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중심을 주님께..
골목 할머니 세 번째 옮긴 병원 심방 가는 시간,
김 집사님이 예배당으로 불렀다.
‘목사님, 낼 아내 입원하여 어깨 수술할 거예요. 기도해 주세요.’
어른들 요양 돌보미로 몸을 던진 결과였다.
수술과 재활, 집안 일과 치료비의 질량에 가슴이 시렸다.
보듬은 남편 사랑에 손을 얹어 하나님의 도우심 구하고 다독였다.
감사의 손 내밀며 가볍게 나섰다.
아들 차에 오르며 허리를 굽혔다.
저녁때 사모가 방문하여 위로의 말을 남겼다.
병원 갈 채비로 만든 채지와 꽃게탕을 받아 왔다.
가족 사랑 담아 끊인 게살의 질감이 감칠맛 났다.
이튿날, 입춘 추위는 꿔다가 하고, 김칫독 얼어 터진다는 말이 맞았다.
심상치 않은 날씨에 진도 목양교회를 다시 찾았다.
제한 시간에 아침 뜀질로 피곤하여 승용차 뒷자리에서 잤다.
어느새 먹구름이 바다 끝에 내려앉고 황소바람이 일었다.
교회 입구의 지름길에 펜스를 쳐 언짢았다.
미련한 놈 가슴의 고드름은 안 녹는지 흙길 돌아 마당을 밟았다.
최 목사님이 환하게 반겼다.
‘멀리 오셨네요.’
‘왜? 길을 막아 버렸어요.’
‘터무니없이 값을 불러 기도 중이네요.
하나님의 응답인지 어제 생면부지의 권사님(78세)을 보내셨어요.
일본에서 괜찮게 사신 분이 일시 귀국하셨어요.
원래 정선으로 가려는 생각을 접고 진도로 오셨어요.
찜질방에서 쉬려는데 열악한 환경에 여느 분 소개로 연결되었어요.
밤새 나눈 이야기가 그거였어요.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믿음 생활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데요.
본인 명의로 땅을 구입해 다 내려놓고 가겠다는 거예요.
통장까지 내밀며 신뢰감을 주셨어요.
시력이 안 좋아 포근한 도움 베풀 분이세요.’
둠벙을 파 놓아 개구리가 뛰어든 격이었다.
기도하면 일꾼, 안 하면 사기꾼이 오는 법!
새 예배당은 어머니의 품이었다.
‘왜? 이렇게 따숩지요?’
‘농어촌 선교회 목사님들이 배관을 촘촘히 깔아 준 덕이네요.’
그 사랑과 헌신을 느꼈다.
장의자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보였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자가 눈물 없이 예배할 수 곳이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네.’한 맘으로 나아갔다.
능력의 말씀 듣고 순종하여 구원의 방주 역할하길 구하였다.
‘노래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신31:16-23)’의 설교였다.
‘어릴 때 회관에서 흘러나온 진도 아리랑을 듣고 자랐어요.
천년 세월 속에 부른 노래였지요.
노다 가세 놀다가 가세/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나 가세/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그 소리가 구성졌다.
‘하나님도 그 마음 알리려 모세에게 노래 만들어 줬어요.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 버리고 터진 웅덩이 가질 자들에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 백성에게 힘써 여호와를 알자.
베푸신 은혜 잊지 말고 자손 대대로 지속하라는 거였지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요즘 초심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때는 어떠했지?
결혼할 때 가난해서 두 칸짜리 방을 얻었지?
네 명 낳아 키우면서도..
개척할 때 비가림막 없어 신발을 예배당 안에 들였지?
그때 선교하다 온 분들이 예수님의 눈물을 보았다고 감동하셨어요.
그래 비싼 스텐 봉을 세워 주셨어요.
십자가와 교회 표지판 3개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주님이 다 알아서 하셨어요.
난 밥만 샀어요.
예배당 건축도 마찬가지였어요.
전국의 목사님들이 망치 들고 지었지요.
농선회 귀한 목회자들 만나면서 매료되었어요.
15년 장로로 섬기며 맺은 인간관계와 다른 차원의 교제였지요.
수원 영락교회 목사님 대면도 잊지 못해요.
40주년 기념 교회 인근에 세우려는 물길을 돌렸데요.
남을 위해 쏟은 후한 대접에 감격했어요.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을 노래로 이어가게 하라는 거였어요.
다음 세대가 염려스러울 때 부를 요한복음 3장 16절 찬양 있지요.
주일에 성도들과 함께 율동하며 불렀네요.
최고의 알약 같은 하나님의 사랑 잊지 말자는 다짐이었어요.
선물은 다 귀중하지만 보낸 분의 손이 더 가치 있지요.
복 주신 하나님, 도우신 일 기억하고 그 은혜의 찬양을 드리네요.
힘들었던 과거 추억하며 힘차게 달려갈 거예요.’
은혜로운 말씀에 젖어 회의는 짧게 끝냈다.
용천 식당의 낙지 비빔밥은 바닷가의 색다른 맛을 냈다.
뷰 좋은 쏠비치에서 바다 빛 썩은 차담회를 가졌다.
미인! 일본 권사님도 모셨다.
60년 전 공부는 전남여고, 미인은 중앙여고였다.
조대 체육과 다니며 설립자 박철웅 총장 도움으로 서울 무대를 밟은 분!
어쩐지 악수할 때 끄는 힘이 보통은 아니었다.
푼더분한 성품을 지닌 보석 같은 여인,
목사님들 일본 방문 시 섬기겠노라 밝히실 때,
강설과 기온 하강에 아쉬움을 남기고 에둘러 일어났다.
다음 날, 새벽 기도 후 김 집사님이 급히 나갔다.
아내 수술이 오전 7시란다.
어둠과 함께 쌓인 눈길, 운전이 어려웠다.
헐레벌떡 정류장으로 뛰었다.
제설차 윙윙거리고 소방차 출동하는 거리였다.
출근자들의 만원 버스였다.
20분 만에 도착하여 만났다.
링거 맞는 모습이 측은하였다.
‘워메, 눈조차 오고 미끄러운데..’
‘수술받은 적 있으세요?’
‘네, 허리요.’
두려움 없이 임하고 하나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길 구하며 둘이서 눈물을 삼켰다.
시작, 진행, 결과를 주님께 맡기라 일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알기에 달빛 흐른 저녁 다시 갔다.
석회 제거와 파열된 어깨 회전근개 3개 이었단다.
무통 효과에 생각보다 밝았다.
죽도록 일한 몸 내리고 무게 중심 주님께 두 길 권하며 기도드렸다.
2025. 2. 8.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