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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밝거라 태양으로 맑거라 달로 원문보기 글쓴이: anrao
캄보디아의 첫 인상은 건기를 맞아 포장되지 않은 길가에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서있는 독특한 형태의 수상가옥들과
‘원 달라!’를 외치며 관광객들에게 접근하는 아이들에게서 시작되었다.
톨레삽 호수에 도착하기 전 가이드는 캄보디아 아이들이 눈을 3초 이상 마주보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의 해맑은 눈동자와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접근에 웬만해선 ‘원 달러!’를 거절하지 못할 것이기에,
한 지인처럼 1달러짜리를 100장정도 바꿔가는 자선의 수고가 없다면 아예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상책임을 강조한 것이리라.
이번 여행후에 곧 같은 상품으로 여행을 계획한다는 한 지인으로부터 여행에 대한 여러 질문을 받았다.
경험하고 온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다보니 이것이 기록으로까지 연결되었다.
타이핑을 도왔던 딸아이는 ‘왜 재미있는 여행기를 안 쓰고 지루한 역사이야기를 쓰냐?“는 불평을 내 놓았다.
기록의 방향이 그리 잡히다보니,
문득 ‘가이드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기억과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가?’라는 의구심이 생겨났다
신뢰할 순 없지만 그러나 ‘앞으로 이곳을 여행할 지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선한 의지’ 라며 딸아이에게 큰 소리 치는 것으로 이 의구심을 잠재우기로 했다.
캄보디아의 첫 관문 씨엠립 공항에서 여름옷으로 갈아입는데 작은 화장실이 아수라장이다.
입국통과시에는 버젓이 ‘원 달러’ 팁을 요구하면서도 여행객들에게 탈의실 정도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의 부재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툴레삽 호수에 도착하여 유람선에 올라탈 때까지 끝없이 ‘원 달라!’를 외치며 아이들이 모여든다.
어느새 유람선으로 올라와 안마를 하며, 음료수를 팔며 ‘원 달라’를 외치는 아이들을 보며. 데오필로는 6.25전쟁 때 미군병사들에게 ‘기브 미’를 외치던 우리네 풍경이 이와 같지 않았겠냐고 한다.
툴레삽 호수주변엔 수상가옥들이 즐비하다.
베트남 내전 때 캄보디아로 피난 왔다 다시 돌아온 베트남인들을 베트남 정부는 ‘박쥐’ 같다하며 받아주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보트피플’이 된 이들이 툴레삽호수 부근에 자리잡게 되면서 지금의 수상가옥들을 이루게 되었다.
이들은 6개월에 걸친 우기에는 넘쳐나는 고기를 잡아 생활하지만 이어지는 건기에는 주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아이들의 ‘원 달라’가 주요수입원이 아니가 싶다.
이 수상가옥 촌에 최일도 목사가 운영하는 다일공동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음식에서 방치되어있는 어린이들에게 하루 한끼의 균형잡힌 식사는 1년후 놀라운 결과로 발표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관광차 왔다가 이러한 아이들의 현실이 마음에 남아 봉사자로 다시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도 꽤 많다고 한다.
나에게는 관심밖의 나라였던 캄보디아에서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는 한국인들의 흔적을 보는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었지만
아이들의 시선이 내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실천없는 내 신앙에 대한 부끄러움때문이었을까?
대규모 뷔페식당
캄보디아의 전통공연인 압살라 민속쇼를 보며 식사를 즐긴다
전통의상의 압살라 무희들은 앙코르와트 부조물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었다.
안젤리나 졸리가 찾아와 유명해진 카페 ‘레드피아노’
야경으로 유명한 이곳은 안젤리나 졸리의 방문이후 유러피안이 많이 찾는 캄보디아의 명소가 되었다.
자유스러움과 화려함으로 관광객들을 맞는 이곳은 특히 노천카페가 많아 맥주메니아 데오필로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였다.
각질을 먹이로 내주는 수조
도저히 먹을것 같지 않은 음식들이 거리에 즐비하다
사진을 찍으니 요금을 내라한다.
앙코르유적을 관람시에는 오토바이 택시인 툭툭이를 타고 다닌다.
유적지 보호를 위해 25인승 초과차량을 통제하기 때문이란다.
