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는 광주를 사랑해요?'
아들아이가 느닷없이 물어온다.
"그래....나는 광주에 사니까 광주를 사랑하지"
무심코 한 내 대답에 아들아이는 또 묻는다.
"그러면....광주에 사는 사람들만 광주를 사랑해요? 서울 할머니는 서울만 사랑해요?
제딴에는 제법 심각하게 물어 오지만 난 순간 말문이 막혀서 피식....웃고 말았다.
아마도 광주민주화항쟁 21주년을 기념하여 학교에서 숙제를 내준게....틀림없지....싶다.
언제부터였을까...방송에서 가끔씩 "광주, 광주, 우리는 광주를 사랑합니다" 라는 아나운서의 광주사랑 멘트가 흘러 나왔다. 자주 듣는 말이지만 들을 때마다 코끝이 찡.... 함을 느긴다.
유난히도 맛있게 익은 열무김치에 참기름과 고추장으로 버무린 비빔밥을 열심히 먹고 있던 어느 봄날, 대학 1학년 이었던 작은언니가 "아버지, 며칠있으면...D-DAY 라는데....정확히 뭘 하자는 거예요?" 하고 여쭈었을 때....아버지께서는 곧장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한참 후 아버지께서는 언니와 뭔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셨지만....시큼한 열무김치 맛에 취해 있던 내게는 전혀 관심 밖이었다.
21년 전 그 해 5월은, 여느 봄과 다름없이 푸르기만한 초목들이 곳곳에서 퍼져 울리는 젊은 함성과 아우성으로 유난히도 몸살을 앓았다. 16세 소녀가 검은 안경테 너머로 보았던 광주는 참으로 무서운 중병을 앓고 있었다.
그랬다....내가 보았던 광주는 그렇게 앓고만 있었다.
그 이틀 뒤였던가. 광주시내 모든 학교에는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다. 미처 수업을 끝내지 못하고 하교를 하고 있을 때....지금은 커다란 쇼핑센터가 들어선 어느 극장 앞에서 많은 무리들을 보았다.대형 태극기를 들고서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는 무리들 중엔 넥타이를 젊잖게 맨 신사분들도 있었고, 대학생 언니....오빠들과....아주머니들도 있었다.
멈춰선 버스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혹시 대학생이던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있지 않을까....하고 눈을 크게 뜨고서 한 사람, 한 사람....놓치지 않고 살펴 보았다.
비록 언니들의 모습을 찾아 보지도 못하고 버스가 떠났지만....내 가슴은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아니....가슴이 뛰었는지....두근거렸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옆에 있던 친구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했을 때 친구가 "목소리가 왜 그래?" 하고 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온 식구가 기침을 하며 눈물을 찔끔거리는 이유가 바로 최루가스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캄캄한 밤을 며칠인가 보냈었고, 낮에는 개미 한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은 쥐죽은 듯 조용한 동네 길목을 대문 틈새로 내다보면 하얀 마스크를 하고서 총을 메고 지나가는 남자들도 있었다. 그 남자들이 '시민군' 이라는 생소한 단어로 알 수 있었던 건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등교 하고서였다. 학교에는 온통 군인들 이야기와 옆집 사는 대학생 오빠가 다쳤다는 이야기,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은 이층집 하숙생 이야기들로 가득 찼다.
매일....매일이....그랬다.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 나가듯이 화젯거리가 풍부했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쉬는 시간만 되면 그 애 곁으로 몰려가 눈망울을 굴렸다. 아직은 여고 1학년....어리기만 한 우리 귀에 들려오는 친구의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 했다.
그 애의 입에서는 언니들의 책장에서 얼핏얼핏 스쳤던 헤겔이나 칼 마르크스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왔다.
어느 날 무심히 보았던 친구의 손에는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자의 죽음' 이라는 고딕체 글씨가 유난히도 선명하게 눈에 띄는 얄팍한 책도 들려 있었다.
그리고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끝났지만....친구는 학교에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5.18 에 죽은 오빠 때문에 어디론가 떠났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모두들 그 친구를 이야기 했지만....그 친구를 그리워 했지만.... 그 친구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서 우리모두에게....그 애의 존재는 까맣게 잊혀져 가고 있었다.
내가 그 친구를 다시 떠올렸던 것은 대학 입학 후 선배들의 입에서 헤겔이니....객관적 관념론이니....절대정신을 물질로 귀한 시킨 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니....하는 머리 복잡한 말들을 빌보드 챠트 상위권에 오르내리는 팝송을 듣는 횟 수 보다도 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기 시작 하면서 부터였다.
하지만... 그 친구가 떠오를 때마다 참 일찍이도 뭔가를 알았었나 보구나.... 그 친구는 그런것들을 어떻게 해석 했었을까.....하는 생각만 할 수 있었을 뿐.... 찾아 볼 수도 없었고, 만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선명하게 기억 되는 건 조용하고 침착했지만 야무지게 움직이던 그녀의 빨간 입술이었다.
그때의 내 나이가 열 여섯.... 그때부터 지금까지 흐는 시간이 21년이 지났지만....광주를 사랑 한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나올 때마다 조용한 동네 길목을 대문 틈새로 내다보면서 보았던 하얀 마스크의 시민군과 어느 날 홀연히 우리 곁에서 사라져버린 그 친구가 떠오른다.
그러면서....코끝이 찡....해 오는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망월동을 가본지도 벌써 일년이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의 현장학습 숙제나....보고서 숙제를 위해서 찾을 뿐인 망월동....
그러고보니 그 많은 아픔을 간직한 망월동을 내 아이들과 나만의 시간으로 찾아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광주를 사랑하자는 아나운서의 맨트 앞에서는 쉽사리 나올 것 같지 않던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만의 시간으로 찾아보면....왠지.... 동화를 들려 주듯이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들이 나올 것만 같다.
이번 주말에는 김밥이라도 싸들고 망월동을 찾아야겠다.
한없이....따뜻한 바람과....푸른 초목들.... 그리고 저 하늘을 벗삼아서....아이들과 함께....많은 이야기를 하고 와야지....
그리고 가슴속에는 그 시민군과 그 친구를 잊지 않고 추억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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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항쟁 21주년을 맞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