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
쌍두취행진곡(4)
두 사람은 큰길로 나왔다. 상기가 되었던 뺨을 스치는 밤바람이 여간 시원하지가 않다.
“우리 산보나 헐까요?”
“기차 시간이 되지 않었어요?”
“오늘 못 가면 내일 첫차루 가지요. 하룻밤쯤 새우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영신 씨가 또 쫓겨나실까봐서…..”
“전 괜찮아요. 쫓겨나면 고만이죠.”
영신은 동혁이가 또 그대로 뿌리치고 갈까보아 도리어 겁이 났던 판이라 ‘어디로 갈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그럼 목두 마른데 악박골루 가서 약물이나 마실까요?”
하고 독립문 편짝을 향해서 앞장을 선다.
“참, 악박골이, 영천(靈泉)이라구두 허는 덴가요?”
“여태 한 번두 못 가보셨어요?”
“온, 시굴뚜기가 돼서….”
“누군 시굴 사람이 아닌가요. 우리 고장은 옛날에 서로 양반들이 귀양살이나 허러 오던 동해변의 조그만 어촌인데요. 동혁 씨의 고향은 저거번에 소개를 해주셔서 잘 알었지만, 거기도 어지간히 궁벽한 데드군요.”
두 사람은 천천히 걸어가면서, 서로 자기네 고향의 풍경과 주민들의 생활하는 형편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버스는 그친 지도 오랜 듯, 큰길 양옆의 가게는 빈지를 닫기 시작한다.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 감옥 앞 넓은 마당까지 오니까, 전등불이 겅성드뭇해지고(많은 수효가 듬성듬성 흩어져 있다) 오고가는 사람도 드물어서, 어두운 골목 속으로 드나드는 흰 옷자락만 희뜩희뜩 보일 뿐.
떠오른 지 얼마 안 되는 하연 달은, 회색빛 구름 속에 숨었다가는 흐릿한 얼굴 반쪽을 내밀고, 감옥의 높은 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악박골 물터 위의 조그만 요릿집에서는 장구 소리와 함께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건달패와 논다니(웃음과 몸을 파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들이 어우러져서 약물이 아닌 누룩 국물을 마시고 그 심부름을 하는 모양이다.
동혁은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돈 십 전을 주고, 약물 한 주전자와 억지로 떠맡기는 말라빠진 굴비 한 마리를 샀다.
“온, 샘물을 다 사 먹는담.” 하고 , 한 바가지를 철철 넘치도록 따라서 영신에게 권한다.
“주전자 꼴허구, 약이 되기는커녕 배탈이 나겠어요.”
하면서도 한창 조갈(입술이나 입안, 목 따위가 타는 듯이 몹시 마름)이 심하던 판이라, 둘이 번차례로 한 사발씩이나 벌떡벌떡 마셨다. 물이야 정하나 마나 폭양에 운동을 한데다가 한여름 동안 더위에 들볶이던 오장은 탄산수를 마신 것처럼 쏴야 하고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데, 골 안으로 스며드는 밤기운데, 속적삼에 배었던 땀이 식어서 선뜩선뜩 할 만치나 서퇴(더위가 물러감)가 되었다.
두 사람은 으슥한 언덕 밑 바위 아래에 손수건을 껄고 앉았다. 등 뒤 송림 속에서 누군지 청승맞게 단소를 부는 소리가 들린다. 영신은 한참이나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감옥 속에 갇힌 사람이 자다 말구 저 소릴 들으면 퍽 처량허겠어요.”
하고 얼굴을 든다. 구름을 벗어난 창백한 달빛은, 고향 생각에 잠겼던 그의 얼굴을 씻어내린다.
“참,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군요.”
동혁이도 약간 애상적인 감정에서 눈을 번쩍 뜨며 혼잣말하듯 한다.
“왜요?”
영신의 눈은 동그래졌다.
“몇 주일 전까지는 백판(전혀 생소하게) 이름두 모르던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앉어서, 약물터의 달을 똑같이 쳐다볼 줄이야 꿈이나 꾸었겠에요?”
“참말요, 이것두 하나님의 뜻인가 봐요.”
“참 영신 씨는 크리스찬이시지요?”
“전 어려서버텀 믿어왔어요. 왜 동혁 씨는 요새 유행하는 마르크스주의자셔요?”
“글쎄요, 그건 차차 두구 보시면 알겠지요. 아무튼 신념을 굳게 하기 위해서나 봉사의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신앙생활을 허는 것두 좋겠지요. 그렇지만, 자본주의에 아첨을 허는, 그따위 타락헌 종교는 믿구 싶지 않어요.”
하다가 영신이가 무어라고 질문을 할 기세를 보이니까, 동혁은,
“종교 문제 같은 건 우리 뒀다가 토론허십시다. 그버덤 더 중요헌 얘기가 있으니까요.”
하고 손을 들어 영신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러고는, 눈을 딱 가고 한참이나 이슬에 젖은 숲 속의 벌레 소리를 듣고 있더니,
“나는 이런 생각을 허구 있에요.”
하고 웅숭깊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간담회 석상에서 영신 씨가 허신 말씀을 듣구 감복을 했지만, 내가 농촌 태생이면서두 여러 해 나와 있다가, 직접 농촌 속으루 들어가보니까, 참말 그네들의 사는 형편이 말씀이 아니에요. 신문이나 잡지에서 떠드는 것버덤 몇 곱절 비참하거든요.”
하고 한참이나 뜸을 들이다가 마른침을 삼키더니, 오래전부터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난 자진해서 학교를 퇴학허고 싶어요.”
