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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단속과 약간의 여유
앞서 밝힌 '불법 복제 방지를 위한 대토론회'에서 영화 분야 토론자로 나선 나우필름 대표이자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 이준동 이사는 '불법 복제 방지를 통한 영화 산업 발전 방안'을 내놓았다. 이 토론에서 지금껏 음반제작자나 출판업자들과 달리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영화 제작자들이 제협을 통해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물론 그만큼 위기를 실감한단 얘기이기도 하다. 이준동 이사는 한국영화산업의 심각한 미래를 불러온 가장 큰 요소로 인터넷 상에서의 불법 복제 문제를 꼽는다. 불법 복제가 만연하게 된 이유로는 당연히 잘 발달된 인터넷 환경을 꼽을 수 있다. "세계 최고의 IT 강국에서 인터넷을 즐기는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네티즌들이 한국영화 주 소비층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이 극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영화를 소비해줘야 하는데 극장을 어느 정도 찾긴 하지만 집에서는 대여 문화 대신 거의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 문화를 향유하고 만다. 여기에 더해 범국민적인 저작권 개념 부재도 본질적인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제도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개선이 시급한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영화 제작사들은 불법 파일의 폭격에 대해 영화사별로 법률 회사를 고용해 불법 파일 유포자와 사용자를 개별적으로 고소하는 형식으로 대응해 왔다. 영화계 내부에서 산업적 고민을 수렴하는 주체가 없었던 탓이다. 불법 복제로 인해 영화 산업 전체가 어떻게 멍들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제협은 이런 고민들을 주도적으로 끌어안기로 작정한 후 각종 문제 제기에 나서고 있으며 영진위 정책연구팀도 11월 말 영화 산업 부가 시장 활성화를 위한 마스터 플랜 및 DVD 시장에 대한 정책을 제안할 예정이다.
제협은 한국 영화 산업의 기반을 흔들고 있는 불법 복제를 타개할 몇 가지 개선 방안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첫째, 불법 동영상과 같은 저작권법 위반 사례에 관한 처벌에 있어 걸림돌이 되는 '친고죄'를 '반의사 불벌죄'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친고죄 폐지는 저작권법과 관련해 그간 논란이 돼왔던 부분이다. 친고죄는 저작권자가 직접 고소를 해야만 처벌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간 불법 다운로드 족들의 불법 행위를 목격했어도 방치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반의사 불벌죄는 우선적으로 입건한 후 권리자에게 처벌 의사를 묻는 것이다. 판권을 소유한 권리자가 처벌할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진다. 이 외에 더 강경하게 무조건 적발해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기본적으로 제협은 단속 권한을 가진 국가 기관이 단속을 하되 권리자한테 일단 처벌 여부를 물어보는 반의사 불벌죄가 가혹한 형사 처벌이나 무기력한 친고죄보다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관해 이준동 이사는 일명 '가설극장 이론'을 펼친다. "가난했던 시절 동네에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돈이 없는 이들은 보리쌀 한 봉지라도 내고 공연을 봤다. 아예 돈이 없는 애들은 극장 장막을 들치고 몰래 들어갔다. 이게 무슨 얘기냐. 그 없었던 시절에도 대가를 지불하고 봤다는 거다. 그런데 왜 요즘은 무조건 불법을 자행하느냔 말이다. 또한 그 시절에도 범법은 자행됐다. 완벽히 차단할 수가 없었다. 정말 어려운 이들에게 장막을 들치고 들어가는 걸 허락했다. 그래서 콘크리트 극장이 아니라 가설극장이라 이름 붙인 거다." 단속은 하되 퍼블릭 억세스(Public Access, 대중 접근 채널)의 여유는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 동영상 중개업체 OSP를 잡아라
오프라인보다 강력한 온라인 불법 복제의 종식을 위해선 말 그대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촉구된다. 여기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현재 IT(Information Technology)와 BT(Biotechnology)가 전 세계의 주력 산업이 되고 있지만 향후 10년~20년 안에 문화 산업, CT(Culture Technology)가 이를 대치할 것이고 그 가운데 영화가 여타 문화 산업을 견인해 가는 킬러 콘텐츠 역할을 하게 될 거라는 예측 때문이다. 또한 향후 문화 산업의 콘텐츠들은 대부분 디지털 소스로 공급될 추세고 이것이 세계적인 대세가 된다면 이에 따른 기술적, 제도적 인프라가 반드시 구축해야 하는데 민간 차원에선 해결이 불가능하다. 할리우드 메이저가 디지털 배급, 디지털 상영 서비스를 본격화하려는 때이고 보니 이에 대한 대비는 한국 영화 산업계에서도 중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제협은 불법 동영상 사용자들보다는 사용자들이 서로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OSP(Online Service Provider: P2P 사이트, 혹은 웹하드를 제공하는 회사나 포털 사이트) 업체들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다수의 OSP는 네티즌 가운데 누군가 들어와 불법 행위를 하는 건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일로 수익을 얻고 있는 만큼 이들의 사업은 사실상 불법이다. 이준동 이사는 "도박 하우스를 개설한 사람은 처벌받는다. 여관 주인들은 미성년자들이 그 안에서 불법 행위를 하면 책임을 지게 돼 있다. 물리적 공간에서는 공간을 개설한 사람이 책임을 다 지는데 온라인에서는 왜 그런 책임을 인정하지 않나?"라고 성토한다. 불법 다운로드 족들과 업로드 족들을 연결해주는 '복덕방' OSP들이 현재 딱히 처벌 규정이 없음을 알고 법망을 피해 불법을 저지르는 상황이다. 제협은 이들에게 '부작위법'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작위법은 예컨대 계모가 전처 소생 딸의 젖을 먹이지 않고 수수방관해 굶어죽게 했을 때 직접 죽인 건 아니지만 의도가 있다고 여겨 처벌을 받게 하는 법제다. OSP가 저작권을 침해하는 네티즌들의 신원과 행위를 인식, 구별할 있고 중지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OSP가 이용자들의 불법을 최대한 방지하는 기술을 자체 웹하드나 P2P 사이트에 탑재하는 식의 기술적 책임도 요구되고 있다.
