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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병풍(神仙圖屛風), 1918년, 김은호(金殷鎬, 1892~1979),
비단에 채색, 12폭 병풍, 162.3×36.6cm, 창덕6559, 국립고궁박물관.
각 폭의 화면마다 길상적인 의미를 지닌 여러 신선들을 고사(故事)를 인용하여 묘사하였다. 각 폭에 등장하는 신선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폭 황초평(黃初平), 제2폭 종리권(鐘離權), 제3폭 동방삭(東方朔), 제4폭 금고선인(琴高仙人), 제5폭 갈홍(葛洪), 제6폭 남채화(藍采和) · 유해섬(劉海蟾), 제7폭 농옥(弄玉) · 소사(簫史), 제8폭 적송자(赤松子) · 황안(黃安), 제9폭 장과로(張果老), 제10폭 이소군(李少君) · 안기생(安期生), 제11폭 노자(老子), 제12폭 이철괴(李鐵拐) · 한상자(韓相子)이다. 청말(淸末) 상해(上海) 지역의 화보(畵譜)를 수용하여 강한 설색(設色)과 발묵법(潑墨法)을 사용한 근대도석인물화풍의 특징을 보인다.
제1폭 황초평(黃初平)은 중국 위진시대(魏晉時代) 신선이다. 금화산 석실(金華山 石室)에서 은거하다가 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돌을 보고 소리를 지르면 모두 양(羊)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따라서 그는 막대를 들고 양을 치는 도상으로 등장한다.
제2폭 종리권(鐘離權)은 중국신화에 나오는 도교의 8선 가운데 한 후한 신선이다. 영생을 찾아 속세를 등지고 은둔했으며 술을 잘 마셨다. 배가 불룩 나오고 턱수염이 달렸으며, 말총으로 된 술이 달린 부채를 쥐고 있는 노인으로 묘사된다. 때로는 무사이면서 연금술에 관한 비범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8선 가운데 지위가 가장 높았지만 그가 다른 신선인 이철괴의 금욕주의로 개종함으로써 지위가 낮아졌다고 한다. 그의 다른 이름은 한종리인데, 이로 미루어볼 때 그는 한대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3폭 동방삭(東方朔)은 전한 도사이다.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東方朔) 삼천갑자를 산 동방삭(東方朔). 장수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우리 옛 설화 ‘삼년고개‘는 지역 곳곳서 전래되고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장에 갔다가 고개 넘어 귀가하던 중 잘못 넘어졌다. 그 고개는 넘어지면 삼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제 삼년밖에 못 산다고 식구들 모두 걱정이 태산인데 옆집 총각이 와서 ’한번 더 구르면 삼년 더 살겠네요’ 한다. 옳다구나 여긴 할아버지는 고개에 가서 구르고 또 굴러 오랫동안 살았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어떤 설화에는 할아버지가 구를 때 공중에서 ‘동방삭도 여기서 천 번을 굴렀다’하는 말이 들렸다고 한다. 장수의 상징 동박삭(東方朔)까지 가미되어 삼년고개가 장수고개가 된 셈이다. 개인사나 더 큰 나라의 일도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비관적인 전망만 해서는 제자리걸음 아니면 후퇴가 기다린다. 긍정적인 면을 찾아 앞날을 내다보는 파격도 필요하다.
제4폭 금고선인(琴高仙人)은 중국의 선인(仙人)으로 주대(周代) 조(趙)나라 사람이다. 성은 금(琴), 이름은 고(高)라 한다. 거문고의 명수로서 송나라 강왕(康王)의 사인(舎人)이 되었고 선술(仙術)에 능하였다. 허베이성, 탁군(逐那)주변을 200년간이나 편력하다가 나중 탁수(逐水)에 들어가 용을 잡기도 하였으며 또한 제자와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날짜에 붉은 잉어를 타고 나타났다 한다. 잉어를 올라탄 장면이 그려지며 그 예로는 중국 명대 이재필의 그림(상하이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제5폭 갈홍(葛洪, 283-343)은 중국 동진(東晉) 때의 문학가이자, 도교 이론가·의학가·연단술가(煉丹術家)로, 자는 치천(稚川)이며, 자호는 포박자(抱朴子)이다. 유학에 뜻을 두는 한편으로 신선양생술을 좋아했고, 의학에도 정통했다. 승상(丞相)·사도(司徒) 등을 역임했으며, 민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가, 나중에 자의참군(諮議參軍)으로 전임되었다. 만년에는 연단을 통하여 장수할 생각을 품고 구루령(句漏令)을 자청하여 광주(廣州)로 가서 연단술을 익히면서 계속 저작에 임했다. 저서로는 ‘포박자(抱朴子)’, ‘신선전(神仙傳)’, ‘금궤약방(金匱藥方’,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 등이 있다.
