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른 새벽인데 난데없는 물소리에 잠이 깨었다.
MRI 검진 예정시각이 10시인데도 벌써부터 목욕재계를 서두르시는 어른!
새벽잠이 없는 연세(年歲)들이시니 선남선녀 없는 시골에선 새벽부터 TV소리
온동네 시끄러울텐데 통잠에 빠져있는 손주를 생각하여 아침 뉴스마저도
자연스럽지 못하신 듯 이내 마당을 쓸고 계신다.
시멘트 덮은 마당에 고엽인들 남아 있을라고..,
하릴없는 비질이라 여겼는데 웬걸~ 밤새 눈이 내렸었나 보다.
이대로 지워버리기엔 올 첫눈의 추억이 아련한지라 그냥저냥 남겨둘 일이지..,
못마땅한 이불 속에서 두 눈만 껌벅거리는데 손녀 등교길 염려하는 어른에겐
눈꽃이 무엇이며 낭만이 다 무엇이냐?
아버지의 나이테는 닳고 닳았다.
기왕의 검진길이시라 상경겸 삼청동 골목나들이를 딸래미와 약속하신 듯하다.
뜻밖의 추위에 쌓인 눈이 금세 얼음판이니 꼬불꼬불 골목 많은 불광동 사람들-
이른 아침부터 엉금엉금 거북이가 되었다.
참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 이마저도 평화로운 아침이니
연탄 끓던 동네라고 어색하지 않다.
출근!
신정 설날에 드실 떡국떡이라 부녀회원님들의 손발이 다시 바빠지셨다.
직접 고른 쌀로 떡을 짓고 손수 가래떡을 썰어내시니 이 맛을 가판대 아무러나
놓인 기계떡에 비교할까?
판매 첫날엔 반나절만에 동이나 부득불 황금같은 하루를 쉬시고 다시 작업을
서두르셨나 보다.
기다리는 사람과 예약고객들이 적지 않으니 차가운 날씨지만 두 팔 걷어올린
회원님들의 옷차림새가 대저 늦가을을 의심케 한다.
2016결산을 하루 앞두고 제직원의 어깨들이 무거워 보여 연신내 연서시장
정평난 옥이네김밥과 오뎅국물에 매료되어 있는데 까톡~
힘겨움 중에 있는 옛 직원이 설상가상 모친상이라하니 덜커덩 이 안타까움을
어떡하누?
상주(喪主)된 몸으로 장례식장에나 제대로 설 수 있는겐지..,
서울역-동대구역 구간 KTX 기차!
평일인데도 12시쯤에야 여유좌석이 있다하니 기차 안의 진풍경이 이대로
힘겨움 딛고 일어서는 오뚜기들의 율동이었으면 참 좋으련만..,
첫눈 쌓인 날
추위 싫다하시고
국화를 두르셨네
다행히도 상주(喪主), 국화꽃에 둘러쌓인 자당(慈堂)을 지키고 섰는데 사연모를
조문객들이야 이 안타까움을 어찌 헤아릴까?
조문을 마치고 30여분 두 손을 맞잡지만 이젠 옛 직원으로 이름하는 그이!
건강과 오뚜기 부활을 소원하며 다시 기차에 오른다.
상경길이라 편안할 줄 알았는데 한시간을 기다리고서야 좌석이 배정된다.
서울-대구간 천리길을 채 두시간이 안되어 오가는 세상이니 업무상으로야
이보다 나은 경제효과가 있을까마는 교육출장 마치고 상경길인 듯한
남여 직원들의 왁자지껄한 맥주타임이 사뭇 그립고 부럽다.
다만, 삶은 계란 하나 넘기지 못할 안타까움과 슬픔이 여전히 목에 메인다.
사무실에 도착하였지만..,
결산업무에 여념없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귀가를 서두른다.
발바닥 통증이 아직 가시지 않고-
가슴마저 짙은 안개에 둘러쌓인 것처럼 한치 앞이 무거우니 조문(弔問)의
통증이 빌딩 숲 사이 살 에이는 칼바람과 같다.
별다른 병명없이 그저 노쇠하여 발생하는 허리통증이니 시술이나 수술보다는
약물이나 물리치료로 이겨내는 것이 좋다하시는 아버지의 검진결과-
산수(傘壽)가 내일 모레인 어른이니 이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은혜로운 복이시다.
건강 지키시어 두 분이 화목하게 지내시는게 거꾸로 효도시라
병신년(丙申年)이 그저 어둡지만은 아니하였다.
자당(慈堂) 어른의 명복(冥福)을 비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