올해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한국영화산업 피해액 규모는 약 2,8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한 해 한국영화 전체 제작비 규모는 3,400억 원이다. 기막힌 노릇이다. 한국영화 전체 제작비 규모에 근접하는 불법 복제 피해액을 산업 안으로 흡수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한국영화 산업 전반의 질이 불법 복제 단속에 의해 좌우될지도 모른다는 전망, 실감난다.
VOD 서비스가 대세?
지난 10월 28일 <식스 센스> <빌리지>의 감독 M. 나이트 샤말란이 "극장들이 문을 닫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발언했고 이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보도했다. 올랜도에서 열린 전미극장주협회 주최 쇼이스트(ShowEast) 연례 모임에 참석한 샤말란은 극장 상영과 DVD 출시 간에 두고 있는 약 한 달의 간격이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런 조치는 극장 업계를 망침은 물론 영화 산업 자체를 위축시킨다. 극장 좌석에 어울려 앉을 때 비로소 다른 이들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영화의 진정한 매력이 사라져선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 영화 업계에서 점증하고 있는 개봉 영화의 극장 상영과 DVD 동시 출시 요구들은 업계가 당면한 최대 현안이자 논란의 중심에 선 뜨거운 감자다. 특히 월트 디즈니 최고경영자 밥 아이거가 지난 여름 극장 개봉과 DVD 동시 출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을 때 찬반 논란이 크게 일었다. 2005년 현재 미국은 영화 시장의 75%가 DVD, 비디오 시장이고 극장 시장은 25%를 차지한다.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시장 논리로서 이런 논쟁이 벌어질 만하다. 그에 반해 한국은 극장이 75%, DVD, 비디오, 방송 등의 부가 판권 시장이 25%에 불과하다. 이런 얘기가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인 것이다.
제협이 추진한 저작권신탁기구가 11월 초 문화부의 인가를 얻어 출범할 예정이다. 제협은 저작권신탁기구를 통해 포털 등을 통한 본격적인 온라인 영화 '다운로드 앤 플레이' 방식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제협 측은 "현재까지는 통상 대리중개업체가 영화당 1천만~5천만 원 정도에 판권을 구입하면, 이후 서비스 빈도에 따라 발생하는 수익은 중개 업체에 귀속돼 왔다"며 "저작권신탁기구를 통해 온라인 영화 서비스 수익의 월정액제를 서비스당 과금 체계로 변경시켜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신탁기구의 설립 논의와 함께 대두되는 문제가 홀드백 기간의 우선 순위를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영진위 김미현 정책연구팀장은 "홀드백 순서와 기간을 결정하는 기준은 대개 일단 저작권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수익을 돌려주는가, 관객들이 얼마나 추가 지불 의사가 있는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한국영화 시장에서 가장 수익이 큰 윈도는 극장이다. 부가 판권 시장 수익이 극장 수익을 넘어설 수 없는 구조이고 인위적으로 부가 판권 시장의 수익을 키워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제협은 현재 DVD 시장의 가치와 의미가 실종됐다고 판단, 수익을 낼 수 있는 극장 다음 단계의 새 윈도로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새 윈도의 대안은 VOD 서비스다. 비디오나 DVD 같은 윈도에 비해 디지털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VOD 서비스는 화질과 접근성, 편이성이 월등이 높다. 그냥 인터넷 앞에 앉아 10분 정도만 마우스를 만지면 영화를 볼 수 있다. 물론 현재도 몇몇 영화 VOD 서비스 업체들이 있다. 문제는 사용료를 월정액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판권자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결국 영화산업 기반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제협은 영화 프린트가 디지털 소스로 전환되는 세계적 추세에서 극장 윈도 이후 제2의 윈도로 VOD 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화질도 CD급, DVD급, HD급으로 구분해 네티즌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한편 편당 적정 가격을 설정해 판권자들도 권리를 찾을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시네마서비스 배급, 유통팀 이원우 실장도 계획적인 VOD 서비스를 차세대 부가 판권 시장의 대세로 인정한다. "부가적인 윈도들의 변화 가운데 VOD 등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2010년쯤엔 