에서 살자. 들리지 않는 말들이 어김없이 들려오는 밤이다.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기 위해서 너와 나는 만난다. 그리고. 그런 뒤. 무언가 온전히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채로 너와 나는 헤어 진다. 떨어져 나온 자리에서 간신히 피어나는 꽃.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작은 틈새로부터 솟아오르는. 셀 수 없는 후회와 돌이킬 수 없는 미련 속에서. 기도는 작은 틈새로 스며들고. 음악은 눈물처럼 쏟아지고. 색은 아주 작은 물그릇에 담긴 물처럼 흔들리고. 마음은 꿈의 언덕을 뛰어오르듯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고. 어둠은 다시 어떤 아침으로부터 시작되어. 어둠이 밥을 먹고 어둠이 물을 먹고 어둠이 눕는 것으로 어떤 아침이 시작되고. 들리지 않은 음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물결을 하나 둘 하나 둘 헤아려볼 때. 공명하며 흔들리는 음과 음들에 조응하는. 길고 가는 통로와도 같은 마음과 마음으로 흐르는. 옮겨 적은 음들의 꼭짓점을 뭉개며 나아가는 길들이다. 주저하며 망설이며 나아가듯 되돌아가는 길들이다. 익숙하지 않은 배웅처럼 걸음과 걸음 사이에 문득문득 슬픔이 끼어들면서. 너를 너로서. 나를 나로서. 있는 그대로 그 자리로부터 울리면서 물들어가는. 어두운 밤이다. 밤의 노래를 듣고 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현대문학,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