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
서울공항에 안착한 황장엽(왼쪽)-김덕홍
씨가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기전 `대한민국 만세` `조국통일 만세` 등을 외치며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전 북한노동당국제담당비서 황장엽씨(74)
가1997년4월20일 서울에 도착했다.지난
2월12일 베이징주재 우리 대사관에 귀순
한 지 67일 만이며, 경유국인 필리핀으로 옮긴 지 33일 만이었다. 황씨는 도착 직후 공항에서 발표한 `서울도착 인사말씀`을 통해 "나의 청원을 허락해 주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 준 대한
민국정부와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황씨는 "북조선은 사회주의와 현대판 봉건
주의, 군국주의가 뒤섞인 기형적 체제로 변질됐으며 경제는 마비상태에 들어갔다
"면서 "수십년간 북조선 당국의 고위 간부
로서 고민은 비길 데 없이 심각했으나 아끼
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다 합쳐도 7천만 우리 민족의 생사운명과 바꿀 수 없다는 양심의 명령, 그리고 남쪽 형제들과 손잡고 전쟁을 막아 보는 길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돼 대한민국에 오게 됐다"고 귀순 동기를 밝혔다.
황씨의 이날 서울행에는 필리핀 보안당국
의 호송책임자인 리바르네스 준장이 동행, 공항에서 황장엽과 김덕홍 두 사람의 신병
을 우리 측에 인계했다.
▶ 2015년 4월 20일
6·25 참전영웅 스피크먼, 영국 최고 무공훈장도 한국 기증
👉🏿 1951년 11월 4일 새벽, 임진강 지역의 ‘317 고지’. 중공군의 강력한 기습 공격으로 고지를 방어하던 근위 스코틀랜드 수비대 소속의 수많은 병사가 부상을 당했다. 육탄전이 벌어졌고, 전세는 적이 우세했다. 이때 이등병 윌리엄 스피크먼(88·사진)을 비롯한 6명의 병사는 적의 기세를 꺾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과감한 수류탄 공격을 감행했다. 스피크먼은 다리에 심한 부상까지 입었지만, 부대가 후방으로 안전하게 철수할 때까지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는 6·25 전쟁에서 무공을 세워 영국연방 최고의 무공훈장인 ‘빅토리아십자훈장(Victoria Cross)’을 받은 스피크먼씨를 비롯한 영연방 4개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출신 참전 용사와 가족 85명이 오는 20~25일 방한한다고 밝혔다. 스피크먼씨는 이번 방한에서 빅토리아십자훈장을 비롯해 자신이 받은 훈장과 메달 10점을 한국에 기증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지킨 한국에 대한 사랑의 표시”라고 했다. 2010년에도 한국에 온 적 있는 스피크먼씨는 “죽어서도 317 고지에 묻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317 고지 전투에서 부상당한 뒤 1952년 1월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귀국 3개월 만에 자진해서 돌아와 그해 8월까지 전장에서 싸우는 투혼을 보였다. 영국 정부가 그에게 준 빅토리아십자훈장을 받은 6·25 참전용사는 4명뿐이며 이 가운데 생존자는 스피크먼씨뿐이다.
이번 한국 방문단 85명 중에는 6·25 참전부대인 영국 왕립포병부대와 후크부대의 현역 군인 31명도 포함됐다. 방문단은 22일 부산 유엔묘지를 찾아가고, 23일에는 비무장지대(DMZ)로 가서 분단의 현장을 둘러볼 예정이다. 보훈처는 참전용사들에게 희생과 명예의 상징인 ‘평화 사도의 메달(Ambassador for Peace Medal)’을 증정하기로 했다.
▶2014년 울산광역시 현대중공업 조션소에서 화재 발생(4명 사상
▶ 2014년 경기도 과천시 삼성808 과천센터에 서 화재 발생
▶2013년 중국 쓰환성 낙산현 북서쪽 111km지역에서 규모 6.9의 지진 발생
(100여명 사망- 실종, 600여 명 부상)
▶2012년 대한민국, 국제 통화 기금의 재원 확 충으로 150억 달러 지원을 결정.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 문대성, 논 문 표절논란으로 새누리 당탈당.
▶2011 년 게임 섯다운제(16세 미만 청소년이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온라인 pc게임을 못하 게 하는 제도), 국회 법제
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 위에서 통과, ▶2010년 서울중앙지검,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을 살해할 목적으로 위장 탈북
했다며 국가 보안법 위반 험의로 2명 구속.
▶2010년 한국방송공사 제3라디오 FM 방송 개시(FM 104.9MHZ).
▶2010년MBC PD수첩, 검사 스폰서 의혹 보도
▶ 2010년 4월 20일
미국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 발생
👉🏿2010년 4월 20일 미국 멕시코만 해저 석유시추시설 ‘딥워터 호라이즌’호(號) 폭발로 유정과 시추선을 연결하는 2개의 관이 터지면서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였다.
