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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함께 살기 때문에 부부 끼리는 서로간의 단점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부부가 서로 상대 배우자의 장점을 보지 않고 상대 배우자의 단점만을 보면, 서로 상대 배우자의 단점을 지적하게 되고 상대 배우자에 불평불만이 증가한다.
상대 배우자에 불평불만이 증가하다 보면, 상대방 배우자의 어떤 행동에도 이유없이 짜증이 난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사소한 경우에도 상대 배우자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
부부사이의 이러한 사소한 짜증이 확대되어 큰 부부싸움으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이혼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저자가 사는 일본에서 일반인들에 알려진 유명한 남녀가 결혼했는데에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 얼마 안되서 이혼 기자회견을 공개적으로 한 적이 있다.
이유는 여성측에서 남성 배우자가 면류 음식을 먹을 때, 조용히 먹지않고 소리를 내서 먹는데에 그 소리가 정말 듣기 싫어서 같이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이 식사하는 것도 싫은 사람과 평생 같이 사는 것을 생각하니 끔짝하고 한번 뿐이 없는 자신의 인생 앞 길이 컴컴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정말로 사람이 싫어지면, 장점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단점만 보이게 된다. 부부간에 서로 식사하는 것만 보아도 짜증나는 경우가 정말로 있다.
부부간에 애정이 식고 서로가 싫어지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부부 싸움이 정말로 사소한 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발전하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 너같은 원수를 만났는지 모르겠다」는 표현도 상대 배우자에게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상대 배우자의 단점 보는 것이 습관화되고, 상대 배우자에게 늘 불평불만을 쏟아 붓는다면, 매일 매일 정신적 스트레스만 쌓여가고 건강은 점점 나빠지며, 하는 일마다 막혀 생활 중에 더욱더 불평불만은 늘어난다. 나중에는 우울증이 온다.
일상화된 부부싸음과 부부의 이혼은 배우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자녀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결국 가정 자체가 붕괴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좋은 가정이라는 것은 좋은 집에서 잘먹고 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집 안에 사랑이 식고 형제간, 부부간, 부모 자식간 대화가 단절되고 「나따로 너따로」인 가정은 아무리 호화저택에 살더라도 좋은 가정이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가난한 집이라고 하더라고 서로 간에 사랑이 넘치고 형제간, 부부간, 부모 자식간 웃음 꽃을 피우는 따듯한 대화가 있는 곳이 좋은 가정이다.
상대 배우자의 단점보는 나쁜 습관이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상대 배우자의 장점보는 좋은 습관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늘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은 불평불만을 할 만한 상황이 계속 일어난다. 불평불만에서 나오는 부정적 에너지가 불평불만을 일으킬 만한 상황을 부르는 것은 「같은 파장끼리는 모인다」는 우주의 법칙이기 있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을 원한다면, 행복을 불러들이는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 등을 해야한다. 가장 간단한 것이 항상 감사하다는 생각과 감사의 말과 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행복한 가정을 원한다면 배우자에게 항상 감사하다는 생각과 감사의 말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배우자를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자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하는 것이다.
그러면 일상생활 중에 감사할 만한 일들, 칭찬들을 만한 일들이 실제로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감사에너지와 칭찬 에너지가 「같은 파장끼리는 모인다」는 우주의 법칙에 의해 감사할 만한 일들, 칭찬들을 만한 일들을 부른 것이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배우자는 상생의 좋은 관계를 영원히 유지해야한다. 하모경 저자는 상생의 좋은 관계릏 계속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래도 포용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칭찬하자」 즉 「그포용사존칭」의 마음으로 배우자를 대할 것을 권장한다.
배우자 서로가 상대 배우자의 기를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 서로가 상대 배우자의 기가 살아나게 해야하는 것이다.
즉, 가정은 氣의 재생 장소가 되어야한다. 즉, 사회생활에서 소모된 생명에너지를 충전하는 생명 에너지 충전 장소가 가정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사실 부부에 있어, 상대 배우자는 남이 아니라, 자신의 감추어진 또 다른 모습이다. 즉 부부는 하나이며 음양태극관계에 있다. 독자들은 부부가 음양태극관계에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한다.
