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를, 낭만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한 번씩 듭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에 나온, 혹은 시집에서 읽은 시를 꽤나 외워서 간혹 폼 나게 읊조리고 했었는데 까마득한 기억으로 남아 버렸습니다. 초장을 보고 종장을 찾는 시조놀이를 하면서 시조도 꽤 많이 외웠습니다. 현대시로는 김춘수의 ‘꽃’,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이육사의 ‘청포도’,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외국 시로는 구르몽의 ‘낙엽’,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도’ 등... 이제는 제목으로만 제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 가장 제게 각인되었던 외국 시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로 시작되어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로 끝나는 시구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던 고3때 더욱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이 시의 원제인 'The road not taken'은 가지 않은 길, 가 보지 않은 길, 걸어보지 못한 길, 가지 못한 길 등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중 선택적 의지가 함축된 '가지 않은 길'로 교과서에도 실렸던 것 같습니다. 나의 의지로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제가 져야겠지요. 하지만, 인생길이 어찌 두 갈래에서만 번민하고 끝나겠습니까? 삼거리, 네거리, 오거리... 인생에 있어서는 도시에 난 길보다 훨씬 많은 갈래의 길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통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는 현재 가고 있는 길에 만족하기로 하고 무심한 듯 살고 있습니다.
자주 다니는, 목적지를 가는 길도 언제든 선택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형곡도서관 갈 때는 시립세탁소 앞을 지나지만, 돌아올 때는 하늘무지개어린이집 앞을 지나옵니다. 토종뒷고기 가는 길은 언제나 형곡공원길이지만 귀가할 때는 다가감커피숍 앞을 지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처음 걸을 때 그랬기에 무의식적으로 발길이 그리 이동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생길은 다릅니다, 분명. 그래서 길을 선택하고서는 후회를 말자는 주의지만, 선택하기까지에는 번민의 시간을 오래 갖습니다. 후회를 줄이기 위해, 후회를 않기 위해. 발을 디디면서 선택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있긴 하지만 그때부터는 의도적으로 부정적 결과는 잊으려 합니다.
인생길은 그러하지만, 이제부턴 ‘가지 않은 길’이 아닌, ‘가보지 않은 길’을 많이 다녀보려 합니다. 2007년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개발하여 인기몰이를 한 후 전국으로 유행처럼 번지면서 지역마다 다양한 걷기 코스가 개발되었습니다. 서울 둘레길, 춘천 봄내길, 남해 바래길, 순천 남도3백리길, 소백산 자락길, 양평 물소리길, 대구 올레길, 동해 해파랑길, 부산 갈맷길, 경북/강원 외씨버선길, 안동 선비순례길, 문경 토끼비리길 등 수많은 걷기 코스가 둘레길, 올레길, 자락길, 누비길, 나들길, 누리길 등 이름으로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이 길 중 실제 걸어 본 길은 몇 안 됩니다. 이제부터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겠다는 이유입니다. 앞으론 노래보다는 낭송시를 휴대폰에 담아 이 길들을 걸으며 들어야겠습니다. 자연을, 문화유산을 즐기며 그 속에서 시심을 키워봐야겠습니다.
봄꽃은 보기만 해도 시심이 충만해집니다. 편안해집니다. 행복해집니다.
금오산 자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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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락공원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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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드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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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모셔온 글)=======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작, 피천득 역
대부분의 번역자는 직역하여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로 한 부분을 피천득님께서는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로 의역하셨는데, 저는 후자가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