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itish/BRitain + EXIT : - BREXIT.)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를 일컫는 그렉시트(Grexit)에서 따온 말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015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2017년까지 실시하겠다고 약속했고,
2015년 선거 후 승리 연설에서도 이를 다시 확인한 바 있었다고---.
영국, EU 탈퇴 결정
2016년 6월 23일(현지시간) 진행된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서 투표에 참여한
영국 국민3355만 명의 51.9%인 1742만 명이 브렉시트 찬성에 표를 던지면서
반대(48.1%)를 3.8%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이에 따라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됐다. 영국의 EU 탈퇴는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3년 만이다.
영국은 EEC에 가입한 지 2년 만인 1975년에도 EEC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엔 영국 국민의 67%가 잔류를 지지했었다고---.
한편, 영국의 EU 탈퇴로 EU는 회원국이 28개국에서 27개국으로 줄어든 것에서
더 나아가 EU 존립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 향후 흐름이
주목되고 있다.
실제로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체코 등에서
도 EU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여론은 왜 일어났나?
브렉시트 여론은 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촉발됐다.
EU의 재정 악화가 심화되자 영국이 내야 할 EU 분담금 부담이 커졌고,
이에 영국 보수당을 중심으로 EU 잔류 반대 움직임이 확산됐다.
여기에 취업 목적의 이민자가 크게 증가하고,
특히 지난 2015년 말 시리아 등으로부터의 난민 유입이 계속되자
EU 탈퇴를 요구하는 움직임은 가속화됐다.
이처럼 영국의 EU 탈퇴 움직임이 가속화되자 EU는 2016년 2월 EU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앞서 영국이 EU 잔류를 위해 제시했던
요구조건(▲이민자 복지혜택 제한 ▲영국 의회의 자주권 강화
▲EU규제에 대한 영국의 선택권 부여 ▲비유로존 국가의 유로존 시장 접근 보장)을
대부분 수용했다.
이에 캐머런 총리는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 실시를 공식 발표하면서
「영국의 미래를 위해 EU 잔류에 투표해 줄 것」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결국 브렉시트를 선택하자 캐머런 총리는 투표 결과를
수용하겠다며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브렉시트 이후는 어떻게?
브렉시트는 회원국 탈퇴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EU 조약(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라 진행된다. 이 조항은 EU를 탈퇴하려는 회원국이 EU 이사회에
탈퇴 의사를 정식으로 통보하면 이 시점으로부터 2년간 회원국과 EU가 맺어온
무역 등을 새로 협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영국과 EU는 상품·서비스·자본·노동 이동의 자유 및 정치·국방·치안·국경 문제 등
EU 제반 규정을 놓고 추후 향방을 설정할 예정이다.
다만 협상이 타결되지 않아도 2년이면 자동 탈퇴 처리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탈퇴 국민투표 이후 리스본조약 50조를 이행해야 하는
시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2016년 6월 열린 영국 국민투표 개표 결과 72.2%의 투표율에 51.9%의
찬성(17,410,742표), 반대 48.1%(16,141,241표) 기권(26,033표)로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가 확정되었다
영향은???
경제
영국 재무부는 유럽연합에 잔류하는 것이 무역에 매우 이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유럽연합에서 탈퇴한다면 상황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분리운동
국민투표의 여론조사 결과 영국 전체에서는 찬반이 비슷했지만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 남는 것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았다.
스코틀랜드 정치권은 브렉시트가 성사되면 독립을 재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역시 투표 결과에서도 스코틀랜드에서는 EU 잔류가 우세했지만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탈퇴가 우세하였다.
스코틀랜드 국민당 소속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니컬라 스터전은
영국의 EU 탈퇴가 확정되자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요구했다.
EU의 붕괴
영국의 브렉시트로 EU가 분열되고 있다. 현재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프랑스까지
EU에 비호적인것으로 나타나 프랑스, 그리스를 포함 4개 국가(EU에 비호적)가
만약 전부 EU탈퇴를 지지하면 EU는 완전히 무너저 최악의 경우 해산할수도 있다.
EU에 호감적인 국가들은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를 긴장하며 바라보고 있다.
프랑스와의 국경 문제
노르파드칼레피카르디의 주장관인 자비에 베르트랑은 2016년 2월에
"영국이 유럽 연합에서 탈퇴한다면, 칼레에서 도버로 오가는
육로 교통로(채널 터널)의 자유로운 통행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 이후---총리 수상
테리사 메이는 1956년 10월 1일 잉글랜드 서섹스 주 이스트본에서
어머니 제이디 메리 (결혼전 이름은 번스, 1928~1982)와
아버지 휴버트 브래지어 (1917~1981)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회 신부로, 옥스퍼드에서 몇킬로 떨어진
휘틀리 교구 목사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
메이는 옥스퍼드셔의 주립 초급중학교에서 공부했고 잠깐 동안 가톨릭 학교에
머무르기도 했다. 맨 처음에는 옥스퍼드셔 히드롭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세인즈 줄리아나 수녀원 부속 여자학교를 거쳐,
베그브로크에 있던 로마가톨릭 독립학교 (1984년 폐교)로 전학을 갔다.
13살이 되자 메이는 휘틀리에 있는 홀턴 파크 여자중학교로 자리를 잡았다.
그곳 학생으로 있던 도중 1971년에 학교가 폐교되고,
같은 자리에 휘틀리 파크 종합중학교가 새로 들어서면서 학적이 다시 바뀌었다.
이후 메이는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해 세인트 휴스 칼리지에서 지리학을 전공,
1977년에 차석 BA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이상으로 브렉시트---올해의 대 사건을 ---간략하게 맺습니다
우리나라의 브렉시트 영향은 야러 기사가 신문 방송에 많았습니다 마는
브렉시트는 상품 및 서비스 교역, 투자, 금융 및 기타 서비스산업, 환율, 경제성장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영국 과 EU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됨 .
- 영국–EU 관계에서 상품무역의 위축 , 원산지 충족 어려움 , 서비스 시장통합의 지체 ,
서비스 공급자로서 영국의 지위 축소 , 투자 위축 , 환율의 안정성 감소 ,
경제성장 약화 등의 영향이 예상됨 .
- EFTA 회원국들의 사례로 비추어 볼 때 ,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EU 예산기여 ,
이민정책 , EU 규제 , 소비자 가격 , 연구개발 등에서 당초에 탈퇴 후 예상되는
비교우위의 증대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됨 .
또 연세대 교수는
“금융 시장의 불안감이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로
국내 자본 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유럽 수출 비중이 13% 정도인데 대유럽 수출이 줄면서
국내의 수출과 내수가 동반하락하게 되고, 이로 인해 국내 경기가 침체 될 우려가 있다.”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자본 유출이 일어나면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
단순히 영국이 EU에서 빠져 나가 영국 경제가 침체된다는 관점이 아니라
미국-중국-EU 경제라는 세계 경제의 세 개의 축 중 하나에 균열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외화 유출에 대비해
은행의 외환유동성 관리를 강화하고,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 등을
통해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
세종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EU의 경기가 위축되면 EU내 투자·소비 심리에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의
대EU 수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EU를 주요 시장으로 하는
중국과 일본 시장이 위축되면서 중국과 일본에 대한 수출도 줄어드는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 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