원유유출 지점이 해저 1500m에 위치하여 1㎠당 635㎏에 달하는 수압과 낮은 수온에 기름과 함께 분출되는 메탄가스가 슬러시(slush 질척한 얼음)을 만드는 등 극단적 환경에서 로봇 잠수정을 통한 원격 작업으로 차단 작업을 진행했다.
일일 2만~10만 배럴이 유출되는 등 사태가 장기화 되자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은 2010년 6월 15일 위기 극복을 위한 ‘오벌 오피스(Oval Office)’ 연설을 하였다. 이전 오벌 오피스 연설은 9년 전인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했던 9.11 직후였다.
원유 유출 발생 후 85일 16시간 25분 만인 2010년 7월 15일 해저 시추공에 무게 75t짜리 차단캡을 설치하여 원유 유출을 차단하는데 성공하였다. 영국 석유회사 BP는 사고 5개월만인 9월 17일 멕시코만 해정 유정이 매장 기름과 유정 사이를 연결하는 시추 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밀도 높은 시추용 기름과 시멘트를 주입해 올라오는 기름을 차단하는 ‘바텀 킬(bottom kill)’ 방식으로 완전 밀봉됐다고 발표했다.
▶2009년이재창 교수, 국제통계기구 회장에 선출
▶2004년이수종 서울대 교수, 독일 베셀 상 수상
▶2004년주민등록등본 등 민원서류 5종 인터넷으로 발급 시행
▶2003년영화 `살인의 추억` 개봉
▶2003년호주, 헤로인 밀반입하려던 북한 선박 나포조사
▶1999년한반도에서만 번식하는 `저어새` 이동 경로 첫 확인
▶1999년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에서 식칼과 쇠말뚝 발견
👉🏿 충무공 이순신 장군 부모 묘소에 이어 충무공 묘소와 현충사 경내에 있는 충무공 셋째 아들 면 등의 묘소에서 식칼과 쇠말뚝 53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충남 아산경찰서와 충무공 후손들은 1999년 4월 20일 오전 8시부터 경찰 20여명과 금속탐지기를 동원,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충무공과 그 부인이 합장된 묘소에 대해 정밀 조사를 벌여, 오후 1시 40분쯤 봉분 표면에서 20cm쯤 되는 깊이에 식칼 2개와 쇠말뚝 2개가 박혀 있는 것을 찾아냈다. 또 충무공 후손들 묘소에서 8개, 이 곳에서 9km 떨어진 현충사의 묘소 19기에서도 41개를 추가로 발견했다. 이로써 덕수 이씨 선영에서 발견된 식칼과 쇠말뚝은 식칼 55개, 쇠말뚝 47개로 모두 102개로 드러났다.
그러나 충무공 묘지 훼손사건은 어처구니없게도 한 무속인이 자신의 지병을 고치기 위해 저지른 범행인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 양씨는 K철공소에서 식칼 200개를 구입한데 이어 D공업사에서 3차례에 걸쳐 쇠막대 60개를 주문했다. 경찰에 따르면 양씨는 1차고 3월 4일 충무공 묘소에 식칼과 쇠막대를 꽂았다. 이어 3월 중순과 3월말, 4월초, 4월 8일 등 모두 5차례에 걸쳐 충무공 부모 묘소와 현충사 등에서 범행했다.
범인 양모씨는 3~4년 전 경기도 구리시 건원릉(조선 태조 능),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태종 및 태종비 능), 강남구 삼성동 정릉(중종 능), 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 이황선생 묘에도 식칼, 쇠말뚝, 동판 등을 꽂은 것을 자백했다.
▶1996년제1차 북미 미사일 회담
▶1994년을사조약 부당성 폭로한 `헐버트 수고` 공개
▶1985년지하철4호선(상계-삼선교) 개통
👉🏿 서울 4호선 상계~삼선교 1단계 구간 개통과 함께
GEC쵸퍼 차량의 첫 정식운행이 시작되었다.
평균배차간격 10분, 하루 224회 운행하며
버스로 기존 50분 소요되던 상계동에서 혜화동까지 22분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서울지하철 총 노선길이는 76.8km로 늘어났다
▶1985년마라톤선수 카를로스 로페스, 네덜란드 로테르담마라톤경기에서 2시간 7분11초로 세계신기록 수립
▶1981년제1회 장애인의 날
▶1981년국정자문회의 발족
▶1980년사상서 황산열차 전복
▶1977년광주 무당촌에서 무허가 건물 철거하던 구청직원 4명, 동네청년에 의해 피살
▶1973년성년의 날 제정
▶1969년대전 중앙시장 화재
▶1967년한국개발금융(KDFC) 발족
▶1965년한국-베네수엘라, 국교 수립
▶1962년5.16기념 산업박람회 개막
▶1962년한국-부르키나파소 국교 수립
▶1952년동양통신 창간
▶1949년제1회 세계평화옹호자대회 파리서 개최
▶1949년초대 주한 미대사에 무초 취임
▶1938년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 개봉
▶1935년조선산업박람회 경복궁에서 개막
▶1928년서울에 시내버스
(경성부영 버스 10대)운행 개시
👉🏿 부영버스 Seoul, Korea, 1920's
photographer Unidentified
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Archive
1927년까지 서울, 부산, 평양 같은 대도시에 대형 시내버스가 없었다. 7,8명 정도 탈 수 있는 승합 자동차와 택시가 버스 역할을 했으나 이것도 전화나 인편으로 불러서 타는 지금의 콜택시 아니면 전세 택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1928년 초 경성부청(서울시청)에서 서울장안의 시민교통을 돕기 위해 20인승 대형버스 10대를 일본에서 들여와 서울시내 중요간선도로에 투입하여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처음 등장했다.
