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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며느리 둘
김광한
하롱베이
내 오랜 친구 가운데 아들 둘을 베트남 며느리로 맞이한 사람이 있다.강북에서 모텔을 하는 친구인데 장남은 학력이 신통치 않아서 중소기업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고 차남은 베트남 호치민(옛날 사이공)에서 건축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장남은 40이 넘어서 결혼 중개소의 소개로 현재의 베트남 부인을 얻어서 아들을 낳고 잘 살고 있고 차남은 베트남 현지에서 그곳에서는 학력도 괜찮은 베트남 아가씨와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고 역시 잘 살고 있다.두 며느리 모두 귀화를 해서 한국 이름을 갖고 잇고 주민등록증까지 나와서 완전한 한국인이 되었다.
처음 큰 며느리가 한국 생활을 했을때는 얼굴도 까무잡잡하고 조금 촌스러웠으나 지금은 한국말도 그리 어색치 않아 얼른 보면 한국인과 다름없이 보인다.남편과 시부모에게 아주 친절하고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것이 친구는 여간 대견스럽지 않게 생각해서 모텔에서 일해서 받는 돈을 베트남의 친정으로 송금 시켜 어려운 살림에 보탬이 되게 한다.
이런 친구의 여동생은 남편이 치과의사인데 얼마전에 미국인 사위를 얻어서 강남의 결혼식장에서 예식을 올렸다. 그 전날 여동생이 오빠에게 하는 말이 아주 불편했다. 즉 오빠의 며느리는 결혼식장에 함께 오지 말았으면 하는 말이었다. "남들 보는 눈도 있으니 오시려면 혼자 오세요"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부아가 나서 오라고 해도 가지 않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자기 아들은 구민회관에서 예식을 올렸는데 여동생의 딸은 강남 청담동의 이름난 예식장에서 예식을 올리는 것이 위세로 작용해서 사람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친구는 두 베트남 며느리를 혼기를 넘긴 두 아들에게 다가온 천사들이라고 생각한다. 잘못했으면 홀아비로 늙어가거나 콧대 높은 며느리가 들어오면 늙어서 사람대접 받긴 다 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트남 며느리의 고향인 베트남은 남의 나라가 아니다.베트남은 불란서 식민지 생활을 오래했고 공산주의 노선으로 통일이 되어서 우리나라보다 가난하지만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유교적인 관념이 뿌리 박힌 나라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격이 온순하고 남편에게 순종적이다.
고려시대 베트남 의 이용상이란 왕자가 귀화해서 화산 이씨의 조상이 된 인연도 있다. 요즘 동남아 아가씨들과의 국제결혼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일부 소갈딱지 없는 인간들은 우리 나라가 단일민족인데 민족성이 훼손이 된다고 침을 튀긴다.그러나 과연 단일민족인가? 아니다.
자료에 나타난 것을 살펴본다. 한국에서 외국인의 귀화는 역사상 줄곧 이어져왔는데, 크게 중국계·몽골계·여진계·위구르계·아랍계·베트남계·일본계 등으로 대별된다. 일본인 김충선을 시조로 하는 우록 김씨나 베트남의 왕자 이용상을 시조로 하는 화산 이씨등이 유명한 경우이며, 《조선왕조실록》에도 여진인의 귀화 기록이 적지 않게 보인다. 다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계의 경우는 근대 이전에 족보편찬시 권위를 높이기 위한 의도에서 끌어온 경우가 적지 않아 족보에 중국계라고 나와 있다고 해서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현재는 국내 거주 외국인의 증가와 국제 결혼, 다문화 가정 등의 출현으로 새로운 성씨, 새로운 본관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내 귀화 성씨의 수는 총 442개로 토착 성씨 수의 1.5배에 달한다(귀화 성씨와 토착 성씨를 합하면 692개이다.). 대부분은 한국인과의 혼인 관계로 말미암은 경우이며, 국가별로 보면 필리핀계가 145개로 가장 많고, 일본계, 중국계 순이다.
고려후기인 1380년, 왜구의 잦은 출몰로 고려 사회는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15세의 소년 장수 아지바두(阿只拔都)는 특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몽골어로 어린아이를 뜻하는 ‘아지’와 대적할 수 없는 자를 뜻하는 ‘바두’가 그 이름이 될 만큼 왜적의 어린 장수는 고려 곳곳을 누볐다. 그러나 고려에도 맞수가 있었다. 함경도 출신의 무장 이성계와 그와 피를 나눈 형제처럼 친밀 했던 여진인 출신 이지란(李之蘭)이다. 이성계는 아지바두를 제압하기 위해 이지란을 불러 자신이 활로써 그의 투구를 맞히면 이지란이 직접 달려가 그의 목을 치게 했다. 작전은 성공했고, 장수를 잃은 왜적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이 전투가 바로 황산 대첩이다. 맞았고, 결국에는 조선의 건국에도 참여하였다. 이성계는 그를 개국공신 일등에 봉하는 것으로 화답하였다. 이지란은 이성계와 형제의 의를 맺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고려 속요인 쌍화점(雙花店)에 나오는 회회(回回)아비는 아랍인을 말한다. 아랍인이 정착해서 마을에 만두가게를 차려놓았다는 이야기이다.고려 시대에 벌써 실크로드를 통해서 아립인들이 귀화를 했고 이렇게 귀화한 성씨가 덕수 장씨가 있다.
조선조 시대에 네델란드 인 월터브레란 선원이 관군에게 잡혀서 귀화해 박연이란 이름으로 후손을 남기기도 했다.인간이란 두 다리가 있기에 어느 한곳에 정착해서 산다는 것이 힘든일이다.한국인이 외국에가 귀화도 하고 외국인이 한국에 와 귀화해 함께 살고있으면 한국인이 되는데 이를 차별하고 마치 자신은 원래 터줏대감 한국인이라면서 텃세하는 것이 조금 뭣하다는 생각이다. 사위가 미국인이라고 위세를 부리는 친구의 여동생, 시간이 지나봐야 그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있는 일이다. 가족의 행복이란 서로를 위해주고 인정해주는데 있지 구성원의 국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 여동생이란 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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