툭툭이를 타고 스카프를 휘날리며 30년만의 한파로 서늘한 초여름의 날를로 만끽하며 달렸던 앙코르의 길은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프놈바켕사원
67m의 나지막한 산 위에 자리잡은 프놈바켕사원은 씨엠립 최초의 흰두교 사원이며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흰두교에서는 3억3천의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많은 신들을 33이라는 숫자로 줄여서 상징한다고 한다
.
이 사원에 있는 탑들은 한 쪽 측면에서 보면 33개의 탑이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예배하는 신은
천상계의 최고의 신(창조의신 ‘브라마’, 질서의신 ‘비쉬누’, 파괴의신 ‘시바’)중 하나인 ‘시바’에게 바쳐진 사원이란다.
사원 앞에는 시바를 태우고 가려는 황소 조각상이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둥근 원형막대의 석조물이 시바의 거시기(남근)로 ‘링가’라 한다.
힘든 건기를 지내기 위해 물을 찾아 이곳으로 천도 했지만 다시 취수를 위한 인공호수를를 4개나 지었다고 한다.
인공호수의 지성소 밑에 이 링가를 두었는데 이 링가가 호수전체를 거룩하게 한다고 생각헸단다.
앙코르 와트 - ‘신이 되고자 했던 한 인간의 욕망의 결정체’
‘앙코르’는 도시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한다.
곧 ‘사원의 도시’란 뜻의 앙코르 와트는 크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 바르만 2세때 만들어진 사원으로
캄보디아 가이드는 오랜 숙고긑에 이와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백성들의 신앙심을 이용하여 최고 권력을 가진 한 인간이 신이 되고자 했던 욕망의 결정체라고’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흰두교 사원인 왕코르와트는 수 많은 의문점을 던진다.
1113년부터 1150년까지 37년간 축조되었다는 이 대규모 사원의 규모는 현대공학기술을 적용한다 해도
도시공학자 10명이 설계에만 12년이 걸리고 건축엔 족히 100여년이 걸리는 규모라고 한다.
그런데 공학기술이 그리 발달되지 않았을 천여년 전에 어떻게 37년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이 사원을 축조할 수 있었겠는가 라는 의문이다.
낮에 2만5천명, 밤에 2만5천명 총 5만명이 동원되어 이루어진 이 대규모 사원에서 출토된 ‘일꾼의 기도문’에는
신앙으로 똘똘 뭉친 당시 백성들의 기도를 엿볼 수 있는데,
이것으로 앙코르와트가 노예들의 강제노역으로 이루어진 이집트의 대규모 피라미드와는 달리
백성들의 신앙심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활용했던 수리아바르만 2세가 신이 되는 하나의 장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단다.
앙코르사원으로 들어가는 누각엔 머리가 7개인 뱀의 긴 형태가 전체를 감싸고 있다.
뱀은 캄보디아의 수호신으로 뱀왕의 딸인 소마공주를 조상으로 삼는데서 기인한다.
큰 돌들이 이어져 이루어진 사원은 어떠한 접착제도 사용되지 않았다.
돌끼리 오랜시간 서로 문질러 마모시켜 쌓은 건축형태는 얼마나 많은 노동의 결과인가
짐직할 수 있고 군데군데의 총알자국은 내전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사원의 천정형식은 유사아취 공법이다.
대형성당건물에 많이 쓰였던 아취공법이 중앙에 뼈대를 중심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이것은 뼈대없이 단순이 서로 밀어주는 힘끼리의 균형으로 이루어지는 건축물이다.
극히 위험한 공법이라 하니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신앙이란 이름으로 죽어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역사가 이야기 하듯 앙코르 와트 또한 ‘신앙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앙코르 와트는 비쉬누(질서의 신)에게 바쳐진 사원이다.
비쉬누는 냉철한 신으로 지상계에 문제가 생기면 환생하여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는데
마지막 아홉 번째로 환생한 것이 부처의 모습이라고 한다.
천상계로 들어가는 입구
입구는 72도각도의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은 불교사원으로 쓰이는 앙코르 와트는 불교예식이 있는 날에는 천상계는 통제가 된다.
또한 천상계에서는 관광객들의 복장을 통제한다.
수리아바르만은 이 가파른 입구의 천상계로 들어가 백성앞에 신으로 군림하려 하였다.
즉 앙코르와트는 ‘수리아 바르만’이란 한 인간이 신이 되는 장치였다.
