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https://youtu.be/1cVx17bqFr0?si=rB_7TNaENr5EE1rd
(2024.08.04. 주일 낮 예배)
본문 말씀 : 누가복음 8:22-25
주제 : 전능하신 분을 경험할 수 있음을 감사하라.
1. 날씨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역시 오해도 7월말, 8월초가 가장 덥습니다.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올해가 가장 쉬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고. 그 말은 앞으로 갈수록 더 더워질 것이라는 것이지요. 자동차 배기 가스, 건물에서 내뿜는 에어콘 열기, 그냥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봐도 앞으로 날씨가 갈수록 더 더워지지 쉬원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살인적인 더위! 그냥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이런 더위의 뒤에도 어떤 힘이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시려고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호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호수를 흔히 갈릴리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그렇지만 호수는 호수지요. 호수 주위에는 큰 산이 있습니다. 산위에서 호수쪽으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 바람은 호수에서 세차게 불어와서 호수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듯이 덮쳤기 때문에 그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그야말로 광풍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뱃사람이기 때문에 바다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위험은 대처할 수 있었지만 이런 광풍 앞에서는 그들도 어쩔 수 없었지요. 제자들은 잠들어 있는 예수님을 깨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잠이 깬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의 꾸중을 듣고서 바람과 물결은 바로 그 시간에 잔잔해졌습니다. 바람과 물결이 저절로 잔잔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꾸중을 듣고서 잔잔해진 것입니다. 바람도 물결도 날씨도 주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렇게 더운 날씨는 저절로 자연히 자연현상으로 우리들의 과도한 에너지 낭비로 일어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런 날씨도 그 뒤에는 어떤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을까요? 갑자기 이상한 마술 이야기 하려는 것 아닙니다. 계속해서 들어보십시오.
2.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맞은 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땅은 이방인들이 사는 거라사인의 땅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귀신들린 사람이 한 사람 살고 있었는데, 그는 옷도 입지 않고, 집에 살지도 않고,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귀신이 들렸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거지요.
귀신이 자기가 몸담고 있는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주님께 하소연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왜 그렇게 말하는가? 이미 예수님이 그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귀신이 예수님에게 그러면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까 그것들은 돼지 때에게 들어갔고 돼지떼는 귀신이 들어오자 견디지 못하고 호수로 뛰어들어서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를 건너오면 예수님께서 귀신들이 살고 있는 거라사 땅으로 오게 됩니다. 그러면 귀신들은 자연히 견딜 수가 없지요. 귀신들은 예수님이 거라사 땅으로 오기 전에 호수에 있을 때, 바다에 풍랑을 일으켜서 예수님이 그 땅으로 오지 못하게 방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바다를 무서워했습니다. 그들은 바다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들의 생각으로는 바다는 무서운 곳이었고, 그곳에는 귀신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다에는 혼돈의 신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바다에서 광풍이 이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귀신들이 화가 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바다에서 광풍이 이는 것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그것들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부는데 내가 뭐라고 해봐야 그것들은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내 말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내 말이 통하지 않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것들도 간단하게 잠재워버리십니다.
3.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소득이 높아져도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나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한다고 해서 다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병에 걸린다고 해서 다 죽는 것도 아니고, 크게 잘못 되는 일도 잘 없습니다. 대부분은 다시 건강한 몸을 되찾습니다. 병이 나면 병원을 찾아갑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여러 사람에게 문의해서 해결책을 찾습니다. 병원엘 가서 병을 고쳤다고해서 의술이 병을 낫게 했다고 여기십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서 병을 꾸짖었기 때문에 병이 떠나간 것입니다. 의사는 주님이 쓰시는 도구일뿐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특히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번에도 다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우리는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몇 번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단 한번의 기회에 깨닫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사람들은 몇 번의 기회를 거쳐야 깨닫게 되지요. 그러나 기회를 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참으로 안타깝기는 하지만 대개 그런 사람들은 마음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이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4. 기회가 올 때 잡아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까 제자들이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했지요. 그 다음 여러가지 사건을 겪고 난 다음에 마태복음 14:22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다시 물 위를 걷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고 유령이라고 하면서 무서워하면서 소리를 지르지만 베드로는 조금 담대해져서 예수님을 향하여 ‘나를 명하여 물위로 오라하소서’ 하면서 다만 몇 발자국이지만 그도 물위를 걸어갑니다.
한 번씩 주님을 만나고 나면 담대해지게 됩니다. 물론 그간에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베드로는 주님의 기적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많은 경험을 하게 되니까 담대해지는 것이지요. 여러가지 사건을 만나면서 베드로는 담대혀졌습니다. 믿음이 강하여진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다가오는 사건은 베드로의 믿음을 강하게 만드는 거름이 됩니다. 많은 사건을 만날 때, 우리는 강하여져야만 합니다. 그것이 기회가 됩니다.
다만 한 가지, 기적을 많이 경험하시면 그가 감당해야할 일도 많아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보십시오. 그다음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또 그후에 오천명을 먹이고 난후 예수님은 변화산으로 가서 엘리야와 모세를 만나지요. 그때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서 많은 일들을 하고 많은 능력을 받지요. 그렇지만 그는 전설에 의하면 나중에 그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데 바로 달리지 못하고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합니다. 야고보는 가장 먼저 순교를 당한 사람이고, 요한은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아서 예수님의 어머님 마리아를 끝까지 돌보아야 했고 또 초대교회의 모든 시련과 핍박을 다 견뎌내야 했습니다.
5. 지혜로운 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일찍 깨닫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자들입니다. 일찍 깨닫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일찍 깨닫습니다. 예수님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누가복음 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어린 아이들은 마음이 가난한 자요. 세상적으로 지혜가 부족한 자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 우리가 어려운 일 가운데 들어감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되면 참으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23-24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지금 혹시 어려움 가운데 계시는 분, 계시면 우선 명심하십시오. 이로 인해서 내가 잘못될 것이 아니요. 내가 좀 더 깊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이로 인해서 나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고, 주님이 어떤 분이심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보고자 했지만 그들은 보지도 못했고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일들을 겪음으로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고 깨닫게 되고 믿음을 갖게 되어서 구원의 길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은 우리들에게 큰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내게 닥쳐온 어려움과 슬픔을 통해서 우리는 진리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며, 진리를 깨닫고 나면 우리는 다시 건강하고 원만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귀한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