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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 |
주소 | http://www.wikileaks.org |
---|---|
표어 | We open governments. |
영리적 | 비영리 |
종류 | 문서 아카이브 |
사용 언어 | 다국어 |
소유자 | 선샤인 프레스 |
제작자 | 줄리안 어샌지 |
시작일 | 2006년 12월 |
현재 상태 | 운영 중 |
위키리크스(WikiLeaks)는 2006년 12월에 처음 시작한, 정부와 다른 단체로부터 온 민감한 문서를 누설하는 웹사이트로, 스웨덴에 서버를 두었다.[1] BBC에 의하면, 위키리크스 대표 줄리안 어샌지는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집단 지성으로 만들어지는 위키백과에서 착안한 위키리크스는 익명 제보에 의존하지만, 자체적인 검증 시스템을 통과한 소식만을 사이트에 올린다.”라며 “이미 공개된 내용, 단순한 소문은 다루지 않는다.”라고 밝혔다.[2]
위키리크스는 중국 반체제 인사, 기자, 수학자 그리고 미국, 대만, 유럽, 오스트리아 그리고 남아프리카 등의 신진 회사들의 공업 기술자들이 창립하였다. 위키리크스를 발족한 한 해 동안 이 사이트에서는 120만 건이 넘는 문서들이 계속 갱신되고 있다. 자금 조달의 문제로 위키리크스는 2009년 12월 모든 작동을 일시적으로 중지했었다. 비공식 미러 사이트에 접근이 여전히 가능했었음에도 기사들이 더는 게재되지 못하였다. 위키리크스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고 나서 모든 작동을 복구하였고, 2010년 2월 3일에 자금 조달 위한 최소 목표가 성취된 것을 공표했다.
목차[숨기기] |
위키리크스는 2007년 1월에 처음 웹 상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위키리크스의 창립자들은 스스로 자신이 위키리크스 게시판의 고문의 회원이라고 밝힌(후에, 위키리크스의 창립자라고 밝혀졌다) 줄리안 어센지같은 대중에 공개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원이 밝혀져 있지 않다. 2009년 6월 즈음, 이 사이트는 1200여 명이 넘는 자원 봉사자들이 올라와 있고, 어센지, 필립 아담스, 왕 단, CJ 힌케, 벤 로리에, 타시 남걀 캄시트상, 샤오 치앙, 치코 휘트테이커, 그리고 왕 유카이의 고문들이 목록에 올라와 있다. 그러나 2010년 《마더 존스》 잡지에서 조사한 결과 목록에 오른 고문들 가운데 몇몇은 사이트에 언급된 지 몰랐거나 어떻게 자신의 이름이 거기에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캄시트상, 그는 고문이 되기로 동의한 적 없으며, 노암 촘스키는 페이스북의 위키리크스 모임의 스스로 자원한 관리자로서 등록되어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위키리크스의 주요 관심은 아시아, 이전 소비에트 연방,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 지역의 압제적인 규율, 관습, 제도 등을 유출하는 데 있지만, 압제적인 정부, 기업의 비윤리적인 행동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그들의 참여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2007년 1월, 웹사이트는 대중에 공개될 준비가 된 기밀문서들이 120만 건 있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 장비의 지출비용 문건부터 케냐의 부정부패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항목들이 첫 페이지에 오르며 다른 중요한 문서들이 방출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내부고발자들과 기자들이 천안문 광장의 학살 기념일에 대한 중국인 고위 공무원에게서 온 이메일을 대중에 공개한 이후 2005년 10년형을 구형받았던 중국인 기자 시 타오일을 참고하여, 민감한 메일, 문서들로 말미암아 감옥에 가지 않도록 보장하는 데에 있다. 이 프로젝트는 1971년 펜타곤 페이퍼의 다니엘 엘스버그의 누설에서 유래되었다. 미국에서는 몇몇 문서의 누설은 법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는 헌법상 적어도 정치적인 연설의 분야에서만큼은 익명성 보장을 규정했다. 작가이자 기자인 휘틀리 스트라이버는 “정부 문서의 누설은 감옥을 의미할 수는 있지만, 감옥은 공정하고 짧게 구형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감금 혹은 심지어 죽음까지 이르는 중국,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 지역 같은 많은 지역이 있다.”라며 이 위키리크스 프로젝트의 이점에 대해서 연설했다.
