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로 한 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곳으로 이주시키면 농사는 어떻게 지으란 말인가. 땅 보상금으로는 새 집(아파트)을 마련할 수도 없다. 최소한 평당 250만원은 가는 땅을 200만원 남짓에 가져가려 한다.”
대전시 유성구 봉산동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위해 내놓았으나 보상금이 턱없이 적고 이주대책도 미흡해 살 길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주거환경개선사업 백지화투쟁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구본환(42)씨는 “땅과 건물을 시가 기준으로 보상해주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까지 지낼 임시 거처나 농기계 보관소를 동네(주건환경개선지구) 안에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보상금으로는 아파트 입주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워 원주민의 70% 가량이 고향을 떠나야 할 판”이라며 “보상가를 현실화하거나 원주민을 내쫓는 주거환경사업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업시행자인 대한주택공사는 “규정에 맞게 보상을 하고 있으나 주민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곳처럼 땅 보상을 둘러싼 갈등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행정도시가 들어설 충남 연기ㆍ공주 일원에서는 예정지역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보상가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정부의 보상대책을 접한 일부 주민들은 “행정도시 예정지가 2210만평이고 보상가가 4조6000억원으로 책정돼 있으니 평당 20만원의 헐값에 보상하겠다는 것 아니냐. 전문기관에 용역을 줘 전체적인 보상가를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새로운 보상방안 마련에 나섰다.
◇땅 보상 분쟁 줄일 대책 세운다= 지난해 사업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합의하지 못해 토지수용위원회에 보상금 조정을 신청한 ‘수용재결’ 건수는 990건. 면적으로는 일산신도시 규모와 맞먹는 455만평이다.
땅 보상 분쟁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말부터는 행정도시를 비롯해 혁신도시(공공기관 이전지), 기업도시, 수도권 신도시 등의 건설이 본궤도에 오르기 때문이다. 정부도 땅 분쟁이 격화될 것에 대비해 새 보상대책 마련에 나섰다.
건설교통부는 한국부동산연구원에 보상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고 12일 밝혔다. 건교부는 용역결과가 나오는 6월 중순 이후 공청회 등을 거쳐 새로운 보상제도 시행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건교부는 토지를 수용할 때에 국민의 재산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 보상기준이 되고 있는 공시지가에 ‘정상적인 거래가격’을 일부 가산하는 ‘정당보상’ 개념을 정립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정당보상 가격은 호가나 투기적 거래가격보다는 낮지만 공시지가보다는 높아 토지소유자들의 보상 불만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생활권 보상 강화= 건교부와 용역연구팀은 새로운 보상 방안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리 샐 경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지역에서 토지소유자들이 보상 협의를 늦춰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주대책 같은 간접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연구팀 관계자는 “주민이나 지주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범위를 토지ㆍ지장물ㆍ영업손실 등의 직접보상 뿐 아니라 이주대책ㆍ생활대책 등 간접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땅 자체에 대한 보상 불만에는 수용재결 등 이의신청 절차가 있지만 이주대책 등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보장된 보상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는 땅이나 건물 값을 제대로 쳐주는 것뿐 아니라 이주자의 평온한 삶, 즉 생활권을 보장하는 보상 개념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건교부는 보상 때 생계대책 등과 연계해 보상금 지급시기나 방법을 다양화한 이른바 ‘맞춤형 보상제’를 도입키로 하고 행정도시에 시범 적용할 방침이다.
정락형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은 “농사를 계속 지을 사람에게는 농토를 알선해 주고 직장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직장을 구해주는 것과 같은 일대일 서비스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