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와 용(龍) 이야기(재)
대한민국의 국운이 용틀임하는 해가 되길
* 대통령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야권의 두 후보가 단일화함으로써 대선 정국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어느 후보가 대권을 잡을지 알 수 없으나 며칠 뒤면 당선자가 가려질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가 나라를 이끌게 될지 결과가 궁금해진다. 이 글은 제18대 대통령선거에 즈음하여 쓴 글인데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다시 올린다.
바야흐로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나라의 최고 통치자를 뽑는 선거로 인해 지금 나라가 몹시 어수선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정치권의 불필요한 갈등 때문에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지출했다. 이는 사안마다 지역, 세대, 계층, 이념 등의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헐뜯고 싸우며 극단적으로 대립함으로써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국론은 갈라지고 국민들은 지쳐버렸다. 국론이 분열되어 혼란의 시기를 겪는 지금, 과연 해법은 없는 것인가? 아무려나 한 표를 행사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선거를 통해 덕으로서 화합을 이루는 용의 출현을 기다려 본다.
용은 무소불위의 권능과 천변만화의 신통력을 가진 존재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각국의 설화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바빌로니아.인도.중국 등 이른바 문명의 발상지 어디에서나 이미 오래 전부터 상상되어온 동물로서 신화나 전설, 민담의 중요한 제재로 등장하고 있다. 용을 뜻하는 영어 단어 드래곤(dragon)은 그리스어의 드라콘(drakon)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은 큰 바다뱀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래서 헬레니즘 문화권에서는 용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헤브라이즘 관련 신화에서 바다 속에 사는 거대한 용 리바이어던(leviathan)은 악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 예술에서 용은 흔히 죄악이나 이교도를 상징하고 있다. 즉 용은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상징성을 보인다.
용은 인간이 그려낸 상상의 존재지만 인간들의 현실적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양권, 특히 전통적인 농경문화권인 중국에서는 용이 바다나 강, 호수 등 물속에 살며 자유자재로 구름을 모으고 비를 내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에 상서로운 존재로 여겼다. 조선조 초기에 간행된 한자교습서 <훈몽자회>에서는 龍(용)자를 ‘미르 룡’이라 했다. 따라서 용의 우리말이 ‘미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하수를 우리말로 미르내 또는 미리내라고 하는 것은 옛사람들의 눈에는 밤하늘의 은하수가 마치 용 모습을 띈 냇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서 물은 곧 생명과 직결된다. 우리민족 역시 수렵과 유목을 거쳐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용을 신성시 하게 되었으며, 용을 신적인 존재로 숭앙하게 되면서 우리 설화의 중요한 모티브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용은 봉황, 기린, 거북과 함께 옛사람들이 생각했던 네 가지 신령한 동물로서 상상의 동물이다. 머릿속에서 그려낸 동물이니만큼 사람마다 생각하는 용의 모습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중국 사람들이 상상했던 용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중국 위나라 때 장읍이 쓴 <광아(廣雅)>라는 책에는 용의 모습을 머리는 낙타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손바닥은 호랑이를 닮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몸에는 81개의 비늘이 있고, 목소리는 구리쟁반을 울리는 소리와 같으며, 입 주위에는 두 개의 긴 수염이 있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각종 그림이나 조각품에서 볼 수 있는 용의 모습은 대체로 광아에서 묘사한 용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무속신앙(巫俗信仰)에서 용은 육계(陸界)를 다스리는 산신과 더불어 수계(水界)를 다스리는 수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특히 삼면이 바다에 연해 있는 한반도에서 용은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따라서 무속에서는 용을 용신, 또는 용왕이라 부르며 바다 속의 용궁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바닷가나 큰 강가에 연해 있는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용왕굿을 벌이곤 한다. 큰 사찰에 가면 대웅전 뒤편에 산신각 또는 용왕각을 지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불교가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면서 무속신앙을 일부 수용하는 과정에서 무녀들에게 중생을 구제한다는 보살(菩薩)의 지위를 주는 한편 산신과 용신을 모시는 전각을 지어주게 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지명은 물론이려니와 산과 폭포, 못이나 바위 등의 이름에 용자가 들어가는 곳이 꽤나 많은 편이다. 그리고 그 이름마다 용과 관련된 비슷비슷한 설화들이 얽혀 있다.
