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방 / 조향미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 출전 : 시집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 온돌방을 떠나 산 지 꽤 오래입니다.
요즘처럼 찬 날씨엔 아득한 그 낱말이 더 아늑하게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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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유 게시판
조향미의 시, <온돌방>
더좋은사람
추천 1
조회 162
17.12.01 22:31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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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릴적 고향집,,그리워 지네요..
네... 어릴 적 온돌방은 그랬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릴 적 온돌방인 안방 아랫목에 밥공기를 넣어두었다가
하교하고 귀가한 들들을 위해 따끈한 밥공기를 꺼내주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온돌방은 이불을 덮고읶는 아랫목은
절절 끓을 정도이지만 윗목은 입김이 하얗게 나곤 했지요.
그 온돌방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것은 겨울이기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온돌방에 욕심껏 장작을 넣었다가 바닥을 태우고 이불도 태워서
매를 벌었던 기억이있어요ㅎ그리워지는것이 많아지는 겨울입니다.
감기조심하시고 행복하세요
아이들은 아랫목, 부모님들은 늘상 윗목 차지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 아랫목의 따스함, 그 사랑의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지금과 옛날중 택해서 살라고 하면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어릴적 가난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더 행복했던듯해요
종종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가난했어도 마음이 풍요로웠던 시절이 있었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