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지난번 글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속 대왕이 직접 쓴 서문이 위대한 詩라고 부른 것은 그 속의 비밀코드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詩의 형식적 특징인 함축성과 상징성은 바로 어떤 비밀을 코드화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일탈현상이라고 해도 괜찮겠네요. 그런 관점에서 서문을 보면 크게 3가지로 나눠 볼 수가 있습니다.
우선 ‘나랏말씀’으로 해석하는 國之語音에서 音(음)의 존재입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나랏말소리’로 해야 되는데도, 모든 이들이 ‘나랏말씀’이라 합니다. 세종대왕이 그냥 심심풀이로 그 글자를 보태었을까요? 아니죠. 그가 직접 쓴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아는 부분을 작심하고 쓴 것이 서문입니다. 그렇게 한데는 분명히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 뒤의 해례본의 언해본에서도 ‘나랏말씀’이라고 해석한 것은 세종이 자기의 마음을 끝까지 비밀에 부쳤다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아무도 그 音자의 존재가치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것을 넣어 해석하려니 도대체 뒷부분이 걸려서, 즉 中國과 연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國之語音異乎中國로 해석을 하는 변칙을 택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그럴듯하죠. 그러나 중국어와 우리말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게 왜 문제가 될까요? 道자를 ‘길’로 읽으면 되는데 말입니다. 물론 오늘날 한자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는 이유 내지는 원인을 별도로 연구해 봐야겠지만, 여기서 그 분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中國이 지칭하는 나라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中國이 중국(China)이라 생각하면 엄청난 오산입니다. 세종의 머리 속에는 “中國=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中자입니다. 다들 이 글자가 무슨 뜻인지는 아실 겁니다. ‘가운데’라는 뜻입니다. 그럼 ‘가운데’는 무슨 뜻인가 물으면, 사전을 뒤져서 아래 내용처럼 답할 수 있습니다.
1.일정한 공간이나 길이를 갖는 사물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 끝에서 거의 같은
2.양쪽의 사이.
3.여럿으로 이루어진 일정한 범위의 안.
위의 사전 속 내용은 가운데라는 의미를 정확하게 나타내 준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한자나 우리말은 인간의 신체를 관찰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해례본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中자에서 ㅁ부분은 우리 몸에서 몸통부분을 나타냅니다. 그 몸통을 기준으로 4개의 팔(손)과 다리(발)가 있어서 이를 우리는 四象(사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머리는 없고 마음(心)만 있습니다. 실제 心자의 의미가 머리가 없다는 것을 나타낸 한자입니다. 中자에서 수직선 부분이 중요한 획입니다. 이게 바로 머리로 가는 목(neck)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게 되는 것이 神의 뜻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이 수직선은 오행의 의미로서 한글 모음 속에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복모음 ㅙ에서 마지막 ㅣ가 中자의 그것과 의미가 같습니다.
인간의 몸에는 다섯 개의 목이 있습니다. 여자들은 이 다섯 개의 목에다 장식을 하죠.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다섯 개의 목 중에서 몸통과 머리를 이어주는 목이 가장 중요하겠죠. 그 중에서 목에 거는 것은 목걸이라 하고, 팔이나 발목에 하는 것은 팔찌, 발찌라 합니다. 그렇게 쓰는 이유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나중에 별도로 기회되면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로부터 中의 의미는 머리가 없는 곳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주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운데의 ‘가’가 주격조사로 사용되는 이유입니다. 네모라는 도형으로 표현되는 가운데를 우리말로 나눠서 표현을 하면 ‘~가 운 데’입니다. 누가 우는 곳일까요? 바로 하나(1)입니다. 그것을 숫자로 표현하면 실질적인 주체는 하나님의 사자인 셋(3)입니다. 하나 둘 셋은 삼위일체로 같은 몸입니다. 이 숫자 셋(3)을 삼족오의 그 3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中國은 세종대왕의 머릿속에는 조선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반도가 중국 대륙의 관점에서 보면 머리라는 것이 됩니다. 우주 속에서 그 위치를 찾자면 블랙홀에 해당되겠죠. 그 너머에 神의 세계이니까요.
이 中자와 앞의 音(소리)과 연결시켜서 해석하면 소리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표현되는 우리말 속에 그 비밀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넓게 해석하면 한자의 뜻이 우리말 속에 들어 있다는 뜻이 되고, 결국 한자도 우리의 문자라는 뜻이 됩니다. 달리 해석하면 중국어와 한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해도 됩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재확인한 것이 耳자입니다. 귀, 즉 귀로 듣는 소리 속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비밀코드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耳자가 문장의 내용상 가장 벗어난 글자일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 자리에 어조사 矣가 들어가야 할 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죠. 이게 詩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것입니다. 인류 문명사의 판도라상자와도 같은 우리말의 가치를 알리는 방법으로 詩의 형식을 빌렸다고 볼 수가 있겠죠. 인류 역사상 최고의 詩라고 불릴만하지 않습네까?
당시는 명나라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상황이었음을 생각하면 세종의 고뇌가 가슴에 와닿을 것입니다. 오늘날 중국에 대한 우리의 위치, 그리고 미래의 중국관계를 생각하면 세종대왕의 뜻을 어떤 방식으로 기려야 될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國之語音異乎.
中國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而
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
'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