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차 : 09/04
올해 중에 가장 어이 없고 속 터진 날이 언제였냐 묻는다면, 이번 들살이 5일차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5일차에는 이응노 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보고, 카페에서 스케치 작업을 했다.
아침부터 소동이 있었다. 알람을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준비도 늦어지고, 기차도 늦어졌다. 기차는 원래 8시 거를 타야 했는데, 늦어져서 어쩔 수 없이 8시 25분 거를 탔다. 그리고 거기서 정신을 잡았어야 했는데, 그동안 피곤했던 건지, 아니면 정신이 없었던 건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래서 이날 많이 혼났다.
이때 많이 혼나면서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통을 안 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그걸 확실히 깨닫고 나니까 다행히도 들살이 중 소식을 못 전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날이 대차게 혼난 날이어서 속상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만큼 중요한 걸 확실히 깨달은 날이라서 뭔가 새로운 다짐을 한 마음이기도 했다.
(이응노미술관 전시 1)
(이응노미술관 전시 2)
6일차 : 09/05
이번 6일차에는 원래 폐교에 가려고 했으나, 들살이 계획표를 짤 당시 전날에 전부 제출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덜 준비 되었다는 판단으로 완전히 갈아엎게 되었다. 그래서 카페봄이라는 카페에서 작업하고, 다다르다 독립 서점에서 아무튼 시리즈의 아무튼 비건을 읽었다.
카페에서 작업한 건 말할 게 정말 없어서, 독립 서점에서 읽었던 책과 관련해 얘기하려 한다.
서점에서 읽었던 아무튼 비건 책은 비건과 관련된 책이었는데, 읽어보면 그냥 제목만 비건이고 현재 사회의 관계와 관련해서 얘기들이 많은 책인 것 같았다. 사실 이 책의 제목만 봐도 내 주제와 맞지 않은데 읽으려고 했던 이유가 있다.
위에서 말했던 것과 비슷한데, 책이 비건 책이지만 관계와 관련한 얘기도 정말 많이 나온다고, 나에게 필요한 책인 것 같다며 노을께서 추천을 해주셨다. (언니들도 이 책 좋다며 언급했다.) 전날 일도 그렇고, 그 전에 3일차 당시 한 소동도 있었다. 나는 점심식사를 마치기 전에 규칙이었던 점심 인증샷을 지키기 위해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그때 난 뼈해장국을 먹었는데, 그게 나는 그때 당시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비건 식단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고, 나는 그날 밤 사과를 했다. 그 일로 나는 공동체 안에선 그런 것도 서로서로 배려해야 되고,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만 너무 신경쓰지 않고, 상대에게도 신경을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 읽게 되었다.
어쨌든, 거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면, 우리는 죽은 시체를 입안에 쑤셔 넣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얘기한 게 제일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분명히 우리는 죽은 걸 먹는 거나 마찬가지긴 한데, 그거에 대한 인식을 잘 못 하는 것 같다. 뭔가 우리는 생물을 죽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확실히 무뎌졌다 생각이 든다. 우리는 죽인 걸 시체라 부르지 않고, 그걸 고기라고 부르는 것부터 무뎌졌다고 생각한다. 고기라는 단어만 나와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만큼, 이번에 그 책을 읽고 나서 충격이 강했던 것 같다. 그정도로 책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씩 읽어 보시는 걸 추천…
(카페봄에서 마신 딸기 생과일주스)
(서점 가던 중에 발견한 인형?)
(다다르다 서점 안)
7일차 : 09/06
이번 들살이 7일차엔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하는 미래도시 전시 구경을 하고, 독립 서점을 가서 나에게 필요할 것 같은 책 한 권을 읽는 작업을 했다.
먼저 대전시립미술관에 갔을 때 가장 다행이었던 건, 청소년권을 구입하는데 학생증, 여권이 필요 없던 게 정말 다행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여권이 숙소에 있었다.) 이유는 내 서울 일지를 보면 거기서 알 수 있을 거다.
들어가서 보니 딱 제목처럼 미래도시 느낌나게 꾸며져 있었다. 가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정만영의 작품 ‘흐르는 소리 풍경’이었다. 외관은 TV 여러개를 원형으로 켜 놓은 모습인데, 외관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거기서 받는 느낌은 매우 만족했다. TV 안에서 나는 소리가 큰 틀로 봤을 때 자연, 도시가 있었다.
그 두 소리가 겹쳐서 들리니까 매우 거슬렸다. 이게 아무래도 작품을 만든 화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전시를 딱 보고 느꼈던 해석은, 자연에 우리가 함부로 끼어들면 안된다는 거였다. 화가는 함부로 끼어듬으로써 모두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자연, 도시 소리로 귀를 거슬리게 한 게 아닐까 라는 진지한 생각을 해봤다.
(당시 봤던 정만영의 작품)
다른 전시실에 가보니, 또 마음에 드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이 작품은 시를 집어 넣어 만든 영상이었다. 영상에서 시가 한국어랑 영어로 나왔는데, 모두가 쉽게 시를 볼 수 있도록 번역을 2개 해 놓았다는 것에 일단 좋았다. 근데 시를 보고 해석을 확실히해야 했는데, 역시 그 시는 나에게도 매우 어려웠다. 여러 추측만 나왔을 뿐, 확실하게 이거다 하는 자기 해석은 없었다. 하지만 시 내용은 너무 좋았다.