하고는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숲 속에서 반득이는 반딧불을 들여다보며, 동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영신은, 얼굴을 번쩍 들며,
“왜요? 일 년 반만 더 댕기시면 졸업을 허실 텐데요?”
하고 놀라운 듯 눈을 크게 뜬다.
“고만둘 수밖에 없어요. 중학교 때엔 억지를 쓰구 별별 짓을 다 해가면서 고학을 했지만, 나 하나 공부를 시키시라구, 아버지는 올봄까지 대대루 내려오던 집 앞 논까지 거진 다 팔으셨에요. 졸업만 허면 큰 수가 날 줄 알구, 계량(한 해에 추수한 곡식으로 다음 해 추수할 때까지 양식을 이어감)할 것두 아니 남기신 모양인데, 내가 졸업이라구 헌댔자 바루 취직두 허기 어렵지만, 무슨 기수(技手)라는 명색이 붙은 데야 월급이라군 고작 사오십 원밖에 안 될 테니, 그걸 가지구 객지에서 물 밥 사 먹어가며, 양복 해 입구, 소위 교제비까지 써가면서 수다한(수효가 많다) 식구를 먹여 살릴 수가 있겠어요? 되레 빚만 자꾸 지게 되지요. 그러니까 나머지 땅마지기나 밭 날갈이를 깡그리 팔어 없애구서, 거산(집안 식구나 한곳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짐)을 허게 되기 전에 하루바삐 집으루 돌아가서 넘어진 기둥을 버티고, 다시 일으켜 세울 도리를 차려야겠에요. 까딱허면 굶어 죽게 될 형편이니까요.”
“……….”
영신은 동혁의 사정도 딱하거니와, 그만 못지않게 말이 아닌 저의 집의 형편을 생각하느라고 말대답도 아니 하고 있다가, 한참 만에야 한숨을 섞어,
“제 사정은 백 선생밖에는 아무헌테두 말한 적이 없어요. 홀로 디신 우리 어머니는 육십 노인이 딸 하나 공부를 시키느라구 입때 생선 광주리를 이고 댕기서요. 올여름엔 더위를 잡숫고 길바닥에 가 쓰러지신 걸, 동네 사람들이 업어다가 눕혀드렸어요. 그렇건만 약 한 첩 변변히…..”
그는 고만 목이 메었다가 간신히 입술을 떨며,
“정신을 잃으신 동안에 어느 몹쓸 놈이 푼푼이 모아 넣으신 돈주머니를 끌러 가서, 그게 원통해서 밤새두룩 우시는데…..!”
하고 영신은 가슴속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참느라고 잇자국이 나도록 손가락을 깨문다.
동혁은 몹시 우울해졌다. 가슴이 턱 막힌 듯이 갑갑해서 더운 입김을 후-하고 내뿜는다.
숲 속의 버러지 소리도, 바위틈으로 졸졸졸 흘러내리는 샘물 소리도, 두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동혁은,
‘내가 공연히 그런 소리를 끄집어냈구나.’
하고 바로 정수리 위에서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내려다보는 유난히 큰 별을, 원망스러이 쳐다보다가, 영신의 앞으로 다가앉으며,
“자, 우리 그런 생각은 고만 허십시다. 어쨌든 우리는 명색 전문학교까지 댕겨보니까, 여간 행복된 사람들이 아니지요.”
하고 목소리 부드러인 영신을 위로한다.
“참말 공부니 뭐니 다 집어치구, 시굴루 내려가야겠어요.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서울 와서 나 혼자 편안히 지내는 게 어머니께나 동리 사람들한테까지 큰 죄를 짓는 것 같어요. 첨엔 멋도 모르구서, 무선 성공을 허구야 내려간다고 하나님께 맹세꺼정 허구 올라왔지만요…..더군다나 아까 백 선생 댁에서 허신 말씀을 듣구, 이제까지 지내온 걸 여간 뉘우치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듣자 동혁은 벌떡 일어섰다. 양복바지에다가 두 손을 찌르고, 거진 권련 한 개를 태울 동안이나 왔다 갔다 하며 무슨 생각에 잠겼다가, 영신의 앞으로 다가서며,
“영신 씨!”
하고 힘차게 부른다.
“우리 둘이 이렇게 만나서, 한 십 년이나 사귄 동지처럼 가슴을 터놓구 하룻밤을 새운 기념을 우리 영원히 남기십시다.”
하고 중대한 동의(회의 중에 토의할 안건을 제기함, 또는 그 안건)를 한다.
“어떻게요?”
영신의 눈은 별빛에 새파랗게 빛난다. 동혁은 버썩 대들어, 그 소댕(솥을 덮는 쇠뚜껑) 같은 손으로 서슴지 않고 여자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우리 시굴루 내려갑시다! 이번 기회에 공부구 뭐구 다 집어치우구서, 우리의 고향을 지키러 내려갑시다! 한 가정을 붙든다느니버덤두 다 쓰러져 가는 우리의 고향을 붙들기 위한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서, 자 용기를 냅시다! 그네들을 위해서, 일을 허다가 죽는 한이 있드래두, 선구자로서의 기쁨과 자랑만은 남겠지요.”
영신이가 무엇에 아찔하게 취한 듯이 눈을 내리감고 있는 것은, 불시에 두방망이질을 하는 심장의 고동을 진정하려 함이다. 그는 마주 일어서서, 동혁에게 으스러지도록 잡힌 두 손에 힘을 주며,
“고맙습니다! 당신 같으신 동지를 얻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영신은 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어느덧 인왕산 너머로 기울어가는 달빛 아래서 두 남녀의 마주 쏘아보는 네 줄기 시선은 비상한 결심에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