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68호
우산
원도이
우산은 슬픈 버릇이다
신발장 안에서
우산꽂이에서
날이 맑아서 비가 와서
누군가 문을 열어서
그냥 닫아서
슬픈 버릇이다
캄캄한 집이
캄캄한 집에
캄캄하게 접혀 있어서
슬픈 버릇이다
이따금 외출에서
모처럼 펼쳐진 몸이
흠뻑 젖을 때
야호, 소리치고 싶은데
왜 나는 슬픈 버릇을 펴나
왜 우산은 슬픈 버릇을 접나
펼치면 온몸이
젖어 드는 쾌감 속에서
우산은 2배속으로 펴지고
2배속으로 접힌다
슬픈 건 버릇이다
슬프지 않은 것이 버릇인 것처럼
비가 온다
- 『토마토 파르티잔』(달을쏘다, 2024)
*
이것은 애인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다 이것은 토마토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다 이것은 사과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다 이것은 토마토와 사과와 오디와 키위가 익어가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다 이것은 아직 오지 않은 애인과 토마토와 사과와 오디와 키위에 관한 이야기다...... 원도이 시집 『토마토 파르티잔』은 상상이 확장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나,를 실험하는 듯합니다. 물컹해지고 말랑말랑해진 다양한 사물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시집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 「우산」도 그렇지요.
"우산은 슬픈 버릇이다"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비가 온다"는 문장으로 끝나는 짧은 시입니다.
우산이 슬픈 버릇이라는 것을 알아챌 때까지
시인은
얼마나 오랫동안 우산을 응시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우산을 상상했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비를 막아주던 우산이었는데
언제부터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슬픈 버릇이 되었을까요?
아니 어쩌면 슬프지 않은 버릇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슬픈 눈이....슬프지 않은 눈이....
비처럼 음악처럼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2024. 12. 23.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