중국에서는 입신출세의 관문을 등용문이라 일컫는데 이는 중국의 사서인 <후한서>에 나오는 말로 황허강에 사는 물고기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급류를 헤치고 산시성에 있는 용문(龍門)에 이르면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용은 귀한 신분의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용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예로부터 희망과 성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하찮은 집안에서 큰 인물이 났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 가운데서도 용꿈을 가장 큰 길몽으로 쳤던 것이다. 특히 태몽으로 용꿈을 꾸면 그 아이가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용꿈에 얽힌 설화는 대부분이 큰 경사를 예고하는 것들이다.
‘해동 육룡이 나르시어 일마다 천복이시니 고성이 동부하시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 좋고 열매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므로 내에 이르러 바다에 가나니' 이 노래는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1장과 2장의 가사이다. 용비어천가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이의 실용성을 검증하기 위해 정인지, 권제, 안지 등의 학자들을 시켜 지은 장편서사시로 한글로 쓰인 최초의 작품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용의 승천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총 125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악장이다. 내용은 조선왕조의 창업을 주로 중국의 고사와 비유하여 칭송하였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이 하늘의 뜻임을 밝히고 후세의 왕들에게 경계토록 하였으며, 왕조의 번창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용비어천가를 노래로 부를 때 여민락(與民樂)이라 한 것으로 보아 세종대왕은 이 악장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 민심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용비어천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용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상서로운 존재로 알려져 있다. 또한 위엄이 있는 모습 때문에 임금을 상징하기도 했으니 이는 전적으로 중국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임금이 입는 옷을 곤룡포(袞龍袍), 임금이 타는 수레를 용가(龍駕), 임금이 흘리는 눈물을 용루(龍淚), 임금의 수염을 용수(龍鬚), 임금이 앉는 평상을 용상(龍床)이라 부른 것 모두가 용을 임금의 상징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옛 문헌을 보면 임금들 가운데 용과 관련된 설화가 얽혀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신라의 왕인 석탈해는 용성국 왕과 적녀국 왕녀 사이에서 태어났고, 백제의 무왕은 과부였던 그의 모친이 연못에 사는 용과 통정하여 태어났으며, 고려 태조 왕건은 용왕의 딸인 용녀와 작제건 사이에서 태어나 각기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임금과 관계된 어휘에 용(龍)자가 붙은 것은 용이 용맹스럽기도 하려니와 물속에 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변화무쌍한 능력이 신령스럽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용은 상서롭고 용맹한 존재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용에게도 결정적인 약점이 있으니 바로 역린(逆鱗)이다. 역린이란 용의 목 밑에 있는 비늘 가운데 거꾸로 박혀 있는 한 개의 비늘을 가리킨다. 중국 한나라의 사상가 한비자는 그의 저술 <세난>에서 ‘용은 잘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으나 자칫 잘못하여 역린을 건드리면 사람들을 죽인다. 군주도 이와 마찬가지로 역린이 있어 잘못 건드리면 사람들을 해치니 역린을 건드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즉 역린이란 군주의 노여움을 가리킨다. 하지만 한비자 역시 진나라의 왕 영정에게 죽임을 당해 화를 벗어나지 못했다. 고래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각종 사화나 정변 모두가 역린을 잘못 건드려 일어난 사건이니 어찌 용이라 두렵지 아니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전제군주시대가 아니다. 그러니 누가 나라를 다스리든 역린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되겠다.
용들 가운데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물속에 숨어 승천할 때를 기다리는 용을 가리켜 잠룡(潛龍)이라 한다. 그렇기에 잠룡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영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었다. 벌써부터 많은 잠룡들이 서서히 물거품을 일으키며 승천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그 많은 잠룡들 가운데 과연 누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번에 출마한 대통령 후보자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무수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 가운데는 지키지도 못할 호황된 공약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을 뽑는 것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잠룡들 가운데 누가 덕망이 있는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요즘 우리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몇 년째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우리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취업대란이라는 말처럼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못 찾아 방황하고, 서민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의 당선자는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는 것 못잖게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난제를 떠안게 됐다. 누가 대통령으로 뽑히든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의 문무왕처럼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국민을 이끌면 모든 문제들이 술술 풀릴 것이다. 아무려나, 새 대통령을 맞아 용이 승천하듯 우리의 국운이 용틀임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