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주노초 파남보'
'
옛날 울엄마가
연세가 들어서는
분홍색 옷만을 즐겨 입어셨다.
늙으니
화사한 색이 얼굴에 받는다며
옷도 분홍색, 스카프도 분홍색으로~~
푸른색은 얼굴이 푸르딩딩해서 보기싫고
노란색은 얼굴이 누리끼리하게 보여서
아픈사람 같아보여 싫다는 말에
' 노인네 까다롭긴 , 성격도 별나다' 고
딸들끼리 모이면 흉을 보곤 했더니만
내가 늙어보니 이제사
늙은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며칠전 옷가게 앞을 지나다가
생전 처음으로
곱디고운 연분홍색 티 셔츠에
금방이라도 병아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개나리색 얇은 쉐타를 샀다.
지금껏 살아오며
단 한번도 입어보지 않았던
눈으로만 이뿌다고 생각했던 색상이라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눈 질끈 감고 사버렸다.
좋아서 산게 아니라 꼭 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이야기 할머니가 된 이후
아이들을 만나러 유치원 수업을 하러 갈 때
입고 가는 옷이 한복이면 더 좋고
평상복도 아이들 눈에
이뿌고 밝은색 옷으로 입고 갈 것을 권장한다며
한국 국학 진흥원 측에서
작년에는 꽃분홍색 긴 한복조끼를
올핸 또, 계량 한복 한벌을 맞춰 주며
노리개까지 끼워서 보내주었다.
입어보니 " 어메~ 부끄러운거!!! "
도저히 입고 나갈 용기가 나질 않아서
받은 그대로 다시 싸두었다.
어색하고, 불편하고, 쑥스럽고,
내겐 그림에 떡이더라구
"박술녀 한복집"에서 맞춘거라 돈이 제법 들었을텐데
아깝단 생각은 들었지만 입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작년 어느날
유치원을 가면서 내 딴에는 애들 눈높이에 맞춰
이쁜색이라고 생각하고 신경을 쓰서
알록달한 예쁜색상의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갔다.
한창 수업을 하는데
한 아이가 이야기는 안듣고
살금살금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내 바지 자락을 만지며
" 할머니이~~근데요오~~~오늘 왜 잠옷바지를 입고 왔어요?
우리엄마도 이런 잠옷 입는데..... "
하며 궁금해 죽겠다는듯 이상한 눈으로 나를 빤히 처다본다.
느닷없는 꼬마의 돌발질문에 순간 얼마나 당황했던지
하던 이야기까지 까먹고 진땀을 뺀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잠옷바지들은
주로 체크무늬로 된것이 많더라구 ㅠㅠ
보고 느끼면 곧바로 말을 하는게 아이들이라
그날 이후 유치원을 갈 때마다
입고 갈 옷에 어찌나 신경이 쓰이는지 고민 고민 ,
옷장안을 아무리 뒤져도
내 옷장안엔 아이들 취향에 맞는 옷이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평생을 검정색이나 회색 같은
무채색 옷만을 즐겨입었고
밝고 고운색은 입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근데, 이제 이 나이 되어서
생전 입어보지도 만져보지도 않았던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하게 생겼으니
이런 고민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나?
그 사건 이후
매번 유치원 갈 때마다 내 딴에는
나름데로 신경을 쓰서 입고 간다고 갔는데
그 아이의 잠옷이란 말 한마디에 충격을 받고
죽도록 외워 간 이야기까지 까먹을 정도였으니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했다.
이제는 옷 색상은 물론
무늬조차 신경을 쓰야 되게 생겼으니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이런 난감스런 위기(?)를 해결하는데는
"빨주노초 파남보 ' 밖에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어영비영 시간을 보내고 머뭇거리며
작년 한 해는 그럭 저럭 얼버무리며 보냈다.
해가 바뀌고 벌써 3월!
다음주 부터 수업 시작인데
난 요즘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내 평생 입고 나갈 옷 때문에
이렇게 고민을 해 본 적은 난생 처음이다.