제6폭 남채화(藍采和) · 유해섬(劉海蟾), 남채화(藍采和)는 중국 도교에서 말하는 8선 신들로 그 실체에 관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림으로 나타나는 남채화는 소년이나 젊은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손에 피리 또는 1쌍의 박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때로는 신을 한 짝만 신고 있거나 과일 한 바구니를 더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중국의 전통극에서는 여자옷을 입고 남자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남채화는 술에 취해 민요를 부르며 거리를 걸어다니다가 중국에서 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한다. 남채화가 불렀다는 노래 중 가사 일부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유해섬(劉海蟾) 또는 해섬자(海蟾子)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전조의 유연(劉淵) 및 유현영(劉玄英) 그리고 유총(劉聰) 및 위(魏)시대의 실존 인물과 관련있다고 여겨지는 도교(道敎) 사람으로 전설적인 선인(仙人)으로 일컬어졌다. '초월자'(超越者) 또는 '불멸자'(不滅者)로 언급되는 선인으로 전진교(全眞道)의 오양조사(五陽祖師) 또는 전진오양(全眞五祖)중 한명으로 여겨지기도하며 내단술(内丹術)인 연금술의 대가로 묘사된다. 유해섬(劉海蟾)은 다른 도교 초월자들, 특히 여덟 불멸자(팔선.八仙) 중 두 명인 종리권(鍾離權) 그리고 여동빈(吕洞賓)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전통 예술은 종종 해섬자(海蟾子)를 둥글고 사각형 구멍이있는 동전인 엽전(葉錢)과 신화적인 세 다리가 달린 두꺼비인 삼족섬(三足蟾) 또는 달의 정령인 섬여(蟾蜍)와 함께 표현했다. 현재는 금섬(金蟾) 즉 '돈 두꺼비'라고 불리며 유해섬은 '부'(富)의 화신으로 추앙된다.
제7폭 농옥(弄玉) · 소사(簫史), 농옥(弄玉)은 춘추시대 진목공(秦穆公)의 딸이다. 진목공(秦穆公) 때에 소사(簫史)가 퉁소를 잘 불므로, 그 소리를 듣고 봉황새가 날아 왔다 한다. 목공의 딸 농옥(弄玉)이 소사를 좋아하므로 짝을 지어 주었더니 부부가 봉황을 타고 신선이 되어 갔다 한다.
제8폭 적송자(赤松子) · 황안(黃安), ‘적송자(赤松子)’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고시대의 선인이다. ‘열선전’의 첫머리와 ‘수신기’에서 언급되며, 왕왕 최초의 선인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열선전’에 따르면 적송자는 염제(炎帝) 신농씨 시대의 우사(雨師), 즉 비를 관장하는 신이며 빙옥산(冰玉散)을 복용하는 술법을 알고 있었다. 이 술법을 체득하면 불 속에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데, 적송자는 신농에게 이 술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적송자는 늘 곤륜산에 있는 서왕모의 석실에 머무르며 비바람을 타고 산중을 오갔다. 염제의 막내딸이 적송자를 좇아 수행을 쌓았고 이윽고 선인이 되어 지상을 떠났다. 적송자는 이렇게 자취를 감추었으나 훗날 제곡 고신씨 시대가 되어 다시 나타나 우사가 되었다. 삼황오제 중 하나로 꼽히는 황제(黃帝)에게 가르침을 내린 광성자처럼 적송자 또한 삼황오제 중 하나인 염제에게 가르침을 내렸기 때문에 도교에서는 중요시되는 선인이다. 최초의 선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황안(黃安)’은 이동할 때 석 자 길이의 신령스러운 거북을 타고 다녔다는 신선이다.
제9폭 장과로(張果老)는 팔선(八仙) 중 한 사람으로, 본명은 장과(張果)이다. ‘구당서’, ‘신당서’ 등에 그의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나라 초기에 살았던 실제 인물로 보인다. 그는 불사조의 깃털과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항주(杭州) 중조산에 오랫동안 은거하였는데, 스스로 삼황오제의 요(堯)임금 시대부터 살아서 당시 천여 세가 되었다고 늘 말했다고 한다.
제10폭 이소군(李少君) · 안기생(安期生), 이소군(李少君)은 한무제(BC 156~87년) 시절에 뛰어난 방사가 였다. 귀신을 부리고, 불로장생의 비술이 있다고 하여 제후들이 서로 만나려 재물을 싸들고 찾아왔다. 안기생(安期生)진나라 신선이다.