만일 남편이 행복지수 50점의 행복만 느끼는 사람이고, 아내도 행복지수 50점의 행복만 느끼는 사람일지라도 부부는 음양태극관계에 있기 때문에 부부가 하나가 되면 행복지수 100점 만점의 행복을 가정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자가 「너따로 나따로」 라면 각각 50점의 행복만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부의 인연이라는 것은 우주법칙의 관점에서 볼 때 「너따로 나따로」가 아니라 「너와 나는 본래 하나」인 것이다.
상대 배우자의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잠재의식에 감추어진 자아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가 지혜로운 자인 것이다.
상대 배우자의 단점을 자신의 고쳐야 할 단점으로 깨닫고 상대 배우자의 장점이 자신이 살려야할 장점으로 깨닫는 것이 결혼한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 배우자의 단점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알았기 때문에, 상대 배우자는 결국 자신의 단점을 자신에게 거저로 가르쳐주는 훌륭한 스승인 셈이다.
자신의 단점을 깨닫게 한 상대 배우자에 대해 감사를 하면, 오히려 상대 배우자의 단점에 감사하게 될 뿐 아니라, 상대 배우자를 존경하게 된다. 그러면 상대 배우자의 장점이 점점 크게 보인다.
그리고 상대 배우자의 칭찬을 매일 하게된다. 「이렇게 좋은 배우자를 만난 것을 보니 내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하긴 했나보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본인의 얼굴 표정도 밝아지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질 뿐 아니라 상대 배우자의 얼굴 표정도 밝아지고 몸과 마음도 건강해진다. 상대 배우자도 밖에 나가면 주위에서 인정을 받는 유능한 사람으로 변한다.
부부가 화목하니까 집안 전체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넘쳐흐른다. 누가 놀러와도 집안의 평안한 분위기에 젖는다.
단지 집안 전체가 화기 애애한 분위기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평화로운 집안에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좋은 에너지로 가득차있다. 따라서 평화로운 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들도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며 항상 밝은 표정을 짓게 된다.
이이들도 항상 가정 분위기에 만족한다. 가정 분위기에서 만족하면 밖에 나가서도 모범적인 학생이 된다. 대부분의 비행 청소년들의 가정을 보면, 매일 부부싸움하는 가정, 이혼한 가정 등 집안에서 부모의 따듯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가정 내의 사랑 넘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국가로 확대되어야 국가도 건강해진다. 21세기의 선진국은 단지 국력이나 경제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각각의
가정에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국가가 선진국이되는 세기이다. 21세기에는 화목한 가정을 지향하는 국가가 세계의 중심 모델 국가가 되는 것이다.
세계를 우리의 몸으로 비유하면, 국가는 몸 안에 있는 심장, 간, 신장, 폐, 위 등과 같은 장기이다. 그리고 각각의 장기를 이루는 세포가 바로 가정인 것이다.
심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심장을 구성하는 세포가 건강해야 심장이 건강하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심장같은 장기뿐만이 아니라 우리 몸의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세포 수준에서 치유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국가 더 나아가 세계의 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 수준에서 사랑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지구성의 찬란한 향기나는 미래의 기본은 가정 화목이라는 것을 우리는 지금이라도 깨닫고 사랑 넘치는 화목한 가정을 만들려는 노력을 해 나가자.
하모경식 오늘의 서비스 말씀
1. 우리가 눈으로 보는 별, 은하 등은 우주의 약 4%의 모습이다. 우주의 약 96%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약 96%의 우주의 모습은 대부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추어져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사실은 약 96% 우주의 모습이 감추어진 것이 아니고 그대로 존재하는데에 우리의 한계성에 의해 약 96%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우주 전체를 알 수 있는 존재는 우주를 창조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뿐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하느님이 홀로그램식 기법에 의해 인류 각자각자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하느님과 대화를 해야하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우리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이기 때문에 하느님과 우리와의 대화는 영원히 계속되어야하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무한한 능력의 개발 뿐만이아니라 참 행복과 참 기쁨 그리고 참 자유를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 속의 하느님과 우리가 대화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정화되어야한다. 저자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는 간단한 방법으로서 하모만트라의 염송을 소개한다.
물론 하모만트라의 염송은 우리 마음을 정화하는 수많은 방법들 중 한가지 방법일 뿐인 것이다. 여러분과 인연있는 마음을 정화하는 방법은 독자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인 것이다.