앙코르와트의 놀라운 점
첫째. 사원의 균형감이다.
정면에서는 5개의 탑중 3개의 탑만 보이는데 데칼코마니하듯 사원을 반을 접었을 때
좌우길이의 오차가 6센치도 채 안넘을 정도로 정확히 일치하눈 균형감을 가지고 있다.
둘째, 사원의 넓이이다.
이 사원을 세운 왕인 ‘수리아(태양), 바르만(보호자)’이란 이름답게 사원은 태양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정한 일출시간을 정해놓고 관찰해보면 하지때 사원의 가장 왼쪽 담 모서리에서 뜨기 시작하는 태양은
추분, 동지, 춘분을 거치면서 점차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5개의 탑들을 차례로 거쳐 춘분에는오른쪽 담 끝에 머물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사원의 넓이는 1년이란 시간에 맞춰진 것으로 당시의 과학, 천문학의 놀라운 발달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목욕의식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다.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듯, 인도의 갠지스강에서 종교의식이 있듯, 사원 입구에 있는 이곳에서 종교의식이 행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춤추는 압살라 부조
앙코르와트엔 1400개의 압살라 부조가 있는데 그 중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압살라가 있다하니 꼭 찾아볼 일이다.
1940년부터 이 사원에 복구사업을 하던 일본인들 사이엔 압살라의 풍만한 가슴을 만지면 애인의 가슴이 압살라처럼 풍만해진다는 속설이 퍼졌다.
이후 너나없이 압살라의 가슴을 만지게 되면서 압살리의 가슴은 더욱 도드라지게 되었다.
부조들은 대부분 오랜 세월을 격으면서 채색이 벗겨졋지만 매우 세밀한 선은 그대로 살아있다.
그중 일부 압살라 부조는 밑그림만 새겨져 있어 앙코르와트가 미완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제공한다.
사람과 원숭이간의 싸움을 표현한 부조다
천년 고행후에 창조의 신 ‘브라마’에게 청해서 어떤 신들과의 전쟁에도 패하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된 ‘라바나’는 악동이 되어서
천상계를 발칵 뒤집었다고 한다.
이때 문제가 생기면 환생해서 해결했던 질서의 신 ‘비쉬누’는 라마왕자로 환생했고 원숭이 군대들의 도움을 받아 물리칠 수 있었는데 그 장면에 대한 묘사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위에서 보듯 사원 뜰에선 다소 공격적인 원숭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바이욘사원
앙코르유적지중 가장 유명한 불교사원으로 다양한 미소들의 불상들을 만날 수 있다.
바이오는 흰두교를 배척한 왕으로 자신의 낮은 신분탓인지 흰두교의 신분계급인 카스트제도를 부인하고 만민평등을 부르짖는
대승불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4면상을 가진 54개의 탑이 있는 바이욘사원에 있는 총 216개의 얼굴중 이 불상이
가장 아름다운 ‘바이욘의 미소’로 불리는 관세음보살상이다.
데오필로의 미소도 바이욘의 미소 못지않게 부드럽다~~
타프롬 불교사원
수리아바르만이 죽고 왕권다툼이 치열해지자 크메르왕조는 태국의 공격을 받게 되고
패망직전에 불세출의 영웅이 나타나 나라를 구하는데 그가 가장 왕성한 시대를 이끌고 간 자이아바르만 7세이다.
타프롬사원은 그가 어머니를 위해 세운 불교사원으로 페허가 되어 오래 방치되면서
사원과 나무가 한 몸이 되는 기이한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와트마이 사원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와 더불어 킬링필드의 역사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나라이다.
와트마이 사원은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끔찍한 역사인 킬링필드를 떠오르게 하는 곳으로
사원안에 있는 위령탑안엔 희생자들의 유골이 들어있다.
크메르 루즈에 의한 집단 학살의 역사인 킬링필드의 큰 흔적들은 수도 프놈펜에 있지만
이곳 와트마이 사원에서도 작은 킬링필드의 조각들을 엿볼수 있다.
30년만에 닥친 한파로 초여름의 날씨임에도 사원입구에서는 아이들이 불을 피워 추위를 덜고 있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둘러싼 미국의 여러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 발발한 킬링필드의 자세한 역사는
모두 이해하기도, 기억하기도 쉽지 않았다.