이 사이트는 2008년 이코노미스트의 《뉴 미디어 어워드》를 포함하여 수많은 중요한 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9년 6월, 위키리크스와 줄리안 어센지는 2009년 영국 국제사면위원회의 《미디어 어워드》를 케냐 경찰들의 살인에 대한 인권을 위한 케냐 국립 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한 "Kenya: The Cry of Blood – Extra Judicial Killings and Disappearances"의 2008을 출판한 데 대하여 상을 받았다.
2009년 12월 24일, 위키리크스는 기금난을 겪었고, 새로운 기사를 제출하는 형태를 제외하고 웹사이트의 모든 접근을 중지하였다. 위키리크스는 이를 일반적인 업무를 멈추고 상승하는 세입에 관련된 모두를 책임지기 위한 일종의 파업이라고 본다. 2010년 1월 6일 기금이 안정되길 바라는 동안 이 파업은 2월 3일까지 최소 기금조달 목표가 성취되는 데 시간이 걸렸다. 2010년 1월 22일, 페이팔은 위키리크스의 기부 계좌를 중지하고 그들의 자산을 동결시켰다. 위키리크스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 불분명한 이유를 들어 이의를 제기했다. 이 계좌는 2010년 1월 25일 복원되었다.
2010년 1월 인터뷰에 따르면, 위키리크스 팀은 5명의 전임 직원 그리고 800명의 월급을 받지 않는 예비 근로자들을 두고 있으며 공식적 본부를 두고 있지는 않다. 경비지출은 주로 관료식의 복잡한 절차와 서버 유지비로 20만 유로인데 자원봉사자들 급여 지급할 시에는 현재 60만 유로로 추산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변호사한테 돈을 지급하지 않고 AP 통신사,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그리고 미국 신문 출판인협회 같은 미디어 기구에 의해 법적인 지지와 기부를 받는다. 그들의 수입원은 기부뿐이지만, 경매 모델을 추가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단지 읽기만 가능한 페이지 "사용자에게 위키리크스는 위키백과처럼 보일 것이다. 누구나 그것을 게시할 수 있고 편집할 수 있다. 기술적인 지식은 요구되지 않는다. 기밀 누설자들은 익명으로 흔적이 남지 않게 문서를 게시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문서에 대해 토론하고 그들의 신용과 정확성에 따라 분석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배경지식과 내용을 따라서 기밀 누설된 문서에 설명할 수 있는 기사를 읽고 쓸 수 있다. 문서, 그리고 있을법한 정치적인 관련성은 수많은 캐스트를 통해 밝혀진다.
그러나 위키리크스는 단지 "정치, 외교, 역사, 인도"적인 측면에 관한 문서들을 편집 방침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편집방침이 없는 것이 스팸과 좋은 자료들이 섞이도록 야기한다는 초기의 비판주의와 "자동적인, 믿을만한 기록의 비차별적인 간행"을 증진시키는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더 이상 누구나 게시하고 편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대신에 의뢰는 내부의 검토 과정을 거쳐 간행되는 반면, 편집기준에 일치하지 않는 문서들은 익명의 위키리크스 리뷰어들에게 거절 당하기도 한다. 위키리크스는 몇몇의 소프트웨어 패키지(MediaWiki,Freenet,Tor그리고 PGP)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사용자들의 사생활 보호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Tor를 사용하고 게시를 강력하게 독려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스스로 '많은 기밀 문서의 흔적이 남지 않는 비검열 시스템'으로 묘사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스웨덴 회사인 PRQ의 "고도의 보안,질문과답변 없는 호스팅 서비스"하는 곳에 서버를 두고 있다. PRQ는 파이러트베이와 관련된 Gottfrid Svartholm과 Fredrik Neij 는 수많은 지휘권들로 부터의 법적인 도전들을 견디는 경험을 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밝혀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자신의 서버를 유지하고, 일지를 갖고 있지 않으며 소스와 다른 믿을만한 정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기밀정도의 암호를 사용한다.