그러면 마음 속 안에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메세지를 받을 수 있고 우리가 산과 같은 높은 벽을 만났을 때도 넘을 수 있는 힘이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약 96%의 우주 중 약 23%가 암흑물질이고 약 73%가 암흑 에너지이다. 그러나 암흑 물질이나 암흑 에너지라는 이름만 붙였을 뿐이지 정체를 아직도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하모경 저자는 암흑물질이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에서 나오는 하모물질이고 암흑 에너지가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에서 나오는 하모에너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모물질과 하모에너지는 수시로 상호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입장이다.
저자는 인류가 암흑물질이나 암흑 에너지와 같은 부정적 단어를 사용하지 말고 하모물질이나 하모에너지와 같은 긍정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다.
우주의 약 96%가 부정적 에너지가 나오는 암흑 물질이나 암흑 에너지로 되어있다고 부정적 용어를 사용하다보면 우주는 부정적 용어에서 나오는 부정적 에너지에 의해 희망이 없어진다.
그러나 우주를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 하모 물질과 하모 에너지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우주는 긍정적 용어에서 나오는 긍정적 에너지에 의해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모 물질과 하모 에너지는조건에 의해 눈에 보이는 물질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마치 화학반응에서 질소와 수소가 조건에 따라서는 서로 반응해서 암모니아라는 물질로 전환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질소와 수소는 보통은 반응해서 암모니아라는 물질로 전환이 불가능하다. 만약 보통 상태에서 질소와 수소가 암모니아로 전환이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자.
공기의 약 80%가 질소이다. 수소 풍선이 있다고 하자. 만일 질소와 수소가 반응해서 암모니아라는 물질로 전환된다면 수소 풍선이 공기 중에서 터지면 공기 중에 암모니아 가스가 차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러나 질소와 수소를 압력과 온도를 특수상황으로 바꾸고 특수 촉매를 집어넣으면 수소와 질소가 반응해서 암모니아라는 물질로 전환된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우는 내용이다.
즉, 하모물질과 하모에너지도 특수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물질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이 특수 상황을 아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신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하모물질과 하모에너지로 전체 우주의 약 4%를 차지하는 눈에 보이는 우주를 창조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우주를 보면 우주는 생명물질인 하모 물질과 하모 에너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그리고 우주를 구성하는 은하계, 별, 달, 태양, 지구 등도 모두 생명체인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주의 삼라만상이 생명체인 것이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본질이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에서 나오는 생명 물질인 하모 물질과 생명 에너지인 하모 에너지이고 하모물질과 하모 에너지는 상호 변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심라만상이 본질적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인 것이다.
결국 삼라만상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다양한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하모경식 이론을 바탕으로 저자가 만물은 하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모물질이나 하모 에너지가 우주의 삼라만상을 구성하는 재료이기 때문에 하모물질이나 하모 에너지가 없으면 우주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모물질이나 하모에너지의 근원이 모성적 하느님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모성적 하느님이 안계시면 지구, 태양, 별, 달 은하 등 어느 것 하나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이론을 진실이라고 증명도 못하지만, 거짓이라고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마치 아보가드로가 1800년 대애 어떤 분자의 분자량에 그램을 붙였을 때 그 안에는 6 곱하기 10의 23승 개의 분자수가 들어있다고 가설을 세웠을 때 진실이라고 증명도 못하지만 거짓이라고 부정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쉽게 예를 든다면 아보가드로의 가설에 의하면 물의 분자량이 18이기 때문에 물의 분자량인 18에 그램을 붙인 18 그램 속에는 물분자가 6 곱하기 10의 23승 즉 600000000000000000000000 개의 물분자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사실 물분자가 고정된 것도 아니고 계속 움직이는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물분자의 천문학적인 숫자를 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직감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어떤 것을 주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직감은 때로는 과학 수준을 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직감에 의한 주장은 그 당시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인류 문명이 진화 발전함에 따라 옳다고 증명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또한 어느 시점에 가면 사고가 확 바뀌어 진리가 비진리가 되고 비진리가 진리가 되는 때가 있다. 즉 역발상이 진리임이 밝혀지는 때가 있는 것이다.
예를들어 저자가 학생 시절 때만해도 윤리시간에 만물에 영혼이 있다는 애니미즘은 원시사상으로 배웠고 기독교는 고등종교로 배웠다.