자신의 설명에 자신감이 충만했던 가이드의 결론을 인용하여 표현하자면
킬링필드의 주범인 크메르루즈(반정부군으로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의 폴 보트는 결국 미국의 의해 생겨난 인물이라는 것이다.
곧, 킬링필드의 불행한 역사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정치적 폭력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정치공작으로 친미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캄보디아를 미군은 베트남군에 대한 물자수송이 의심된다며
베트남 접경지역을 무차별 폭격하였다.
이때 반미감정을 기반으로 세력을 잡은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크메르루즈의 수장 폴 보트는 반미세력을 규합하여
혁명을 일으켜 친미정권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수도 프놈펜의 국민 이백만명을 시골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크메르루즈는 사회주의 건설에 방해된다고 판단되는 지식인들을 고문하고 대량 학살하였는데
이 킬링필드의 참사는 해방자가 곧 침략자가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지식인과 지식인으로 판단되는 사람들(교사, 부자, 안경쓴자, 손이고운 자, 영어를 아는자, 외국서적보유자)을
온갖 잔혹한 고문으로 거짓자백을 유도하여 처참하게 살해하였다
.
남아있는 고문도구들이 말해주듯 잔인한 고문은 민주화 과정의(최근상영된 ‘변호인’을 통해서도) 역사를 안고 있는 우리들의 일부에게는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닐 것이다.
크메르 루즈는 순진한 아이들에게 맹목적인 사회교육을 주입시켜 부모를 반공으로 몰아 고발하는 도구로도 활용하였다.
크메르루즈 정권에 의하여 학살된 인원은 최소 8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정권에 염증을 느낀 폴보트를 추앙하던 군인중 하나인 훈센이 베트남으로 탈출하여 월맹훈센연합군을 만들어
폴보트를 축출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킬링필드의 역사가 서방으로 알려지게 된다.
이후 킬링필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집단 학살사건의 발단과 진행에 미국이 깊이 관여되어 있음이 속속 밝혀졌지만
초 강대국인 미국의 방해로 학살의 주범 폴 보트는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69세까지 장수를 누렸고,
‘킬링필드’라는 영화 또한 사실과는 다른 미군이 자신의 악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하게 된다.
캄보디아에서 본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수학공식이 잔뜩 그려져 있는 칠판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지식인들에 대한 대량학살인 킬링필드의 역사는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식사뿐만이 아니라 최소한의 교육도 빼앗아갔다.
킬링필드에 의한 대량 인구감소로 캄보디아는 한때 9시 이후에 공영방송에서 성인물을 틀어주며 인구증가 정책을 폈다고 한다.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나지 않겠느냐’는 낙천적인 생각까지 합세한 이 정책은 문맹이 당연시 되는 가운데 아이들이 ‘원 달러!’를 외치며 교실이 아닌 관광지를 뛰어 다니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온갖 출산 장려 정책에 고민하는 선진국들과 대조를 이루지만 아이들로 넘쳐나는 거리는 나에게는 다소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박쥐의 서식지로 유명한 공원
와트마이 사원 부근에 있던 공원으로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박쥐들로 유명하고 예비부부들의 웨딩촬영으로도 유명하단다.
박쥐들은 저녁이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가 아침에 공원으로 돌아와 나무에 매달려 하루를 보낸다.
공원에서 만나 데오필로와 이야기 하던 한 젊은이
한국어 교사가 꿈이라던 이 젊은이와 한참을 이야기 하던 데오필로는 비로소 여행가로서의 여유를 누리는것 같았다,
첫댓글 캄보디아에 입국하니 공항에서 부터 "1달러" 알고보니 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빨리빨리" 를 외치고 급행료(?)를 주다보니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만 비자 통과시 "1달러"를 달라고 한다." 다 내 탓이오 !!!" 앙코르 왓트를 보면서 인간의 능력은 끝이 없구나를 느꼈다. 오토바이 택시 달리는 중 내모자가 날라가 찾는라 @@@ 킬링필드를 생각해보니 항상 몇몇의 사람들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음속으로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웨딩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서 단어 나열식으로
영어로 둘다 헤매면서 대화를 하니 보기에는 무언가 대화를 진지하게 하는가하는 오해를 낳게 되었다 ㅎㅎㅎ 캄보디아의 많은 발전이 있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