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삼계 (吳三桂)★
출생 : 1612년
사망 : 1678년 10월 2일
오삼계 장군과 명나라의 멸망
명나라 시절 명장으로 중국 4대 장군에 버금가는 용력과 통솔력을 지녔던 장군이다.
청나라의 침입을 막는 데 앞장 섰으며, 청나라의 입장에서는 공포 그 자체였다.
청나라의 태종이 오삼계의 용력에 반해 귀순을 종용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았다.
이후, 만주 지역을 평정한 청나라 태종이 중원까지 차지하기 위해
14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자, 오삼계 장군은 숭정제 의종의 명을 받아
50만 대군을 이끌고 만리장성의 동쪽 끝에 위치한 산해관으로 떠난다.
1644년, 그 유명한 <이자성의 난>이 일어나 베이징이 함락되었고, 숭정제는 자결하게 된다.
숭정제의 사망소식에 울분을 터뜨린 오삼계는 이자성을 영원한 적으로 두려 하였지만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이자성에게 군사 50만을 이끌고 투항하려 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당시 명나라 최강의 장수였던 오삼계에게는 애첩 진원원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진원원은 당대 제일의 미모를 갖춘 여인으로 오삼계의 총애를 받던 첩이었다.
이 진원원을 이자성의 부장인 유종민이 범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오삼계는 이성을 잃고, 산해관을 활짝 열어
적군인 청나라 군대를 향해 50만 대군을 바치며 투항한다.
결국 여인 때문에 나라를 버린 오삼계는 청군의 선도가 되어 베이징을 탈환하였고
청나라의 중국 본토 진출에 중대한 역할을 함으로써 평서왕에 봉하여졌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당시 오삼계의 애첩인 진원원을 이자성의 부장인
유종민이 취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역사는 다시 쓰였을 것이다.
중국 역사상 4대 장수에 버금가는 용력을 지닌 오삼계였지만
여자로 인해 나라를 버린 불충은 용서받기 힘들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내들의 다툼은 미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불변의 법칙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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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2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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