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추석 직전에 성균관의 차례상 표준안 발표로 이슈가 되었고, 앞으로의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에서 9월 5일 발표한 표준안에 따르면 차례상에는 9가지 정도의 음식을 올리면 된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 김치, 과일, 술이고, 여기에 육류와 생선, 떡도 올릴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니 특히 제수 준비에 힘들었던 분들이 환호 할 만하네요. 사실 제수는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납니다. 몇 년 전 참사했던 한 불천위제사에서는 밤을 괴는데만 4시간이 걸리더군요. 제수 준비가 어느 것 하나 녹록치 않지만, 특히 뜨거운 불 앞에서 기름 냄새 맡아가며 굽는 여러 종류의 전은 제수음식 중 가장 힘든 음식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11세 주손가로, 예전에는 4대 봉사를 하다 보니 차사 2번, 기제사 9번, 시사, 성묘까지 합치면 조상 모시는 노력과 시간이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20여 년 전 종조부까서 당신이 책임지시겠다며 2대봉사로 조정을 해주셨지요.
정사인지, 일부의 견해인지 제 짧은 지식으로는 판별이 안 됩니다만, 조상 모시는 일이 조선 중기 두 번의 난을 거치면서 강화되었다고 보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조선 중기 성리학이 심화되면서 4대 봉사로 굳어졌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조선조 경국대전에는 3품관 이상은 4대, 6품관 이상은 3대, 7품 이하는 2대, 서민들은 부모 제사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사계 김장생의 가례집람에는 주자의 가례를 본떠 4대 봉사까지 하는 걸로 되어 있으며 이후 선비의 4대봉사가 늘었다고도 합니다. 어찌되었건, 조선 중기 이후 서민까지도 4대 봉사가 확대되었고, 제수도 더욱 화려(?)해졌습니다. 임란, 병자호란 이후 충효가 더욱 강조되기 시작했고, 양반도 돈 주고 사는 시대에 양반입네 내세우기 위해 제사상을 상다리가 휘게 차리고, 4대 봉사도 고착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저는.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온 것이지, 옛날부터 4대 봉사, 상다리 휘어지는 제사상으로 조상을 모신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의우총, 의구총, 의마총, 의호총 등 동물 관련 충절과 의로운 죽음을 기리는 무덤이 두 개의 난 이후 생겨나기 시작하였음도 그 증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세종 조에 간행되었던 삼강행실도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재 간행되어 배포되었고, 이에 등장하는 효자와 열녀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사례도 많아졌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고 변하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69년에 정부에서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하면서 2대 봉사를 권장하기 시작했지만 받아들이는 가정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적지 않은 종손이 장가를 못 가는 게 현실이 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경북 종가의 60%가 3대 봉사로 줄였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온계 종택에서는 ’12년부터 4대 봉사하던 기제사를 한날한시에 모아 합동으로 지내고 있답니다.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고,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추어 간소화, 현실화가 필요합니다. 다만, “이번 차례상 표준안 발표가 가정의례와 관련하여 경제적 부담은 물론 남녀갈등, 세대갈등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차례를 지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한 의례정립위원회의 부언에 언급된 ‘남녀갈등’, ‘세대갈등’, ‘해결’이란 단어는 썩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경제적 부담도 언급되었지만, 남녀갈등, 세대갈등 언급은 부적절했다는 생각입니다. 실제 그러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갈등은 ‘해소’해야 할 대상이지, ‘해결’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이번 성균관의 권고안이 제사 간소화, 현실화의 의미는 충분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한가위에 지내는 차사, 가족 간 갈등 없이 마음을 다해 조상을 모시고, 선현들의 과거를 돌아보며 화합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래 모셔온 ‘만나다’의 반만 이해하고 마음먹어도 가족 간의 갈등은 발생조차 않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번 추석의 모든 만남은 ‘만나다’의 깊은 의미대로 시작하겠습니다.
한가위를 며칠 앞둔 태풍 직후의 수목원. 조용한 그곳에서 봄과 가을을 함께 느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2870753666
만나다(모셔온 글)========
<만나다>
너와 나 사이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치우다.
가장 치우기 어렵다는 자존심까지 깨끗이 치우고 너를 향해 걷다.
사용 팁
너를 향해 걸을 때는 너만 본다. 나를 보지 않는다.
너를 향해 걸으며 나를 보는 것은 아직 자존심을 치우지 않았다는 뜻이다.
관련 용어 : 만남의 광장
만남의 광장엔 만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만나는 사람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다.
두 사람이 똑같이 도착할 수는 없으니까.
'기다리다'를 견디지 못하면 '만나다'도 없다.
만남의 광장의 다른 이름은 기다림의 광장이다.
시소의 법칙
내 자존심을 세우면 네 자존심이 가라앉고,
네 자존심을 세우면 내 자존심이 가라앉고.
위로 아래로 움직이며 조금씩 수평을 찾아가지만,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낮은 쪽이 좋다.
불안한 건 늘 높이 올라간 쪽이다
-----정철의 ‘불법사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