몇십년 길 들여진
내 스타일과 옷 색상을 바꿀려니
머리속은 시끄럽고 복잡하여 마음은 편치를 않고
걱정이 한가득이라
자나깨나 틈 만 나면 유치원 입고 갈 옷 생각뿐
온통 내 머리속엔 '빨주노초파남보'로
수십벌의 옷들을 매일 만들고 있다.
" 에라 모르겠다."
미친척 하고 계량한복에 조끼를 입고가자니
남사당 패거리 춤추러 나온것 같아 부끄러워서
어색하고 불편해서 그 옷을 입고 나가면
한발 걸음조차도 떼지 못할 것 같으니
한복쪽은 아예 일찌감치 포기를 했고
최소한 색깔 만이라도 밝고 고운색으로 입자.
결심하고 산 옷을
집에 와서 입고 거울을 들여다 보니
나 아닌 다른 할매가 거울안에 들어있네.
그래도 다행인게
흰 얼굴덕에 그런데로 봐줄만은 한데
문제는 내가 어색하니 그게 큰일이다, 싶네.
그러다가 생각해 보니
한복 입고 나가는거 보다는 선생님이지 ㅋㅋ
자꾸 입어서 내 눈에 익혀야겠단 생각에
요즘 외출을 할 때는
무조건 외출옷은 '빨주노초 파남보'로 정하고
열심 실천 중이라네
일단, 좋은점도 있는게
지인들을 만나면 전에 못보던 옷색갈 때문에
얼굴보다 옷색깔이 먼저 눈에 띄여
옷 인사부터 먼저하니
얼굴이 좀 소홀해도 옷이 주인공 노릇을 톡톡히 하기때문에
그거 하나는 참~좋더라구
아주 새로운 발견이여 ㅎㅎㅎ
다 늙어서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서
변화를 해야만 하는 새로운 시도였지만
그런데로 봐줄만 하다니
조금 어색하고 마음이 불편해도
참아보기로 했어.
'빨주노초 파남보'로 미리 맞은봄
꽃샘추위가 희끗 희끗 눈발을 날려도
불어오는 바람엔 봄냄세가 묻어 오는듯 하니
분명 멀지않은 곳에 봄이 오고있는 중이라.
추위를 안타는 나도 이제는 추운게 싫으니
이런 현상이 늙은이 변덕인가?
아님, 조금씩 줄어드는 지방질 때문인가?
한결 몸이 가뿐해진 이 봄,
난 새로운 변화로 아이들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다.
" 할머니~~ 예뻐요~^^"
아이들이 합창하며 맞이하는
아주 행복한 봄을 기대하며^^
변신하느라 애쓰는 친구가
첫댓글 나도 현직에 있을 때 밝은 색상 입느라 신경 썼었지
밝은 옷은 밝은 기분이 나니까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아이들 덕분에 변신도 해 보고 좋으네
한복도 눈 질끈 감고 입어 보기를 강추~~
한복 긴 조끼는. 가방에 넣어가서 유치원 에서 평상복 위에 입으면 그런데로 괜찮은데 한복치마 저고리는
정말 못입겠더라구
천도 바느질도 고급진걸 보면
제법 돈을 줬을텐데
내 돈 들인건 아니지만
디기 아까와여
일단 밝고 이뿐색으로
우선 윗옷만 바꾸기로 ㅎㅎ
되도록 까페를 자주 딜다본다고 애를 썼는데
또 몇일 빠져서 이야기 할머니 글을 이제사 보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향수기가 전에 어떤 옷을 입었었던가 생각이 안나네,
더더구나 畵家인 향수기가 검정 계통의 옷을 입었을까,
그래도,
성격 털털한 향수기가 입는 옷을 신경쓸까 싶기도 하고......
옛날만 못하지만
너 정도면 우등생이여
그래. 나도 너 중절모는
생각나는데 옷은 생각안나는거 보면
그만큼 서로 익숙해서 그럴꺼야
평소. 새옷을 입으면 어색하고 불편해서
한참 길이나면 그때사 편하게 입거든
근데
애들은 고운색 새옷을
좋아하니
그게 내겐 큰 문제일쎄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