그러나 저자는 약 6000년 전에 흙으로 최초의 남성 인간인 아담을 만들고 아담의 갈비뼈로 최초의 여성 인간인 해와를 만들었다는 기독교의 가르침보다는 만물에 정령이나 영혼이 들어있다는 애니미즘 사상이 보다 양자역학적 고등사고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인간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중명못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특히 영혼 성장을 위한 말씀은 형이상학적 말씀이 많이 내포되어있기 때문에 거의가 증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고 안믿고는 독자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믿어서 손해보는 것이 전혀 없는 이로움을 가져다 주는 믿음이 있다.
모든 물질의 본질이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에서 나오는 하모물질과 하모에너지라는 것을 믿고 우리가 하느님을 구심점으로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인생에 큰 도움을 준다.
2. 우주는 수없이 많다는 설이 있다. 다원우주설(多元宇宙說)이다. 저자는 다원우주설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 등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 등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우주가 다른 우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는다.
특히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 등이 우리가 사는 우주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 등이 우리가 사는 우주가 아닌 다른 우주에도 영향을 준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파급효과를 안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생각과 아름다운 말 그리고 아름다운 행동 등을 하는 것이 개인차원이 아닌 우주적 차원 더나아가 또다른 우주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3. 지구는 초속 약 30km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수성은 초속 약 50km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데에 태양의 중심을 지구가 벗어나지 않는 것은 정말로 불가사의한 기적 중의 기적인 것이다.
만일 지구가 태양의 공전 궤도를 이탈한다면 우리는 지구성에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진정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도 지구가 태양을 구심점으로 도는 것처럼 구심점이 있어야한다.
우리를 진정한 생명으로 이끄는 마음의 구심점이 바로 하느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을 떠나면 죽고 하느님과 항상 동행하면 진정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하느님을 마음의 구심점으로 둔 지구성의 인간을 빛인간이라 하고고 마음의 구심점에서 하느님을 떠난 사람을 어둠 인간이라고 하는것이다.
4. 죽음은 없다. 단지 우리의 본고향으로 귀향하는 것일 뿐이다. 혼자 본교향으로가면 심심할까봐 하느님은 친절하게 함께 본교향으로 가는 존재를 파견한다.
우리가 육신을 벗을 때까지 아름다운 삶, 선한 삶 등을 살면 마음 곱고 따듯한 마음을 가진 자비심이 넘쳐흐르는 미인, 미남을 하늘에서 파견해 이들 미인, 미남들과 함께 본교향으로 간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 본교향까지 가는 노정이 정말로 행복하고 기쁘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벗을 때까지 추악한 삶, 악한 삶 등을 살면 조직 폭력배, 악마처럼 생긴 마음이 거칠고 차가운 마음을 가진 자비심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추남, 추녀을 하늘에서 파견해 이들 추남, 추녀들과 함께 본고향으로 간다. 그렇기 때문에 본고향까지 가는 노정이 정말로 괴롭고 스트레스 팍팍 받는다.
이러한 저자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도 극소수는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가 공상소설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는 이성이 있어 그러한 거짓말에 안속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저자가 위에서 말하는 것은 저자의 상상 속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위 이야기는 사실과 거짓으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저자가 위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가의 교훈적 메세지를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위의 이야기에서 선함의 중요성과 덕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이 세상에서 선하게 살고 주위에 많은 덕행을 쌓으면 진실 거짓과는 상관없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위의 저자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도 위의 이야기를 믿고 이 세상에서 선과 덕행을 쌓아 천상계에 가서 득이 있으면 있었지 손해볼 것은 정말로 하나도 없다.
그냥 믿고 이 세상에서 선과 덕행을 쌓으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고 이 세상을 살면서 주위에 선한 일을 많이했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을 뿐인 것이다.
이 세상의 이야기는 전부 사실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꾸며낸 이야기도 인류에게는 필요하다. 사실적인 이야기만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너무 삭막하고 상상력 창의력 등은 생기지 않는다.
이솝이야기나 동화, 전설, 소설, 신화 등의 내용이 비록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문학장르는 인간의 영혼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독자들은 그러한 입장에서 위의 저자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고운 심성으로 이타생활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면 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배우자는 '자신의 감추어진 또 다른 모습이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무조건 감사를 하시다보면 저절로 치유되고 사랑하게 됨을
저는 체험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정의 불행은 감사와 사랑의 부족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엄마들이 나서서 화목한 가정을 만들면 온나라, 온세상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으로 가득하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