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문화에 대한 두 가지 시선
[도마뱀]은 강혜정의 옛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다. [도마뱀] 시사회에 나온 강혜정은 스크린 속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비록 그녀의 입 주변이 튀어나왔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예전 얼굴이 갖고 있던 독특한 개성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강혜정 성형 논란에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당사자인 강혜정 본인이 성형을 통해 느끼는 행복지수다. 치아교정이건 성형수술이건 강혜정 본인이, 자신의 얼굴을 바꿔서 거기에 만족을 느낀다면 그것은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본인이 느끼는 만족도다.
그런데 강혜정 뿐만이 아니라 버거 소녀 양미라, 가수 전혜빈도 완전히 바뀐 얼굴로 다시 등장했다.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성형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연예인들은 자신의 몸이 곧 상품이기 때문에 상품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성형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얼굴 성형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신체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교적 관념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성형수술에 비판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그때는 성형수술을 한 사실 자체를 극도의 보안으로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성형수술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주범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자신의 만족을 위해 성형을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는 의견이 점차 높아가고 있다. 이것은 유교적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의 변화된 모습이다. 삶을 주어진 상태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적극적 의지로 다시 개척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적극적 사고의 표현이기도 하다.
영화는 허구로 구성된 이야기이지만, 그것의 기반은 현실이다.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현실이 영화라는 것을 긍정한다면, 영화는 항상 당대의 관객들과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아왔다. 김기덕 감독의 13번째 영화 [시간]과 에로 감독의 알려진 봉만대 감독의 신작 [신데렐라]는 공통적으로 성형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관심을 끈다.
[시간]이나 [신데렐라] 모두 얼굴 성형수술에 의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접근방법은 매우 다르다. 김기덕 감독의 [시간]은 두 연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희(박지연 분)와 지우(하정우 분)는 오래된 연인이다. 세희는 지우가 자신에게 권태를 느끼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그가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싫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6개월 뒤, 전혀 다른 얼굴로 지우의 단골 커피숍 웨이트리스로 다시 나타난 새희(성현아 분). 지우는 새희가 세희라는 것을 모른다. 새희는 적극적으로 지우를 유혹해서 그와 섹스를 하지만 지우가 여전히 세희를 못 잊어 한다는 것을 알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새희가 세희의 얼굴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새희의 고백을 들은 지우는 그녀가 자신을 조롱했다며 화를 내고 나가버린다.
새희는 자신의 수술을 담당했던 성형외과 의사로부터 지우가 성형 수술을 간청해서 수술을 해주었다는 고백을 듣는다. 6개월 뒤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지우가 말했다는 것도 전해들은 새희는, 지우를 찾아 거리를 헤맨다.
김기덕 감독의 [시간]은 성형을 소재로 하고는 있지만 단순히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성형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김기덕에게 성형은,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것이다. 낡은 나의 모습을 버리고 변화된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는 것이 성형이다. 따라서 [시간]은 존재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성형을 통해 풀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비디오로 출시되는 에로 영화를 만들다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을 통해 충무로로 입성한 봉만대 감독은, [신데렐라]를 통해 꿈과 결핍, 그리고 상처를 이야기한다. 공포 영화의 장르적 관습보다는 드라마에 더 충실한 [신데렐라]는 얼굴에 칼을 대는 성형의 섬뜩함보다는 성형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성형외과 의사인 윤희(도지원 분)에게는 현수(신세경 분)라는 예쁜 여고생 딸이 있다. 현수의 미술학원 친구 수경은 방학기간 동안 현수의 어머니인 윤희에게 성형수술을 받는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서 친구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수경은 예쁜 얼굴을 갖는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이 칼에 베이는 환상에 시달리던 수경은 자신의 얼굴을 도려내며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현수 어머니에게 성형 수술을 받았던 다른 친구들도 잇달아 죽는다.
[신데렐라]의 연쇄 죽음 뒤에는 성형수술이 빚어낸 또 다른 상처가 잠복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시간]이 존재 자체의 본질적인 모습을 파고든다면, [신데렐라]는 딸을 잃은 어머니의 결핍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얼굴 성형수술을 존재의 본질로 연결시킨 뛰어난 작품으로는 오우삼 감독의 [페이스 오프]를 들 수 있다. FBI 수사관인 존 트라볼타는 갱 조직의 일망타진을 위해 체포된 악당 니콜라스 케이지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교환하는 얼굴 성형 수술을 해서 신분을 위장해 갱 조직으로 침투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 총을 뽑아든다.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은 자신의 적인 갱단 거물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총을 겨눌 때, 그들은 각자 자기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심리적 충격을 맛보게 된다.
압구정동을 걸어가면서, 도로 주변의 모든 건물에 성형외과가 하나 이상씩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너무나 놀란 적이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성형외과를 찾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심리적으로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고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생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수술은 또 다른 수술을 낳는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성형수술을 통해서 자기변신에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더 높은 도약을 위해 또 다른 성형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한 번 성형수술을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또 다른 성형에의 욕망에 시달리게 된다.
문화는 살아 꿈틀거리는 물고기와 같다. 그것은 현실적 삶의 적극적 반영이면서 미래적 전망의 단초를 제공해 준다. 성형에 대한 시선은 긍정과 부정의 극단적 찬반 논쟁이 아니라, 어떤 의미부여로 자신의 삶을 도약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로 발전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시간]과 봉만대 감독의 [신데렐라]는 성형을 바라보는 두 가지 욕망을 각각 담아내고 있다. [시간]이 보여주는, 지금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로 변신하고 싶다는 욕망은 성형이 갖고 있는 가장 본질적 욕망이다. 또 봉만대 감독의 [신데렐라] 속에 담겨 있는 결핍에의 충족은, 성형을 통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불완전한 삶을 완전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욕망의 현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