부영버스는 손님을 끌기 위해 차표를 끊어 주는 예쁘장한 아가씨 차장들을 버스에 태워 장안의 큰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진취적이고 신식교육을 받았다는 여차장들은 양장 유니폼을 입고 앞에는 차표가방을 맨 채 표를 끊어주며 살짝 웃는 미소 때문에 총각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 여차장들의 인기는 금세 하늘로 치솟았다.
할일없는 건달이나 부잣집 도련님들은 점찍은 여차장들을 유혹하느라고 그 아가씨가 탄 버스를 하루종일 타고 다니며 추근덕거리던 풍속도를 연출했었다.
1920년대 말 서울장안에서 여배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차장 H양은 결국 영화계에 스카우트되어 일류 여배우가 되었다.
전차만 있던 서울 거리에 시내버스가 합류한 것은 1928년. 이를 본 사람들은 집채만 한 크기에 놀랐고 차안에는 어여쁜 여차장이 손님을 반겼다. 대형 시내버스는 해방 전까지 전차와 함께 서울시민의 발이 됐다.
‘여기는 종로거리올시다∼.’
‘내리실 분은 앞으로 나오세요∼.’
‘여기는 종로거리올시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버스차장이다.
1928년 4월 22일 드디어 서울 거리에도 시내버스가 등장했다. 앞으로 서울시민의 발이 될 부영버스 1차분 10대가 일본에서 도착한 것. 그때까지 덩치가 작은 승용차만 보아왔던 서울시민은 대형버스를 보자 집채만 한 크기에 놀랐다. 게다가 버스안에는 아름다운 처녀 안내양까지 있어 갖가지 화제를 뿌렸다. 당시 조선일보는 ‘도색의 부영버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22일부터 개업하여 1구간 7전으로 매 10분에 1대씩 운행하고 묘령의 여차장도 이채롭다. 서울 장안에는 전차가 사통오달하여 있고 인력거나 택시 등의 교통기관이 어느 정도 갖춰졌으나 아직 전차가 아니 놓인 골목이 많고, 또 인력거나 택시를 타면 돈이 많이 들어 시민의 불편이 크던 중 얼마 전에 경성부청에서 부영으로 싼 요금을 받으면서 시내 버스영업을 하기로 준비하여 오던 것을 실현하게 되었다.
일본에 주문하였던 버스 10대가 도착하였고 차장으로 쓸 여자인 ‘버스걸’과 운전사의 채용도 전부 완료하였으므로 봄날의 꽃 빛이 아주 무르녹는 오는 22일 아침부터 영업을 개시하기로 되어 우선 20일에는 시내 유지 2백 명을 초대하여 시승 겸 개업의 자축연을 장춘단에서 거행할 터이다.
이리하여 금춘부터 묘령의 버스걸과 남색 버스가 장안에서 이채를 띄우려 하는데 부영버스의 운행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동차 운전 대수는 제1기분으로 10대요. 1대의 승차 정원은 좌석 14명 외에 가죽 손잡이에 매달리어 타는 인원이 8명으로 계 22명이요. 1구간 요금은 7전이며 발차 시각은 10분에 1대씩이다.
운행노선과 구간의 정류장 이름은 제1노선이 경성역~총독부(구 중앙청)~본정4정목(충무로4가)~경성역이요. 제2노선은 경성역~명치정(명동)~황금정4정목(을지로4가)~창경원 앞이요. 제3노선은 경성역~황금정3정목(을지로3가)~경성운동장~장춘단이라 한다.’
▶1906년소설가 강경애 출생 - 사회의식을 바탕으로 한 여성해방을 추구
▶ 1893년 스페인 화가 후안 미로 출생
할리 퀸(어릿광대)의 익살 1924~1925년
▶ 1889년 히틀러 출생 - 나치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
▶ 1808년 프랑스 제2공화국 대통령(1850~52)이자 제2제정의 황제(1852~71) 나폴레옹3세 출생
▶ 1759년 독일 작곡가 헨델 사망
▶ 1745년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간적인 치료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프랑스의 의사 피넬 출생
▶ 121년 로마제국 제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출생
https://youtu.be/iu6gbvZAWn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