극장과 VOD 두 가지 윈도만 살아남을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DVD는 렌탈 정도만 남아 있겠지만 VOD가 아예 정착되면 DVD 렌탈도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국내 시장에서 극장 판권과 VOD 판권만 존재하게 될 듯하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DVD 온라인 쇼핑몰 파파 DVD 김종래 대표는 "공짜에 익숙해진 건 아무리 저가로 판매해도 안 된다. VOD나 다운로드 형태의 유료화가 성공할 수 있었다면 벌써 DVD 시장이 안정됐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보는 것 외에는 카피해서 본다는 개념이 기형적이지만 하나의 문화 형태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VOD 서비스는 불법 파일만 더 빨리 유포시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내비친다.
더불어 VOD 서비스 활성화를 반대하는 측에선 이런 기술들이 늘 해킹되기 마련이라 지속적으로 방지 기술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저작권신탁기구로 온라인 저작권을 통제하려는 제협 측은 이와 관련해 소설 시큐러티(Socail Security, 사회 안전망) 개념이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 뱅킹 시스템이 유지되는 건 해킹을 못해서가 아니다. 이걸 건드리면 돌아올 불이익이 엄청나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안 건드리는 거다. 기본적으로 전체 사용자들이 이런 개념을 지닌 제도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영화인회의 영상산업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김도학 박사는 "단편, 독립 영화의 경우는 오히려 도움이 되겠지만 VOD를 낙관적으로만 볼 순 없다. 수익 크기를 체계적으로 시뮬레이션해 장기적 전망을 예측할 필요가 있다고"고 말한다. 한국 영화 산업계는 제협을 통해 문화관광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이들 부처 산하 기관들의 협력을 촉구하고 있다. 더불어 이들 행정 부처가 감당할 수 없는 제도적 측면은 입법 기관인 국회에서 법 제정 등을 통해 뒷받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범국민적 차원의 노력과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틈새 시장 전략도 나머지 대안들도 산업을 구제할 논리와 제도가 정립된 이후에나 실효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동영상 피해액, 이용자 증가표
평균 1,000만명 이상이 불법 다운로드를 하고 있으며, 10대의 90% 이상이 불법 다운로드 경험 있음
- 청소년은 대다수가(80% 이상) 인터넷 유포 및 다운로드를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출처: 2005년 KT문화재단 ‘청소년 및 학부모 사이버 범죄 인식 조사’)
- 온라인 불법 파일 공유를 위한 웹하드의 월 평균 이용자가 1,000만 명 수준(출처: 인터넷 매트릭스. CJE 자료 수정)
- 인터넷 이용을 하는 중학생/고등학생 중 91%가 불법 다운로드 경험 보유(출처: 2005, 문화컨텐츠진흥원 CTnews)
불법 동영상, 미국에서는 어떻게 유죄가 됐나?
지난 6월 27일 미연방대법원은 1심과 2심 판결을 파기하고 P2P업체 그록스터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미 연방대법원 재판장 전원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도구를 배포하는 사람은 저작권 침해가 이용자에 의해 이뤄지더라도 그 행위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미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결과 달리 1심과 2심 판결에서 그록스터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배타맥스 관례 덕분이다. 80년대 초반 일본 소니에서 녹화 기술이 있는 배타맥스 VCR을 개발했을 때 방송국과 영화사가 저작권 침해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당시 법원은 소니의 손을 들어줬다. 바로 녹화 기술로 저작권이 침해될 수도 있지만 다른 용도로 쓰일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이번 그록스터 판결은 1세대 P2P 냅스터와 달리 중앙 서버를 이용하지 않고 파일 교환을 하는 P2P 업체에 대한 첫 유죄 판결로 큰 파장이 예상된다. 저작권의 잣대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들이댈 경우 기술 발전 저해 및 정보 독점화를 막는 카피레프트(copyleft) 정신에도 어긋난다. 하지만 이 판례를 통해 일부 이용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인터넷 업체의 불법적인 서비스에 대해 경종을 울리게 되리라 본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