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론으로 이름 날린 사상가… 자식교육 상담 담은 책 펴내
|‘근대교육의 아버지’ 명성까지
|춤-펜싱-승마 통한 예절교육 강조
|“교양 있으면서도 강인하게”
17세기 프랑스 화가 클로드 르페브르(Claude Lefevbre, 1632-1675)의 ‘가정교사와 그 학생’(1675년), 유화기법,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 135x111cm. 정치사상가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저서 ‘교육론’에서 적절한 환경과 훈육을 통해 예의 바르고 교양 있는 인재를 키우는 방법을 소개했다. 로크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습관을 들이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출처 루브르 컬렉션 홈페이지
《가정교사 출신 존 로크의 ‘교육론’ ‘최근에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상담을 해 왔다.’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가 쓴 ‘교육론’(1693년)의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로크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위대한 정치사상가다. 사회계약 이론을 통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군주는 교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그런 로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두 가지 경력이 있다. 하나는 의사로서의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교사 이력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수학한 로크는 진로를 고민하던 중 휘그당의 리더인 섀프츠베리 백작을 만나게 된다. 로크의 박식함에 깊은 인상을 받은 백작은 곧바로 자기 아들의 가정교사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로크는 백작의 집에 머물면서 정치적 사안의 조언자이자 백작의 주치의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사실 당시 로크에게는 의학 학위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화농성 간 종양으로 고통받는 백작의 몸에 대담하게 은으로 만든 관을 삽입해 고름을 뽑아내는 수술을 성공시켰다. 이를 계기로 로크는 의사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고, 의학 학위도 취득하는 한편 정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왕정복고 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로크는 반정부 인사로 분류되어 6년 동안 해외로 망명을 떠났다. 해외에서 로크가 받은 편지의 상당 부분은 친구들이 자식 교육에 관해 로크에게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주고받은 편지들을 토대로 써낸 책이 ‘교육론’으로, 로크는 이 저술로 ‘근대 교육의 아버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위대한 정치사상가이자 근대교육의 아버지라 불린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초상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로크는 〈교육에 대한 몇 가지 견해(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1693)에서 자신의 교육론을 전개했다. 좋은 교육은 정신과 육체 모두에 주의를 기울인다. 좋은 교육자는 운동과 놀이와 충분한 수면을 강조한다. 어린이는 감정을 발산하도록 해주어야 하며 되도록 구속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자는 지식에 앞서 덕성·지혜·좋은 성품을 불어넣어야 한다. 부모도 어린이 양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부모의 모범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교육효과를 낳는다. 현대언어와 라틴어, 지리와 역사, 수학, 그리고 나중에는 민법·철학·자연과학 등 유용한 지식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크의 교육관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그는 학교 교육보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사교육의 장점을 훨씬 높이 평가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귀족 가문의 가정교사로 일했던 경력 때문이리라. 가정 교육이 성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이가 도덕적 원칙과 예의범절을 몸에 익히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었다. 로크는 예의범절을 굿 브리딩(good breeding)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굿 브리딩은 좋은 가정 환경과 적절한 훈육을 통해 잘 자라서 예의 바르고 교양 있으며 세련되게 행동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둘째, 로크는 교육이 유아기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부모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은 자식을 강하고 건강한 체질로 만드는 것이었다. 로크는 아무리 귀한 집안의 자제일지라도 마치 농부처럼 다뤄야만 강인한 체력을 키울 수 있다고 믿었다. 추운 겨울에도 너무 따뜻하게 입히지 말고 얼음물로 아이의 다리와 발을 씻기라고 조언했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자면 아동학대라고 부를 만한 교육법이다. 로크 자신도 “자식을 애지중지하는 어머니들이 보기에 너무 가혹하다며 놀라 자빠질 원칙들”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로크는 아이가 허약한 건 대부분 부모의 과잉보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셋째, 로크는 일상생활 전반에서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종류의 습관을 들일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로크는 아이에게 정해진 시간에 밥을 주는 일에는 반대했다. 아이의 위(胃)가 그 시간에 음식을 기다리게 되고, 그 시간이 지나도 음식이 들어오지 않으면 투정을 부리게 되며, 식욕을 상실하면서 위가 축 늘어져 버린다는 이유였다. 따라서 정해진 식사 시간은 오히려 어린이의 성격을 나쁘게 만들고 건강을 해친다고 믿었다. 대신 매일같이 다른 시간대에 아침, 점심, 저녁을 줄 것을 권장했으며, 만약 배가 고프다고 하면 소량의 간식을 주도록 했다.
반면 배변은 반드시 규칙적인 습관으로 만들어야 할 문제였다. 설사는 식단이나 약물로 쉽게 고칠 수 있지만, 변비는 약으로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로크는 특히 변비에 관해 관심이 많았는데, 스스로가 평생 변비로 고생했다고 살짝 밝히기도 한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아침 식사 후에 규칙적으로 화장실에 가는 습관을 들이는 게 건강에 최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넷째, 로크는 예절 교육을 위해 춤을 매우 강조했다. 춤은 아이에게 평생 우아한 몸가짐을 가지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감과 좋은 태도를 갖추게 해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로크는 춤이 ‘신기하게도 남자다움을 기르는 데 크게 기여한다’라고 말했다. 춤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 펜싱, 승마 역시 예절 교육의 필수 과목들이었다. 고상한 사람들과의 사교 활동과 대화에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로크가 설파한 교육은 철저히 엘리트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사회적 이동성이 활발해진 상황에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의 이론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교육론’은 영국식 매너를 퇴보하게 만든 주범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로크가 설파한 예절 교육이 영국 고유의 예법이 아니라 프랑스 궁정 예법에 기대고 있으며 상류층만을 대상으로 삼는 등 배타성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로크의 교육론은 오늘날까지도 가정 교육에 관한 한 최고의 저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영국과 프랑스 계몽주의의 선구자로서 미국 헌법에 정신적 기초를 제공했다. 당시 '새로운 과학' 곧 근대과학을 포함한 인식의 문제를 다룬 〈인간 오성론〉의 저자로 유명하다.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와 이후 학위과정을 마친 후, 존 로크의 관심은 자연과학과 도덕적·사회적·정치적 삶의 근본원리에 있었다. 자신이 받은 교육의 편협성을 절감한 로크는 당대의 철학, 특히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을 공부했다. 로크는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고, 사교모임을 통해 합리성과 인간의 오성에 대해 토론하기를 즐겼다.
* 클로드 르페브르(Claude Lefevbre, 1632-1675)는 궁정 장식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고전주의 화화를 공부한 뒤,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Académie Royale de peinture et de sculpture)에 입학하여 루이 14세(Louis XIV) 재위 기간에 왕실, 귀족, 유명인사를 망라하고 인기를 구가한 뛰어난 초상화가이자 판화가이다.
[출처: 동아일보 2024년 04월 28일(화) [설혜심의 매너·에티켓의 역사(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