중국정부에서는 현재 위키리크스 URL, 주요한 .org 지역적으로 다양한 .cn, 그리고 .uk를 포함해서 검열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이트는 여전히 중국의 방화벽의 뒤에서 "secure.sunshinepress.org"같은 프로젝트의 대안적 이름들 중의 하나를 통해서 접근이 허용되고 있다. 이 대안 사이트는 자주 바뀌며 위키리크는 사용자들에게 위키리크스의 커버네임을 찾는 것을 유도한다.
2009년 3월 16일, 호주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위원회 (ACMA)는 그들의 블랙리스트에 위키리크스의 특정 페이지 URL을 추가했다. 블랙리스트에 추가된 이후, 다른 나라에서부터 업로드되고 있으며 이러한 페이지들은 만일 의무적인 인터넷 필터링 검열이 계획대로 이행된다면 모든 호주인들에게 제한될 예정이다.
2010년 3월 15일, 위키리크스는 32페이지 가량의 미국 국방부의 2008년 3월 분석 기밀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웹사이트의 미국 보안과 관련된 몇몇 저명한 보고서에 대해 기술했다. 위키리크스의 에디터인 줄리안 어센지대표는 군사보고서의 몇몇 세부묘사들은 부정확하고 결함이 있으며 또한 보고서에 의한 미국 군사의 염려는 가상적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내부에 존재하거나 혹은 전에 일했던 내부고발자와 기밀누설자를 채용의 중지와 범죄 기소 통해 잠재적인 내부고발자들을 단념시키도록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10년 4월 5일, 위키리크스는 기밀문서로 지정된 2007년 7월 12일 바그다드에서 로이터 통신 기자 2명 Saeed Chmagh와 Namir Noor-Eldeen을 포함하여 12명의 사상자를 낸 공습에 관한 비디오를 공개했다. 이 필름은 39분의 미편집분과 18분의 편집(주석이 덧붙여진)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디오의 분석은 한 남자가 AK-47를 나른다고 오인하여 악의적인 동기가 없어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다른 RPG (수류탄 달린 로켓)와 공격했다. 군부대측에서는 비공식의 작은 조사로 집행했지만 아직도 기본적인 조사 자료(관련 군인들의 진술 혹은 전투의 평가자료)들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이 자료의 공개 이후 위키리크스는 구글의 검색자료로 상위권에 내내 랭크되어 있었다.
스웨덴 검찰청의 대변인은 아프간 전쟁에서의 미군의 범죄사실을 폭로한 바 있는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안 어샌지에 대해 강간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스웨덴 검찰청장이 이를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센지는 이 사건을, '위키리크스의 일을 심각하게 교란시키기 위한 것' 이라고 주장했다. <위키리크스는 최근, 2차 폭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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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28th Novembre 2010, Wikileaks began publishing 251,287 leaked United States embassy cables, the largest set of confidential documents ever to be released into the public domain. The documents will give people around the world an unprecedented insight into the US Government's foreign activities.
The cables, which date from 1966 to the end of February this year, contain confidential communications between 274 embassies in countries throughout the world and the State Department in Washington DC. 15,652 of the cables are classified Secret.
To access the Cable gate, go to http://cablegate.wikileak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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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5pm EST Friday 22nd October 2010 WikiLeaks released the largest classified military leak in history. The 391,832 reports ('The Iraq War Logs'), document the war and occupation in Iraq, from 1st January 2004 to 31st December 2009 (except for the months of May 2004 and March 2009) as told by soldiers in the United States Army. Each is a 'SIGACT' or Significant Action in the war. They detail events as seen and heard by the US military troops on the ground in Iraq and are the first real glimpse into the secret history of the war that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has been privy to throughout.
The reports detail 109,032 deaths in Iraq, comprised of 66,081 'civilians'; 23,984 'enemy' (those labeled as insurgents); 15,196 'host nation' (Iraqi government forces) and 3,771 'friendly' (coalition forces). The majority of the deaths (66,000, over 60%) of these are civilian deaths.That is 31 civilians dying every day during the six year period. For comparison, the 'Afghan War Diaries', previously released by WikiLeaks, covering the same period, detail the deaths of some 20,000 people. Iraq during the same period, was five times as lethal with equivalent population 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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