제11폭 노자(老子)는 춘추시대의 사상가이자 제자백가의 시초격인 인물로, 당대 최초로 사람이 지향해야 하는 바,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道)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 인물이다. 대표 저서로는 ‘도덕경’이 있으며, 이 때문에 도가의 창시자로 불린다. 도교에서는 신격화하여 태상노군이라고 부른다.
노자의 사상은 '백성들을 시켜 억지로 뭘 하려고 하지 말라'는 '무위자연'과, '권력과 재산을 더 가지려고 무리하게 애를 쓰지 말라'는 '공수신퇴'로 요약되는데, 이는 ‘노자 도덕경’이 백성들의 입장에서 쓴 글이 아니라, 권력자의 입장에서 쓴 처세술임을 알 수 있다.
처세술을 요약하자면, '남을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고, 나를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아라'는 뜻이며,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자면 자신의 힘을 '매번' 100% 쓰지는 말라는 것이 된다. 인생의 꼭대기(peak)를 만들어 놓으면 내려갈 일밖에 없으므로, 70~80%의 힘으로 오래가는 것이 인생을 사는 참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니 권력을 잡고 부와 명예를 얻었다 싶으면 자리에서 내려올 줄도 알고, 가진 게 많으면 주변에 적당히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고 노자는 조언한다.
그는 중국에서 우주의 만물에 대해 최초로 생각한 사람으로, 그가 발견한 우주의 진리를 도(道)라고 이름지었다. 이러한 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을 '도교'라 하며, 그는 우주 만물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이치가 '도'라고 설명한다.
제12폭 이철괴(李鐵拐) · 한상자(韓相子). 이철괴(李鐵拐)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8선의 수나라 신선이다. 그는 곡기를 끊고 잠을 자지 않는 고행을 40년 동안 계속했는데, 마침내 스승 노자는 그가 지상으로 돌아가 같은 문중 사람들에게(노자의 성도 역시 이씨임) 세속의 덧없음을 가르쳐도 좋다고 동의했다. 어느 날 하늘의 스승을 방문하고 지상으로 돌아온 이철괴는 그의 육신을 맡았던 제자가 그 육신을 불태워버린 것을 알았다. 세속의 육신을 잃어버린 그는 굶어 죽은 거지의 몸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신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미술작품에서는 철괴(쇠지팡이)를 짚고 호리병을 어깨에 메거나 손에 든 늙은 거지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밤이면 호리병 속에 들어가 잠을 잤고, 그 속에 약을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한상자(韓相子)는 당나라 신선이다. 퉁소를 불고 있거나, 혹은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다. 이름은 상(湘)이고 존칭으로 이름자 뒤에 자(子)를 붙여 한상자라고 한다. 전해내려 오는 기록으로 자(字)는 청부(淸夫)이며, 당나라 때 대문장가이며 유학자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 768~824)의 조카이다.
요지연도병풍(瑤池宴圖屛風), 조선 19세기 전후, 비단에 채색, 156×504cm, 고궁3763, 국립고궁박물관.
18~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요지연도(瑤池宴圖)> 8폭 병풍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요지연도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며, 산수표현, 인물묘사, 색채효과 등에서 현존 요지연도 중 비교적 고식에 속한다.
<요지연도>는 서왕모(西王母)가 주나라 목왕(穆王)을 곤륜산(崑崙山) 요지(瑤池)에 초대하여 연회를 베푸는 장면과 여러 신선들이 바다를 건너 연회 장소로 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요지연도는 중국에서 유래했으며 주로 축수도(祝壽圖)나 반도회도(蟠桃會圖), 즉 서왕모와 목왕의 연회장면만 그려졌으나, 조선에서는 해상군선(海上群仙)의 형식이 결합된 도상이 유행하였다. 왼쪽 세 폭(제6~8폭)은 팔선(八仙)을 비롯한 여러 신선들이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고, 가운데 두 폭(제5·6폭)에는 주요 인물인 서왕모와 목왕이 그려져 있으며, 그 오른쪽 세 폭(제1~3폭)에는 서왕모의 처소가 그려져 있다. 서왕모는 봉황 장식이 달린 오량관(五梁冠)을 썼으며, 목왕은 일월면류관을 쓰고 용포와 방심곡령(方心曲領)을 착용하였다. 여타의 요지연도에는 두 인물의 앞에 찬탁(饌卓)이 놓여 있지만, 이 그림에는 찬탁이 그려지지 않았다. 더불어 바다를 건너오는 신선들은 일반적으로 무리를 짓거나 겹쳐 그려진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 그림에서는 각 신선들이 독립적으로 떨어져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석가(釋迦)와 사천왕(四天王), 보살(菩薩) 등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특이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독특한 구성 때문에 이 그림을 ‘해상군선’이 결합된 초기 단계의 요지연도 도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국가유산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