시 내용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말하자면…
“아무 의미도 두지 않고 서로를 애석해 하지 않는 우리, 휘어지는 나의 척추, 벼랑은 인간에게로 인간으로부터 시작되고, 여전히 남겨진 다발의 폭탄, 사실상의 지뢰이며 쌓여 있는 슬픔, 오염된 담배를 거둬들이고, 폭탄을 거둬들이고, 아기의 치아를 거둬들이고, 손바닥을 거둬들이고 연기, 증인을 거둬들이고 연기, 결의들 연기, 구제 연기, 구원 연기, 호흡.”
시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만큼 이 작품이 내가 거기서 봤던 작품들 중 가장 좋았다.
(당시 봤던 시가 담긴 작품)
(여기선 소개하지 않은 또 다른 작품)
전시를 다 보고, 점심 먹고 난 뒤에 다다르다 독립 서점에서 아무튼 시리즈의 아무튼 메모라는 책을 읽어 봤다.
읽는데 너무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혼자 웃음 참으며 읽은 게 기억에 남는다. 되게 가슴 뭉클한 사연도 앞쪽에 써져 있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이 찡했다. (솔직히 울 뻔 했다.) 인상 깊었던 부분도 필사 했는데, 너무 악필로 적어서 나만 알아볼 것 같다는 생각에 그 부분을 책에서 찍어 여기에 올리겠다.
(아무튼 메모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여기서 털어놓지 못한 사건사고들이 이날 많이 터졌다. 이번 태풍으로 인하여 원래 가려고 했던 서점은 문 닫고, 점심 먹으려 했던 식당은 카페로 변했고, 전시관의 어떤 남자직원 분이 어디 학교 다니냐면서 자꾸 나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고…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5일차 때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건 진짜 사건사고날 1위고, 이날은 2위다. 이번에 참으로 많이 느낀 것 같다. 세상을 정말로 얕보면 안된다는 걸…;;; (그만큼 이날은 너무 당황스런 일들이 많이 생겼다.)
들살이 마지막 밤이라, 다같이 그동안 들살이를 하면서 어떤 걸 느꼈는지 소감을 돌아가면서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의외라는 주제로 들살이를 간 거였는데 내가 들살이를 마치면서 얻었던 건, 의외라는 장소에서 영감을 얻은 것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관한 의외였다. 뭔가 소통과 관련해서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같고, 한층 더 성장한 것 같다. 내가 한층 더 성장한 지점이, 이번 들살이에서 제일 크게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8일차 : 09/07
들살이 마지막 8일차에는 모둠원이 다같이 소풍을 갔다.
같이 중간에 김밥 한 줄씩 사서 버스를 타고, 조금 걷더니 명상공원에 도착을 했다. 가는 길에도 그렇고, 공원도 그렇고, 온통 자연 밖에 없어서 너무 좋았다. 특히 자연에서 나는 풀냄새가 나서 더더욱 좋았다. (그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도착을 해서 보니, 저 멀리에 거위들이 가득 있었다. 거위를 본 것 만으로도 신기한데, 거기에 더해서 거위들이 풀만 뜯어 먹으니까 그게 너무 신기했다. 생선이나 벌레 먹는 거위는 봤지만, 풀을 먹는 거위는 한번도 사진으로 못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거위 눈색이 푸른색이란 거에 너무나도 신기했다. (처음 안 거라서 더욱 더 신기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렇게 좀 구경하고 쉬다가, 다같이 목적지 가던 도중에 산 김밥을 한 줄씩 먹고 또 다시 자유롭게 놀았다.
나는 이번에 거위를 제일 많이 찍었다. 오랜만에 본 이유도 있고, 신기한 광경도 처음 보고, 이건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진짜 귀여웠기 때문이다.
(앞서 나가는 선배님들)
(가던 도중 발견한 호랑이 동상들)
(밥 먹는 거위 무리들)
(올해 처음으로 발견한 무당벌레)
(자고있는 거위 무리들)
(갑자기 째려보는 거위)
(파닥파닥 헤엄치는 거위)
그 이후에 아주 잠깐동안 시장도 구경하고, 1시간 정도 각자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각자의 시간을 가졌을 때, 나는 성심당 빵집 본점에 갔다 왔었다. 확실히 유명한 집이라 그런지 빵들이 전부 맛있어 보이고 촉촉했다. 내가 돈의 여유가 있었다면, 전부 다 쓸어 갔을지도 모른다. 부모님과 나눠 먹기 위해, 빵을 몇개 좀 사서 든든하게 (?) 빵집을 나갔다. 분명히 돈을 쓴 건 맞지만 그걸 무찌를 만큼 정말로 행복했다. (빵을 사랑한다.)
(성심당 빵집 본점 안)
(빵 다 사고 뿌듯하다)
그렇게 숙소에 다같이 만나서 좀 시간을 보내다가 각자 집에 갔다. 이번 들살이는 정말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그만큼 깨달은 것도 많았고, 보람찼던 것 같다. (근데 다음에는 좀 더 성숙한 (?) 모습으로 들살이를 맞이 할지는 모르겠다…;;;ㅋㅋ)